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0. 큐티
고린도전서 7:29 ~ 40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결혼에 대한 자세
관찰 :
1)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을 고대하는 자의 태도
- 29절 ~ 31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기혼, 미혼, 독신, 슬픔, 기쁨, 심지어는 경제활동에서의 유익과 불이익에 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재림을 앙망하는 자들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성도들의 가장 중요하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상황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임을 분명히 하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의 그러한 외형적인 것은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어지는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앙망하는 자는 이땅의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이 땅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32절.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 사도 바울은 주의 일이 가정의 어떠한 일보다 더 우선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염려의 핵심도 주의 일을 염려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온전히 주의 일을 염려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33절 ~ 34절a.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에게 집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 온전히 그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세상 일을 염려하는 것으로 이어져서 세상의 것으로 아내를 기쁘게 하고자 하게 되기 때문이다.
- 34절b.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인 자매들 역시 주님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이 다 주님께 집중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시집 간 자는 남편과 자녀로 인해서 염려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염려는 필연적으로 세상 일과 연관되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서 마음이 나뉘어 주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게 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예비하는 삶으로부어 동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결혼의 유무를 떠나서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믿음을 가지고 삶의 중심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혼 하지 않았을지라도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긴 자가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 할 경우 그렇게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경계를 하고 있다.
- 35절.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는 것”이다. 성도는 결혼의 유무를 떠나서 주님을 그렇게 섬겨야 한다.
2) 바른 관점 속에서의 결혼에 대한 태도
- 36절.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 여기서의 “약혼녀”(παρθένον, 파르데논)는 원어상으로는 ‘처녀’로서 개역 성경에서는 “처녀 딸”로 번역되었던 부분이다. 칼빈은 이 본문을 부모 된 자가 처녀 딸에 대하여 취할 방침을 자세히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첫째, 부모는 그 처녀 딸의 형편에 대하여 존중시해야 된다는 것, 다시 말하면 그 처녀 딸의 심리나 기타 사정이 혼인을 필요하게 여기도록 된 경우에 그것을 억압하지 말고 그 사정대로 문제를 해결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 부모 된 자에게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둘 의사가 필요하지만 겸하여 떠나고자 하는 의견을 존중하여야 함을 가르친다. 부모 된 자가 그 처녀 딸을 부양하지 않고자 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의사이다. 처녀인 딸이 시집가고 안 가는 것은 누구에게 보다 그 자신에게 권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라고 해서 억지로 해서는 아니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의 통념에 비교해 볼 때 거의 혁명적인 가르침이다. 자신의 딸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결혼할 때 지참금을 가져오게 하여 한 몫 보는 것이 일반인 상황에서 이렇게 가르치는 것을 통해 성경 말씀이 얼마나 인권을 중대시하는 가를 볼 수 있다. 혼기에 처녀 된 딸이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자 하는 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로 결혼하게 허락하라고 말씀하신다.
- 37절.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 여기서도 “약혼녀”는 처녀 된 딸로 해석하는 것을 따른다. 성경은 다시의 통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권리를 가장 존엄하게 다루고 있다.
- 38절.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 사도 바울의 중심은 결혼 자체의 문제보다는 여전히 주님을 섬기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해도, 하지 않아도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욱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잘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만일 결혼해서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금상첨화가 되는 것이다.
3) 남편을 사별한 여인의 태도
- 39절.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 아내는 남편에게 매인 자가 된다. 그러나 그 매임은 남편이 살아있는 기간까지의 한시적인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다시 시집을 갈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갈 것을 명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재혼의 경우만이 아니라 초혼의 경우도 동일한 적용을 해야 하는 말씀이다. 자녀를 출가시킴에 있어서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자라고 할지라도 그가 혹은 그녀가 성도가 아니라면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자신의 결혼을 결정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유념해야 한다.
- 40절.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성령의 은사 중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이 복이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을 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관점은 여전히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기에, 독신으로 그냥 지내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더 좋은 길이라고 주장한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의 관점은 너무나 확고하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태도가 결혼의 유무를 떠나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슬픔과 기쁨,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관에 있어서 적용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성도의 가장 중요한 핵심자세가 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하여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감사요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임을 말한다. 그것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2) 이 글이 씌여진 2000년 전이면 고대에 속하는 시기이다. 그 때 이미 딸의 결혼 문제를 인격적으로 대우할 것을 명하는 주님의 말씀은 가히 혁명적이다. 참으로 우리 인생이 주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알려주시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식이라고 내 뜻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 자식의 진짜 부모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더 많이 신경쓰시고 책임지실 것이다. 내가 다 책임질 수 있는 인생이 아니기에 자녀를 맡기고 오직 주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바른 교훈과 훈계를 자녀에게 베풀어야지 내 생각과 판단으로 끌고가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언제나 자신의 판단의 근거가 말씀으로부터 말미암는 교양과 훈계인지, 결국 내 생각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3) 예수님은 다시 오실 분이시다. 그 분을 바라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혼의 유무를 떠나서 축복된 인생을 사는 길이다.
적용 :
1)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내 아내, 혹은 내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이 중심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한다.
2) 자녀 교육에 있어서 내 뜻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자녀를 출가시키는 문제에 있어서도 나의 기준이 우선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자녀를 이용하여 나의 유익을 삼고자 하는 자세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자녀의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자녀를 향하여 고민이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잘하면 잘해서, 못하면 못해서. 그렇기에 주님께 내어드림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포기하지 못하는 만큼 괴로운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자 함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진정 주님께 내어드림이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