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정면에는 스코틀랜드 국기와 사자 문양이 걸려있다. 스코틀랜드의 국기는 성 안드레아의 십자라고도 부르며 파란색 바탕에 X자 모양의 하얀색 십자가 그려져 있다. 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기(잉글랜드), 성 파트리치오의 십자기(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의 국기를 구성하는 국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성 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인데 이는 스코틀랜드의 왕인 앵거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군대가 잉글랜드 군대를 상대로 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 하늘에서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성 안드레아가 나타나 승리했다는 832년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붉은 사자 문양은 스코틀랜드 왕실을 상징한다. 그러나 황금사자는 잉글랜드 왕실을 상징한다.
대포알이 있는 캐논 볼 하우스를 찾아갔다. 성을 향하여 왼쪽 로열 마일 끝에 위치해 있다. 벽을 자세히 보면 대포알이 한가운데에 박힌 채로 있다는데 찾기 힘들어 건물에 들어가 물으니 나와서 찾아준다.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에든버러의 상징인 에든버러성에 도착했다. 에딘버러의 중심이며 관광의 중심지이다. 바위산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성은 한때 난공불락의 요새로 유명했다. 절벽과 바위로 된 성 위에는 상당한 규모의 마을이 성안에 있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성은 역사적인 유물과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조형물 등이 있다. 여름에는 각종 행사가 많아 부분적으로 폐쇄되기도 한다.
화산 모양의 바위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에딘버러 성은 천연의 요새로 주로 침략해 오는 영국과의 항쟁의 중심이었고 공격의 대상이었다. 성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사방이 잘 보이는데, 특히 성벽 위에 수많은 대포가 저 아래를 겨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옛날의 치열한 전쟁터를 생각나게 한다. 여름 페스티벌 기간에는 그 유명한 밀리터리 타투 행사가 벌어진다. 멀리서 보면 평화스럽게 보이는 성이지만 예전에는 병사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으며 Mons-Meg라 불리는 대포가 성벽의 정상으로부터 프린세스 거리를 겨누고 있었다. 왕실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대포로 축포를 쏘는데 현재는 실내에 보관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스코틀랜드의 왕관이나 칼 등 왕위 계승의 요소였던 물건들과 무기류가 전시되어 있다. 오후 1시가 되면 울려 퍼지는 공포 소리를 들으면 스코틀랜드의 혹독했던 역사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데 들리지 않았다. 성문 앞 광장에는 커다란 무대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있고 관객석을 만들어 놓았다. 밀리터리 타투에서는 백파이프 밴드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밴드나 댄싱그룹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면서 다양한 연기를 즐길 수 있는 축제다. 매년 8월 3주간 걸쳐서 다양한 이벤트가 연이어 벌어진다.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각국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아래 수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나오는 길에 브로디스 클로스를 찾았다. 로열마일에 있는 클로스 중의 하나로 블로디란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상업길드의 우두머리였던 Deacon Brodie는 낮에는 상인으로 밤에는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도적으로 행세하였다. 블로디는 실제인물이며 스티븐슨은 그를 모델로 하여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썼다고 한다. 마네킹으로 만들어진 인물이 하나 골목을 지키고 있다.
거리에는 예술가들이 많다. 투명인간으로 분장한 사람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으로 굳어 있는 사람도 인기가 있다. 허공에 더 있어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사람들을 잔뜩 끌어 모은 마술사도 있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시리즈를 집필했다는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도 이곳의 명물이 되었다. 평범한 카페에 지나지 않았던 이 작은 문화공간이 문학작품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은 코끼리 미니어쳐 컬렉션이 가득한 진열장에는 조앤 롤링이 직접 사인한 해리포터 초판본도 진열되어 있다. 로열마일의 동쪽 끝에 있다는 홀리루드 궁전을 향해 걸어간다. 보행자 거리가 끝나고 차량들이 다닌다. 좁은 도로에 2층 버스가 원색으로 칠하고 손님을 잔뜩 태우고 서서히 움직인다. 눈에 들어오는 가게 하나. 코와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입은 애가 타게 하는 음식점이다. 돼지고기 통구이 식당이다. 그림의 떡이다. 아내의 반대로 그냥 통과하는 것이 아쉬웠다.
