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둑들
영화 한편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다는 것은 5천만 국민 중 어린이들을 제외한 절반가량이 관람했다는 것이니, 이만저만한 흥행이 아닐 수 없다. 최근 6.25.때 흥남 철수과정에서 가족을 잃고 피란한 덕수 가족을 중심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이 천만관객을 돌파했지만, 국제시장은 마치 19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홍보하는 영화 ‘팔도강산’의 21세기판 같아서 그다지 큰 감흥은 주지 못했지만, 2012년 여름 극장가를 가장 뜨겁게 달군 영화는 최동훈 감독이 제작한 ‘도둑들’이다.
영화 '도둑들'에는 김윤식, 이정재, 김혜수, 전지현, 오달수, 김수현 등 현대 한국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다수 출연해서 개봉 후 불과 한 달 만에 관객 1,268만 명을 동원하여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 2위를 차지했는데, 한국의 일류 배우들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제작한 영화가 만에 하나라도 흥행에 실패했다면 최동훈 감독이 아니라 출연한 일류배우들의 체면도 크게 구겼을 것이다. 사실 최동훈 감독은 2004년 한국형 범죄극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범죄의 재구성’을 비롯하여 전문도박꾼들의 리얼하고 짜릿한 승부 세계를 스릴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개성 강한 캐릭터로 68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2006년 ‘타짜’, 그리고 2009년 고전소설 ‘전우치전’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여 특유의 이야기 솜씨에 화려한 액션 연출력으로 흥행성을 보인 이후 6년 만의 범죄 액션 영화다.
15세 이상 입장가, 상영시간 135분인 영화의 줄거리는 과거 마카오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88억을 땄다는 전설로 ‘마카오 박(김윤식 분)’이 마카오의 한 카지노에 숨겨진 시가 300억에 이르는 '태양의 눈물'이라는 이름의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서 한국에 있는 절도범들과 중국의 절도범을 불러 모아 범행을 공모한다는 스토리다.
한국에서는 목적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이용하는 뽀빠이(이정재 분), 범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줄타기 전문 애니콜(전지현 분), 은퇴한 도둑으로서 씹고 있던 껌을 범죄에 잘 이용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인 ‘씹던 껌(김해숙 분)’, 그리고 순정파 신참 도둑 잠파노(김수현 분)를 홍콩으로 부른다. 여기에 중국에서 가담하는 도둑 4인방은 첸, 쥴리, 증국상, 죠니 등 4인인데, 첸은 198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대표했던 액션 스타이자 국민배우로 손꼽히는 임달화가 분장했는데,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인 금고 따기 쥴리는 이신제가, 한국에서 많은 팬을 가진 배우 증지위의 아들이자 감독으로도 활약 중인 증국상이 소심한 총잡이 앤드류로, 행동파 총잡이 죠니 등이 출연한다.
영화는 애니콜과 씹던 껌이 모녀 사이로 가장해서 신하균이 운영하는 미술관에서 국보급 향로를 절취하는데 성공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이것은 양념에 불과하다. 뽀빠이와 잠파노도 향로 절취의 공범이지만, 향로가 너무 고가이고 유명해서 세간의 관심이 사라 질 때까지 약3년 동안은 감춰두어야 한다며 아쉬워할 때, 과거 뽀빠이의 파트너였던 마카오 박이 태양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다이아몬드 절취 계획에 이들을 초청하는 것이 본론이다. 그런데, 여기에 손에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열 수 있다고 하는 전설의 금고털이 펩시(김혜수 분)가 마카오 박의 초청을 받지도 않은 채,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홍콩에 합류하면서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만든다.
홍콩에 모인 한국과 중국의 절취범 10명은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를 훔치자는 마카오 박의 달콤한 제안에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하지만, 일당은 서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한편 각각 서로 다른 속셈을 갖고 나서서 예상할 수 없는 긴장감을 갖게 한다. 즉,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모든 계획을 지휘하는 인물 마카오 박은 도무지 그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인물로서 그런 마카오박의 뒤통수를 노리는 도둑 뽀빠이, 그리고 마카오 박에게 배신당한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펩시와 팀웤보다는 눈앞의 현찰을 먼저 챙기려고 하는 애니콜, 그리고 한국 도둑들을 믿지 않는 첸과 중국의 도둑들은 서로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서 모였지만, 서로 다른 자신만의 속셈을 갖고 있다.
보통 범죄자들이 은행털이와 같은 큰 범죄에서는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여 작전을 성공시키는 영화를 보통 하이스트(Heist film) 또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고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하이스트 영화는 톰 크루즈로 대표되는 ‘임퍼서블 시리즈’과 숀 코넬리의 ‘함정’같은 영화다.
