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의 원조 섬' 노화도와 노록도
[한국의 섬 33] 노록도 바다를 살리자
오마이뉴스 기사 등록일 : 2014.04.05.
노록도는 전복의 섬 노화도의 부속 섬이다. 노화도의 당산리 해안으로부터 700m 떨어진 섬이다. 간조시 바닷길이 1km 정도 열려 당산리와 노록도가 연결되는 신비의 길로 속칭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일명 '치등'이란 곳이 드러난다. 이 섬의 선착장은 섬의 남동쪽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16가구 40명이 살아가는 섬에 적은 수의 배들이 대여섯 척 선착장에 매여 있다. 선착장에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포장도로는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이어 포장도로와 만난다. 오르막길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집이 드문드문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래 된 집들이다. 산복도로답게 주변 풍광이 좋다. 마릉에서 노화도 당산리와 미라리가 보이고 아래 바다를 바라보면 전복 양식장이다.
길 양 옆으로 들어선 집들이 전부다. 그만큼 폭이 좁은 섬마을이다. 집집마다 높낮이가 다른데 마을은 섬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구릉지는 없다. 면적 0.183㎢, 해안선 길이 3.2㎞, 마을 대다수가 노인들이지만 전복 양식이 활발하여 젊은이들도 여러 명 귀농해 왔다. 찻길도 없고 사람 다니는 길만 뿐이다. 썰물일 때 모래 등이 보여 노루목 같이 생겼다 하여 노리기라 불려오다가 노록도로 고착된 것으로 보는데 생김새에 따라 섬의 생김새가 사슴 같아 노록도라 하였다고 하며 처음 섬에 들어온 약 165년 전에 광산 김씨가 처음으로 입도하였다고 전하며, 130년 전 당산리 마을에 사는 김유용씨가 처음 입도하여 조그마한 섬마을을 이루었고 1963년 11월 당산리에서 분리 되어 단일 마을이 되었다.
'노록도(老鹿島)'는 지명과 관련한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데 옛날에 노록도에 사슴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록도의 사슴들이 전부 노화도로 건너오게 되었다. 그 중 늙은 사슴 한 마리만 헤엄칠 힘이 없어 노록도에 남게 되었는데, 늙은 사슴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노화도로 건너갈 수 있게끔 용왕신에게 간절히 빌자 이에 용왕신은 늙은 사슴이 노화도로 건너갈 수 있게끔 바다를 갈라 늙은 사슴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하였으나 그동안 기력이 쇄진한 늙은 사슴이 미처 바다를 다 건너오지 못하고 도중에 바닷물에 휩쓸려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담벼락은 시멘트담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돌로 만든 돌담 집이 많다. 돌담에서 밖을 내다보면 바로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권. 집과 집 사이에는 밭이 있고 마당에는 땔감나무를 수북하게 쌓아 두었다.
길가에 낯선 글귀가 새겨진 돌기둥이 하나 보인다. 오래된 구호석이다. 사면에 글을 새겼는데 '간첩도 자수하면 내 가족 내 형제'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이곳에도 예전에는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았을 뿐이다. 정문으로 사용한 돌기둥에 몇 채의 낡은 건물만이 학교였음을 밝히고 있다. 운동장은 방치된 상태로 잡초로 무성하다.
이 학교는 1959년 4월에 개교하여 1996년 3월 1일부로 폐교하였다. 학교가 겪어왔던 인고의 세월처럼 담벼락에는 인동초가 만발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서울에 거주하는 어떤 화가가 이 학교를 인수하였다고 한다. 전공처럼 좋은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학교를 보고 나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록도 바다가 저 앞 노화도 당산리까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려 1km나 되는 바닷길이 멋진 곡선을 그려내며 열리고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사람들은 없었지만 한 달에 여러 번씩 바닷길이 열리고 있었다. 학교를 떠나온 아이들의 미래가 저 바닷길처럼 찬란하게 열리길 마음속으로 기대해 본다.
노록도는 사람이 사는 섬답게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난다. 계속 걸어 안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이른다. 길을 중심으로 왼쪽 경사진 곳에는 밭들이 있고 아래는 집들이 있지만 이 섬에 있는 집들을 다 합쳐도 20여 채도 되지 않을 듯싶다.
그 중에는 빈집도 더러 보인다. 해안에는 조그마한 정박 시설이 있고 해안을 따라 돌로 축대를 만들어두었다. 선착장 끝자락. 옛날 대합실로 사용하던 건물 쪽이 있다. 그 앞 물양장은 각종 어구들로 인해 복잡하다. 이곳 역시 예전에는 인근 해역에서 김과 톳 등을 많이 재배했지만 지금은 전복으로 바꾸었다.
예전에는 겨울에 김발을 많이 하고, 여름에는 멀리 바다에 나가 주낙으로 생활했다. 노록도 건너편 당산리 마을에 김 가공공장이 아홉 개나 있었기 때문에 김양식 하기가 편리한 곳이었다. 전복 양식이 아직 생소 했을 때에 '장샛기미', '끝짝지', '신들바구끝' 등 바위에서 자연산 미역과 톳, 돌김,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는 게 소득 창출에 큰 도움을 주었다.
김과 전복 양식이 발달하기 전에는 바다 보다 바위가 더 가치가 있었지만 김과 전복 양식이 활발해진 뒤부터는 바다의 넓이가 그 마을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어머 마을인 당산리와 노록도 사이 바다에 전복 양식장 시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규모가 당산리에 비해 노록리 사람들은 절반 수준에 이른다. 바다가 적기 때문이다.
