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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지기방 스크랩 문경 공덕산, 불교성지순례 같은 산길을 인도하는 백구의 공덕...!
소나무 추천 0 조회 49 09.03.02 11: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문경 공덕산, 불교성지순례 같은 산길을 인도하는 백구의 공덕...!

2008년 12월 13일 (토요일)

[대승사~반야봉~공덕산~묘봉~묘적암~윤필암~사불암~대승사]

    ♪? Free / Giovanni Marradi ♪?  

▼공덕산 상징, 四佛岩 

 

코스 : 대승사~방광재~반야봉~공덕산~옛고개~823m봉~묘봉~묘적암~마애불~윤필암~사불암~대승사~

          나도야바위 ~윤필암주차장

날씨 : 흐림

거리 :  실거리 8.5 Km

시간 :  3 시간 42 분 (산행  2시간 42분 + 휴식 및 기타 1시간)

동행 :  안내산악회(수덕관광건강산악회)   

 

< 주요구간 산행기록 >

대승사(11:37~40. 도착 및 산행시작)→방광재(11:54)→반야봉(11:59~12:02. 조망)→공덕산(12:32)→헬기장(12:34)→옛고개(12:45)→823m봉(12:55)→사불암갈림길(12:58)→조망바위(13:04~08. 조망)→묘봉(13:11~13. 조망)→부부바위 전 바위조망지(13:22~44. 중식)→부부바위(13:45)→무명봉(13:53~54. 조망)→안장바위(13:58)→묘적암 진입로(14:10)→마애불(14:12~13. 관람)→윤필암(14:16~25. 관람 및 들머리 찾기)→우부도(14:29)→사불암(14:37~42. 관람 및 조망)→장군약수터(14:48)→대승사(14:55~관람~일주문 15:08)→나도야바위(15:16~17, 사진촬영)→윤필암주차장(15:19~27. 버스대기 및 출발)

<산행지도 출처 : 한국의 산천>

 

 

개요 

♣ 공덕산(功德山·912.9m)은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와 동로면 노은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공덕산 이름은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天降石造四佛像·일명 사불암)과 관련지어 사불산(四佛山)으로 부른다. 공덕산의 주인공은 사불암 아래에 자리한 1400여 년 된 고찰 대승사(大乘寺)다. 대승사 일주문 현판에 ‘사불산 대승사’로 쓰여 있다.

수많은 고승 대덕을 배출한 1400년의 유서 깊은 명승 대찰 대승사로 인하여 명산의 이름을 더욱 떨치고 있다.

대승사 대웅전에는 보물 575호인 목각탱화와 보물 991호인 금동 보살 좌상이 있다.

○ 전두리 버스정류소 - 대승사 - 유무유바위 - 샘터 - 사불암 - 823m봉 - 옛고개 경유 - 정상 (약 6km로, 3시간)

○ 대승사 -   방광재 - 공덕산 - 823고지 -   말안장바위(안암) - 마당바위 - 묘적암 - 마애여래좌상 - 윤필암 - 대승산 윤필암 삼거리 (약 10㎞ 5시간)

 

  대승사까지의 스케치

밤원휴게소 폐쇄 공갈못휴게소에서 10분가량 주차한 뒤, 문경을 지나 고갯마루를 넘더니 923번 분기하는 곳(천주산, 천주사 표지판이 있음)에서 59번 도로로 산북면을 거쳐 대승사 김용사방면인 923번 지방도를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일주문도 지나 대승사 경내까지 진입해 공사중인 경내 주차장에 정차한다.(11:37) 

▼대승사 일주문의 현판은 "사불산 대승사".

 

▼경내로 향하는 길, 일주문 추녀 우측 전나무가 아도화상이 심었다는 전나무인가?

 

내심 대승사 경내 전에서 하차시켜야 일주문부터 경내 분위기를 느끼며 올라갈 수 있었으면 했는데...

일주문부터 경내까지는 100m도 않되는 것 같은데 길 옆에는 나옹선사가 중국을 다녀와 기념으로 심었다는 밑둥이 한 아름은 됨직한 전나무들이 경내 분위기를 한껏 높여준다.

전나무 숲이 끝나면 일주문, 그리고 경내 전각들이 보이는 곳의 길 좌측에 무료찻집과 그 위의 부서진 석탑 이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다. 급변하는 건축문화의 변화를 말없이 지켜보면서 이 사찰의 유구한 역사를 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현존물인 것 같아 그 모습이 더욱 더 쓸쓸해 보였다.

 ▼현대식 건물로 바뀌는 사찰의 역사를 이 부서진 석탑은 알고 있겠지.... 이 아래가 무료찻집 

 

경내 사진만 급히 카메라에 담고(자세한 부분은 하산 후 살피기로 하고) 비로전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서 우측 넓은 길로 진입하려 하니 보살 한 분이 아마 그 길로 가면 않된다고 하는 듯 하다.(11:40)

하지만 산악대장이 다음부터는 이 길로 가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끝...

