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야 모두 못했건만 남 서해에 걸쳐 펼쳐진 성웅 이순신 장군의 유적은 몇 십 번을 가본 데도 그때마다 감동이 일 터. 성인이라 일컸는 노자, 공자, 붓타, 예수 마호메트 등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들은 적어도 소생이 아는 한은 그분들이 직접 적거나 친문한 게 아니고 그 제자들이 구전과 들은 사실을 적은 것이다. 그래도 그 중 아주 솔직한 게 불교 철학으로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 또는 ‘공자 왈..’의 독선적이고 절대적인 게 아니고, ........ ‘如是我聞’으로 즉, ‘내가 들어 알기로는 ..세존께서’ 이리 말씀하셨다. 로
썰을 개시한다. 다같이 2000년을 거슬러 오르는 그 시기에 성인들의 친문을 바로 바로 속기할 능력과 무엇보다도 요즘처럼 하다못해 싸디싼 볼펜 같은 필기구가 있었으랴!
허나 지금부터 약 500년 갓 넘은 그 시기에 붓과 벼루로 꼬박이 친필로 적은 '난중일기'에는 인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적나나하게 적혀있다. 해서 삼국지의 적벽대전 같은
휘황찬란한 대구라는 난중일기 앞에선 한낮 만화다.
해서 이순신은 신뢰와 리얼감이 크다.
썰은 접고,,
먼저 남해의 베니스란 통영으로 간다. 통영의 먹거리야 굴을 비롯 해산물이 아니겠는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지 답사에 앞서 우선 싱싱한 광어회로 주님을 뫼시고 ,,, 금강산도 식후경이래지 않는가?
광어에, 도다리에, 고동에 푸짐막지허다.
다음날 미륵산에 올라 한려수도의 섬, 섬들을 조망했다. 이 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미래사는 효봉(曉峰)스님의 상좌였던 구산(九山)스님이 석두(石頭), 효봉 두 큰 스님의 안거(安居)를 위해 1954년에 세운 암자가 자리 잡고있단다. 소생 기억이 맞다면 소생 좋아 하는 법정 스님도 승려 생활 초기 여기서 불목으로 수행했다고 한다.
마음깃 여미고 충렬사 정문 현판으로 .
정당 내 붉은 비단으로 커튼된 신위와 뒤편의 영정 영정 좌우는 팔사품 16병풍
충렬사의 장군의 영정 ‘이순신은 우람한 장군의 용모가 아니고 항상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단정하여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으나 안으로는 담기가 있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서)
첫댓글一雲님: 마침 저도 대학동문들과 오래전에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한려수드를 따라 여행한 적이 있어서 李舜臣 장군의 임란 대첩의 흔적을 더듬어 본적이 있었기에 그 때가 새삼 연상됩니다. 日露 전쟁때 일본 해군을 이끈 東郷平八郎이가 말하기를 내가 넬슨제독 (영국) 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李舜臣 장군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했을 정도로 세계해군전략사에 길이 남을 위업이라 하겠습니다. 소상하게 기록하신 여행기, 감명 깊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一雲님: 마침 저도 대학동문들과 오래전에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한려수드를 따라 여행한 적이 있어서 李舜臣 장군의 임란 대첩의
흔적을 더듬어 본적이 있었기에 그 때가 새삼 연상됩니다. 日露
전쟁때 일본 해군을 이끈 東郷平八郎이가 말하기를 내가 넬슨제독
(영국) 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李舜臣 장군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했을 정도로 세계해군전략사에 길이 남을 위업이라 하겠습니다.
소상하게 기록하신 여행기, 감명 깊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
그러셨을 어른이시라
사료되어 묵은 자료지만
올렸습니다. 시차를 두고
이은 포토 에세이(?) 정리해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