마구론 -제라울블로그
이글은 예전에 다른 곳에 쓴 거라서 못본 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봅니다.
우선 고치지 않고 원본 그대로 옮기며 이름하나만 고쳤습니다. 나중에 천천히 말투나 글 수정을 하겠습니다.
예전엔 고단자분들을 더 가르치고 더 잘하게 하기 위해 애썼는데 이겐 그것을 저단자나 일반인도 이해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한번에 다 배우거나 납득시킬 수가 없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고단자는 행동이 있어야 해서 우선적으로 가르치고 마구를 해야해서 먼저 말했는데,
그 지식이 이제 더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해도 될거 같습니다.
이젠 광룡원에서 좀 지낸분들이 들은 것도 있고 본 것도 있으니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은 할 수 있으니 그렇습니다.
가르치면서 젤 힘든건 알려고 하지 않는 거싱고 알려고 하는 것이 맥락이 어긋날때 입니다.
그런데 이제 좀 시간이 흐르니 이런 것이 준비되는 듯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고차원적인 지식이 모두 이해되기는 어렵습니다.
직접 행동에서 또 경험과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본 것이나 체험되는 것이 아닌 것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오해가 생기고 곡해가 일어나도 우선 공개할건 공개하고 알려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가야 하는 것이어서 숨기고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배제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해서 입니다. 그럼 글이 긴건 여러개를 하나로 합쳐서 그렇습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마구론
생각보다 많은 것이 아니면 전체가 다의도 된 것들인데 예를 들면 내가 내성적이고 기가 죽어 있으며
낯을 가리고 숙기가 없고 열등감이 있고 주도적으로 나서거나 일을 벌이지도 않고
열심히 뭔가 하는 듯 하지도 않고 그런건 의도가 있다.
이렇게 태어난 것도 그렇고
그런데 다들 너무 나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한다.
난 그러한 것을 보면서 내심 아직 세상이 멀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저러한 성격이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수장 즉 하나의 누군가가 세상을 지배하고 이끌고 해결하는 것을 안하려고 하고
그러한 사회를 안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져서 보면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이런 모습인 것엔 분명 엄밀한 안배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분석을 이미 되었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도 독재적이거나 일인에 힘이 몰리는 것이나 제왕적인 정치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로 이끄는 것이다.
태생 자체가 마구라고 한다면 더욱 치밀하게 연구 했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떤 안배로 태어났고 무엇이 어떻게 될지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나서서 해결하지 말아야
다른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난 거대한 하나의 축만을 분산할 것이고 더 세분해서 개개인 대중들이 스스로 자기의 삶을 살만큼 주체적인 사람이 되게 하기엔 앞으로 고단자들이 더욱 애써야 할 것이다.
독단적이거나 누군가에게 힘이 쏠리거나 힘으로 밀어붙치거나
이런 식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게 다음의 다른 것을 위한 안배인지 봐야 하고 그게 아닌지 긴지
알아볼 안목도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지금의 정치를 보면 안다.
강력한 리더가 나오는게 어떠한 것을 의도하고 있는지 그 앞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럴려면 이러한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그 방향을 알았어야 하는 것이다.
매번 말하지만 메시아가 아니라고 했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결코 한 사람이 누군가가 신이 구원하는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정치에 적용하면 힘의 분산을 추구한다.
제왕에게 자기의 소원을 빌지 말 것이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달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신에게도 그러하다.
이런 것이 일상이 되고 상식이 되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수장은 힘이 집중되어선 안 되는데
그 다음의 진행이나 정치 방법론이나 그런 것은 진중하게 고민하면서 해야 한다.
내가 할 게 아니라 앞으로 해야 할 것이니
이러한 방향에서 마구를 할 것인데 이걸 이해못하거나 이걸 원치 않고
과거의 왕권이나 차이나 같은 독재나 강력한 정부나 수장을 원하는
사고를 하는 분은 스스로 밝히고 나가 주었으면 한다.
길이 다르면서 같이 일하는 것은 할 수 없다.
수단으로서 쓴다면 하지만 그럴 의향이 없다면 분명이 해야 한다.
자세한 것은 물어보시고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뭘 하는지 알고나 마구하라
이번에 치악산을 갔다.역시나 떠밀리듯이 가자고 해서 갔다.
치악산을 멀리서 보면 봉우리가 여러개로 보인다. 대개는 하나가 솟아 있는데 여긴 이렇다.
이게 도장이 여러개가 된다.
울릉도를 가서 포항에서 거제도 몽돌 해수욕장에 갔는데
거긴 산을 보면 도장이 여러개인다.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자격있는 도장 없는 도장 여럿이다.
