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블루로드 영덕 해파랑길
4월에 부산과 울산 157km를 한 주간, 5월에 경주와 포항 구간 154km를 또 한 주간, 도합 311km를 두 달에 걸쳐 한 주간씩 두 번 걷고 난 뒤에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내가 도보여행 체질’ 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비교적 탄탄한 체력과 지구력으로 무릎도 잘 버텨주고 있고, 무엇보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갈수록 묘한 매력으로 좀처럼 사그라지지를 않는다. 어쩌면 혼자 걸으면서 자연스레 겪게 되는 깊숙하고 다양한 생각들과 순간순간의 자극이 생길 때마다 드리는 진솔한 기도 덕분에 조금씩 성숙되어져 간다고 믿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집스레 스스로 선택한 도보여행으로 새록새록 묻어나는 내면 속의 풍요로움이 감사함으로 변화되는 걸 인지하는 것도 큰 기쁨이다.
땡볕에 장대비, 무거운 배낭에 죽을 것 같기도 한 날들의 연속, 흙 날리는 비포장도로, 지열 올라오는 산업도로, 덤프트럭 쌩쌩 달리는 차도 곁에서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발가락 물집이 터지고, 때로 허리 다리 무릎도 힘들다며 자꾸만 나를 바닥으로 주저앉힌다. 그럴 때면 이 나이에 긴 동해안 해파랑길 완주가 욕심인가 싶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가 싶어 다 포기한 채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를 잡아 일으켜 세우는 요술 같은 매력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나는 무수히 유혹 당한다. 복잡한 서울에서만 육십년 넘게 자라고 살아온 나는 원시적이고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 풍광을 만나면 샘물처럼 생기와 활기가 솟아난다. 시골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과 질박한 삶의 느낌 또한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수첩에 메모하고 사진으로 담으며 행복감에 젖는다. 바람 솔솔 부는 정자에 앉아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감격해하며 내 삶에 환희를 느낀다.
또 다시 해파랑길을 잇기 위해 6월에도 마지막 한 주간을 영덕 울진에서 보냈다. 21일 화요일 KTX편으로 오전 11시 포항역에 도착해 흥해로 가는 버스를 타고 흥해중학교에서 하차, 영덕 가는 시외버스로 환승해 장사해변에서 내렸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장사 해수욕장엔 기선 같은 회색빛 큰 배 한 척만이 떠 있다. 한 두 방울 시작하던 비가 굵어진다. 서둘러 분홍 얇은 비옷을 꺼내 입었다.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해파랑길은 좁은 도보로 안내한다. 여기서부터 해파랑길과 영덕블루로드 안내가 중첩된다. 블루로드의 ‘BLUE’는 Beach, Light, Utopia, Energy로, 일상의 탈출, 푸른 바다, 새로운 빛 희망, 전설과 이야기, 독특한 지역문화를 느껴보라고 소개하고 있다. 4개의 구간을 설정해 지금 걷고 있는 ‘D코스 쪽빛 파도의 길’인 대게공원, 장사해변, 삼사해상공원 길을 시작으로, ‘A코스 빛과 바람의 길’인 강구항, 고불봉, 풍력발전단지 길, ‘B코스 푸른 대게의 길’인 영덕해맞이공원, 해안 산책로, 경정리 대게원조마을, ‘C코스 목은 사색의 길’인 축산항, 남씨 발상지, 대소산 봉수대, 괴시리 전통마을, 고래불 해수욕장으로 끝을 맺는다.
장사해변에서 3Km정도 지나 바닷가 마을로 내려선다. 비오는 방파제에 모여 앉은 갈매기 떼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이곳은 원척항이다. 작은 돌들을 던져보지만 돌은 방파제에 닿지도 않고 갈매기들은 그저 비만 맞고 도통 날지를 않는다. 저 애들도 비가 오면 나는 것도 먹이 잡는 것도 다 귀찮은가 보다.
“갈매기야, 좀 날아봐. 내가 멋지게 사진 찍어줄게.”
암만 소리 질러도 들리지 않는가보다. 하릴없이 갈매기만 탓하고 돌아섰다.
바닷길은 험한 바위들로 미끄러웠다. 푹푹 빠지는 젖은 모래벌판을 지나니 빨강 하양 등대가 예쁜 구계항이 나오고, 이어서 남호해수욕장이다. 양쪽으로 소나무길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노랑 주홍빛 채송화가 오랜만에 그리움을 부른다. 비오는 해수욕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부럽다. 춘원 이광수님의 ‘바다도 좋다하고.....’ 시비를 읽으며 삼사해상 산책로로 들어섰다. 바다 깊숙하게 타원형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하얀 목책 아래 찰랑대는 파도와 물결 속 자갈돌들이 참 예쁘다. 발 벗고 들어가 시원함에 한참을 놀았다. 'Bloomy 342' 라는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카페라떼를 마시며 쉬었다.