홀리루드 궁전에 도착했다. 화려한 저택이다. 원래는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었는데 1520년 제임스 4세에 의해 궁전으로 변했다. 메리 여왕의 비극과 로망이 얽혀있는 무대다.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The Palace of Holyroodhouse).로열 마일의 동쪽 끝에 위치한 궁전으로 지금도 스코틀랜드의 영국 황실 궁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왕실 멤버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할 때는 이곳에 머문다. 궁전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그레이트 갤러리에 있는 89명의 역대 스코틀랜드 왕의 초상화는 압권이다. 스코틀랜드여왕 메리는 에딘버러 성보다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을 더 좋아했으며 첫 남편 프랑스 왕 프랑소와 2세가 죽자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서 6년 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메리의 방은 북서쪽의 탑에 있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 단리가 질투심 때문에 메리의 비서였던 리치오를 찔러 죽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이 서쪽의 탐이었다. 이 사건으로 임신 중이었던 메리는 결국 유산했으며 그 후 무사히 태어난 아이가 훗날 제임스 6세(잉글랜드 왕 제임스1세)다. 궁전에 인접한 홀리루드 애비는 폐허가 되었지만 궁전보다 역사는 더 길며 12세기에 데이비드 1세가 지은 유서 깊은 수도원이다. 역대 스코틀랜드 왕들이 매장되어 있다. 궁전 밖의 폐허가 된 홀리루드 애비에 남아있는 건축물들이 제법 멋스러웠다.
스코틀랜드의 왕실 문양인 유니콘과 잉글랜드 왕실 문양인 황금사자상이 눈에 들어온다. 문양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다. 왕관 대신에 날카로운 뿔을 가진 유니콘은 자유롭고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목에 단단히 사슬이 채워져 있단다. 스코틀랜드의 또다른 상징인 붉은 사자는 이중으로 된 틀안에 갇혀서 두발로 서있는 모습이다. 반면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3마리의 황금빛 사자는 오른쪽 앞발을 들고 앞으로 전진 하는 모습이다. 영국 와실 문양에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하프도 한 켠에 있다. 그런데 웨일즈를 상징하는 붉은 용이 빠져 있어 아쉬움이 있단다. 발밑에는 장미(잉글랜드), 엉거퀴(스코틀랜드), 클로버(아일랜드) 가 하나의 넝쿨위에서 자라고 있어 연합국의 상징을 나타낸다. 여기에도 웨일즈의 국화인 수선화가 빠져있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든다. 영국왕실 문양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조금 다르다. 유니콘도 왕관을 쓰고 있고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붉은 사자로 잉글랜드 황금사자 자리를 대신한다. 방패를 감싸고 있는 벨트도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로 대체되어 있다.
“오, 스코틀랜드의 꽃이여/ 언제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까/ 언덕과 골짜기에서 싸우다가 죽어간 그들을/ 에드워드의 군대와 맞서 싸운 그들을/ 에드워드의 군대를 집으로 돌려보낸 그들을”
스코틀랜드의 비공식 국가(國歌),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애창곡, “스코틀랜드의 꽃(Flower of Scotland)”의 한 구절입니다. 오래 전 바이킹들로부터 적들로부터 스코틀랜드를 구한 꽃. 스코틀랜드의 꽃. 스코틀랜드의 국화(國花). . 엉겅퀴이다. 전설에 따르면 엉겅퀴가 스코틀랜드를 덴마크의 바이킹들로부터 구했다는데, 그게 엉겅퀴의 가시 덕분이란다. 야밤에 기습을 감행하던 바이킹들이 엉겅퀴 가시에 찔려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기습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 이후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민의 꽃이 되었다. 어떤 자료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상징하는 것이 또한 엉겅퀴 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흔 하디 흔 한 천덕꾸러기 들꽃이 바다 건너 북구에서는 꽤 유명하고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우리 것이면서 우리가 천덕꾸러기로 방치하고 있는 것들이 또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홀리루드 궁전 주변에 펼쳐져 있는 홀리루드 공원에 간다. 사자와 닮은 사화산으로 Arthur’s Seat가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부근은 원래 왕실의 사냥터였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구릉을 빙 돌고 있는 길을 좋아하여 그 길을 특별히 ‘Queen’s Drive’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마음을 다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갈수록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보기 좋았다. 올라갈수록 산책길이 많다. 제일 높은 곳을 향했다. 해발 251m의 뒷산 수준이라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주변에는 엉겅퀴 꽃이 많았다. 30 여분을 올라 겨우 정상에 섰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뛰어서 올라간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날씨l가 요사스럽다. 정상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펼쳐지는 경치가 참 멋졌다. 에든버러가 바다에 면해 있음도 알 수 있었고, 시내의 아름다운 풍경도 반가웠다. 눈 아래에는 여러 개의 언덕도 보인다. Crow Hill, Nether Hill 등 이름도 여러 가지다. 우리는 Queen’s Drive라는 산책길을 이용해 내려왔다. 아담한 연못도 만났다. 넓은 초장이 마음과 눈을 편안하게 한다.