(산행을 마치고 일주문으로 내려가며 들머리를 살피니 석탑 맞은편에 공사중인 음수대가 있고, 그 오른쪽 산비탈로 콘크리트 전신주로 걸쳐 놓은 다리가 들머리였다.)

▼대승사 전경

 

▼응직전(뒤)과 극락전

 

대승사(大乘寺 : 신라 금자화엄경이 나온 유서깊고 유적이 많은 고찰)

대승사는 신라에 불법이 전해진 법흥왕 15년(528년) 59년 후인 진평왕 9년(587년) 당시 무명의 불도였던 망명비구(亡名比丘)가 창건했다.

조선 초기에는 득통 기화(得通 己和)가 이 절에서 반야경을 연구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선조 37년(1604년)부터 숙종 27년(1701년) 사이에 법당을 비롯해 승당 동상실(東上室), 관음전, 조전, 미륵전, 중실(中室), 시왕전(十王殿), 향로전, 천왕문, 만세루, 침계당, 금당, 영자전(影子殿), 향적전, 음향전, 나한전, 청심전(淸心殿) 등이 건립됐다.

영조 원년(1725년) 의학(義學)대사가 삼존불상을 개금했는데, 이 때 아미타불의 복장에서 사리 1과와 성덕왕 4년(705년) 개명의 금자화엄경 7권이 나왔다. 1956년 실화로 극락전 명부전 산신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들이 전소된 것을 1978년에 대부분 복구했다.

산내 암자로는 윤필암(潤筆庵 대승사 서북쪽 500m에 위치), 묘적암(妙寂庵 대승사에서 서북쪽 1㎞ 위치), 보현암(普賢庵 대승사 동편 100m에 위치)이 있다.

경내문화재로는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불탱각(보물 제575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991호), 등이 있다.

 

 대승사  ~ 반야봉 [실거리 1.1 Km ]

넓은 길은 곧 전형적인 산길로 바뀌고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공덕산 1.8km / 대승사 0.2km>란 이정표에 붙어 있고 지금 우리가 올라온 대승사 방향은 "등산로 아님"이란 표식도 첨장되어 있다.(10:44) 

"대승사 0.2km"라는 우측 산길은 일주문 근처에서 시작된 길이고 우리가 올라온 길은 경내 선원에서의 수행에 지장이 있어 사찰에서 폐쇄하고 있는 듯 하다.

길은 넓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경사도 말씨인 7~8명 가량의 한 그룹이 길을 터주면서 "조금 앞에서 백구가 길을 안내할 겁니다."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분은 "그 백구 유명한 개입니다. TY에도 나왔거든요."라며 거든다.

그들을 추월하자 흘금흘금 뒤를 돌아보며 천천히 앞서 오르는 흰 개 한마리가 앞에 보인다.

▼하필이면 공덕산까지 공덕을 쌓는 이 백구는 무슨 연을 가지고 있을까? 

 

"그 녀석 참 명물이구나"

대승사에서 잰걸음으로 15분 가량 오르니 이정표<공덕산 1.3Km / 대승사 0.7Km>가 있는 방광재다. 방광재는 동로면 윗무랑 마을사람들의 옛 통행로다. 본 산행 외로 답사할 제 1호인 반야봉은 우측에 있다.(11:54)

완만한 산길에 등로 또한 확연하고 정상부에 오르기 직전 대승사 방향인 우측 비탈로도 뚜렷한 길이 보이는데 이 길도 일주문 아래 어디선가 시작됐겠지....

방광재에서 5분이면 암릉으로 이뤄진 반야봉이다. 정상부까지 가려면 바위지대를 우측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덕산 최고봉은 아니지만 조망은 이곳이 가장 좋다.(11:59)

모든 사물은 조금 비켜봐도 못보던 것이 보인다는 이치인가?

▼반야봉 정상부 

 

▼반야봉에서의 조망-1 .

뒤 능선이 오늘 산행의 하산코스이고 우측이 옛고개이며 잠시 전 산행을 시작한 대승사도 보인다.  

 

▼반야봉에서의 조망- 2.    823m봉과 옛고개 그리고 공덕산  

 

▼반야봉에서의 조망- 3.   붕어산이라고도 불리는 하늘기둥, 천주봉 그 뒤로 대간 줄기가 보인다.

 

▼반야봉에서의 조망- 4.     반야봉 남쪽 능선 

 

▼반야봉에서의 조망- 5 .    운달산

 

▼"有無有", "不二" 그렇다면  死木과 生木은...?

 

반야봉을 출발한다.(11:02)

 

 반야봉 ~ 공덕산 [ 실거리 1.7 Km ]

반야봉을 다녀와 방광재를 넘는다.(12:07) 

공덕산 오르막 마지막 파도를 넘을 때 또 다시 길을 안내하고 있는 백구가.....

산이름이 "功德"인데 이 백구는 노소불문, 귀천불문 모든 이에게 끝없이 공덕을 쌓고 있구나.

