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수미산 원문보기▶ 글쓴이 : 시공
32. 나무아미타불카페 보련화님 글
기도하면서 경험한 신기한 일 들
저는
아들을 위한 기도로 스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하루에 한번씩 읽었습니다.
작년 2월부터 몇개월간.
처음 접하게 된 저로서는 간절한 제 마음과는 상관없이
읽기시작하면 몇줄 못 가서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어느새 잡념들의 세계로 빠져 들어 갔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처음엔 1시간이 넘게 걸리던것이 차츰 차츰 시간이 단축되어 30분이면 끝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4월초 어느날 꿈속에 제가 버스터미널 입구 한켠에
있었는데 스님께서 오셨습니다.
어떻게 여기 오셨냐고 했더니
"내가 여긴 잘 안 오는데 시간표를 미리 봐 두려고 왔습니다." 하시며
안으로 들어 가셨고
잠시후에 저희 집 안방에 앉아 계셨고
스님앞에는 넓직하고 길게 이어진 꽃모양의 예쁜떡이 가득 펼처져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했는데 거실에 보니 스님께서 거실에 나타나셔서
한쪽을 한참을 바라 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스님 허리를 안으면서 스님 이제 그만 가시자고 하면서
꿈에서 깨었습니다.
이상한 꿈인지라 해몽검색을 해보니 흉몽이라니....
스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기도중에 이런 안좋은 꿈을 꾸다니
이게 무슨일인가하구요.
스님께서 제 꿈얘기를 들으시더니 "보살님,좋은꿈입니다" 하시는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기도중에 꿈으로 나타난 신기한 일들이 이어집니다.
얼마후엔 꿈에서 저희집옆 길을 가득 채우며 울려퍼지는
관세음보살~염불소리를 들었고
법당안 기둥에 기대선 스님께서 신비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계신모습을
보는데 스님께서 바라보는 쪽을 보니 어디선가 아주 오묘하고 밝은 빛이
법당 바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집안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 잠시 쉬었다 하려고
침대위에 누워 살짝 잠이 들었는데
스님께서 제 옆에 나타나신것입니다.
누워있는게 죄송스러워
"스님,제가 일어나고 싶은데 가위 눌려 못 일어나겠어요" 했더니
스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저는 잠에서 깼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전에는 가위 눌리는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가위 눌리는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또 한번은 여름에 몸이 안 좋아
몇일 고생을 하고 있던중에 어느날 잠이 들었는데
제가 누운곳이 절에 어떤방이였고 옆엔 나무숲이 보였고
숲에서는 맑고 청아한 새 소리가 들리고 잠시후에
그 절에 스님께서 긴 빗자루를 들고 들어 오시더니
누워있는 제게 빗자루로 부채질을 해주시기에
제가 "스님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하고 화장실 가려고 잠에서
깼는데 몸이 개운해지면서 언제 아팠느냐는듯 좋아졌고
놀라고 신기할뿐이였습니다.
기도기간에
탑 돌이를 했습니다.
탑 돌이를 하는데 제 어깨위에 이상한 빛이 비쳤습니다.
그 때는 장마가 시작된 시기라 하루종일 우중충하고 회색하늘에 해가 나지않았던때라
이상하다 싶었지만 탑돌이중에는 한눈을 팔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으로
탑돌이를 끝냈는데
몇일뒤 또 탑돌이를 하는데 그 날도 날씨는 맑지 않았는데
제 어깨위에서부터 온 몸에 신비하고 환한빛이 비추기에
일부러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았습니다.
어디서 빛이 오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제가 처음 기도를 하면서 경험한 여러가지 신기한 일들을 겪으면서
절에 가는것이 이유없이 즐겁고 설레고 마냥 행복함이 느껴졌습니다.
환희심으로 가득한...
기도하면서 느끼는 마음이라고했습니다.
정말 신기하고 행복한 시간이였습니다.
저는 또
작년 11월부터 기도를 시작했고 관세음보살정근을 하고 있는데
꿈속에서 위급한 상황이 생겨 제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면서 잠에서 깨고
한번은 꿈속에 아는집 주방에 독사 한 마리가 머리를 쳐들고 저를
쏘아 보고 있기에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했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더군요.