다시 로열마일 거리를 걸어간다.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 건물도 찾아보았다. 축제에 초대 받았다는 한국 농악 팀을 만났다. 공연 홍보를 위해 나왔단다. 공연은 내일 오후 2시란다.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제주도에서 온 농악 팀이다. 바비견 동상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라스 마켓 방향이다. 그라스 마켓은 옛날 사형 집행장으로서 피에 물든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라스 마켓은 에든버러 성의 뒤편에 있다. 프린세스 거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에든버러에서는 오늘날 가장 세련된 장소 중의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밤 늦게까지 에든버러 젊은이들로 흥청거리는 유흥업소나 레스토랑 이외에 센스 있는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다른 곳과는 다른 특이한 토산품을 발견하기도 한다.
영국의 충견 바비를 만났다. 실물 크기라 생각보다 개의 동상이 작았다. 존 그레이라는 목사가 기르던 개가 1858년부터 1872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주인의 무덤을 지켰다고 한다. 그 개의 이름이 바로 Greyfriars Bobby인데 지금도 개를 좋아하는 에든버러의 시민들로부터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바비 동상이 있는 근처에는 같은 이름의 술집이 있다. 바비의 주인이 잠들고 있는 Greyfriars 교회가 뒤편에 있다. 바비의 무덤도 있다. 교회는 오래되 보이고 좀 낡았다. 수리중이다. 마당에는 여러개의 무덤들이 있다. 그 중 바비의 무덤을 찾아보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그의 주인 목사님의 무덤도 있다.
쉬어갈 겸 교회를 둘러보려 뒤편으로 가니 에든버러의 방어벽 프로든 월이 있었다. 1513년 프로든 전투에서 잉글랜드에 패한 스코틀랜드는 다가올 공격에 대비해 벽을 쌓은적이 있다. 그 당시 벽의 일부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프로든 월이다. 그라스 마켓을 서서히 걸어보며 산책을 했다. 오른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성이 견고해 보인다. 걸어나오다가 에든버러의 명문 퍼블릭스쿨 Gerge Heriot’s School에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이 견고해 보인다.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건물만 버티고 있다. 이제 대충 에든버러 시내를 둘러본 것 같다. 숙소방향으로 걷다가 국립도서관 건물도 만났다. 배가고프다. 지친다.
거리에서 향긋함 카레 냄새가 난다. 어딘가 살펴보니 인도 사람들이 판을 벌려 놓고 과자와 커피와 함께 카레 밥을 공짜로 주고 있었다. 얼른 줄을 서서 밥을 받고 과자도 집었다. 금방 만들어 주는 카레 밥이라 따듯해서 먹기에 좋았다. 축제에 참가하는 팀이 공연 홍보 차 나와 제공해 주는 것 같다. 배고픈 여행자에게는 먹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여러 사람들이 벽을 기대어 서서 먹는다. 그 사이에 아내와 함께 끼어 먹는데 정말 즐거웠다. 눈이 번쩍 떠졌다. 귀티 나는 인도사람들이 고마웠다.
기분 좋게 숙소로 걸어가는데 또 커리 밥을 나눠주는 팀을 만났다. 이번에는 생수도 한통씩 준다. 배가 부르지만 또 얼른 줄을 서서 커리 밥과 물을 받았다. 지친 여행길이갑자기 가벼워졌다. 먹는 즐거움이 역시 크다. 테스코에 들러서 물건을 샀다. 사과, 복숭아, 계란 15개, 치킨, 라면, 땅콩 등을 샀다. 무거웠다. 거리에 심어진 마가목 붉은 열매가 우리 집을 생각나게 한다. 숙소에서 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숙소를 예약했다. 밤 11시다. 종일 걸었더니 정말 피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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