그걸 한참 보면서 옥새나 도장이 여러개면 뭐가 되나 했다.
그다음은 알아서 생각하고
치악산은 거기에 비로봉이라는 것이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나서지 않는 다는 것이고 다른 보살들이 말한다.
거기에 원래 비로봉 산신은 영단인데
옆에 천지산은 대단이고 입석사 골짜기엔 종단이 있다. 이사람은 태종의 스승 운곡 원천석으로 보인다.(이날 구름안개가 정상에 있었고 입석사엔 입석으로 커다란 도장같은 바위가 있다)
지금이 조선 건국와 연관된 운의 흐름이 있다.
역시나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안배 역시 뭔가 공교로움이 있는데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머지는 알아서 연상하길......
그래도 써놓아야 도움될 거 같아서 ...
중앙탑을 가기 전까진 울릉도 갔다온 후속 마구를 한다고 돌아 다녔다.
미국의 운을 가져올려고 애쓴건데 그로인해 미국이나 중간 거점인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지진이 나는데 어쩔 수 없었다.
머리엔 온통 미국운을 가져 오는 것뿐이었다.
주역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에
동북방은 흉하고 서남방은 길하다는 식의 ㅁㄹ이 몇번 나온다.
동북은 상나라이고 서남은 주나라인데 그당시엔 주나라가 오랑케이다.
운이 서쪽으로 가려는 시기이니 이렇게 된다고 생각하고 주역을 그당시에 정리한 것도 있어서 그런 것이 나오는 것 같다.
근데 그건 이미 3천년전이고 이제 돌아오니 지금은 동북이 미국이고 서남이 우리나라가 된다는 식으로도 생각하게 될 정도로 내가 미쳐 있었다.
예산을 병인일에 갈때 금오산을 가려다가 말고 돌아오면서 넘어졌는데
병이고 금오도 태양이고 또 가려다가 말고 턱을 못넘어 넘어지니 이게 미국이 운이 이리로 오면서 쇠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방에 다산의 주역사전을 세권인가 네권에 노트와 우산과 다른 책까지 있어서 무거웠는데
넘어지면서 이 무게가 자꾸 밀려서 두번세번 옆으로 넘어졌다.
이후에 점괘를 보니 손괘인데 익괘와 더불어 흥망성쇠의 의미가 있어서 이쪽 것을 덜어 저쪽에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괘엔 태괘가 있는데 산택손이어서 그렇다. 이 태괘가 미국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다가 중앙탑을 갔는데 해무리가 우리나라 일인 거 같은데,
내 맥락과는 동떨어져서 헷갈렸다.
둘 다 관계되는 것일지 그게 궁금했는데
이메일 사건과 우리나라 테블릿 피씨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다.
그이후에 계속 봐왔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진행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공통점이 있는지
암튼 난 힐러리가 당선되기를 바랬다.
천천히 안에서 곪아서 암이되어 손 못쓰게 무너지라는 것인데
생각보다 미국이 쉽게 넘어지지는 않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취할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문제는 내가 설악산을 간 것인데....
힐러리가 됐으면 내가 좀더 여유두고 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ㅠㅠ
어제는 의정부를 갔다왔는데
거기서 본 수락산은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그래서 든 생각이 수락이니 독수리가 떨어지는 것이네
저 산이나 갈까이다.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운이 달라지지는 않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 대응할 마구를 어떻게 할지이다.
괜히 머리 복잡해진다.
머 머리로 알고 하는 건 아니지만 걍 너무 빠른게 부담스럽다.
의정부서 먹은 할리스 커피도 할리가 여자 이름이네
그리고 거기에 태조 이성계가 말탄 모습이 있는데 의정부가 그 태조와의 관계로 만든 이름이라나
조선 건국과 관련된 일이 지금 다시 운이 오는데
미국도 그런가?
이성계처럼 자기 욕심과 자국을 위한 다는 명목으로 세상이나 타국으로 가는 확장을 내면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는 약소국이 되어가는 거세가 일어나는데 ...