저는 저의 간절한 원이 꼭 이루어질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있습니다.
33. 다음 나무아미타불카페 보광행님 글
관음경 기도가 영험함이 있으신가봐여 저두 지난해 9월에 수술날을 잡아놓구 병원에서 법보시용으로 나온 우룡큰스님께서 옮기신 관음경 기도를 조석으로 병실에서 해가며 일주일이 지나구 부터는 마음이 아주 편안해 지드라구여 수술날 받아 놓구는 불안하구 걱정스러워서 안절부절 못했거든여 두<wbr />만에 수술을 또하는 것이라서 아주 무서웠어요.
헌대 수술날이가까워 오면서 마음이 아주 편안해 지드라구여 수술실을 들어 가면서두 너무 편안한 맘으로 들어 갔답니다.
34. 나무아미타불 카페 보현심56님 글
관세음보살님의 크나큰 가피
우리 사찰은 시골산간에 조그맣게 불사를 해 점안식을 마친지 3개월밖에 안됐습니다.
올8월9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여사원이 여름 휴가중 우리 사찰에 들르게 되었고
마침 신도들이 삼천배기도를 하는 과정에 본인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왔는데 남편의 종교는 원래 불교였으나 아내가 기독교인지라
묵묵히 아내를 따라주었다 합니다.
결혼도 늦었는데 삼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자 이 부부에게는 힘들고 아픈 고민이었습니다.
인공수정을 두번이나 실패했으며 병원에서는 아무이상이 없는데 이상하다 하였지요
그런과정중에 아내는 남편이 종교까지 버리고 자기를 따라준 것에 많은 부담까지 느끼고 있었다 합니다.
이부부가 저희 사찰에 온것은 정말 운명적이었습니다.
그날 철야기도를 마친후 주지스님께서 이 부부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믿는건 자유인데 매주 들어와 하루밤씩 자고 가면 어떻겠느냐 백일만 해봤으면 좋겠다 하시었지요
저는 스님의 이 제안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솔직히 과학의 힘으로도 안되는 아이를
이 도량에 기도만으로 이룰 수 있다 말씀하시니 황당하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이 부부는 흔쾌히 스님의 말씀에 따르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에 들어와 스님과 자시기도를 올리며 정성을 다해 관세음보살정근을 했습니다.
잠자리는 아직 요사채가 도량에 없느지라 종무소 컨테이너에서 부부를 재웠습니다.
무엇보다 잠을 푹 자서 너무 좋다고 부부는 좋아했으며 정말 간절히 관세음보살 염원했으며
집에서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사경하고 시집식구들과의 불화도 관세음보살만 마음속으로
염송하면 너무 편해져 화목을 되찾았다 합니다.
참 감사할 일인데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8월9일에 첫기도를 하고 꼭 7주만에 이부부는 본인들도 믿을수 없어 어리둥절하며
우리들에게 임신소식을 전했습니다. 저는 눈물이 그냥 쏟아지고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제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항상 믿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그런 기적이 있을까 라는 의심을 했었으니까요.
저는 더욱 더 보문품의 내용이 가슴에 와 다았습니다.
초심자인 이 부부에게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관세음 보살을 염송하여
소원성취를 이루게 해 주셨으니 말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35.
서울에 살았던 이 보현행 보살은 결혼 전이나 후에나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해오다가,
40대 후반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결혼한 외아들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몸에마저 이상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없고 얼굴이 하얗게 되더니,
차츰 밥을 먹지못하고 거동조차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병명은 백혈병이었습니다.
그 때만 하여도 재산이 있던 때인지라, 서울의 유명한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진찰도하고
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하였으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될 뿐
이었습니다. 생명을 연장하는 유일한 방법이 '수혈'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담당의사도
손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나 마음껏 드시면서..."
아들을 퇴원시켜 집으로 돌아온 보현행 보살은 외아들을 잃게 된다는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점도 치고 굿도하고 갖가지 민간요법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 만나는 사람들에게
실오라기를 잡는 마음으로 아들을 살릴 길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절에 한 번 가보시지요."
