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이시우 기자(필름2.0)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티 오브 갓>(2002) <콘스탄트 가드너>(2005)에서 뛰어난 연출력을 과시했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감독을 맡은 데다가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개봉 전부터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아쉬운 점 역시 있다. 초반부에서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수용소에 감금되는 장면까지의 흐름은 나름 리드미컬하게 흘러가지만, 이후 수용소에서의 이야기가 지루할 정도로 밋밋하고 긴 호흡을 지녔다는 것이다.
또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헤쳐 관객의 공감을 얻기보단 폐허의 상태 등을 미장센으로 구현하는데 더 신경을 쓴 듯한 느낌도 든다. 아무래도 1인칭 시점과 서술이 중심이 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기엔 다소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영화는 수용소란 밀폐된 공간에서 환자들이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해가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감독 본연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단 걸 느끼게 한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잠시라도 시각을 잃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보는 것이 얼마나 많은 능력과 직결되어 있는지. 현대인은 전체 정보의 90%이상을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다고 하니, 내 인식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 쯤 되는 셈이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란 우리의 감각과 인식에 일대 혼란이 초래되는 사태로, 대부분 시각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대개의 사람들은 (시각을 배제한 새로운 감각과 인식에 익숙해지기까지는)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이것이 집단적으로 나타난다면? 그 혼란이 어느 정도일지 ! 짐작하기도 힘들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러한 혼돈의 궁극을 상정하고, 그 혼돈을 혼자서 생생하게 목격할 단 한사람을 남겨둔다. (자신을 대자화 하는) '타자의 시선'이 사라진 상태에서 충동과 욕구에 의해 추동되고, 외적 질서는 물론 내면화된 질서마저 사라져버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늑대'가 되어 서로 으르렁거리며 물어뜯는 최악의 아비규환을 '차마 눈뜨고 바라봐야 하는' 주인공의 심경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영화는 수용소에서의 탈출을 거쳐 다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가 된 더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로부터 다시금 실낱같은 희망을 싹틔운다. 영화가 보여준 지옥도가 끔찍한 만큼, 그 희망의 빛은! 더욱 간절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의 최고의 원작에, <시티 오브 갓>, <콘스탄트 가드너>를 찍은 페르난도 메이렐러스 감독의 최고의 연출에, 줄리앙 무어의 최고의 연기가 어우러진 최고의 영화이다. 영화 <미스트>를 곱씹으며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눈먼자들의 도시>가 전하는 '절망과 희망의 변증법' 역시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김도훈 <씨네21> 기자 끔찍하다. 영화속의 지옥말고, 눈먼 자들이 각색한 듯한 단선적인 시나리오 말이다. 사실 사라마구가 창조한 눈먼 자들의 지옥에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걷는식물 트리피드>를 포함한 디스토피아 장르에서는 어차피 흔하고 흔한 소재일 따름이다. 사라마구의 원작이 위대한 이유는 오래된 장르적 소재로 인간 존재에 대한 고통스러운 지적 성찰을 근사하게 이뤄냈다는거다(장르문학을 주류문학의 감성에 맞게 교묘하게 재포장했다고 말해도 틀린건 아니다. 이거야 뭐 남미 문학가들이 예전부터 잘해냈던 일이기도 하고). 메이렐리스의 과업은 애초부터 막대했다. 사라마구의 원작은 온갖 메타포로 가득하기 때문에 영상으로 옮기려면 뭔가 다른 수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메이렐리스는 그 `수'를 찾지 못했다. 그와 각색자는 원작의 이야기를 겨우겨우 따라가며 조잡한 영상으로 담아내다가 무릎을 꿇는다. 교훈은 이거다. 어떤 문학 작품은 영화로 손대는 게 불가능하거나, 꼭 영화로 만들어 경의를 표하고 싶다면 보다 영화적인 언어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일이 필요하다는 거. 다음으로 망치고 싶은 원작은 뭔가? '백년동안의 고독'?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영화화가 까다로운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올해 본 가장 우울하며 불쾌한 폭력과 공포로 가득했다. 어느날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정부는 이들을 격리 수용 조치를 내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자들이 수용소에서 벌이는 타락과 광기의 처절한 몸부림은 지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섬뜩하다. 인간의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힘으로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통제하며, 제멋대로 유린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은 현실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강렬한 비주얼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근래 본 적이 없는 공감할만한 미래 묵시룩의 세계를 힘있게 담아냈다.