노록도의 단점은 마을 어장이 좁아 한 가구당 150칸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 도시에서 고향에 내려온 사람에게 쉽게 어장터를 나눠 줄 수 없을 정도로 안쪽에 바다로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 노록도에는 다섯 가구가 귀어를 했는데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찾은 사람들이다. 모두 전복 양식을 하려고 돌아왔다. 부모님 덕분에 그 몫으로 어장을 하게 된 것이다. 노록도는 정기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다. 다 자가용 배를 타고 다닌다. 뱃길은 좀 불편했지만 나무가 울창하여 식수는 아주 좋다.
참고로 노록도의 전설로는 마을 앞에 울창한 방풍림이 있는데 이 울타리가 마을 주민들의 보배와 같아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오면 제일 큰 고기를 차려놓고 제를 올리면서 수난이 없도록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성역처럼 지켜 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매년 정초에 당제를 모시고 있고 '유왕'이라는 신을 모시는 풍습이 있다. 노록도가 비록 조그만 섬이지만 갯벌이 많아 김과 미역 양식의 적합지이며 전복의 사료인 미역과 다시마가 많이 생산된 관계로 전복 양식 단지로 유명한 섬이다. 특히 전복 양식은 천혜의 기후와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노록도 사람들은 김 양식에서 전복 양식으로 전환했지만 바로 앞에 있는 전복의 원조 마을인 미라리 마을 보다 한참 늦게 출발하였다. 노록도의 단점은 양식 시설도 많아지면서 '안쪽 바다'라 해수 유통이 잘 안되고 있다. 해수 유통의 방법은 영원히 없는 것일까?
노록도는 노화도의 부속 섬으로 전복의 원조 마을인 미라리와 바로 이웃하고 있는데 노화도는 국내 최초로 전복 원조의 섬이며 완도의 전복 산업에 70%를 차지 할 정도로 유명한 섬이다. 노화도를 비롯하여 노록도는 50-60년대 김 양식을 시작하면서 80년대까지 높은 소득을 올렸다.
그러던 중에 김의 가격하락으로 김 양식이 사양길로 접어 들 무렵 90년대부터 전복 양식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하였다. 김 양식의 위기로 노화도와 완도 지방을 전복 양식으로 기사회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 바로 노화도다. 전복은 비싼 가격이라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바다의 산삼' 전복이 대량 양식의 성공으로 대중화 길로 열린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복은 연간 1,400t 규모. 이 가운데 70% 가량이 전남 완도군 노화도 전복 양식장에서 집중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중앙의 매스컴에 여러 번 나왔으며 전국적으로 일약 떠오르는 고장이 되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귀농하여 전복 산업에 매달리며 서구풍 고급 주택과 벤츠 차가 섬에 굴러다니고 있다. 매년 전복 축제를 할 정도로 전복 대중화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한 노화도가 이제 10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것은 50-60%의 전복 폐사율 때문이다. 전복 집단 폐사의 원인은 같은 장소에서 해마다 되풀이하는 연작(連作)이다. 연작은 전복 먹이의 찌꺼기가 양식장 바닥이 오염돼 전복의 성장을 가로 막는 것이다. 여기에 양식장의 밀집도 치명적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일본 수출과 국내 수요가 증가하면서 2줄로 설치하던 양식장을 4줄로 늘리면서 어장 오염의 황폐화가 가속화되었다는 분석이다. 바다 여기저기에 양식 시설이 늘어나면서 조류 흐름을 약해지고 전복 성장에 방해를 한 것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현재 양식장 시설을 줄이고 기존 양식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설을 재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 어려움이 있다"며 "어민들에게 자율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 해양수산과학원 노한성 주무관은 "전복은 지난해 완도에만 3,600억원의 수익을 안겨준 효자 품목이지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이 기르다 보니 부작용이 크다"며 "양식시설 재배치와 휴식년제 도입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여기서 관이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다 조류의 빠르기가 급격히 줄었는데 인위적으로 빠르게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전복 양식장 밑에 있는 오염 물질이 씻겨 나갈 수 있고 전복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대안은 북고리 장목 30미터를 터서 바닷물을 양쪽으로 빠르게 소통시켜야 한다. 둘째로 노록도 앞과 당산리 앞의 1.5km 정도의 치등을 제거하여 바다 조류의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적인 측면과 자연보호 차원에서 면밀히 연구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허팔종 노록도 이장에게 치등에 관하여 물어 보았다. 치등은 당산리 마을 어촌계 소속인데 이곳 사람들의 노력으로 치등의 제거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배가 이 치등에 자주 결려서 아주 불편하기 그지 없다고 하면서 치등을 제거해 주면 환경적인 측면도 있지만 제거하는 일에 조심스럽게 환영의 뜻을 표하였다.
필자도 1990년 봄에 등대호를 타고 노록도에 왔다가 이 치등에 걸려서 몇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치등 제거와 북고리 당목을 터서 바닷물을 잘 흐르게 하는 일은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이다. 이곳 주민들이 토론을 벌이고 주민들의 여론을 들어보아야 하겠다. 전복의 원조 섬인 노화도와 노록도를 살리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본다.
▣ 노록도 개요
노록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딸린 섬으로 동경 126°40′, 북위 34°11′에 위치하며 면적 0.183㎢, 해안선 길이 3.2㎞, 인구는 16가구 42명(2013년)이다.
지명 유래 : 섬의 생김새에서 유래하는데 그 모습이 사슴 같아 노록도라 하였다고 한다.
◈ 신비의 바닷길
당산-노록도간 1km 가량의 바다가 매월 2회 영등살(사리) 때 바다길이 열려 당산리∼노록도가 뭍으로 연결된다. 드러난 바닷길에 자생하고 있는 풍부한 어패류, 해조류 등을 보고 채취할 수 있어 바다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다.
[노화도 & 노록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