당시만 하여도 보현행 보살은 불교를 믿지 않았지만, 쌀과 향과 초를 준비하여 서울 안암동의 개운사로
가서 법당에 참배하고 스님께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묵묵히 들으신 다음 한참만에 말씀했습니다.
"아들은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기가 쉽지는 않을텐데요."
"스님,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를 하십시오. 먼저 천수경 1편을 외우고 나머지 시간은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외우십시오. 착한 마음을 가지고 계행을 지켜야하며 고기를 먹지말고 백일동안 기도하되, 열흘에
한 번씩 공양을 올리십시오. 이 모두를 집에서 하시면 됩니다."
그날부터 보현행 보살은 지성을 다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속으로 기원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저희의 모든 잘못을 참회드리옵니다. 대자비심으로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차례에 두 병씩 피를 수혈해도 열흘을 넘기지 못했던 아들이, 쓰러져야 할 때가 되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차츰 생기가 돌았습니다.
아들도 신기한지 어머니를 따라 염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 마침내 백일이 다 찼습니다.
그동안 보현행 보살은 여러가지 상서를 경험했습니다. 꿈에 경찰이 와서 집안에 있는 나쁜 사람을 잡아가기도하고, 돌벽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나타나 "네 소원이 성취되었다.'며 위로해주기도 했습니다.
또 버스가 집 앞에 서더니 사람들이 집안의 나쁜 물건을 모두 실어가고 도끼를 든 흉칙한 사나이를 잡아가는 꿈도 꾸었습니다.
백일기도가 끝나자 아들은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면서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국립중앙의료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죽었어야 할 사람이 왔다는 듯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시면서 몇 가지 진찰과 실험을 하셨는데, 병이 완쾌된 듯하다고 하셨습니다.
이틀 정도 검사를 더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3일에 걸친 검사 결과 의사선생님의 진단은 '완쾌!'였으며,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정말 기적이군요. 지금 상태라면 오히려 피 1천 그램을 한꺼번에 빼내도 끄덕없겠습니다."
그 때가 1965년 가을이었습다.
이후 보현행 보살은 매일 새벽 4시만 되면 염불을 하면서 불보살님께
감사드리고, 불법이 세상에 크게 빛나기를 기원하며 살았습니다.
출처: 병환과 기도 일타스님, 김현준저 도서출판 효림
36. 만해 한용운스님의 관음기도 영험담
승려요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 스님은 18세 때 이미 도탄에 빠진 민중의식을 일깨우고자 동학운동에 가담 하였으나, 관군(官軍)에게 밀리게 되어 몸을 피하기 위하여 오세암(五歲庵)에 입산 한 것이 불문(佛門)에 들어온 동기가 되었다.
스님은 관음기도처로 이름 높은 오세암에서 관세음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불교의 교리를 공부하였다. 입산한지 10년만인 27세 되던 해에(1905) 설악산 백담사 김연곡(金連谷) 스님에게 출가하였다.
열심히 수행하시던 스님은 1910년 일본이 이 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국권을
찬탈하자 이를 좌시할 수 없어 1911년 조국광복을 위해 몸바쳐 싸우고 있는 애국지사를 찾아 북간도로 발길을 옮겼다.
간도지방에 도착한 스님은 그곳의 독립지사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고, 민족투사를 양성하는 의병학교를 순방하여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깨우쳐 주고 또 격려하였다.
하루는 만해스님이 통화현(通化縣)의 독립군 훈련장을 순방하던 도중, 한 고갯길을 넘어 가는데 돌연 괴한 여러명이 나타나 총을 쏘았다. 이 때 스님은 그들을 돌아보며 잘못을 호령하고자 힘껏 소리를 질렀으나, 성대가 끊어졌는지 혀가 굳어졌는지 전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유혈이 낭자 하였고 격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러다가 심한 통증이 사라지며 지극히 편안한 순간이 다가왔다.