장영엽 기자(씨네21) 영화는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의 충실한 요약본이다. ‘눈앞이 하얘지는’ 실명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오직 한 안과의사(마크 러팔로)의 아내(줄리언 무어)만이 눈이 멀지 않는다. 길거리엔 오물이 가득하고, 굶주린 개가 죽은 자들의 시체를 물어뜯으며, 시력과 함께 이성 또한 사라진 도시는 단테가 묘사한 아홉 가지 지옥의 축소판이다. 영화는 그 다양한 지옥 중 몇 가지 모습을 골라 줄리언 무어의 눈을 통해 선택적으로 보여준다. 격리시설 제3병동의 ‘왕’(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그 일당들이 식량을 무기로 여자들을 강간하는 장면이나 안과의사 일행이 은신처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더러운 몸을 씻겨주는 장면이 비중있게 다뤄지는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적어도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인간의 선과 악이 가장 극렬하게 대비되는 대목이 어느 부분인지는 알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매끄러운 요약에 집중한 나머지 영화는 소설의 은유를 효과적으로 표현해줄 영상언어에 대한 고민을 잊은 듯하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장면에 내레이션이 불쑥 끼어들어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시각적으로 좀더 강렬해도 좋았을 만한 장면(이를테면 병동이나 거리의 폭동)에서는 도발하지 않음으로써 <눈먼자들의 도시>는 소설 특유의 아우라를 잃었다. ‘눈먼’ 제작진들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동안, 오직 줄리언 무어만이 든든한 연기로 이 영화를 뒷받침한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영화화가 못내 아쉬운 작품이다.
영화 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지수 ★★★★★
줄리언 무어 완소 지수 ★★★★★
제작진의 안목 지수 ★
![]() |
황진미 | 가장 끔찍한 폐허를 상상케 하고 희망의 빛을 쪼여주다니! | ★★★★☆ |
![]() |
장영엽 | 눈먼 자들이여, 소설로 돌아갈지어다 | ★★☆ |
![]() |
박평식 | 각색은 ‘눈뜬 장님’의 솜씨 | ★★☆ |
![]() |
김종철 | 눈먼 자들이 만드는 지옥의 풍경 | ★★★★ |
![]() |
김도훈 | 눈먼 자들이 각색한 지옥 | ★ |
백승찬 (경향신문 기자) |
![]() |
원작과의 피할 수 없는 비교 |
이찬호 (日本 아이타쿠테한류스타 객원기자) |
![]() |
기발한 아이디어와 놀라운 연출력의 만남. 긴장의 끈을 잡고 가다 뭉클함을 느끼다 |
안길수 (서울경제 기자) |
![]() |
충격적인 영상이 가슴을 울린다.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니 주의! |
츠치다 마키 (서울스코프 기자) |
![]() |
퇴폐적인 세계와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 기존의 할리우드영화와 또 다른 힘 |
최은영 (영화평론가) |
![]() |
감각적 파시즘의 절정을 보여준다. |
|
|
|
|
|
|
|
![]() |
|
조숙현 기자(필름2.0) 존 무어 감독도 게임 속에서 상상했던 이미지들을 하나씩 스케치로 구체화하는 것으로 영화의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등장인물을 위협하는 전설 속 전쟁의 신 ‘발키리’의 등장으로 판타지 코드가 추가됐고 컬러와 흑백 명암이 조화를 이룬 미장센은 일정 수준 이상의 영상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영상과 연기와 영화의 만듦새는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다. <매트릭스>에서 보았던, 발사된 총알을 슬로모션으로 포착한 ‘블릿타임’(Bullet Time) 기법은 지루하고, 옥상에서의 마지막 대결 장면, 맥스 페인이 범인을 찾아 도심의 골목을 누비는 장면 등은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은 잔상들의 나열이다. 또한 이야기의 흐름을 너무 대사에만 의존하고, 오로지 액션에만 집중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야기의 묘미를 만드는 데 실패한다.
