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일까? 예전과는 달리 우리 제주도 많이 달라져 답답하기만 한 도심의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는 그런 지역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제주시내를 벗어나 꼬불꼬불 오름 사이를 40여분 달려 도착하는 곳은 복잡하기만 한 도심빌딩 숲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천연 숲, 공기부터가 확연히 다름을 느껴야 하는 비자림! 도착해서는 숲을 한바퀴 빙~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비자림 팀(?) 들 중의 한사람으로써 아침부터 대자연과 함께 하는 기쁨이란 아무 곳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라. 이번 3기 해설사가 배치되던 시기는 작열하는 태양 빛만이 친구가 되어 항상 곁에 있었던 뜨거운 날들이 계속 되던 때였습니다. 짜증이 나도록 지겨웠던 여름이 지나가나 싶더니 이번에는 또 비로 일관해서 물난리까지 겪게 만드는 힘든 날씨의 변화에 적응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던가요? 중용을 지킨다는 게 어렵기는 한 모양입니다. 사람이나 하늘이나…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이 곳 다녀오는데 몇 시간이나 걸리나요" 등 처음에는 숲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아스팔트여서 그런지, 비자림에 대해서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이런 류의 질문들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30분~40분 정도 걸립니다."라는 대답에 "어휴~!"하시면서 길다는 뜻의 한숨을 내쉬고는 긴(?) 아스팔트 위를 기대 반, 무신경 반으로 안내하는 나를 따라 걸으면서 설명을 듣기 시작해서 숲 한바퀴를 다 돌고 나오셔서는 "너무 좋다"를 연발하며 10분 정도 밖에 걸은 느낌이 안 난 다시면서 "처음에 30분 ~ 40분 걸린다고 하니까 길게만 느껴졌는데…"하십니다. 그래서 자연 과 사람은 하나인 모양이라고 말씀하시는 관람객들을 대하면서 비자림을 해설하는데 힘을 갖게 됩니다.
햇살이 코끝을 간지럽피던 어느 날, 70대 노부부를 모시고 휴가 차 제주 관광에 나섰다가 비자림에 들르신 어느 젊은 부부 가족을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비자림의 개요 및 비자나무 설명에서부터 비자의 효능에 이르기 까지 설명을 해드리는데 젊은 남자분이 "그 열매는 어디에 쓰입니까?"하고 질문을 하시 길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변비 및 구충제 역할을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이번에는 70 대 할아버지께서 나서시며 "내가 어렸을 때에 어머니께서 비자열매 라시면서 먹으라고 하셔서 멋도 모르고 먹었는데…, 뒷날 그걸(응아)를 봤는데 거기에 기생충이 허옇게 (하얗게)나왔어! 그 열매가 바로 이 나무에서 나온 열매구먼!"하시면서 다시 한번 더 비자나무 가까이에 가셔서 고개를 늘이 빼시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시면서 까지 확인을 하시었다. 그 후에도 이러한 증언을 하시는 분들이 해설한지 얼마 안 되는 기간동안이었지만 몇 분 계셨습니다. 해설을 하는 저는 그냥 기록에만 의존하는데 오셔서 증언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산 증인들이라고 고마움을 느끼며, 그분들 덕택에 저는 확신을 가지고 해설을 하게 됩니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 비가 좀 와주기 만을 그토록 기다리는 제 마음을 읽었는지 갑자기 하늘이 어둑 해지고 구름에서 소리가 들리듯 하더니 곧 비가 쏟아져 매표소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서 있노라니 어느새 언제 비가 왔었느냐는 듯이 개이더니 이내 찌는 듯한 더위가 다시 오후를 장식한 무던히도 따분한 오후, 사무실에서 기지개를 한 큼 켜고 있었습니다.
KAIST 대학원 학생들 28명이 졸업 여행차 이곳 비자림에 왔다면서 설명을 부탁한다고 해서 기꺼이 응했습니다. 그것도 휴대용 마이크까지 동원해 가면서…. "비자(열매)를 가루 내어 미국에서는 파티 할 때면 언제나 빼놓지 않고 만드는 메뉴중의 하나인 호박파이에 「NUTMEG」이라는 이름으로 조미료 내지 향신료로 들어가는데 호박파이에 이 「nutmeg」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특유의 맛이 나지 않으므로 꼭 넣는다"고 설명하자 그 중에 한명(미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대학원을 우리나라로 와서 다니고 있다고 말했던 학생)이 작은 눈을 최대한 벌리면서 "그래요? 저는 이제까지 그 향기가 싫어서 안 먹었었는데…, 이렇게 좋은 것 인줄 몰랐네요! 이제부터 많이 먹어야 되겠네"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Well - being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라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햇볕이 쉴새 없이 뜨겁게 내리쬐어 짜증까지 날수 있는 불쾌지수를 가진 날씨였습니다. 중년부부로 보이는 3팀이 매표를 하시고 들어가시는 걸 보고 "내가 편 할 때 누군가가 그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가 편안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며 해설을 자청했습니다. "…비자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다른 나무에 비해서 매우 느려서 그 나무 재질이 아주 단단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바둑판으로 만들어 바둑을 두면 은은한 종소리가 날만큼 좋은 나무입니다."라고 설명을 하노라면 "아! 그 유명한 비자나무 바둑판!!"하고 감탄을 하시는 분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저는 자랑스럽게 이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의외의 반응이었습니다. "요번에 조치훈 이가 비자나무 바둑판에서 대결하다 졌잖아요!"하시면서 제게 화를 내시는 열성 팬의 말씀에 "조치훈씨가 진 이유가 바둑판 탓도 아니오, 내 탓도 아닐 진데 왜 나한테 화를 내시는 걸까?"하는 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는 걸 들킬까봐 한바탕 웃음으로 대신해서 제 마음을 감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자림에는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3분 ~ 5분은 들어가야 하는데 그 길가에는 인공조림을 한 비자나무 외에 다른 종류의 나무며 야생화 등 초본 류도 많습니다. 그 나무들 중 떼죽나무는 빼놓지 않고 설명을 하는 나무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제주 서민들의 지혜가 참 많이 녹아있는 "촘항"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관람객들이 "저 나무 이름이 뭐에요?"하고 자주 묻는 나무 중에 하나이기도 해서입니다. 마침 자연에 참 관심이 많으신 환경운동을 하시는 어느 성당의 신부(神父)님께서 촘항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천연정수기가 제주도에는 옛날부터 있었던 셈"이라시면서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 가서 널리 알려야 하겠다시 면서 메모까지 해가시고, 또 그 외에 천연약재료들에 관한 말씀들과 유기농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가시면서 천연변비약인 비자가 매점에 다 팔려 없어서 사 갈 수가 없으시다며 그야 말로 들고(걱정하고) 계시기에 그냥 모르는채 할 수가 없어서 제가 소포로 보내드리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새 비자가 나오면 우체국으로도 한번 차를 몰아야 할 것 같습니다. 관람객들의 취향이란 천차만별이라 자신이 알고 있으며 관심이 가는 분야로 우리들의 설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도 저도 아니신 분들은 제 설명이 시셋 말로 먹혀들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하고는 저는 시인이신 노산 이은상 선생님께서 60여년 전에 이 곳 비자림에 오셔서 숲을 둘러보시고 그 느낌을 시로 적어놓으신 구절을 읊(?)으면서 대자연의 오묘한 신비만이라도 가슴에 담고 가시라고 합니다.