'지금이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구나.' 이윽고 편안한 감각까지 사라지면서 스님은 완전히 혼절하여 죽음의 상태로 들어갔다.
이 때 앞이 눈부시게 환해지면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어여쁜 여인이 나타나 섬섬옥수에 꽃을 쥐고 누워 있는 스님을 향하여 미소를 던졌다. 그리고 꽃을 던지며 말했다.
"네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
그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스님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스님은 황급히 일어나 그 자리를 겨우 피했고 피를 흘리며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스님은 이렇게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는지도 모르게 산을 넘어 청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갔다. 그 곳의 마을 사람들은 마침 촌장(村長)의 집에서 계(契)를 하고 있었는데, 피를 흘리고 들어오는 스님을 보고 지혈을 시켜 주었다
스님은 귀뒤와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의사는 "총알을 빼내려면 매우 아플테니 마취부터 합시다."라고 말하자, 스님은 "뭐 마취? 한번 죽었다 살아난 것도 끔찍한데 두번 죽을 수는 없소! 참고 견딜터이니 염려말고 빼어 주시오." 라고 했다.
의사는 안된다고 하다가 스님의 완강한 고집에 못이겨 마취를 하지 않고 뼈를 긁어 총탄을 꺼냈다. 귓전에 울리는 소리가 빠각빠각 들려 왔으나 그는 마치 선정(禪定)에 든 도인(道人)처럼 추호의 동요도 없이 태연하였다. 수술을 끝낸 의사는 오히려 놀라면서 감탄하였고 치료비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만해스님은 평소에 관세음보살을 깊이 섬겼기 때문에 절대절명의 순간에 이르러 큰 가피(加被)를 입었던 것이다. 후에 총을 쏜 괴한들은 바로 독립군 동지임을 알았지만, 그들의 과격한 행동을 책망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의명분을 가려 오히려 그들을 격려 했다고 한다.
이 후 스님은 불교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하면서 활발한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다.
이 영험실화(靈驗實話)는 만해스님의 일기초(日記抄)에도 있지만, 평소에 스님과 가까이 하였던 김관호(金觀鎬) 거사의 증언을 정리하여 기록한 것이다.
ㅡ 觀音信仰의 傳布 (金大隱 스님 著. 三藏苑)
37. 혜암큰스님께서 직접 겪으신 관음가피력
이 이야기는 혜암 큰스님께서 직접 하신 이야기입니다.
여기 혜암 큰스님은 얼마전 열반에 드신 종정스님이 아니십니다.
근대 선종사에 큰 획을 긋고 오래전에 열반에 드신 큰 스님이십니다.
간단히 혜암스님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을 쓰고자 합니다.
혜암스님은 1886년에 황해도에서 3대독자로 출생하셔서 1900년
15세때 보암스님을 은사로, 금운스님을 계사로 득도하셨다 합니다.
만공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으셨으며, 1984년 100세의 고령으로
미국 서부에 있는 능인선원의 봉불식에 참석, 대한항공 역사상
가장 고령 탑승객으로 기록되기도 하셨습니다.
1984년말에 설립된 덕숭총림의 초대방장으로 초대 되셨으며
1985년 101세(법랍89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신유년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혜암스님) 금강산 마하연에
있을때의 일이다. 대중이 몹시 웅성거려 나가보니, 얼굴이 잘생긴
어떤 청년이 목에 연두창이 터져 피고름과 함께 마치 송장이
썩는 것처럼 냄새가 지독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보고
"병원에 입원이나 하지 그 몸으로 뭐하러 다닙니까?" 하니
"예 제 직업이 바로 의사입니다. 영국에서 <곱살바>라는 부인이
공부를 시켜 그분을 모시고 병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이 생긴 뒤로 저는 물론 그 부인도 병을 고칠 수없어
이제는 완전히 체념하고 폐인으로 떠돌아 다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기독교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환자가 기독교이었던 듯함)
부처님 말씀에는 <한정된 목숨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병에 걸린 것은 신심이 철저하고 독실하면 고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 보겠습니까?" 하니,
그는 "이미 버린 목숨이니 하다가 죽어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스님으로 만드니 대중스님네는 냄새 때문에
같이 못있겠으니 데리고 나가라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그런 비방과 구설을 다 참고 내 방을 비워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대로 살기 틀렸으니,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을 지성껏
불러라. 병을 고치고 못 고치는 것은 오직 그대 정성과 결심에 달렸다."
