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가정 (외 1편)
정현숙
아득히 가물대는 지평선을 보았다
해 뜨고 날 저문 뒤 은색 움집 빗장 거는
그곳은 남방에서 온 철새 요람이었다
지폐를 세어가듯 들깻잎 단 묶으며
얼마를 따 쟁여야 고향 다녀 올 수 있지
머리 위 뜨는 비행기 올려보는 월남댁
늘그막 색시 얻은 햇님농장 주인 박씨
한시도 입가 웃음 떠나지 않는 일터
서로가 등을 기대며 꾸려가는 생이다
어디서 흘러와서 어떻게 살아간들
가끔은 흔들리며 뿌리를 내린다며
부추꽃 흰 이 보이며 수화하고 있었다
신조어 시대
사는 게 바쁜 건지 시간이 아까운지
방콕 탈출 아점으로 하루 두끼 역설 빈국
분해된 자모음들로 진화하는 한글이다
고농축 압축 파일 XYZ 풀어보면
그 속에 은거하는 희망절벽 혼밥 혼족
절반은 씹어서 뱉는 까톡문자 헉ㅠㅠ
오나가나 폰 화면에 눈을 둔 사람들은
도태를 벗어나려 춤을 추는 엄지족
해마다 한글날이면 세종대왕 뵐 낯없다
ㅡ시조집 『유모차와 해바라기』(목언예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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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 1990년 《문학세계》 신인상 및 1991년 《시조문학》 추천 완료. 시조집 『화포리에서』『늘 바라보는 산』『뒷마당 생각』『아침 우포』. 동시조집 『둠벙에 살던 물방개』『돋을볕 웃음소리』『강물이 그리는 음표』. 성파시조문학상, 부산문학상 본상, 한국문협 작가상, 역동시조 문학상 등 수상.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