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편지 쓰기
내 가슴에 각인된 불효의 죄가 너무 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내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는 가난한 소작농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남편과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부모님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습니다.
‘엄마, 아빠! 딱 한번만 부탁드릴게요. 결혼식장에서 만큼은 큰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가게 주세요.’
철썩! 채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앉아 있던 오빠한테 뺨까지 얻어 맞았지만 저는 단호할 만큼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잖아도 친정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부유한 시댁에 행여나 흉 잡힐까봐 잔뜩 주눅들어 있었는데
꼽추 등을 하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많은 손님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었습니다.
‘걱정 말래이... 요즈음 허리가 하루가 다르게 아파오니 내~ 그날은 식장에도 못 갈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렇게 하그라...’
행여나 시집가는 딸의 마음에 상처라도 입을까봐 거짓말을 하신 아버지! 상앗빛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오신 손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순간부터 북받쳐 오르기 시작한 오열로 결혼식 내내 눈물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덩그러니 골방에 홀로 남아 쓴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아버지를 서운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저는 또 다시 용서받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허니문 베이비를 가져 시집 가자마자 심한 입덧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어려운 시어머니께는 감히 내색도 제대로 못하고 늦은 밤 친정집에 전화로 고통을 하소연하곤 했었습니다.
잔정이 많은 남편이 사다주는 음식들은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고, 친정 어머니가 투박한 손으로 무쳐주시던 겉절이와 텁텁한 청국장이 먹고 싶어 흉내를 내보았지만 저의 실력으로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햇볕 따스한 일요일 오후, 화사하게 치장한 채 시어른들을 모시고 바깥 나들이하기 위해 승용차에 몸을 싣고 골목 어귀를 빠져나갈 무렵에 저는 저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굴을 잔뜩 숙인 채 꼽추 등에 보자기를 들고서 건너편 슈퍼에서 두리번거리는 한 노인네는 분명 저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아버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으신데... 설마...’ 하면서 아버지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무렵,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후
슈퍼로 물건을 사러 나갔던 남편이 슈퍼 아줌마가 전해주더라며 조그만 보따리를 내밀었습니다.
‘야야! 너 거 어미가 올라카다가 일 나가서 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데이.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거절이 [겉절이]다. 배 골찌[배곯지] 말고 마싯게[맛있게] 먹그래이...’
맞춤법도 틀리게 어렵사리 쓰셨을 쪽지를 보면서 사돈댁에게 흠 잡힐까봐 들어오시지도 못하고 전해만 주고 가셨을 아버지를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장인어른도 참! 여기까지 오셔서 왜 그냥 가셨지?’
남편도 미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만 올 수 있는 길을 언젠가 한 번 들린 적이 있는 큰 언니한테 묻고 또 물어서 찾아오셨을 아버지!
딸네 집이 눈 앞이면서도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못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리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시집 가서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반쯤 깨닫는다고 했던가요? 늦게나마 철이 든 저는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저지른 불효는 그 어떤 효도로도 깨끗이 치유될 수 없어서 날이 더해갈수록 남은 한이 깊어집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남편 직장 때문에 따로 이사해서 친정과는 3백킬로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니 느는 건 한숨이고 눈물 뿐입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부슬부슬 가랑비라도 내리는 날엔 사진첩을 벗 삼아 뒤적이다가 아버지 없는 결혼사진을 대할 때면 황량한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날의 불효 자식이 이제야 철이 들어 용서를 구합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지금까지 잘못했던 것까지 앞으로 잘할게요...” -김경연 (33세, 성남시 거주)
수 상 후 기
서울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경연 씨(33, 성남시)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 그녀의 눈물 수기를 읽은 사람들은 그녀 아버지의 깊은 사랑 때문에 모두 말을 잃었다.
그녀는 ‘몸이 편찮으셔서 아버지가 올라오시지 못했다.’라고 시댁에 둘러댄 핑계 때문에 지난 7년간 죄책감에 몹시 시달렸다고 한다.
김 씨는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한없이 울었다. 딸의 수기 당선소식을 모르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김춘생씨 (60세) (경북 성주군 성주 읍)는 '아비의 아픈 마음을 말로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시집간 딸 자식이 행복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만’ 이라며 혹 이 일로 딸의 시댁에 누가 될까봐 조심스러워 하셨다.
‘아버지는 태어나실 때부터 꼽추는 아니셨어요. 제가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로
자주 뵙지 못하던 85년 경 허리에 물이 차는 늑막염과 심한 열병을 앓으신 후에 갑자기 등이 굽으셨지요.’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김주영씨는 ‘딸의 수기는 골방 한 구석편에 누워있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그 위대한 부성애에 정당한 이름표를 달아준 것’이라며 ‘우리들의 모든 아버지가 이와 같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김경연 씨의 '아버지께 편지 쓰기' 공모 대상 결정에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저도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자식들이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께 지극 정성으로 효도를 다 해드리고싶겠지만
이런저런 주변 환경이 여의치 못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마음 한편으로 늘 죄 지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은 비단 저 뿐이 아니겠지요?
기쁘고 행복한 목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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