고 일렀다.
한동안 나는 그의 동정을 살펴 보았다. 그는 밤을 새워 가며
눕지도 아니하고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 보살>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
한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소복으로 단장한 젊은 부인이 어린애를 안고 있는데
그 애는 자꾸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하도 신기하여
'어쩌면 저렇게 어린애가 염불을 잘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 부인이 "왜 귀찮게 구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부인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십사하고 간청을 하였다.
그때 그 부인은 손가락으로 그의 목을 꼭 눌렀다. 그러자마자
달걀 같은 것 두개가 목에 축 늘어져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부인은 가위로 그것을 자르려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 하기를 "그 가위를 잘 소독하고 잘라 주십시오."하니
부인은 "너는 지금까지 의사하던 버릇으로 그런 소리를
하지마는, 이 가위는 원래 독이 없는 것이다." 하고,
그 혹 같은 것을 잘라 주었다.
그는 다시
"이 겨드랑의 것도 잘라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그것은 아직 그대로 두어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꿈을 깨었다.
그뒤로 그 종기는 피고름이 차차 멎고 병이 아주 나았다.
이렇게 병을 고친 그는 내 첫 상좌로 법명은 동일(東日)로
지금은 이북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영험담은 밀알 출판사에서 나온
"벼랑끝에 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라는
혜암 큰스님의 법문책에 나와있는 글입니다.
혜암 큰스님의 오도송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어묵동정語默動靜>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말도 침묵도,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 하리라.
38.
38-1
관세음보살 기도로 불구의 다리를 고친 화엄스님
<도서출판 효림 일타스님의 책 '기도'에서 >
동해 동림사(東林寺)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화엄(華嚴) 스님이
계십니다. 이 화엄스님은 동산(東山)큰스님의 제자로서, 특별한
출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925년생인 화엄스님은 일찍이 일본 경도(京都)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있다가, 학도병에 뽑혀 남양군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미군들과 전투를 치르던 어느 날, 갑자기 공중에서 포탄이
떨어져 수십 개의 파편이 다리 속으로 박히는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고, 파편 제거수술을 완벽하게 받아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이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항상 저리고 아파서 올바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절뚝절뚝 절게 되었습니다.
이 부상 때문에 제대를 하여 고향으로 오기는 했지만, 영영 불구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또 엎친 데 덮친다고, 때마침 그와 사귀던 여인마저
기숙사에 불이 나서 타죽고 말았습니다.
몸도 좋지 않은데다 마음의 상처까지 받은 그는 수양을 하기 위해
범어사 대성암(大聖庵)으로 들어갔고, 그 곳 스님들은 그에게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외울 것을 권하였습니다.
처음 심심풀이 삼아 보문품을 읽던 그는 차츰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고, 나중에는 틈만 나면 목청을 가다듬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을 대성암에서 지낸 어느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범어사 뒤의 금정산을 오르고 있는데,산 위로부터 갓을
삐딱하게 쓴 영감님 한 분이 내려오더니 대뜸 욕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잇. 지지리도 쓸모없는 놈! 의사란 놈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고 다녀? 침을 한 대 맞아야 되겠구먼."
영감님은 품속에서 넓적하게 생긴 대패침 하나를 꺼내서 콧김을
쐰 다음 상투에 쓱쓱 문질렀습니다.
"이리 와."
그리고 강압적으로 팔을 잡아당기더니 대패침으로 파편이 박혔던
허벅지를 꽉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아야!"
그는 고함을 지르며 깨어났고, 깨고 보니 꿈인데 허벅지에서
고름이 한 사발이나 쏟아져 나와 있었습니다.
고름을 닦아 낸 그는 방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고, 묘하게도 그토록
아프고 저렸던 다리가 멀쩡하게 나아 있었습니다.