안현진 <씨네21> 기자 지독하리만치 새로운 것이 없어서 짧은 러닝타임에도 시간이 배로 느껴지는 영화다. 애초부터 ’걸작’이라고 불리는 게임을 스크린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무모했는지 모른다. 게임 덕분에 영화화 소식에 호감을 가졌던 골수 팬들로부터 외면은 커녕 몰매를 맞을 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무엇이든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나 서툴다. 게임 화면에서 그대로 가져와 붙여 놓은 듯한 장면들은 고루하고, 캐릭터의 등장과 사건의 전개는 엉성하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콘트라스트는 시각적인 매혹이기 보다는 육체적 피로로 다가온다. 마크 월버그가 러닝타임 내내 미간에 내 천(川)을 그리는 것을 보고 있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
김도훈 <씨네21> 기자 이젠 할리우드도 인기 게임을 영화화할 땐 그만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을 때가 됐다. 블루 스크린 앞에서 촬영되어 콘트라스트를 잔뜩 흩뿌린 영화의 미술은 거대한 스크린에 어울리지 않게 답답할 따름이고, 불릿타임을 응용한 액션 장면은 한없이 늘어진다(도대체 <매트릭스> 이후에도 이 기법을 호들갑스럽게 써대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마크 월버그의 캐릭터는 아무리 하릴없는 액션 히어로라고는 하지만 형사라는 직함이 아깝도록 지능이 떨어진다. 게임에 서툰 삼백살 노인이 플레이하는 게임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문석 기자(씨네21) <맥스 페인>은 동명의 비디오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어둠의 세력의 거대한 덫에 걸려든 주인공 맥스 페인을 내세우는 이 3인칭 슈팅게임은 음침한 느낌과 하나씩 단서를 찾아나가는 스릴, 그리고 호쾌한 액션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다. <매드맥스>와 홍콩 액션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는 이 게임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많은 게임팬들이 환호성을 지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맥스 페인>은 ‘게임을 원작으로 삼는 영화 중 괜찮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통념에 무게를 실어준다. 영화는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게임 속 캐릭터들을 솎아낸 뒤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 안에 꿰어맞췄는데, 그 탓인지 내러티브의 흥미와 긴장이 반감된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맥스 페인>의 문제는 클리셰(제약회사의 음모, 살인범으로 몰린 형사 등)를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클리셰들을 일정한 방향 안에서 재구성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래서 ‘폼잡기’라는 용도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장면도 너무 많다. 거의 모든 액션장면마다 등장하는 ‘불릿 타임’(총알 등의 빠른 움직임을 극도의 슬로모션을 보여주는 것) 또한 지루함을 넘어 고루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서구 평자들은 <맥스 페인>을 설명할 때 주인공의 성 페인(Payne)에 빗대 이 영화를 보는 고통(pain)을 호소하기도 했다. 우리 식으로는 이 영화에서 게임 정도의 수준을 기대했다가는 ‘폐인’되기 십상이라는 농담도 걸 법 하다. 마크 월버그라는 단단한 배우와 음습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프로덕션디자인 정도가 이 영화의 위안거리다.
원작 게임 유사 지수 ★★
나태한 시나리오 지수 ★★★★
시도 때도 없는 슬로모션 지수 ★★★★★
![]() |
안현진 | 러닝타임 전체가 ‘지루한’ 불릿 타임 | ★ |
![]() |
박평식 | 뒷골목 하나는 <쎄븐>을 닮았어 | ★☆ |
![]() |
김도훈 | 여든 노인이 플레이하는 게임을 보는 기분 | ★ |
이형석 (해럴드경제 기자) |
![]() |
요란하긴 한데, 실속이 없다 |
백승찬 (경향신문 기자) |
![]() |
3류 액션영화의 요소를 충실히 갖췄다 |
안길수 (서울경제 기자) |
![]() |
졸린 눈을 비벼보지만 쏟아지는 단잠. 복수는 ‘너의 것’ |
|
|
|
|
|
|
|
![]() |
|
강보라 기자(필2.0) <추적>에서 앤드류의 저택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두 남자의 신경전을 고조시키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푸른색을 주조로 한 조명과 미니멀한 가구, 정교한 보안 시스템으로 무장한 현대식 저택은 두 남자 사이의 냉기를 배가시키는 동시에 최신식 전자제품들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위대한 유산>(1998)의 음악감독 패트릭 도일은 여기에 반복적인 바이올린 선율을 얹어 긴장감을 더한다.
