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줌
나의 늙음이야 말할 거리나 되리오마는
그대가 늙는 것 또한 마음에 걸리네
지팡이 짚고 나서면 가을바람 차고
창을 열면 옥같은 이슬 맑기도 해라
비록 거문고 피리소리는 없어도
차와 술은 갖추어 놓았네
한가로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졸면서
어찌 명리를 다투리
令壽閤(閣)徐氏(영수합(각)서씨)
영수합 서씨는 1753년 9월19일 생으로 관찰사 서형수의 딸로 태어나서 뒷날 우부승지를 지낸 족수거사인 홍인모의 부인이 되어 3남2녀를 두었다. 성리학에 정통한 문장가 홍석주는 서씨의 맏아들이고 홍현주(정조의 사위 숙선옹주의 남편)는 셋째 아들이다. 배움이 넓어 천문, 지리, 의점, 수학 등의 정효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영수합 서씨의 시는 그의 남편인 족수당의 문집 ‘족수당집’ 권지6 부록‘영수합고’에 186편의 시가 전하고 있고 그중에 다시가 1편과 다와 관련이 있는 시가 3편이 들어있으며 ‘영수합고’발문은 홍길주가 썼다고 되어있다.
나이 쉰이 넘어 비로소 시를 짓기 시작한 그녀는 특히 도연명, 두보, 육우 등의 시를 좋아하여 즐겨 그들의 시를 차운하여 짓기도 하였고, 이들 시인의 영향인지 여성으로는 보기 드물게 맑고 투명하면서고 탈속한 시풍을 보여준다. 초의선사에게 ‘동다송’을 짓게한 영수합서씨는 일상생활에서도 차를 즐겨 차로 묶여진 한 집안의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숙선옹주는 정조(1776~1800)17년 계축(1793)에 수빈 박씨의 몸에서 왕녀로 태어나 정조와 수빈박씨의 사랑을 받았고 순조(1800~1834)의 하나밖에 없는 동복 누이 동생으로 남매간의 우애도 극진하였다. 8세에 부왕 정조를 여의였고 순조가 등극하니 옹주를 측은하게 여기어 총애하더니 12세 나던 해 갑자(1804년)에 풍산인 홍현주에게 하가하게 되었다. 시어머니 영수합서씨와 며느리 숙선옹주와 사이는 좋았던 모양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숙선옹주는 심하게 병들었어도 고부기일에는 반드시 초를 밝히고 혼자 앉아 밤을 세우는 효부이기도 했다.
첫댓글 시 내용에 차와 곡차 그리고가을이 포함되있고 회주이신 원법큰스님께서 75세이신데도 50대 같은 젊음과 총기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거기에 늙음 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새겨봐야 하겠습니다
좋은 시간이 될거란 생각에 기다려 집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시지요...
예~~모처럼 저희 친정 어머니도 가세요...*^^*
원법큰스님을 뵈올 영광도 있겠는지요 그날은?
예! 당일 직접 다도시연도 하시고 법문도 하실겁니다
더사 좋습니다..기대됩니다..
기대 하셔도 좋을겁니다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영수합 서씨라 ~ 궁금하여 제 나름대로 좀더 관찰을 해보겠습니다....
사임당과 난설헌 그리고 영수합 이 세분은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