음
아무튼 이렇게 일이 하나 마무리가 되었으니
그다음을 고민 안할 수 없죠
겨울 내내 고민해서 생각한게 있긴한데 그건 차차 해야 할거고
지금 가라타니 고진하구 김정민의 책을 보았는데
내가 젊을 때 ㅠㅠ
고민하던 거 중에 제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나중에 거대해져야 하는데
그것에 제국이라는 것으로 해볼까 했죠
그런데 그 제국이 과거엔 우선 침략하고 땅을 점령한 다음에 조공으로 세를 바치면 되었죠
그 관계는 고진이 잘 썼으니 그걸 보면 되고
지금 다시 그때처럼 전쟁을 할수는 없얼 것인데 한다고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나라가 많지도 않고
그 피해가 과거와는 다르게 막대하니 권하기가 그렇고
어떤 방법으로 제국을 이룰지 그 방법에 대한 모색이
아직 온전하지는 않은데
지금 당장 어떤 효과를 내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런데 장차 통일과 그 넘어의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안할 수 없고
경제나 정치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질지 철학이나 정치제도나 문화와 종교나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경선에 대한 정의나 민족에 대한 접근이나
나라끼리의 관계에 대한 다른 인식이나 방법은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발상을 가질 수 있는데
이걸 우리가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근데 우리가 거기에 대한 열리고 광활하며 좀더 폭넓은 사고로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앞에서 미리 염두에 둔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하려는 사람이 점차 나오게 될 것이니 그렇습니다.
먹고 살려고 바쁘고 다른 것에 마음 쏠려 힘들지 몰라도
해야 할 건 해야 하니
죽기살기로 고민하시고 나름의 아이디어를 가지거나
추상적인 밑그림이라도 그리거나
해야 할 겁니다.
지금의 사태를 보아서 알지만
기적도 아니고 우연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것도 아닙니다.
그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일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도 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가 힘들면 나라가 그리고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뭘 생각할지 그것의 엄중함이 있고
자기 힘든거 생각하기전에 그로인한 세상의 변화를 보기를 바라며
흐흐
몸 추스리고 다시 흐흐흐흐
에휴 죽는 소리는 내가 젤많이 해서 이게 좀 찔리네 ㅠㅠ
햇무리
무거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
햇무리 보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오늘은 사북에서 돌아오면서 교보 간다는 핑계와 광화문 시청을 가야한다는 생각에 굳이 시청에서 내려 교보로 걸어갔습니다.
강원도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여긴 흐리고 또 지하에서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이후에 비가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지하로 들어갈 때까지 빗방울은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불편하긴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전경들은 떨면서 여기저기 부산하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 중앙탑을 가서 햇무리를 보았죠
그걸 보면서 다시 통에게 일이 생길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애써 외면했습니다.
덧붙여 드는 생각이 통에게 일이 생긴다는 것이
그 당사자가 힘든 것보다 그 당사자가 힘들려면 또 누가 피해를 보아야 하는 것인데
이 피해보는 그 사람들은 서민이 됩니다. 이게 차마 못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차마 햇무리 보면서 또 그에게 일이 생길거라고 말하지 못하고 머리에서 지우며 아닐거라고 하면서 다른 원인을 찾았습니다.
솔직한 그때의 내 사고의 흐름이 이러했습니다.
지금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마음이 나약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항상 트러블메이커로 일 만들고 저지르러 다닌다고 말하고 다녔고
왓치맨을 봤냐 거기와 같은 고민을 하느냐고 했는데
이젠 나도 그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쌓였나 봅니다.
징조를 보면서도 아닐거야 아니어야 한다고 도망치고 있는 모습에 또다른 당황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군자산을 갔을 때 블로그를 쓰면서도 이미 머리에서 지운 햇무리의 징조를 외면하면서
고단자나 정치적인 사건이 있을 듯이만 그렇게 우회적으로만 쓰고
사실 정치는 안 쓰려고 하다가 자꾸 정치적인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이 눈에 띄어서 어쩔 수 없이 집어넣은 것일 뿐입니다.
이런 내 사고의 흐름에 나도 한숨이 나옵니다.
하나의 사건에 왓치맨처럼 그런 것을 수긍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그러한 일을 한다면 이건 또다른 부담이고 결국 인내심이 바닥날 그날이 올지 모른다는 힘겨움도 봅니다.
일을 저지르러 다느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자꾸 들리고 보이는 그로인한 사건과 희생,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나약해지는 것을 이번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런 것을 생각 안한 게 아닙니다.
너무도 자주 또 매일 생각했기 때문에 심층에 차곡히 쌓였고
하나의 생각의 흐름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면서 되새길 때마나 마음을 새롭게 하는데도
이런 일이 생깁니다.
원래 난 그렇게 잔인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함부로 하면서 뒤돌아서 후회하는 것이어서 뒤끝이 있는데 그 뒤끝이 이렇습니다.
혼자 감당할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쉽겠어요
고단자이니 감당하라고 착한척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입니다. 우린 그렇게 깨끗한 손이 아닙니다. 더욱이 이러한 것을 내 자신의 악업으로 하지도 않는 교묘함도 있습니다.
