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모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베란다 밖에는 부추기듯 엊그제부터 건들바람조차 창에 붙어 헤실대고 있다. 화풍을 이기지 못한 가슴에 여춘화가 나풀댄다.
이번엔 기필코 참석하리라. 그동안 수월찮게 들어간 벌금도 실은 아까웠다. 직장에 매인 몸이었으니 정기적 모임을 두고 가타부타할 사항도 아니었다. 같이하는 자리에서 쏟아지는 수다에 계산 없이 웃고 싶은 마음에 황급히 뛰어갔다.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며 흥겹게 즐기는 곳이라면 당연, 노래방이다. 칸칸 마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콩밭 매던 조선조 여인을 대물림한 친구들도 실력들이 대단했다. 흥겨운 멜로디에 맞추어 엉덩이까지 살랑살랑 흔들며 춤까지 추었다. 그 틈에서 나는 어정잡이다. 그렇지만 손뼉만큼은 신나게 쳤다.
한참 동안 요란했던 시그널 음악에 지쳐갈 무렵 잔잔한 반주가 흘렀다. 귀에 익은 노래였다. 까마득하게 기억되는 노래의 시원(始原)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데 친구가 마이크를 넘겨줬다.
부모·형제 이별하고 낯설은 타관에서
어머니의 자장가로 노래하던 그 시절이
슬픔 속에 눈물 속에 흘러갑니다
기적소리 울적마다 기적 소리 울적마다
그리운 내 고향
친구들이 쳐주는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내 귓전을 비껴간다. 막 불렀던 ‘향수’ 노래가 내 여섯 살, 즈음 어머니의 음성이 되어 귓전에서 아련히 맴돌고 있었다.
기억으로 어머니는 노래를 잘 불렀던 것 같다. 가요를 부르는 순간만은 사랑의 힘에 마취되어 살았나 보다.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노래들은 곧잘 배워 따라 불렀다. 나는 흘러간 가요를 좋아하기도 하고 즐겨 부르기도 한다. 요즘 기억으로는 유행가 가사 한 줄 외우지 못한다.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즐겨 불렀던 잊어버렸던 그 노래의 가사를 대뇌(大腦)는 또렷이 기억해냈다.
가실 추수가 끝나면 어머니의 또 다른 일이 시작되었다. 다름 아닌 바느질이었다. 촉수 낮은 불빛 아래서, 양말 뒤꿈치나 해진 옷에 옷감을 덧대어 기웠다. 손끝이 맵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어머니는 친척들 옷도 지어 주었다. 그 속에는 더러더러 관혼상제에 필요했던 것도, 많았다. 나는 어머니가 산이나 들에서 거친 일을 하지 않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바느질할 때가 좋았다. 그 곁에, 소꿉놀이를 하다 보면 신바람이 저절로 났다. 신부의 예복을 만들고 나면 예쁜 색 자투리 천이 남았다. 그걸로 인형 옷도 만들었다.
어머니는 간간이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머니가 노래를, 할 때는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어떤 때는 꽃상여의 앞쪽에서 요령을 흔들며 부르던 선소리 같아서 너무 싫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로 토해냈을까. 그런 노래를 부르고 나면 꼭 눈물을 흘렸다. 동수네 할머니는 나만 보면 이북 속에서도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자라고 했다.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곰솔 나무 아래는 한나절 어른들의 쉼터이기도 했다. 소나무 아래 모여 쉬고 있던 어른들의 요청으로 나는 종종 춤을 추며 노래를 곧잘 불렀다. 즐거워하던 어른들의 박수도 많이 받았다. 그런 재간둥이 작은딸을 보며 어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마냥 좋았다.
어머니는 내가 설익은 목소리로 어머니의 애창곡을 간드러지게 불러주면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를 쫄쫄 따라다니며 당시에 유행가를 줄줄 외워 구성지게도 불러냈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슬픈 모습은 싫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덜어주었던 것 같다.
옛 가요는 추억과 삶의 애환과. 실연의 아픔까지 서려 있다. 시간을 떠올려 떠오르게도 한다. 어쩌다 티브이 가요무대 프로를 시청하다 보면 잔잔한 멜로디와 절절한 가사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겹치기도 한다. 어머니에게 ‘향수’란 무엇이었을까. 사랑을 상실한 여자에게 노래만이 위안이었을까. 옛 가수 박재홍이 불렀다는 그 노래가 어머니의 애창곡이었다는 것에 목이 멘다.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향수’를 가수 김용임이 자지러지듯 부른다. 따라 부르다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머니가 잠깐이라도 곁에 없으면 불안했던 어린 시절은 흘러버리고 지금 내 곁에는 어머니의 애창곡만 남았다. 휴대폰에 그 노래를 저장해두고 누군가가 애절하게 그리워지는 날이면 꼭 이 노래에 젖어든다.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와, 슬플 때 흥얼대는 노래도, 외로운 모습까지 어머니를 닮았다. 정지용의 ‘향수’ 시에 곡을 붙여 이동원이 불러 국민 애창곡이 된 ‘향수’는 시가 그렇듯 사람들을 고향으로 향한 무한한 그리움에 젖어 들게 한다면, 내 어머니 애창곡 ‘향수’는 일찍 떠난 지아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란 생각이 든다.
향수의 조각보는 아무리 야무지게 꿰매어도 늘 헛바람이 든다. 달팽이관을 맴도는 그 바닷가의 몽돌 구르는 소리며 컹컹대던 삽살개의 꼬리도 그립다. 십이월의 하현달이 감나무 잔가지에 걸리면 문풍지가 북풍에 떨었다. 바닷가 선창에는 늙은 어부의 노동요 소리도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친구 모임에 다녀온 날은 마음에 더한 그리움이 쌓이는 날이다. 그 시절 어머니가 애절하게 그리운 날은 솜이불을 뒤집어써도 잠은 쉬 들지 않는다. 어머니의 슬픈 노랫소리만 그리움이 되어 내 귓전에서 맴돈다.
첫댓글 최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찡 해 옵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