'내 다리가 낫다니! 의학을 전공한 나의 상식으로는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다.
인간의 의술이란 대의왕(大醫王)이신 불보살의 능력에 비한다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 같은 것! 반딧불 같은 기술을 지닌 의사가 되어
무엇하랴. 정녕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됨이 옳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동산스님의 제자가 되어 '화엄'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그가 처음 사미계를 받을 때 내가 인계승(引戒僧)노릇을
한 인연으로 그와는 꾸준히 친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에는 대의왕이신 불보살들이 가득합니다.
그분들은 어떠한 병이라도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감응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가?
바로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모아 기도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불보살의 밝은 자비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38-2
화엄큰스님의 출가 계기 이야기 (월간불광 일부전재)
일타 스님이 쓰신 '기도(도서출판 효림)'에서 스님의 출가 이야기를 읽었는데 매우 신비로웠습니다.
"1944년 일본의 대판의전에 다닐 때 학도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끌려 갔다가 다리에 중상 을 입었습니다. 해방 후 다리가 아파서 요양차 범어사에 갔었는데 그 길로 출가를 하게 되 었지요.
처음엔 스님이 뭔지도 몰랐어요. 다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수주를 외우면 다리가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범어사 미륵암에서 그저 일구월심 천수주를 외웠습니다.
그런데 한 6개월 천수주를 외우니 지리천문 알게되고, 7개월째, 8개월째 에는 수천리 밖이 보이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이었는데, 법당의 신중탱화에서 신장이 튀어나오더니 환부를 도려내는 것입니다. 꿈속에서도 아파서 아이구 소리를 내며 눈을 뜨고 보니 법당 바닥에 파 편이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그 전까지 신비한 경계를 대할 때 하고는 또다른 무엇이 가슴을 확 내리치더군요. 아하, 이게 마음의 힘이로구나, 마음을 깨치면 이 몸을 조복받는 것은 물론이요,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부처가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
39. 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일제시대 평양에 살았던 유제규(劉濟奎)거사는 평양교당(平壤敎堂)에 다니다가
젊은 법사인 정지월(鄭指月)스님으로부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문득 신심이 샘솟는 것을 느낀 유제규는 보문품을 베껴 부부가 날마다 보문품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보문품을 외우기를 몇 달, 1928년 12월 18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9시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매일의 일과대로 보문품을 세번 독송하고, '관세음보살' 3천념(三千念)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약 30분 정도 숙면을 취하였을까?
비몽사몽간에 흰옷 입은 노부인(老夫人)이 나타나서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잠만 자고 있느냐!"
그는 정신을 차리려 하였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노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흰옷 입은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눈이 까뒤집힌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일그러진 표정만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버럭 소리를 쳐서 집안 식구들로 하여금 의사를 부르도록 하였고,
자신은 아내의 몸을 주무르고 코밑을 비벼 주고 인공호홉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점점 더 가늘어졌고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온 의사도 진찰을 해보더니, 이미 숨을 거두어 어쩔 수 없다면서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의사에게 주사라도 한번 놓아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심장마비라고 하면서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비통하게 울다가, 문득 보문품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衆生被因厄 중생들이 곤란과 액난을 당해
無量苦逼身 한량없는 고통이 다다를지라도
觀音妙智力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와 힘은
能救世間苦 능히 세간의 모든 고통을 구해 주시도다
具足神通力 신통력 모두 갖추시고
廣修智方便 지혜와 방편 널리 닦으사
十方諸國土 시방의 모든 국토에
無刹不現身 몸을 나투지 않은 곳 없으시도다.
그는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아내의 기사회생(起死回生)을 기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관세음보살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약 30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죽어 있었던 아내가 가늘게 호흡을 시작하더니, 정신이 드는듯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 앉았습니다.
절망과 근심에 빠져 있다가 환호하는 가족들에게 유제규 거사의 부인은 말했습니다.
"사경을 헤매다가 숨이 끊어지자 혼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더구나.
너희들은 모두 슬피 울고 있고, 네 아버지는 나를 살려 달라며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더구나.