하지만 업은 업이기도 하지요
이게 하나의 징조를 잘못 판단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음의 마구에 영향을 가고 그 생각을 유지하는 동안 그로인한 흐름이 이미 마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게 됩니다.
이러한 부담으로 어설픈 윤리나 어설픈 동정심이나 그러한 판단을 한다면
더 큰 도미도가 되어 무엇이 될지 감당하지 못할 곳까지 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러한 하나의 생각 실수나 외면에 이렇게 자꾸 나에게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그로인한 더 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해서 입니다.
햇무리라는 것이 우선 해입니다.
해는 우두머리이고 최고이며, 또는 큰 것, 중요한 것, 이번에 쓴 글처럼 탑(top)입니다. 상위 클레스죠
그래서 햇무리는 해를 둘러싸는 것이 되어 해를 가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우두머리가 힘들게 된다는 식입니다.
환일처럼 해가 여럿이 되는 것처럼 되면 해가 여럿이라는 것은
우두머리가 여럿이 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말 그대로 여럿이 되거나 우두머리가 힘이 없어진다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우두머리적인 자에게 당한다고 할 수도 있으며 권위가 추락한다는 것도 되며 이런식으로 봅니다.
또 황혼이 불길하거나 이상한 느낌이면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황혼이 나이든 사람을 말하니 나이든 사람이거나 우두머리거나 그런 누군가이고 수장이고 합니다.
때론 큰 사건식으로 크다는 의미로 해가 쓰이기도 합니다.
누굴 지칭하는 것은 아닌데 큰 사건이다.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일식같은 것도 분명 해를 가리는 그에 따른 사건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과거의 기록엔 왕이나 수장이 죽는 다는 기록도 있는거 같은데 기억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햇무리가 생각보다 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개는 그것을 본 사람에게 힘든 일이 생기는 게 더 일상적인 것입니다.
힘들다는 것은 그 개인적인 거라서 무엇에 해당하는 것으로 힘들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힘들다고 엄청난 일이라기 보다 감정이 상하거나 심란하거나 갈등이 생기거나 하는 그런 정도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그 대상에 해와 같은 이미가 있는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날 힘들게 하는 상대가 남편이나 남자 처럼 이게 여자에겐 해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해라는 것이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니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해장국의 해로 되어 해장국먹다가 체하거나 뜨거워서 데일지도 모릅니다.
해에 해당하는 까마귀나 까치나 새로인해 무슨일이 있을 수도 있는 거구요
길거리나 문입구에서 날 치고 간 사람이 해의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죠
요즘은 영어도 되니 썬이 태양이지만 발음상 아들이기도 하고 자식 또래나 아이들도 됩니다. 이런식으로 확장합니다.
그리고 채운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작게는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는데 나와 상관없거나 내주위이거나 나와 연관되거나 하는데 그것도 역시 징조살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가 나와 연관된 갈등인지 우두머리나 다른 것인지 그것을 아는 방법은
우선 대개는 일상의 나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중앙탑을 갔으니 중앙입니다. 또 탑이고요 중앙의 탑이라면 중앙의 최고지위가 됩니다.
또 누군가 근래에 마니산도 갔구요
또 중앙탑엔 우리가 여럿이 갔어요 고단자가 둘 이상 모이면 이미 공적으로 되거나 좀 더 큰 범위에서 일이 진행된다는 것도 됩니다.
그리고 갈 곳이 군자산이었고 괴산입니다. 괴는 북두칠성이고요
그러니 또 작은 일이 아닌게 됩니다. 연풍을 가고 거기에 있는 현문도 역시 더욱 그렇죠
이렇듯 주위의 것들을 잘 보면 상징하는 것들이 모아지는 공통분모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해무리를 잘모면 00님이 잘 찍었는데 구름이 해를 번개로 내리치고 있습니다.
저번 세월호 사건 이전에 마니산 가기 전날에 내가 남이섬을 가서 본 석양의 해를 이렇게 번개 모양으로 치고 있었고 마니산에서도 역시 비슷한 해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몇 달 전에 자미원을 갔다고 하더군요 그전에 천시원을 갔었는데 이번엔 자미원이니 분명 자미원과 천시원의 차이는 천시원은 서민이고 자미원은 황제이겠죠
물론 그런 맥락의 천시원과 자미원은 아닐 겁니다. 마니산과 소백산 계룡산 이렇게 한 묶음이지요
근데 이번에 정선을 들렀다고 하는데 정이 천자의 어명을 받고 있는 깃발이던가 그럴 겁니다.
그래서 더욱 그런 뉘앙스가 됩니다.