한편 카메라는 저택을 활용한 다양한 훔쳐보기 컷을 제공하며 관객을 사건의 방관자가 아닌 관찰자로 적극 끌어들인다. 첫 장면에서 앤드류가 틴들의 주차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부감 숏은 그러한 시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감시 카메라에 비친 두 남자, 블라인드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틴들, 두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진행되는 대화 등 카메라는 시종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앵글로 보는 이를 몰입하게 만든다. 팽팽했던 전반부에 비해 예상 가능한 반전으로 힘을 빼는 후반부는 ‘치열한 두뇌 게임’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의 야심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쉬운 부분이다.
장영엽 기자(필름2.0) 핀터의 각색으로 <추적>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으로 거듭났지만,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은 원작과 다르지 않다. 그건 바로 앤드류 와이크와 마일로 틴들의 극명한 대비다. 앤드류는 뼛속까지 지적이고 품위있어야 하며, 마일로는 뼛속까지 섹시하고 저급해야 한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부딪히고 깨지는 데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이 영화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드 로의 ‘불안정한’ 마일로 틴들 연기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는 좀더 불안하고 비열해도 좋을 뻔했으나, 그의 마스코트인 세련된 바람둥이 연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반면 마이클 케인은 더할 나위 없는 앤드류 와이크로 변신했다. 그가 <추적>의 오리지널인 조셉 맨케비츠의 영화 <발자국>에서 뼛속까지 마일로 틴들(앤드류 와이크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했다)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케인의 노작가 연기는 압도적이다. 그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마이클 케인의 주드 로 압도 지수 ★★★★★
주드 로 변신 지수 ★★
두뇌 게임 해독 지수 ★★
![]() |
장영엽 | 마이클 케인의 압승! | ★★★★ |
![]() |
이용철 | 핀터와 브래너와 케인과 로의 합작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 | ★★★ |
![]() |
유지나 | 연기-캐릭터 대결의 진수, 여자의 남자란? 에 관한 화두풀기 | ★★★☆ |
최광희 (FILM2.0 편집위원) |
![]() |
연극적 밀도와 영화적 긴장감의 팽팽한 조화 |
안길수 (서울경제 기자) |
![]() |
놀랍도록 우아하고 지적인 2인극 영화! 매력적인 배우들의 연기가 빛난다 |
|
|
|
|
![]() |
|
김도형 기자(필름2.0) 내용에서도 <커넥트>는 원작과의 차별을 보인다. 초반부는 <셀룰러>와 카메라 앵글까지 흡사할 정도로 닮아 있지만, 중반부터는 <커넥트>만의 맛이 나오고, 후반부에는 숨겨진 반전도 나온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반전은 이야기 전체에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재미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커넥트>는 휴대폰과 그 휴대폰을 통해서 서로 교감하며 사건을 해결한다는 특수한 상황이 주는 쾌감이 크다. 목소리로 소통하는 두 사람이 펼치는 긴장은 잠시의 지루할 틈도 없이 숨 가쁘게 진행된다.
주성철 기자(씨네21) <화피>의 진가상도 그렇지만 <커넥트>의 진목승도 딱히 흠잡을 건 없지만, 뭔가 시원한 결정타를 터트려주는 사람들이 아니다(진목승은 지금도 자신의 최고작이나 다름없는 ‘<천장지구>(1990)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당시 스승이었던 두기봉 감독이 거의 전적으로 매만져준 작품이라는 건 이제 별로 비밀이 아니다). <커넥트> 역시 액션을 강조하는 무난한 리메이크 과정을 밟는다. 계속 전화통화를 하면서 소형차로 납치범들을 뒤쫓으며 공사장과 지하하수통로를 무한 질주하는 모습 등 <삼차구> <남아본색> 등에서 이미 카스턴트를 함께했던 이충지 무술감독과의 호흡은 빛난다. 원작보다 러닝타임이 30분 이상 늘어나면서 다소 지루해지는 감도 없진 않지만, 어쨌건 원작보단 확실히 더 재미있다.