아무튼 영화 도둑들은 신하균의 사설박물관에서 향로를 훔치는 것을 맛보기로 한 뒤, 홍콩에서 30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과정이 영화의 전반부라면 후반부에서는 한국 부산에서 보석을 가지고 서로 쫒고 쫒기는 줄거리로서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사랑과 음모 그리고 배신을 그렸는데, 스토리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다양한 배우들의 캐릭터가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설정되어서 큰 재미를 준다는 점이다. 우선,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에 이어서 최동훈 감독의 작품에서 김윤석은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마카오박 역을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선보이고, '타짜', '정마담'으로 잊을 수 없는 팜므파탈 캐릭터를 창조해낸 김혜수는 펩시 역을 통해서 프로페셔널한 전설의 금고털이로 변신하면서 속네 깊은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 그리고 한국 팀의 보스로 출연하는 뽀빠이 이정재, 애니콜 전지현, 잠파노 김수현은 최동훈 감독의 첫 작품에 출연하면서 관객들에게 신선하고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줄타기가 장기인 애니콜 전지현은 그동안 ‘엽기적인 그녀’, '시월애'에서처럼 명랑한 캐릭터이거나 청순한 캐릭터 두 가지였는데, 영화 '도둑들'에서는 ‘엽기적인 그녀’의 명랑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잠파노(김수현)가 애니콜의 줄타기를 도와주는 케이블 가이로 나오지만, 그의 명성에 비하면 너무 단역인 것이 약간 아쉽다. 그리고 홍콩배우들의 연기도 국내 배우들의 액션과 다른 이질감과 함께 흥미를 갖게 해주었다.
둘째, 영화에는 러브 라인을 몇 개 보여주었는데, 우선 마카오 박과 펩시의 관계, 둘째는 애니콜과 순정파 잠파노의 관계, 셋째는 명실 공히 중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4인 중국 도둑의 리더인 첸과 씹던 껌과 예기치 않은 감정은 깊은 연륜의 연기 내공이다. 펩시는 4년 전 마카오 박, 뽀빠이와 함께 절도를 할 때 마카오 박의 외줄이 끊어져서 추락하고 연락이 되지 않자 추락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뽀빠이를 의심하면서도 마카오 박의 진심에 의문을 품고 있다가 홍콩에서 마카오 박과의 대화에서 그의 진심을 알고 그와 급속도로 러브스토리가 진행된다.
셋째는 범죄 영화답게 액션 장면이 아주 흥미롭다.
사실 영화 '도둑들'의 액션은 전반부에는 애니콜의 외줄타기 정도이고, 후반부에서 부산으로 설정된 아파트 외벽을 타면서 중국 팀들과 벌이는 총격전이 고작이다. 그러나 홍콩, 마카오, 서울, 부산 등을 오가는 대규모 현지 촬영으로 다양한 도시들의 모습과 함께 도심 한복판을 무대로 벌이는 풍성한 볼거리를 담아냈는데, 홍콩의 허름한 아파트와 뒷골목을 지나 본격적인 범죄가 이뤄지는 화려한 마카오 카지노의 상반된 이미지는 도둑들의 욕망과 도시가 가진 고유의 매력이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압도한다. 특히 오래된 뒷골목과 최첨단의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 홍콩과 낮의 고요함과 밤의 화려함이 대비를 이루는 마카오의 매력을 보여주는데, 최동훈 감독은 영화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10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홍콩의 낡은 아파트를 구입하여 완벽하게 리모델링하여 아지트로 삼았다고 한다. 더욱이 이국적 도시 홍콩과 마카오의 화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마카오 카지노의 30층짜리 빌딩을 올라타는 전지현의 아찔한 액션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속 카지노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임달화의 격렬한 총격 씬과 자동차 액션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또, 훔친 다이아몬드를 되찾기 위한 부산으로 설정된 쏟아지는 총알 세례 속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에어컨 실외기와 창문의 차양, 건물을 휘감은 전깃줄에 몸을 의지한 채 펼치는 마카오박의 고공 와이어 액션 씬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을 선사하는데, 김윤석과 전지현은 고난도 액션 씬의 대부분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카지노 장면이 촬영된 장소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카지노인 마카오의 코타이 스트립에 있는 시티 오브 드림즈(City of Dreams)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실제 카지노 객장 및 하드락 호텔, 크라운 타워, 쇼핑몰 등의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어서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우선 1천만 달러에 이르는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공범들이 각각 얼마씩의 배당을 받는다는 약정도 없이 범죄에 가담한다는 설정이 조금은 황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거액이나 보물을 훔칠 때에는 현실적으로나 대부분의 하이스트 영화에서 톰 크루즈나 숀코네리 같은 주범들은 공범 각자의 특기를 이용하면서 배당비율을 정하고 또 그런 방식이 합리적인데도 이 영화에서는 공범의 특기만을 이용하는 설정인 것이다. 게다가 절취 수법도 조금은 19세기적인 수법인 드릴로 금고를 뚫는다거나 빌딩 외벽을 넘거나 외줄타기를 하는 방식에 약간 쓴 웃음을 지을 수 없다. 더욱이 그동안 김혜수나 전지현이 글래머 걸로 관객에게 어필했지만, 영화 도둑들에서는 미모가 아닌 몸 연기로 나섰다고 하더라도 왠지 코믹한 연기가 어색할 뿐 아니라 젊은 관객의 인기를 모으기에는 너무 늙은(?)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