이렇듯 분명 몰아가는 듯한 기미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이번의 햇무리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위에 썼듯이 나도 모르게 쌓인 부담감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햇무리에 쓴 것은 내가 위축되어 보수적으로 되거나 판단착오를 하거나의지의 방향을 바꿀까봐 쓴 것이다.
마음의 위축이 생각을 왜곡하게 하고 그로인해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어서
한 번의 생각 그릇됨을 따져본 것이다.
마구하는데 내가 아는 것이 있는 것은 없다.
미리 어떤 사건이나 나타나는 상황을 볼 능력은 내게는 없다.
이걸 많이도 바랐다.
미리 알고 미리 어떻게 될지 알고 있고 싶었고
그래야 내 행동에 확신이 될 거라고 생각한건데 결코 이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마구하는데 내가 뭔가 정확히 알고서 어디를 가거나 뭔가를 하거나 의도하면서 하지는 않았는데 이게 상당히 괴롭거나 허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좀 알고 했으면 좋은데 하는 생각은 항상 한 것이다.
지금은 신관과 상의하거나 무엇 때문인지 묻거나 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그랬어도 그다지 속시원한 대답을 들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대화라는 것도 하고
이거 저거 질문하면서 눈치도 본 것이 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안 한다.
가라고 하면 가고, 가고 싶으면 가고, 어딜갈지 생각하고 가기도 한다.
가라고 할 경우 요즘은 대개 복희나 구봉이나 남명이나 이들이고
아니면 현실의 다른 분이 부르거나 가자고 하거나 이런 경우이다.
이러면 이유는 안 묻는다.
내가 생각해보고 가야 할 거 같으면 간다.
때론 가라고 하지 않은 곳인데 가야 할 곳을 내가 생각만 하고 안가고 있으면서 미적거리고 있으면 가라고 등떠밀러 오기도 한다.
현실에선 누군가 오라고 하거나 가라고 하거나 가자고 하거나 하면 물론 말은 가기 싫다고 하고 별로 안 내키기도 하고 그렇지만 간다. 가자고 하면 그다지 거부하지는 않는데 의지가 확고하게 나에게 요구하면 그렇다.
내가 힘들거나 싫거나 하는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유는 가보면 또 그로인해 진행된 것들이 있어서고 그게 또 다른 것으로 이어지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맞물리기도 해서 거절할 수가 없다.
이건 어디 가는 경우만이 아니라 다른 일상의 것들도 그렇다.
아무거나 하자고 하면 응한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 안 한다.
거절하거나 싫다고 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꾸 요구하거나 의지가 있으면 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유는 역시 그것이 또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역시나 안배 된 것들이 있는 거라서 그렇다.
생각보다 내 일상은 짜여진 것이 있어 보였는데 그래서 사소하거나 귀찮거나 불편하거나 이런 것들도 모두 응한다.
이럴 때도 난 항상 조심했는데, 내가 불편해 하거나 싫어하는 가치관이나 윤리로 인한 감정이나 오해하고 몰라서 잘못된 판단이나 개인적인 기호나 선호로 인해 거절하거나 안 해서 일이 어긋나는 것이 있어선 안 되어서 그랬다. 이건 항상 염두에 두면서 했다.
물론 대개는 싫어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싫다, 집 대문을 열고 나가는 것 자체가 엄청 큰 결심을 가져야 하는 게으르고 나태하며 체력이 지나치게 의욕이 떨어져 있는 상태로 살아왔다.
난 이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은 거의 없다.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그래야 하는 필연성은 없어서 그저 그랬다. 이걸 어릴 적부터 구분하고 살아서 이런 것이 한이 되거나 아쉽지 않았다.
이미 학창시절에 이세상에 더 이상의 신비로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해서 이제까지 이게 크게 바뀌진 않았다.
그래서 작은 흥분이나 일상의 재미나 좋은거나 신나는거 그런 것이 난 행복하다.
기대하지 않는데 원하지도 않고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뭔가 되거나 있거나 주거나 보거나 하면 그렇게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감정이 내가 되지는 않는다. 기대하지 않아서 소유하거나 그 좋고 맛난 현실의 것에 그다지 탐심은 생기지 않고 또 생겨도 지나가면 시시하다. 이런식으로 너무도 오랜 세월 세상의 이기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으면서 살아와서 별로 감정적으로 힘든 일은 없다.
난 남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있거나 뭘 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거나 맛난걸 먹어야 한다고 하거나 그러면서 자기의 의향을 드러내는 것에 생경하고 익숙하지 않다.