나도 엉겁결에 관세음보살을 따라 불렀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부인이 나에게 약물을 한 종지 주셨단다.
그 약물을 받아 마시자 내 혼이 다시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숨이 통하지 않겠느냐."
유제규 처사 부부는 이토록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다음 불교를 더욱 열심히 믿었으며,
이런 사실이 평양 바닥에만 알려지는 것이 애석하여 1929년 2월의 <불교> 잡지 제 56호에 투고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불보살의 가피력!
그러나 지극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불보살의 가피가 끊임없이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극하게만 해보십시오.
'나'도 충분히 가피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계(法界)에는 불보살의 자비와 묘지력(妙智力)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 일타 큰스님의 글-
40.
반야심경 독송의 가피력/진각스님
만약 불자님들의 가정에 한 가족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어느 병원에서도 소생할수 없다는 의사의 판명이 나온다면
당장 불자님이 무엇을 할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 때는 의지가 최대한 약해 지는 시기 인지라
모두가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크리스챤은 성모마리아님에게
불자님들은 각 사찰의 불보살님에게
그리고 설령 종교가 없던 사람 마저도 어느 한 종교에 매달릴 겁니다.
【 살려 주십사 】 하고 말이죠.
그 어떤 대상을 선택하여 기적의 의지를 갈구 하려는 것이 우리 중생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어떻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우리는 흔히들불보살님들에게 무아의 기도를 통하여
기적같은 가피를 입어 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고, 평상심을 잃을 때
혹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
그때 사람들은 기도를 할 겁니다.
다시말해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는
기도 하려는 마음들이 없다가
본인이나 가족이 급한 경우에는 매달리려 한다는 것 입니다.
기도 정진은 불교에서는 가장 신성한 종교의례 입니다.
기도의 가피는 불보살님의 법력을 얻자는 것인데
그런 급한 경우가 아닌 매일 매일 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써 내려 가려는 이야기도
평상시에 반야심경과 108 배를 게을리 하지않던 어느 법우의 이야기 입니다.
【 묘법연화경 】 【 보문품 】에
" 선남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가지의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백천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이제 그 가피력을 입은 법우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1991 년 6 월 3 일 오후 2 시에 서울 잠수교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김 준환이라는 학생이 (당시 고대 3 학년) 구입한지 5 개월이 되는
현대 스쿠프 승용차를 운전하여 강북쪽으로 가던 중
잠수교 타널 안에서 옆의 차를 피하려다가
앞에 가던 유조차 뒷 부분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
옆의 옹벽에 부딪치며 전복되어 차가 엎어진채로
20 여 M 데굴데굴 굴러 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는 순간
큰 사고가 났음을 알고 정지 하였으며,
사고차는 유조차 앞으로 미끌어져 나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가 내리려는 순간, 그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다름이 아닌 전복된 사고차가 안보일 정도로
하얀 모습의 커다란 부처님 형상이 차를 덮고 있는게 아닙니까?
순간, 그 유조차 운전자는 섬뜩함을 느꼈으며,
잠시후 그 부처님 형상이 없어지자 그는 차에서 내려
사고가 난 차에 가보니 차는 폐차 직전으로 찌그러져 버렸고
이상하게도 사고차의 운전자가 보이질 않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 51 세의 유조차 운전자는 운전 경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믿는 종교는 크리스챤이라고 했었습니다.
분명 이런 정도의 사고라면 운전자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운전자는 보이질 않고 옹벽 옆에서 한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조차 운전기사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
" 학생 ! 혹시 저 차 운전하던 운전자 못 보았는가? "
그러자 그 사고차를 운전하던 김 준환 학생이
" 제가 저 차를 운전했는데요 "
유조차 운전기사는 믿기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물어 보았었습니다.