로사기오 기도를 드리며 바닷가로 난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런 큰 개가 뛰어들더니 내 오른쪽 무릎을 꽉 물었다. “엄마야! “ 무섭고 놀라서 펄쩍 뛰니, 묶여 있던 개는 더 강하게 잡아당긴다. 나도 죽자고 도망 가니, 그만 개는 나를 놓치고 말았다. 컹컹 소리지르며 성이 났다. 세상에! 긴 바지를 입었고 무릎 보호대를 했으니 망정이지,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 무릎보호대 한 쪽이 완전히 뜯겨져 덜렁거렸다. 개에 물렸다고 소리를 질렀으나 평일 낮의 바닷가 마을엔 아무도 없었다. 개 있는 곳을 살펴보니, ‘개 조심. 예민한 개임. 집에서 기르는 개라 문제는 없음.’ 이란 작은 글씨판이 보였다. 놀란 가슴 진정하고 아들에게 전화했다. 여기저기 알아본 아들은 개에 물린 곳을 물로 세척하고, 소독을 하라고 한다. 구급약을 가지고 다니는 터라 생수와 스틱소독으로 응급처치를 하면서 혼자 다니는 서러움을 비로소 느꼈다. 퍼렇게 멍들고 개 이빨자국이 서너개 보이긴 하나, 피가 나진 않는다. 지나가는 순찰차를 세워 도움을 청했다. 경찰 2명도 놀라서 신속하게 나를 태워 4km 지점에 있는 강구항의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을 거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쏟아지는 강구항 저녁 햇살에 일렁이는 금빛바다가 조금은 진정시켜 주었다. 대게 형상의 조형물들이 나붙은 강구항은 크고 시끌벅적했다. 대게직판장인 ‘죽도항‘ 음식점에서 물회를 먹고, 그 위 3층 민박집에서 오늘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며 고단한 하루를 접었다. 괜찮은지 물어오는 아들과 며느리는 그 이후로 지금껏 문자 카톡 전화가 쇄도한다. 이 또한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이 더욱 고조되는 최고의 수확이리라.
다음 날 아침 일찍 밤새 내린 비로 흠뻑 젖은 블루로드 A코스 길을 나섰다. 갈매기들이 뿌연 어선 위로 쉬임없이 날아든다. 비에 젖은 풀잎과 나무 잎사귀, 주홍빛 장미꽃이 매우 선정적이다. 빛과 바람의 상징인 신생에너지 전시관, 풍력발전단지, 산림생태문화공원으로 가는 산길은 빗길이어서 자신이 없었다. 그냥 바닷길로 걸었다. 화저해변엔 갈매기들이 마구 날았다. 무수히 카메라 셔텨를 눌러댔다. 바다마을 담벼락마다 대게를 비롯한 어촌의 모습 그림들이 정겨웠다. 국립영덕청소년해양센터 해변에서 검은 잠수복의 학생들이 지도자로부터 탄탄하고 다양하게 많은 해양체험을 하고 있어 든든해 보였다.
드디어 꼭 가보고 싶던 푸른 대게의 길인 블루로드 B코스에 접어들었다. 게의 다리 모양을 한 예쁜 창포말 등대가 영덕해맞이공원에 함께 하고 있다. 아래로 내려 펼쳐지는 해안산책로는 인터넷의 설명보다 몇 배는 더 신비로웠다. 기기묘묘한 갯바위마다 갈매기들이 파도와 쇼를 연출하고, 소나무와 어울리는 기막힌 바위 절경, 절리들이 펼쳐내는 소용돌이 물거품, 쨍하고 솟아난 찬란한 붉은 태양 빛이 시퍼런 동해 물결 따라 환상적이다. 새하얀 파도 따라 튀어 오르는 물방울 쇼를 가슴에 담고 눈에 넣으며 촬영에 바쁘다. 초소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혼자여도 겁은 좀 덜 났다. 조각상으로 서있는 해녀도 군인도 아주 반가웠다. 나무데크며 목책, 밧줄, 꼬리 리본 등 안내 또한 믿음직스럽다. 가히 문화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사진 찍기 좋은 녹색장소로 ‘영덕블루로드’를 지정하여 자랑할 만하다. 다만 해안 산책로가 대탄리 해수욕장, 송림 우거진 바닷길, 노물리 방파제, 오보해변으로 계속 오르락 내리락 경사도 심하고 길게 이어지기에 편하게 쉴 수가 없다. 그만큼 대단한 절경을 보려면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가보다. 경정리 바닷가에 백악기 때의 것이라고 하는 붉은 퇴적암과 차유마을의 대게 원조마을 기념비를 인상깊게 돌아본 후, 비에 젖고 녹초가 되어 축산항으로 들어섰다. 작은 여관에 여장을 풀고, 29km 걸은 다리와 발가락들을 고마움 담아 안마해 주었다.
