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군사정권에 모진 고초를 겪었다.
1980년 짧았던 ‘서울의 봄’, 박정희의 유신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처럼 느껴지던 혼란기에 나는 민주화운동의 중심부에 있었다.
전국의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 상황과 늘 관련되어 있었다. 신군부 정권이 ‘내란 음모’라는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나를 남한산성 밑의 육군교도소 특별 감방에 수감했다.
당시 김대중, 문익환 목사 등 나를 포함해 그 특별 감방에 갇힌 다섯 사람은 살아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절망적인 수인의 몸으로 오로지 ‘내가 앞으로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이런 것을 써야겠다’며 시를 구상하는 것이 유일한 존재 이유였다.
나라 잃었던 시절, 나라를 찾기 위해 무장투쟁·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서사시 <백두산>, 내가 직접 만난 사람뿐 아니라 만나지 않은 사람과 역사 속의 사람, 역사 속에 있을 법한 이름 없는 사람 등을 망라해서 거대한 우리 겨레의 지도를 서사화하는 <만인보>도 그때 구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