정말 운전자라면 이렇게 살아 있을수가 없으며,
더구나 온 몸에 상처도 없이 서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조차 기사는 그 학생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사고처리를 해 주고는 그 학생의 아버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김 준환 학생의 사고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생의 아버님에게 유조차 기사가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의 아버지는 종교는 불교 집안 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제서야 유조차 운전자는 자기가 본 형상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학생의 아버지에게 그 때 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난 뒤 유조차 기사가 김 준환 학생에게 다가가
그 사고 당시의 일이 궁금하여 물어 보니
" 사고 순간 차가 부딪히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자기를 감싸 안는 느낌을 받고 보니 차가 거꾸로 있는데
옆 유리창이 보이므로 안전벨트를 풀고책가방을 지자
누군가가 안아서 차에서 내려주었습니다 " ....그랬습니다.
자 !,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자동차 유리창 부분은 작습니다.
그 부분을 빠져 나오려면 멀쩡한 상태에서도 쉽게 빠져 나올수 없는 것 입니다.
당시 김 준환 법우도 회상을 할 때
" 저 창문으로 내가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모릅니다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마 이러한 일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시죠?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가피력입니다.
그 차는 결국 대파되어 폐차를 시키고 키가 181 Cm 였던
김 준환 법우는 그런 대형사고를 당하고도
큰 상처하나 없이 무사히 그 구멍으로 온 것 그것이 바로 불보살님의 가피력 입니다.
그의 가정을 잠시 소개해 보면,
그 법우는 2 대 독자로 그의 어머니 김월맹심 보살은
20 년 전 부터 시부모님의 영정을 처음 백련사로 모실때
그 인연으로 불교와 인연이 되어 불교에 귀의를 했고
백련사에서 정진하며 전국 어느 사찰이든
【 우란분절 백중 기도 천도제 】가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동참하며
하루도 정진을 게을리 않고 매주 토요일이면 철야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1995 년 쯤으로 기억) 백련사 재무로 일했으며
사고가 나기 2 년 전부터 아들 (김 준환 학생)에게
매일 아침마다 【 반야심경 】을 독송하라고 하면서
절을 최하 50 번 조금 더 하면 108 배를 시켰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 법당도 아니고 부처님도 안 계신데 어디에 절을 하냐 " 고 하자
김월맹심보살님은
" 지금 네가 앉은 자리가 법당이니 그냥 열심히 해 봐라 " 고 대답 했었답니다.
아들이 성품이 착하여 어머니 말씀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하고 난 뒤에 학교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사고후 월맹심보살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집안은 늘 부유하고 걱정은 없었으며
백련사에서 기도 할 때는 특별히 원을 세운 것은 없으나
기도 중에는 '원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그저 좋은 인연이 맺어지기'를 바랐으며
사고 후 기도의 공덕을 부처님의 가피지묘력을 확신하고
기도드린 정성보다 너무 큰 가피를 입었다고 하면서 더 정진을 했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이와같이 기도는 어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이 기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이 불자의 집안처럼
앞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불보살님의 가피지묘력으로 미리 피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모든 열매는 열매가 맺기 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도 없이 나무한 그루 탁 심어 놓고
느닷없이 열매 맺기를 바라는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그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며 결실을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처럼
늘 쉬지않고 기도정신 수행을 하시면 불보살님이 감응하시와 가피를 주실 겁니다.
즉,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은 어느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운데 계신 불보살님에게 가피를 청하는 기도를 타력이라고 하겠습니까?
기도로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비워 버리면,
바로 그 마음 속으로 부처님이 자리를 하시는 겁니다.
본래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나
그 마음이 탐진치 삼독의 때가 끼어 볼수가 없는 것이죠.
용맹정진하는 수행 속에서
몸과 마음의 때를 벗기어 내는 청소를 하는 수단으로 통하여
각자의 마음이 청정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가피를 입을수 있는 것 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를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이 없이는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대 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보통 어떤 기도를 하면 한 번 기도를 시작하고 보면
늘 수많은 장애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장애가 생길 때 반드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재가불자 여러분 그리고 법우 여러분 !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망과 희망 이라는 것이 잇습니다.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부터
크고 위대한 온갖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발심하시어
우리들의 원을 실현키 위한 기도를 오늘 다시 정하여
쉼없는 용맹정진을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감사 합니다...
성불 하세요....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