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르고’는 헨델이 남긴 오페라 ‘세르세’에서 주인공인 페르시아와 왕 세르세가 뜰에 나와 무성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부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Ombra Mai Fu)’이라는 곡이다. 라르고의 빠르기로 쓰여져 ‘그리운 나무 그늘’보다 이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다.
선율이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성악뿐 아니라 여러 악기용으로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는 명곡이다.
음악은 수만 년쯤 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음악을 처음 만들지도 않았고 우리의 친부모도 아닌데 어째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일까?
이유는 두 사람이 서양 음악을 크게 발전시키는데 앞장서고 고전파 음악의 바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바흐는 1685년 독일, 음악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당숙의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자란 음악적으로 타고난 행운아였지만, 아홉 살 때 부모를 모두 잃는 불행을 겪게 된다.
반면 헨델은 음악과는 아무 상관 없는 작센 궁정 외과의사 아들로 태어났다. 옛날에는 귀족 밑에서 일하던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는데, 헨델의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1685년, 독일의 할레라는 곳에서 태어난 헨델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어했으나, 아들을 법관으로 키우고 싶어했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헨델의 음악적 재능이 주위 사람들에 눈에 띄었고, 그들은 아버지를 설득해서 헨델은 아홉 살 때부터 빌헬름 차하우라는 오르간 연주자에게 작곡법과 연주법을 배우게 된다.
바흐와 헨델의 음악은 똑같이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띠고, 성악 중심에서 기악 중심 음악으로 바뀐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아주 다르다. 일생 동안 교회의 연주자나 음악 감독으로 살았던 바흐가 음악의 본질적인 요소에 충실하면서 단순한 진리와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면, 헨델은 왕과 왕비의 후원을 받아 온갖 기교를 살린 오페라 공연으로 화려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맛으로 표현하면, 바흐의 음악은 깔끔 담백한 맛으로, 헨델의 음악은 온갖 양념이 가미된 특별한 맛으로 비유할 수 있다.
말년에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된 바흐는 1750년 세상을 떠났다. 음악과 더불어 살았지만 살아 생전 대중에게 그 다지 인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후에도 오랫동안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잊혀진다.
반면 헨델은 평생 왕의 총애를 받고 살다가 사후에 웨스트민스턴 사원에 묻히는 영예를 안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운명은 100년 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역전되었다. 완전히 묻혀버릴 뻔했던 바흐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멘델스존이었다. 음악학자이기도 했던 멘델스존은 바흐의 음악에 감탄한 나머지 사라진 악보들을 찾아내어 세상에 널리 알렸다.
참고로 ‘아리아(Aria)’는 오페라,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에서 나오는 선율이 두드러지는 독창 부분(드물게는 2중창)으로 레치타티보와 대조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레치타티보가 대사를 노래하는 것에 반해, 아리아는 음악적인 표현과 가수의 기량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가곡처럼 그 자체가 완결된 노래가 아니라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의 극적인 내용 진전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로시니, 벨리니, 베르니 같은 19C 이탈리아 오페라의 작곡가들이 아리아로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데 주력한 반면, 바그너의 혁명적인 악극 이후 무소륵스키나 드뷔시 등의 근대 오페라에서는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전개되는데 장애가 되는 기교적인 아리아는 쇠태했다. 이 밖에 선율이 돋보이는 기악곡 소품을 ‘아리아’로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