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마트키 디자인 이야기

[아스팔트정글]

designeer(클리앙)

이젠 좀 식은 떡밥(?)이된 주제이긴 하지만 처음 봤을 때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서 언젠가 이것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해 보자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전 실제로 이 키를 아직까진 본 적이 없어서 실물이 어떨런지는 잘 모르지만 인터넷 상에서 본 것만으로는 정말 2023년 들어 손에 꼽히는 충격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제가 자주 썼던 이야기이지만, 좋은 디자인은 보는 순간 '아!' 라는 감탄사와 함께, '왜 진작 나는 이런 생각을 못 했었나?'라는 감탄을 만들어 내야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나쁜 디자인은 '왜?' 라는 의문과 함께 많은 질문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자는 전 예술에 가깝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스마트키를 보는 순간... '왜???'가 떠올랐습니다. 

왜 굳이 로고로 키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왜 버튼을 저런 식으로 넣었을까?

어떻게 이게 승인이 났을까?

등등...

브랜드 가치나 브랜드의 호/불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 한다고 해도, 디자인적으로 전 처음에 이걸 봤을 때 베르세르크의 베헤리트가 생각났습니다. 비정형적이고 서로 독립된 기관이 아무렇게나 던져저 있는 기괴한 모습. 

아마 상부에서 '현대 로고를 테마로 키 디자인을 해봐!'라는 디자인 요구 사항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키를 저런식으로 사용함으로써 기괴함이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뇌의 인지 방식이 두 가지의 존재를 동시에 인지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많이들 보신적이 있으시겠지만, 아래 그림은 인지의 방법에 따라 젊은 여자의 후/측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늙은 여성의 옆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개의 모습을 동시에 인지할 수는 없습니다. 

저 현대 스마트키는 현대 로고를 인지 했다 하더라도, 버튼들과 거기에 써있는 글씨들로 인해 버튼에 집중하는 순간 현대 로고는 간 곳이 없고 베헤리트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동일하게 느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디자인에 있어서 금기시 되는 것 중 하나는 직설입니다. 

예전에 제품 디자인과 후배에게 들은 이야긴데, 과제로 '봄'을 연상하게 하는 의자를 만들어 오라고 시켰더니, 동기 중 하나가  일반적인 의자 모양에 '봄'이라고 글자를 떡하니 새겨서 제출했었고 당연히 대단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의자에 '봄'이라고 써 있으면 당연히 누구나 봄을 생각할 것인데 디자인적으로 그게 왜 문제가 될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직설적이거든요. 

전 이게 디자인에 있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로고를 크게 만들어 제품에 달거나, 회사 이름을 크게 써 붙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브랜드를 인식하게 되는 방식으로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패션 디자인은 좀 예외긴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패션 디자인은 디자인 산업 분야에서 가장 예술과 가까운 분야인지라 뭔가 일반적인 디자인 원론에 맞지 않은 구석이 많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제가 아는 한 왠만한 자동차 브랜드들 중 저렇게 로고 자체로 자동차 키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꺼내놨을 때 창피하거든요. 너무 직설적이에요. (코닉세크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건 뭐 그 브랜드 자체가 그런 성향이니, 이미 차키가 그런 모양을 가진들 뭘 더 숨기거나 그럴 여지도 없습니다.) 

아래는 급하게 temu (미국에서 알리같은 중국 저가 마켓) 검색한 15달러짜리 라이터입니다. 

4천만원 이상하는 자동차의 차 키가 15달러짜리 라이터보다 떨어져보이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말에 에너지 떨어진 중년의 5분 포토샾이라 결과물이 영 별로지만 그래도 베헤리트보단 낫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스팔트정글]

댓글 중---

TODESTO
전 처음 저 키를 봤을때 뭔 키가 이렇게 생겼냐?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다가 굴당글보도 저게 로고였어? 라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기괴하게 생겼어요.

designeer
@TODESTO님 그게 제가 본문에서 설명드리려 했던 부분입니다.
아마 현대 디자이너는 현대 로고를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우리가 보게 된건 베헤리트였던거죠.

사에바 료
20년전쯤의 조약돌 MP3 디자인인줄 알았습니다...
예전의 포니도 재해석 해서 예전의 것을 계승하는 것도 좋지만.

designeer
@사에바 료님 예전걸 재해석했어야 한다면 이전 키 모양에서 디자인 요소를 가져왔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조약돌 mp3도 사실 디자인의 정당성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요

[아스팔트정글]

몰랑카우
필력 좋으십니다! 베헤리트와 의자 얘기 재밌네요.
저도 추측을 좀 보태자면 최근에 현대와 기아 컨셉 디자인팀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스마트키를 비롯하여 소지하고 다니는 오브제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스마트폰이 모든 기능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스마트키 같은 것을 또 하나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연결지어 본다면 현대는 스마트키를 들고다니는 기능성 제품보단 방에 두는 장식적 소품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로고처럼 생긴 스마트키’가 아니라 ‘로고인데 스마트키 기능이 딸려있는 무언가’로 주객전도 했고 그래서 더더욱 직설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제 망상입니다ㅎ

LunaK
@몰랑카우님 기아 스마트키는 신형 카니발키를 볼 일이 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무선 격발기 모양과 유사한 느낌이라 그런지 멋있다고 느껴지는 디자인이였는데 현대 신형 스마트키는 실물은 못봐보고 사진으로만 봤는데 사진만 봐도
"이래도 디지털키 안넣을꺼야?"하고 물어보는거 같은 느낌이 확 들더라구요

[아스팔트정글]

Karyudrian
현대는 차량 디자인부터 인포테인먼트 UI, 소품인 차키까지.. '디자인' 이라는것을 뭘로 생각하는지 참 궁금하더군요.
그에반해 기아쪽은 계속해서 안전한 방향으로 가고 있고요.
내부에서 기아 밀어주려는 고위인사가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대체 현대가 최근 5년동안 출시한 차량들 중에 디자인적으로 '멋있다' 라는 기억에 남는 차종이 있기는 한가 싶네요.
가장 최근에 나온 차량인 싼타페조차 디자인가지고 구설이 너무 많죠..
차 생긴거부터 그렇게들 나오는데 내부 UI 나 소품 디자인은 뭐.. 뻔하다 봅니다.

designeer
@Karyudrian님 저도 비슷한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썼던 다른 글에도 있긴 하지만, 어쩌면 이게 현대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 1등하는 디자이너가 힘을 조금 빼면 4~5등 하는 디자인을 한다라고 치면, 현대는 제 기준에 아직 세계 1등 수준이 아닌데, 제네시스란 브랜드 때문에 무조건 제네시스보다는 못나게 만들어야하니 생각보다 등수가 많이 밀리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서 토요타 차 디자인들이 그 모양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