별로 이해되지도 않을 정도로 난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소한 일상에서 사소한 것에 즐기고 탐닉하며 욕망을 추구하면서 산다.
그때 그때의 감정과 해야 할 것으로 좋고 싫음이 일어나는 것이고 개인적인 원인으로 감정이나 욕구나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된지 오래되서 난테 이런 것도 일이 되는 것이어서 그렇다.
좋은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또다른 것으로 이어지고 어디선가 요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것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어서 그렇다는 것을 이젠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항상 내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거나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거나 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해야 할 것은 한다라는 것이다.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또 욕망 충족이건 즐기는 것이나 이런 것은 일을 위한 동기로서이다. 그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동기는 지나면 사라지며 다음으로 또다른 동기가 이어질 뿐이다.
이런 설명은 내 인생의 근간이라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난 이렇게만 산다고 할 수 있다.
생각보다 깊고 처절하며 질기게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런 것이 마구하는 것에 저변에 깔린 것이면서 언제나 행동하고 있는 드러난 것이다.
내 감정과 사고방식이나 마음이 마구와 엇갈리거나 잘못되지 않게 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생각하나 놓치면 그만큼 현실에 어떤 일로 드러날지 모르는 부담을 안고 살게 된다.
그리고 굳이 남에게 말하진 못한다.
이래야 해서 이런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설명이 필요한 것은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설명하기엔 나와 너무 다르다.
난 그동안 생각하고 염두에 두고 온 관념이나 체계나 지식이 있는데 이걸 다 설명해야 한다.
간단히 이 마구는 뭐하려고 하는 것이냐 의미는 뭐냐 여긴 뭔 의미냐 이런 질문하면
난감하다. 즉 나에겐 이미 자연스럽게 내 지식체계에서 나름 결론을 내리는데 남은 나와는 다른 사고체계이니 나만의 그 결론을 말하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나와 같은 배경지식도 관심도 의지도 없는데 그래도 말해달라고 해서 말햇는데 다들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말한 것만 외우거나 말해줘서 안심하는 그런 것이 된다.
의외로 나름의 자기자신에 대한 전망이나 분석이 별볼일이 없고 또 한다고 해도 자기위주로 할 뿐 객관성이 없다. 거기다 사회와 나라 인류의 전망과 분석이나 역사적이고 거대한 담론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 있는 경우는 더욱 없다.
이런 생각의 바탕위에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해야 하고 그로인해 행동과 가치관을 정해 가는 것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체계나 감정을 닦지 않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도를 말하지만 도가 아니라 개인의 취미이거나 호기심 감정적인 기호일 뿐인 경우가 대다수여서 더욱 그랬다. 이건 정치고 권력이며 거대 담론이다. 이런 사고가 아니고 마음이 아니라면 또 그로인해 살아온 인생이 아니라면 어떻게 내 말을 이해하려고 한단 말인가 이런 전제위에 도로서 할 것이 어떻고 도에 입장에서 자기의 사고나 감정이 어떻게 되어야 하고 어떤 단련이어야 하고 그것을 공부해야 하는 것인데 기초적인 것부터 나와는 달라서 참 어려웠다.
이러면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말로 인해 뭔가를 의도하고 상대가 내 말로인해 어떤 행위를 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내 마구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며 말하는 그 의미가 이미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말로 인해 마구가 다른 것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하기도 하다.
즉 나만의 관념에서 전체적인 것으로 내린 결론을 그 결론만 듣고 알 수 없을 것이고
둘째는 말하면서 이미 마구는 변한다. 내가 말하는 것이 마구의 일부가 되니까 그렇다.
그래서 예전에 이런 마구 했다고 하거나
그 마구의 의미가 뭐다라거나 하면서 과거를 가져와서 마구를 말하면 안된다.
이미 변했고 과거는 과거이다. 지난 간 것을 말할 게 아니라 그이후에 어떻게 변했고 어디로 갈 것이며 어떻게 현실과 피드백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은 내게 질문할 것이 아니라 혼자 고민하고 찾아보고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알아내야 할 건 자기가 알아내야 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이 관념이라는 것이 내가 지금껏 살면서 세상을 보고 결론을 내거나 바라는 것이 있어서
이걸 기준으로 마구 한다.
일부러 이러한 관념에 맞게 짜거나 의식적인 애씀을 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러한 방향으로 마구가 진행된다.
이 관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거라서 생각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
난 이것이 맞다고 신념을 가진게 되어서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이미 심층이고 내 의지가 되어서 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난 고민하는게 있는데
정말 내 생각이 맞을까
이런 의구심이 든다.