원작보다 나은 지수 ★★★
고천락 매력 지수 ★★★★
카스턴트 지수 ★★★☆
![]() |
박평식 | 악역 캐스팅이 치명타 | ★★☆ |
이형석 (해럴드경제 기자) |
![]() |
옛 홍콩영화를 보는 기분, 우왕좌왕 거칠지만 질주하는 쾌감 |
츠치다 마키 (서울스코프 기자) |
![]() |
복고풍 홍콩영화의 액션과 누아르가 왕년의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
안길수 (서울경제 기자) |
![]() |
아시아 액션은 할리우드 B급 복제품에 그칠 수밖에 없는가 |
|
|
|
|
|
|
![]() |
|
김현수 기자(필름2.0) 다큐멘터리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영화는 영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아리 폴만 감독은 <바시르와 왈츠를>의 실제 주인공 자신이다. 그는 26년 전 발생했던 일을 인터뷰 클립으로 구성하는 게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극중 인터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재구성된 기억들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실사 위에 선을 긋고 색칠하는 로토스코프 방식이 아니라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면서 2D이자 3D이고, 고전적인 애니메이션 형태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팔레스타인에 있던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했고 또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아무런 의미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죽고 죽이는 그 물리적인 행위만 기계적으로 행하게 되는 현실만이 그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기억이란,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지만, 그곳이 어둡고 추악한 현실이라면 망각함으로써 다시 기억하게 되는 이상한 아이러니, 우리가 앞으로 무얼 기억해야 하고 무얼 잊지 말아야 할지 오롯이 되새기게 되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문석 기자(씨네21) 이 영화의 창의성은 무엇보다 형식적 틀에서 찾을 수 있다. 친구들과 전장의 동료, 종군기자 등 9명의 증언이 주된 내용을 차지하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면 너무 무거웠을 것이고 극영화로 재조합됐다면 지나치게 지루하거나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 대신 폴만이 택한 형식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증언들을 바탕으로 극화된 시나리오를 써서 이를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탓에 구상에서부터 완성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방법론은 나서지 않는 증언자들을 묘사하거나 전투장면을 재현하는 등에서도 유용했지만,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판타지 장면에서 결정적 성과를 발휘했다. 한 병사가 거대한 여성의 사타구니에 안겨 있는 모습이나 폴만이 레바논 공항을 헤매는 장면은 외상을 입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내면에 대한 기이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대목, 화면이 실사로 전환되는 순간의 충격은 이전까지의 애니메이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병사가 춤을 추듯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에 깔리는 클래식 선율이나 케이크의 <I Bombed Korea>를 개사한 <I Bombed Beirut>처럼 이미지와 충돌하는 음악도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공헌했다.
애니메이션 완성도 지수 ★★★★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지수 ★★★★☆
왈츠와의 관련 지수 ☆
![]() |
이용철 | 짐승이 잃은 기억을 인간으로서 되살린다 | ★★★★ |
![]() |
이동진 | 나직한 입. 정직한 발. 능란한 손. 기발한 뇌. 꿈꾸는 눈 | ★★★★★ |
![]() |
박평식 | 인간, 죽이는 것 자체를 즐기는 존재 | ★★★★ |
![]() |
김도훈 |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숨이 멈춘다 | ★★★★ |
백승찬 (경향신문 기자) |
![]() |
몇 편 안 된다는 이스라엘영화가 나올 때마다 수작인 비결은 뭘까 |
이찬호 (日本 아이타쿠테한류스타 객원기자) |
![]() |
깊은 이야기를 부드러운 화면으로 녹이는 영화. 맑은 눈을 통한 어두운 세상 보기 |
츠치다 마키 (서울스코프 기자) |
![]() |
다큐멘터리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전쟁의 비참함을 독특한 미장센으로 표현했다 |
|
|
![]() |
|
이사민 기자(필름2.0) 포피의 친구 조이와 동생 수지를 비롯해, 플라멩코 학원 선생, 임신한 포피 여동생과 그의 남편, 포피와 사랑하게 되는 사회복지사 팀 등 색깔이 분명한 주변 인물들은 <해피 고 럭키>의 또 다른 미덕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유머러스하고 밝은 에피소드들은 산뜻한 원색의 런던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져 영국영화 특유의 감성을 뿜어낸다. 그리고 포피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꼭 닮은 그녀의 패션은 원색의 울렁거림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지만, 앵두, 딸기 목걸이와 무지개 양말 등은 그녀의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반영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샐리 호킨스는 이 연기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김도훈 기자(씨네21) 그 모든 영화들이 무조건적인 낙천주의의 선물은 아니었듯이 <해피 고 럭키>도 그렇지는 않다. 마이크 리는 리젠트 파크의 호수에서 친구와 배를 타는 포피의 모습을 비추더니 갑작스럽게 영화를 닫아버린다. 이것으로 끝, 그리고 다음 회에 계속. 삶은 시트콤처럼 계속된다. 포피는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고, 스콧도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다. 두 세계는 서로를 감화시키거나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마이크 리는 로맨틱코미디를 만든 건 아니다. 그는 ‘워킹 타이틀’의 여주인공 하나를 진짜 세계로 던져넣었다. 달콤하지만, 쓰다.
