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제3강-2 금강경/ 제3분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
제3강 대승정종분 제3 (大乘正宗分 第三)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불이 고수보리하사대 제보살마하살이 응여시항복기심이니)
所有一切衆生之類인 若卵生과 若胎生과 若濕生과 若化生과
(소유일체중생지류인 약란생과 약태생과 약습생과 약화생과)
若有色과 若無色과 若有想과 若無想과 若非有想非無想을
(약유색과 약무색과 약유상과 약무상과 약비유상비무상을)
我皆令入無餘涅槃하야 而滅度之하리니
(아개영입무여열반하야 이멸도지하리니)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하대 實無衆生得滅度者니라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하대 실무중생득멸도자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면
(하이고오 수보리야 약보살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하면)
卽非菩薩이니라
(즉비보살이니라)
제 3, 대승의 바른 종지[大乘正宗分,대승의 정종분]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지니라. 보살은 온갖 중생들의 종류인 알에서 태어나는 것, 태에서 태어나는 것, 습기에서 생기는 것, 형상이 있는 것, 형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은 것들을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제도(濟度)하느니라. 이와 같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지만 실은 제도를 얻은 중생은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상(相), ‘남’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수명’에 대한 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바르고 으뜸이 되는 큰 가르침
금강경 제3분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상당히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어떤 경전을 막론하고 이 단락 제목처럼 무게있는 제목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 제목이 ‘대승정종(大乘正宗)’입니다. 대승(大乘)은 큰 가르침이라는 뜻이지요. 한자로 작은 수레 큰 수레 할 때의 큰 수레라는 뜻인데 많은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큰 가르침이라고 표현합니다. 종(宗)자는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종(正宗)은 바르고 으뜸이 된다, 큰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바른 가르침이라고 했습니다.
제 3분의 제목인 ‘대승정종’은 ‘큰 가르침 중에서도 바르고 으뜸이 되는 내용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제목에 담겨있는 속뜻을 잘 이해하면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게 있는 제목이라는 것입니다.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불이 고 수보리하사대 제 보살마하살이 응여시항복기심이니)
所有一切衆生之類인 若卵生과 若胎生과 若濕生과 若化生과
(소유일체중생지류인 약난생 약태생과 약습생과 약화생과)
若有色과 若無色과 若有想과 若無想과 若非有想非無想을
(약유색과 약무색과 약유상과 약무상과 약비유상비무상을)
我皆令入無餘涅槃하야 而滅度之호리니
(아개영입무여열반하야 이멸도지호리니)
이와같이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불이 고수보리하사대 제보살마하살이 응여시항복기심이니)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사대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들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된다는 뜻입니다. 다스린다는 말보다 ‘항복’이라고 하는 강한 표현을 쓰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그냥 다스리는 정도 가지고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확실하게 항복받아야 됩니다. 면전에서만 항복받는 것이 아니고 정말 철저히 저 깊은 곳까지 자기 마음을 항복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항복받는가?
여래는 일체중생을 멸도에 들게한다
所有一切衆生之類인 若卵生과 若胎生과 若濕生과 若化生과
(소유일체중생지류인 약란생과 약태생과 약습생과 약화생과)
若有色과 若無色과 若有想과 若無想과 若非有想非無想을
(약유색과 약무색과 약유상과 약무상과 약비유상비무상을)
소유(所有) 있는 바 일체중생지류(一切衆生之類)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말합니다. 약난생, 약태생 할 때 약(若)자가 여기는 만약이라고 하는 뜻이 아니고 동격을 나열할 때 한자에서 약(若)자를 씁니다. 난생이라거나 태생이라거나 습생이라거나 이런 뜻이지요.
알로 태어나는 것이 많습니다. 조류가 거의 다 알로 태어나지요. 태생하면 포유류들이 태생이지요. 습생은 습한 데서 태어나는 생명들입니다. 화생은 변화해서 태어나는 생명들, 유색은 어떤 형체가 있는 생명들입니다. 무색은 형체가 없는 생명들입니다. 여기서 색(色)은 색깔이라는 뜻이 아니라 형체라는 뜻입니다. 유상은 생각이 있는 생명들이고 무상은 생각이 없는 생명들입니다. 비유상비무상은 하나인데 생각이 있기도 하고 혹은 생각이 없기도 한 생명입니다.