근래의 사건들로 더욱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마 근래에 더욱 내가 한 마구가 현실에 자꾸 나타나서 그럴 거 같다.
그래서 겁이 나는 것인지 뭔가 두려워지는지 아마 내 열등감이 올라오는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뭔가 리더가 되거나 기준이 되거나 정답을 맞추거나 그런 것을 해보지도 않았고
대개는 맞은 적이 없다.
내가 옳다고 한 것을 인정받은 것이 살아오면서 별로 없는데
이제 와서 내 생각이 세상에 반영되면 켕기는 것이다.
정말 이래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이런 세상이 내가 바라는 그 세상이 맞을까 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바라는 세상이어도 되나?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가 다르게 만들수는 없나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 아닌가 다른 미래 다른 전망 다른 세상
난 미래는 모른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걸 위해 한다고 말했다.
근데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맞는건가? 이건 다르지 않나
내 개인적으로 지금 커다란 하나의 관절을 넘고 있어 보인다.
지금껏 맞다고 옳다고 인정받지 못하다가 갑자기 인정받으면 자기의 정체성이 혼란해지기도 한다.
정말 맞나? 정말 그런가
물론 나를 숭배하듯이 당연히 똑똑하고 당연히 다 이해하고 우러러만 보는 생각을 하는 분은 이러한 내 말을 별로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본다.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를 기준으로 보니 남의 심리엔 그다지 관심없으니 말이다.
암튼 내가 이런 회의에 빠지고 있으니
이게 앞으로의 마구에 영향을 줄 것이다.
마구 하려면 예민해야 한다. 남의 마음에 감정에 철학에
왜냐하면 그것으로 사회를 사람을 세상을 이해하고 그 이해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난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또 학력이 없어서 지식이 딸려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고심하면서 살아왔고 그것으로 능력부족을 매꾸고 있다고 하면 너무 처절하거나 잘못된 기준이 될 거 같다.
대개가 나처럼 보이거나 다 알거나 쉽게 이해되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렇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마구하려면 공부해야 하는데 인문 철학 역학 의학 과학 사회과학 역사 시 소설이나 뭐나
닥치는 대로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그 지식으로 마구하는 것이고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일을 하고
시류나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철학사조나 문명의 흐름을 알아야 일할 거 아닌가
세상이 돌아가는 그 첨단이나 유행을 모르는데 어찌 마구하는감
보수적이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유행이나 사고나 기술이나
마구하는 사람이 이런 것을 모르면 어찌 하나
이끄는 자가 되는 것이니 알 건 알아야 한다.
사실 이러한 것을 알기 위한 머리가 좋은 것이면 더욱 좋지만 난 그게 안되서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고 머리가 되어도 힘들게 해야 한다.
알기만하고 그것으로 뭘해야 하는지 모르면 안되니까
나름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훔 ㅠㅠ
마구론에 쓴 게 그전에 쓰고 말한 것들이라서 그다지 신선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더 읽어보면 다른 의미도 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이런 걸 쓰는 것이 앞에서 말한대로 나름 심리적인 저항과 회의도 들기 때문에
쓰는 것인데 나를 검열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글로 마구를 하려는 분들에게 도움도 되기 위해서이다.
내 얘기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니까
앞 글이 장황해서 정작 쓰고 싶은 것은 소략된 듯하다.
내가 투시가 되거나 예시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대개의 앞으로 마구 할 사람들이 이럴 것이다.
특별한 능력을 구비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인 자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수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논할 필요가 있어서 그렇다.
우선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아마 이미 선을 긋고 스스로를 격하하고 나를 보면서 이상을 꿈꾸는게 아니라 나를 봄으로서 이미 시작부터 좌절하는 심리적인 기죽는 현상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그다지 여기서 쓸모는 없다.
여기가 저단자나 일반 자천을 하려는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니 그렇다.
마구 하겠다면 자기가 사회에서 루저이거나 아웃사이더이거나
그다지 인정 못받고 열등감과 자괴감이 있다면 아마 곤란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관점의 방향을 왜곡할 것이고 사회현상이나 현실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해석을
곡해하거나 편향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좀 깨어있다고 하거나 사회비판적으로 관점을 가진다거나 술자리에서 똑똑한 소리 들으려고 자랑하고 싶거나 남들에게 의식이 있는 듯이 보이려거나 원래 그런 것이거나
진보적으로 말하고 기존의 정치를 비판하고 사회비판하고 자기는 뭔가 안다는 듯이 하고 더 잘할 것 처럼 하고 이렇게 욕하는 말이나 하면서
대안이나 자기가 할 미래적인 의지나 견해도 없거나 이러면 심히 곤란하다.