(사람에 따라서)주인공 사랑스러움 지수 ★★★★
(사람에 따라서)주인공 짜증스러움 지수 ★★★★
(모든 사람들이)서너번 포복절도할 지수 ★★★★
![]() |
박평식 | 실없는 수다에서 묵직한 성찰까지 | ★★★☆ |
백승찬 (경향신문 기자) |
![]() |
<미쓰 홍당무>의 반대편에 선 전대미문의 캐릭터영화 |
|
|
|
|
|
|
|
![]() |
|
유주하 기자(필름2.0) 청년필름이 제작해 널리 알려진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처럼 동성애자들이 어둡고 우울하게만 비쳐지는 게 마뜩찮았다는 감독은 민수와 석이의 만남을 한 편의 판타지로 그려낸다. 하지만 이 짧은 판타지에는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농축돼 있다. 영화의 종결부에 이르러서는 둘의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영화의 제작기는 훈훈한 미담으로 가득하다. <우리학교>를 연출한 김명준 감독과 <무림일검의 사생활>에서 음악을 맡았던 김동욱 음악감독이 각각 촬영과 음악에 참여함은 물론 쟁쟁한 영화인들이 노 개런티로 힘을 보탰다. ‘소년단 256명’은 이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은 소중한 존재들. 감독의 블로그를 통해 조직된 그들은 적게는 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까지 십시일반으로 제작비의 70%인 450만 원을 조달했다고 한다. 90%가 여성인 이들을 두고 감독은 ‘이게 바로 조직화된 동인녀의 힘이구나!’라며 감탄했다고. 극장에서도 ‘그녀’들의 힘을 기대해본다.
강병진 기자(씨네21) 13분짜리 단편인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청년필름 대표인 김조광수의 연출작이다. 감독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찰나의 만남은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재로 했다. 또한 감독은 “어둡고 우울하고 진지한 퀴어영화가 불만”이었고 “밝고 즐겁고 명랑하게 사는 게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소년들의 연애담을 ‘샤방샤방’한 분위기로 묘사하고자 영화가 차용한 것은 한국의 발라드 뮤직비디오, 혹은 존슨즈 베이비 로션 CF다. 서정성이 짙은 피아노 연주곡이 곳곳에 심어놓은 슬로모션과 맞물리는 영화의 분위기는 소년과 소년의 구도를 소년과 소녀로 바꾸어도 이물감이 없을 듯 보인다. 민수와 석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반전 또한 드라마 타이즈 뮤직비디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감독의 뜻을 다시 풀자면 동성간의 사랑이 이성간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담고자 굳이 이성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방식을 따라야만 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극중에서 사랑의 큐피드로 분한 예지원이 소년들에게 불러주는 노래가 영화의 개성을 담고 있다. “길거리 부킹은 조심해야 돼~~ 마초한테 걸리면 정말 끝장이야~~”라는 가사와 맞물리는 애니메이션이 더 영화적으로 보인다.