이렇게 아홉가지 중생을 구류중생(九類衆生)이라고 합니다. 아홉가지 종류의 생명체라는 뜻인데 인간은 태생에 해당 되지요. 그런데 이것은 다종다양한 생명의 모습들이면서 또 한편 사람의 여러 가지 모습이라고 봐도 됩니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마치 조류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생으로 인간답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습생으로 태어난 것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화생으로 태어난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아홉가지 종류 중생을 모두 인간의 여러 가지 삶에다 배대를 하면 다 맞아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我皆令入無餘涅槃하야 而滅度之하리니
(아개영입무여열반하야 이멸도지하리니)
이런 다종다양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아개영입무여열반(我皆令入無餘涅槃)하야 이멸도지(而滅度之)하리니 내가 다 그들에게 무여열반에 들어가게 해서 그들을 제도하리니 그런 뜻입니다.
멸도(滅度)라는 말은 제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화(敎化), 제도(濟度)를 여기서는 멸도라고 표현 했습니다. 내가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제도한다고 했는데, 무여열반이란 모든 번뇌망상이 다 사라진 경지,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교리적으로 무여열반, 유여열반, 대열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는 ‘우리들의 마음에 번뇌가 다 사라진 상태’로 이해하면 됩니다. 여래는 이러한 많고 많은 생명들을 무여열반으로 제도한다고 했습니다.
실로 제도받은 중생이 없다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하대 實無衆生得滅度者니라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하되 실무중생득멸도자니라.)
‘실무중생득멸도자’이 구절이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와 같이 다종다양한 생명들 거기다 숫자도 얼마나 많습니까. 종류도 많지만 숫자도 많습니다. 난생도 무수히 많고 태생도 무수히 많고 습생도 무수히 많기 때문에 무량무수부변 중생을 제도하지만 실무중생(實無衆生) 실로 없다, ‘실은 제도를 받은 중생은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구절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며 이것을 보고 대승정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로 중생이 제도를 얻은 사람이 없다’ 여래가 그 많고 많은 중생들을 제도 했지만 왜 실은 제도를 받은 중생이 없는가?
이것은 상당히 차원이 높은 이야기입니다. 모든 생명은 그 모습이 어떻든, 어떠한 삶을 살든지 간에 궁극적 차원에서 보면 ‘이미 완전무결한 존재다’ 하는 뜻입니다.
완전한 무결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바꿀 것이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제도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이미 제도되어 있다는 속뜻이 있습니다. 아주 깊은 뜻이 있어요.
부처님께서 평생설법하고도 ‘나는 한마디도 설법한 바가 없다’ 평생 중생제도 해놓고 ‘나는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구절 ‘실로 그 많은 중생들을 내가 제도한 바가 없다’와 같은 뜻입니다.
보통의 우리 불교상식으로 보더라도 부처님이 ‘내가 중생을 모두 제도했노라’ 하고 자랑한다면 부처님은 상쟁이가 되겠지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무슨 부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은 모두 완벽한 존재다
또 사실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그 모든 사람, 그 모든 생명은 그대로 완벽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정말 부처님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부처님이 ‘내가 중생을 제도했노라’ 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지요. 특히 금강경의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금강경은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그 어떤 추호만한 관념도 남겨놓지 않는 것이 금강경의 큰 뜻입니다.
중생을 제도했어도 궁극적 차원에서 보면 제도한 적도 없고 제도할 것도 없고 제도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실무중생득멸도자(實無衆生得滅度者)라고 말씀 하십니다.
何以故오
하이고(何以故)왜냐하면 그랬어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면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면
(수보리야 약보살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하면)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모든 사람 사람의 궁극적 위대한 차원을 망각하고 아상(我相) 나라고 하는 생각이나, 인상(人相)남이라고 하는 차별의식, 중생상(衆生相) 부처에 상대되는 중생이라고 하는 열등의식, 수자상(壽者相) 나는 몇 살밖에 못산다라고 하는 한계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보살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현상만 보는 것이고 인간의 본래 면목은 꿈에도 보지 못한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를 한 입장에서 설사 여래가 중생을 제도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세울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세히 뜯어보면 본래로 완벽한 존재입니다. 더 고치고 말 것이 없어요. 본래 사람으로서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하는 의미가 이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비보살이다
卽非菩薩이니라
그런 내용을 모른다면 즉비보살(卽非菩薩)이지요. 곧 보살이 아닌 것입니다. 불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인생을 좀 더 보람있고 의미있게 살려는 사람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이 단락을 대승정종이라고 합니다. 참생명의 완전한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무게 있는 제목을 달게 된 것입니다.
출처 : 염화실
[출처] 금강경 강좌 제3강 - 무비스님|작성자 단장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