어떤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 자기가 나름으로 전망하거나 거대담론적인 하고자 하는 방향이나
원리를 모르겠다면 이것부터 알아낼 공부를 해야 한다.
이게 없다면 마구 한다고 못할 것이고 고단자가 되어서 아직도 이런다면 정말 실망을 넘어
욕 나오게 된다.
다음에 만나면 분명히 내가 물을 것이다.
니가 원하는 또 이루거나 이끌 나라의 방향이나 인류의 방향을 말이다.
정치이거나 경제적인거거가 문화이거나 교육이거나 장르를 알아서 정할 것이고
어떤 새로운 기획이든 방법이든 분야든 말이다.
또 딴소리를 하는데
내가 별다른 재주가 없고 인생에서 우월감을 느끼거나 성취한 게 없어서
또 주위가 그다지 남보다 나은 환경이 아니다보니
이게 후천적인 습성이 되었다.
대학도 또 집안의 재산도 없고 직장도 번듯한 게 없고
가정도 없으며 이런 것이 암암리에 또 뚜렷하게 심층으로 억눌린다.
그래서 요즘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게
내 자신에 대한 회의인데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너무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일치해서이다.
난 아직도, 그 누구도 아니고 다른 많은 사람이 있는데 굳이 나인지 그게 의문이다.
또 나여야 한다면 뭔가 성장과정이나 인생이 특이하거나 그럴만한 뭔가가 있었어야 하지 않냐인데
난 정말 내 인생에서 그다지 자랑할 것이나 말할 또 보여줄 뭔가가 없다.
이게 너무도 열등감을 준다.
그런 상태에서 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간다면 세상이 너무 안타깝게 되는거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이 만약 틀린거면 어떻게 되는가
정말 틀린거면 .......
이게 정말 고민이다.
근데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게 있는데
자기가 권력의 중추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생각하거나 판단하거나 가지게 된 가치관이 패배자거나 서민의 입장이거나 약자의 위치이거나
이런 식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있다.
고단자가 되어서도 마구를 한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입장도 전환하지 못한 거라면
이거 역시 나에겐 방해꾼일 뿐이다.
내가 위의 말처럼 스스로 자신없어 하면서 항상 이로인해 일에 잘못된 판단이나 다르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내적으로 얼마나 다짐을 하고 인내하며 행동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난 참 힘겨운 것이 나를 좋게 말하거나 우러르거나 대단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정말 힘들다.
거기에 익숙해지는 게 힘들고
그렇게 하면서 자기의 내적인 나약함을 나에게 해소하고 싶어하거나 자만한 마음을 가지면서 나에게 투사하는 것도 힘들다.
내가 그러한 것에 익숙해지면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
마음이 오염되거나 다른 것에 현혹되거나 이럴경우 마구는 어떻게 진행될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내 책임이니 그럴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거나 안배하는 것에 이 정도의 안목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
마구를 하는 것에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그게 있어야 한다.
나약하면
자만하면
무지하면
오해하면
애정에 빠지면
증오에 빠지면
어떤 관점을 가지면
고집하면
집착하면
......
내가 스승이라고 나에게 지나친 친절이나 대우하거나 정도 이상의 행동을 한다면
그로인해 내가 잘못되면 어찌되나
나에게 행동하거나 대하는 자세로인해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것을 아는게 마구의 시작일 것이다.
자기를 저울의 추로 쓰는게 마구인데
자기를 그 상황에 그 사람에게
어떤 자세나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그 액션이 이미 마구이다.
근데 난 좀 더 특별한 게 사실이니 더욱 나에게 취하는 행동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역사적으로 내가 이런 짓을 처음 하는 것이니
처음 하는 그 의미의 중함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구가 왜 힘들고 왜 모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나에게 말투나 행동자세가 이미 세상에 반영되는 것인데 이런 작은 것도 모른다고?
너무 어려운것만 생각한 것이고 큰 거나 대단한거만 생각한거라면
자만한 심리이고 허영이 있는 것이다.
그런 심리를 안 가지려고 난 이렇게 마음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고 이렇듯 내 마음을 자꾸 되집고 있는데 나에게 배우는 사람은 나보다 열배는 더 해야 하지 않나
나를 앞지를려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깨어있어야 하지 않나
나를 보면서 자기의 허영을 본적이 있나?
그 허영이 어떤 사건이나 의미로 진행될지 고민했나?
세상에가 아니라 자신에게 말이다.
자신부터 다루거나 보는 것이 안 되거나 자신을 마구하지 못하면
사회는 이미 아닌 것이다.
[출처] 마구론|작성자 제라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