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오딜롱 르동 ‘감고 있는 눈’
입력2018.03.13. 오전 10:30
유화 그림인데도 표현방법 덕분에 묘한 색감이 눈에 띄는 이 그림은 크기에 비해서 사람의 눈을 끄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인데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불분명하고 혼자만 아무것도 없는 배경에 그려져 있으니 바쁘게 지나가다가도 다시 한 번 눈길이 가게 마련이지요. 상징주의는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그리 친숙한 예술 사조는 아닙니다.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이 운동은 19세기 후반 예술이 지나치게 시각적이고 외형적인 것만 추구한다는 불만으로,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가능성과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자연의 힘을 묘사하고 논리보다는 직관으로 본질에 다가가려는 태도였습니다. 이후 화가들도 여기에 가담하게 되는데, 인상파와 아카데미 화가들이 대립하는 당시 언뜻 다양한 주제들이 다뤄지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이 외관에만 집중되어 있는 속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색깔과 표현을 연구하는 상징주의자들의 그림은 특이한 위치가 됩니다.
그들은 이 상상의 세계를 위해서, 꿈과 환상을 쫓고, 죽음과 욕구같은 측량이 어려운 인간의 집착들에 관심을 뒀습니다. 오늘의 그림 역시 그런 주제가 되겠지요.
“이 그림은 작가 오딜롱 르동의 전체 작품 목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그림이다. 이 그림부터 르동은 이제까지 한가지 색깔만 쓰던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게 된다. (원래 나이가 50이 될 때 까지 르동은 목탄화와 석판화 등의 작업만 했다.) 이 감은 눈이라는 그림 이후 르동은 본격적으로 채색을 하는 그림을 시작했으며 특히 파스텔 등의 재료로 그의 대표작들을 남기게 된다. 동시에 이 그림은 1904년 그의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뤽상부르크 박물관에 공식 소장된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은 비교적 늦은 인정이었으나, 르동 본인은 진심으로 기뻐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뤽상부르크 박물관은 그 당시에 국가가 직접 구입하고 관리하기로 결정한 작품을 잠정적으로 보관, 전시하던 장소였습니다. 여기서 몇 년간 전시 되다가 루브르나 기타 국립 미술관으로 옮기는 절차를 거쳤는데, 이것은 유행이나 유명세에 영향 받지 않고 국립 미술관의 소장 작품을 관리하는 규칙이기도 했었죠. 그래도 뤽상부르크 목록에 들어갔다는 것은 국가로부터 인장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60 세가 넘어서야 그의 작품을 인정받은 르동은 그것만으로도 기뻐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이 신비로운 얼굴은 르동의 부인이었던 카미유 팔트라는 의견도 있지만, 르동이 남겨놓은 글을 보면 다른 곳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증거도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죽어가는 노예’나 구스타프 모로의 그림 ‘오르페우스’의 얼굴들을 보고 르동은 글을 남긴 적이있다. “노예의 감은 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잠을 자고 있는 듯한 얼굴, 그리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근심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들 역시 공감과 성찰을 할 수 있게 된다. 노예의 잠은 우리 내면을 깨운다.”
언뜻 여성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잘 보면 남자 같은 모습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19세기 후반, 남자와 여자의 중간 쯤 되는 것 같은 외모가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는 유행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그림 주인공 역시 중간자의 모호함을 묘사한 것이라고 했는데, 오르세는 그것보다는 오딜롱 르동의 메모에서 자주 나오는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모로의 그림을 근거로 이 얼굴이 죽음과 꿈의 경계에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저도 이 코너에서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모로의 그림 ‘오르페우스’에 나오는 목이 잘린체 악기에 붙어있는 음악가의 얼굴과 닮아 있기도 하고, 미켈란젤로 조각의 노예가 몸부림치며 스러져가는 모습을 연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절망의 끝에 연결된 꿈을 르동은 묘사했습니다.
“실재로 르동이 그린 이 그림 주인공의 감은 눈은 무한하고 사색적인 예술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잠은 꿈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상징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르동은 이 그림처럼 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창조적인 꿈이라는 것은 예술가에게 그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고 르동은 이야기 했다. 나는 항상 나의 예술을 해왔다. 나는 항상 내 작업을 완성할 때는 내 눈으로 본 세상을 통해, 그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자연과 삶의 법에 순응하는 고민 속에서 완성했다. 예술은 그렇게 연결된다.”
눈으로 보이는 세상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면서 상상과 꿈의 영역을 강조한 르동이 갑자기 눈으로 관찰하는 필요성을 강조하다니 무슨 소린가 해서 다른 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르동의 마음은 마치 그가 그리는 그림 속의 색깔처럼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이 있고, 색의 느낌과 표현의 방식이 한 자리에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것처럼, 모든 방법을 이용해서 본인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가는 태도로 보입니다.
이 상징주의 작가들의 진정한 가치는 모호함과 경계, 그리고 종합하되 마무리 보다는 열어 놓는 용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눈으로 자연 법칙에 순응했다는 주장조차 다양함의 하나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있는 이 주인공의 생각은 그렇게 또다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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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Closed Eyes) /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