샤방샤방 지수 ★★★★
어디서 본 듯한 지수 ★★★★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할까 망설일 지수 ★★★
![]() |
박평식 | 화사한 습작을 만나다 | ★★ |
츠치다 마키 (서울스코프 기자) |
![]() |
제목 그대로 무엇인가 시작할 듯한 예감. 퀴어영화의 벽을 넘은 예쁜 러브 송 |
|
|
|
|
|
![]() |
|
하성태 기자(필름2.0) 어떠한 영화적 기교도 허용치 않는 도그마 95의 핸드헬드 카메라는 조금씩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생들의 삶과 그들의 운명과도 같은 만남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사실 <미후네>는 할리우드 주류 영화였다면 가족 코미디로 그럴싸하게 포장할 만한 소재다. 하지만 소렌 카우 야콥슨 감독은 전혀 예상치 못할 에피소드들을 촘촘하게 채워 넣는 한편 그 사이사이 네 사람의 변화하는 내밀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이와 함께 인공적인 조명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로케이션 촬영만을 고집하는 도그마 95의 화면은 전원의 풍광을 현실감 있게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후네>는 완성된 지 햇수로 10년이 넘었지만 주제나 미학적인 측면 모두 예전 영화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정한석 기자(씨네21) 도그마 서약자들의 전작을 보지 않은 경우라면 <미후네>의 구성과 표현법이 일단 꽤 흥미로울 수 있다. 거참 이상한 멜로드라마로구나, 라고 생각할 만하다. 사랑에 관한 그 달콤하고 멋들어진 수사 하나 없이 진격하듯 만들어진 이 멜로드라마의 면모는 충분히 매력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도 탔다. 하지만 도그마 서약자들의 다른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너무 양호해서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앞의 두 작품이 정서적으로 격렬하고 표현상 숨김없는 데 비해 <미후네>는 조절과 조율이라는 나름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제작연도는 1999년.
도그마식 러브라인 지수 ★★★★
도그마식으로 화면 흔들려서 토 나오는 지수 ★
도그마식 또라이 지수 ★★☆
![]() |
황진미 | 관습과 예상을 비켜나는 풋풋하고 질박한 영화 | ★★★☆ |
![]() |
이동진 | ‘도그마’의 율법으로도 가리지 못했던 상투성 | ★★☆ |
![]() |
유지나 | 과거로부터 도망 못 가는 삶이어도 여전히 신비한 이유 | ★★★★ |
최광희 (FILM2.0 편집위원) |
![]() |
감추고 싶은 과거를 껴안는 방법 |
|
|
|
|
|
|
![]() |
|
하정민 기자(필름2.0) 한센인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애쓴 이는 1996년 ‘다큐희망’ 프로덕션을 설립해 꾸준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박정숙 감독. 2002년 여행차 찾은 소록도에서 굽은 등을 구부려 빨래를 하던 한센인 할머니를 잊을 수 없었던 박 감독은 2004년 우연히 이행심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다.
3년 동안 소록도와 육지를 오갔고 할머니가 한센인 보상 청구소송을 위해 떠나는 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끈기와 진정성을 가지고 이행심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영화는 결국 일개 개인사를 넘어 우리가 외면했던 한센인 전체의 뼈아픈 역사를 끄집어낸다. 한센인들의 현재를 비추며 그들에 대한 차별이 결코 과거의 악습만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낮고 날카롭다.
이화정 기자(씨네21) <동백아가씨>는 자극이 없는 무공해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80%는 할머니의 회상을 통한 심심한 기록들뿐이다. 게다가 전문성우가 아닌 감독 자신의 육성은 다소 거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드러내는 진실은 말할 수 없이 아프다. 관객은 영화의 말미 한센인보상청구소송에 패한 할머니의 무덤덤한 얼굴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지했던 역사적 진실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웠다’는 감독의 변처럼, 관객의 눈물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한센인과 그 자녀들을 위한 1%의 희망, <동백아가씨>는 이 작은 퍼센테이지의 변화를 위한 가장 따뜻한 기록이다.
다큐멘터리 난이도 지수 ★
편견으로 인한 낯뜨거움 지수 ★★★★
감동 지수 ★★★★
PS. 이번주는 <바시르와 왈츠를>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렛 미 인>처럼 보고싶은 맘이 생길련가? ㅋㅋ
암튼 <바시르와 왈츠를> 추천이요~
글구 유럽영화제작 <해피 고 럭키>랑 <추척>도 추천~ ^^*
첫댓글 추적이 땡긴다....그나저나 소년소년은 언제 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