「…심으려 한들 여기 이렇게 심을 수가 있으며, 키우려 한들 또한 이같이 키울 수가 있을것이냐, 한 발 내달으면 물바다요, 한 발 들이 밟아도 돌 바단데 여기 무슨 틈을 이같이 저절로 얻어 이러한 대밀림을 지을 수 있었던가. 조화도 응당 자기한 일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시(詩)한 수를 읊으며 '새 천년 비자나무'앞에 다 달으면 그 커다랗고 어마어마한 나무를 접하고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어떤 노부부는 나무 앞에서 아무런 말이 없으셔서 이상하게 여겨 뒤돌아 봤더니 두 손을 정성껏 합장하신 채로 무엇인가 기원하고 계셨습니다. 세월을 많이 사신 분들의 겸손에 저는 저절로 존경이 갔습니다. 하늘이 터지기라도 한 듯 그만 왔으면 좋았을 비가 마구 쏟아져 내려 물난리 까지 치른 다음 날, 숲은 축축함으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만장굴에 물이 들어 찼다며 관람이 안 되어 대신 택한 곳이 비자림이에요. 설명 부탁해도 될까요?"하셔서 뛰어나갔습니다. 서울 창림 초등학교 교사들이 그 곳에서 현재 교직생활을 함께 하시는 평대리 출신 여교사의 이끄심으로 관람을 오신 것이었습니다 이러 저런 설명을 하고, 질문도 하며 배우면서 숲을 한 바퀴 돌아 나섭니다. 산감이 기거하시면서 마셨던 우물터에서 '산감'이야기를 꺼냈더니 평대리 출신 여 교사 분께서 이야기보따리를 푸시면서 아련한 초등학교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평대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지)에 다녔는데 소풍을 주로 비자림으로 왔어요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따라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먹기도 했는데, 가을 소풍 때는 점심시간에 가지고 온 도시락을 다 비우고 나면 빈 도시락에다 비자열매를 주워 담아서 몰래 집으로 가져가려던 그 날 꿈은 산감에 의해 깨지곤 했어요. 산감의 기분이 그 날 어떠냐에 따라서 비자 열매를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 가 결정지어 졌어요"하시는 그 여교사의 말씀에 저는 최근 30여 년 전까지도 산감이 존재 했었다는 사실을 산증인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는 산감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더라구요. 당시 아이들이 비자를 못 가져가도록 막으시던 산감께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하시면서 이렇게 모질게 해야만 하는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하시면서 일일이 점검을 하셨어요." 하시면서 옛 기억을 되살리셨습니다. 언제든지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이렇게 괴로운 법인가 봅니다. 숲을 다 나와서는 처음에 설명 드렸던 비자나무 비(榧)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이제부터는 한자 아닐비(非)가 보이면 비자나무 잎을 생각하시라고 당부 아닌 협박(?)을 하면서 저의 안내는 끝을 맺습니다. 마른하늘에서 난데없이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만 한차례 퍼부었던 어느 날이 었습니다. 안내를 마치고 나왔는데 관람객 중 노인분이 주차장으로 뛰다시피 가시면서 제게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한시 번역해서 인쇄하고 가지고 다니는데 몇 개 가져다 줌세"하면서 거친 숨을 몰아 쉬시면서 가지고 오신 것은 '七夕歌, 樂志論, 十長生歌 詩, 愛蓮說, 사철가(단가)' 등 10여편의 한시들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이렇게 고마워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잘 할걸 하는 후회가 되었지만 후회는 후회로 끝날 뿐 과거를 되돌려 주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한시 분야는 제가 정말 모르는 분야 인데 좀 더 다양하게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해보면서 해설사로서 일을 하면서 때로는 재미있고 보람도 느끼면서 이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선발 및 교육)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돌이켜 보건데 관광객들께 제가 아는 껏 설명을 해드리고 제게 모자라는 부분을 관람객이 채워주시고… 서로의 마음을 대자연이라는 커다란 매개체로 공유하면서 보낸 시간 시간들은 행복자체였습니다. 지금은 부족하다는 것, 채워야 할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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