셋째날 아침 엊저녁 비로 간신히 건넌 축산항의 옥빛으로 빛나는 블루로드 다리 ‘현수교’를 출렁출렁 건너갔다 왔다. 블루로드 C코스 목은 사색의 길은 대나무가 많다는 죽도산에서부터 시작한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축산항의 전경이 아늑하고 깨끗하다. 가슴이 뻥 뚫린다. 바다 햇살 타고 금물결 은물결이 손짓을 한다. 남덕우 예전 국무총리의 남씨 발상지 묘비석과 봉화를 올렸다는 대소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죽도산 전망대는 한마디로 근사한 영화장면이다. 목은 이색 선생님이 즐겨 걸으시며 시도 짓고 글도 쓰셨다는 이색등산로를 약 3km 정도 걸었다. 바람이 솔솔 불고 하늘 가득 메운 나무의 솔잎들이 떨어져 오래도록 쌓인 폭신폭신한 환상의 소나무 숲속길이다. 숲속 정자에서 쉬며 발가락마다 물티슈로 닦고, 달콤한 귤과 양갱을 먹고 있을 때에 손자의 영상카톡이 도착했다. “할머니, 힘내세요. 사랑해요. 화이팅!”
등산로를 내려오니 고택들이 즐비한 괴시리 전통마을이다. 사진을 찍는 내게로 친절한 오십대의 여인네가 다가왔다. 천전댁 6대 며느리이다. 맑은 풍경소리 들으며 감식초 음료수를 대접받고, 괴시리 전통마을과 목은 이색 기념관도 함께 돌아주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다시 7번 국도를 걸어 대진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벽산 김도현 선생님이 한일합병에 한을 품고 바다에 뛰어들으셨다는 도해단이 이곳에 있었다. 나라를 위하고 애국심을 발휘한 조상들은 이렇게 곳곳에 숨겨져 있구나! 숙연한 마음으로 바닷가를 거닐었다. 마치 포항에서의 영일만처럼 무한히 넓은 바다와 모래벌판이 펼쳐졌다. 맨발로 그때처럼 트래킹화를 손에 들고 쪽빛 바닷물 출렁대는 파도 길을 걸었다. 맘껏 쏟아지는 붉은 해와 밀려왔다 물거품되어 사라져 버리고는 또 다시 내 발을 감싸 안는 파도랑 놀면서 영덕블루로드의 마지막 종점인 고래불 해변까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무사히 도착했다. 고래불 해수욕장의 분수쇼는 주말에만 한다고 하여, 목요일인 오늘 많이 안타까웠다. ‘풀하우스’ 라는 모텔에 머문다고 쌍둥언니에게 문자를 보내니, 언니 부부도 예전에 여기서 나와 똑같은 방 207호에 묵었었다고 한다. 아! 우린 쌍둥이라서 그런가보다.
*영덕블루로드 시작점 D코스의
장사해변엔 할머니 한 분 만이 외롭다.
*영덕 블루로드 표식들이 반갑다
*원척항의 갈매기는
비가 오면 날지를 않는가보다
*춘원 이광수의 시비가 동해안에....
*삼사해상공원의 하얀 목책과
그 아래 펼쳐지는 파도가 환상이다
*삼사해상공원을 돌아보고 난 후
개에 물려 큰 일 날뻔 한 내 무릎!
*강구항에 쏟아지는 저녁 햇살에
감사와 은혜가 빛난다.
*강구항엔 대게 모양의 형상물이 많다.
*둘째날 아침 블루로드 A코스
비오는 대게거리 강구항엔
갈매기들이 뿌연 어선 위를 난다.
*비에 젖은 장미꽃과 잎사귀들이
마냥 싱그럽고 선정적이다.
*여기 구계항에도 비오는 날
갈매기는 날지를 않는가보다.
*대게를 번쩍 들고 있는 로보캅 조형물의
국립영덕해양청소년 센타에서
해양체험을 하는 학생들이 든든하다.
*블루로드 B코스의 시작
영덕해맞이공원 뒤로 풍력발전
대형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
*대게 다리 모양 형상의 빨간
창포말 등대가 이색적이다
*영덕블루로드 B코스는
환상적인 해안산책로를 자랑한다.
*조각상인 해녀도 군인도 나를 반기고
곳곳의 해안초소도 안심이다.
*경정리 차유마을엔
대게 원조마을 기념비가 있다.
*경정리 어촌체험마을엔
담벼락마다 게를 비롯한
그림들이 정겹다.
*셋째날 아침 블루로드 C코스
축산항 눈부신 태양에
블루로드 다리 현수교가 빛난다.
*죽도산 등대는 그 장관이 일품이다.
*죽도산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축산항의 전경에 완전히 반했다.
*대소산 봉수대와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축산항의 모습이 그림 같다.
*목은 이색 등산로로 가는 길
사진리에 있는 사진구름다리가 예쁘다.
*목은 이색 숲속길 정자에서 쉬었다.
*괴시리 전통마을에 들어섰다
*빨간 석류가 익는 천전댁 고택에서
6대째 며느리와 풍경소리 들었다.
*괴시리 전통마을을 나와
대진해수욕장을 발 벗고 걸었다
*내가 발벗고 걸어온 모래벌판에
내 발자욱이 선명하다.
*영덕 블루로드의 종점인
고래불 해수욕장이 보인다.
첫댓글 영덕블루로드 길은
해파랑길의 최고임을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