"전생에 공덕이 부족했음일까? 아님 공덕은 남이 보던 보지 않던 이렇게 쌓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관음의 현신일까?"

▼업? 관음의 현신? 화두를 던지는 백구의 공덕

 

평지나 다름없는 4번의 잔파도 그리고 큰파도를 넘으면 공덕산이다.(12:32)

▼공덕산 정상

 

정상부는 수림에 가려 조망이 없다. 천주봉 방향을 벌목해 조망에 도움을 주려고 한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미흡하다.

기왕 손을 보려 했으면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으나 천주봉은 반야봉에서 확실히 보았으니 아쉬움은 그것으로 달래도 충분하다.

높다고 모든 것이 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곧장 길을 이어간다. 

 

 공덕산 ~ 묘봉 [ 실거리 2.0 Km ]

공덕산에서 1~2분 정도 가면 천주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우측으로 나오는데 그 방향은 붉은 비닐 끈으로 진입을 막았고 이곳 역시 수림에 가려 천주봉은 잘 보이지 않는다.(12:34)

몇 걸음 더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는 왼쪽으로 90도 틀어 넓고 가파른 내리막 내리막을 내려가야 한다.

내리막길 주변 나무에는 가는 비닐 줄이 있는 곳도 있고 가는 줄을 매놓은 곳이 있다.

옛고개 안부에 도착한다.(12:45) 이곳 이정표에 의하면 직진의 능선방향으로 "사불암(20분 정도 소요)" "공덕산 정상(20분 정도소요)"로 되어있다. 그런데 산행을 마친 뒤 다시 생각해보니  "사불암(20분 정도 소요)"는  "사불암 갈림길(20분 정도 소요)"로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정표에 의한 표식은 없으나 옛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대승사로 가는 길로 추정된다.

넓고 완만한 오르막이 여유롭다.

 ▼나무 사이 희미한 모습으로 내려다보는 공덕산

 

?은 스님 한분이 쌍스틱을 짚고 내려오는데 그 속도가 엄청 빠르다.

놀라운 것은 다리에 모래주머니라도 찾는지 바지 가랭이가 두툼해 보인다. 

봉우리에 오르자 방향은 우측으로 꺾이고 1분 뒤, "Y"자형 갈림길이 있는 823m봉인데 여기서 표지기가 잔뜩 붙은 좌측으로 내려간다.(12:55)

안부로 내려왔다가 비탈을 따라 오르면 조망바위에 도착한다.(13:04~8)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대승사  

 

 ▼줌으로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823m봉과 공덕산.  

 

 

▼반야봉  

 

▼조망바위-2 

 

조망바위에서 3분을 더 가면 또 다시 조망바위가 나온다.이곳이 지형도상의 묘봉에 해당하는 듯.(13:11~13)

바로 앞의 조망바위까지 함게 왔던 5~6명의 일행들은 여기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고조망은 대승사방향의 조망은 조금 전 조망바위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운달산 방향과 이어갈 능선방향은 조금 전 조망바위에서볼 수 없었던 모습이니 이곳이 한 수 위라고 해야겠다.

▼운달산과 단산 그리고 맨 우측이 포암산 

 

▼안장바위 부부바위 등이 감춰진 이어갈 능선

 

▼대승사 

 

지금까지와는 달리 산길이 제법 가파른 내리막으로 변하고 거칠어진다.

▼육산은 사라지고 거친 산길이 시작된다. 

 

 묘봉 ~ 윤필암 [ 실거리 1.3 Km ]

묘봉의 조망바위 출발 1분여 뒤, 제2의 안장바위라 해도 좋을 짝퉁 안장바위가 등로 우측으로 보이고....

▼안장바위 짝퉁

 

▼둘은 어떤 얘기를 하며 지냈을까?

 

가파른 내리막에 바위틈과 사이를 돌고 우회하며 안부로 내려오니 좌측으로 우회하는 뚜렷한 길에는 많은 표지기가 달려있고 능선으로는 한두장의 표지기와 함께 산길도 우회로에 비해 좀 빈약한 등로 상태를 보이고 있다.

능선방향으로는 전방 2~30m앞 우측에 농짝만한 바위들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이 바위지대를 넘으면 우회한 길과 만나게 된다.(13:20)

▼ 우회로가 있는 갈림길에서 이 바위들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갔다. 

 

바위를 돌아나가자 두어평 정도의 암반과 소나무가 멋진 휴식처를 제공해 여기서 점심상을 차린다(13:22)

▼운달산

 

▼포암산과 백두대간 

 

중식을 마치고 출발(13:44)하자 곧 부부바위다.(13:45)

 ▼부부바위

 

암릉길은 이어지고 .....

▼암릉길

 

 ▼묘봉

 

바위로 이뤄진 정상부을 10여m 앞에 두고 등로가 좌측으로 꺾여 내려가는데 내려서기 전 우선 봉우리부터 올라가 보았다. "저 위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저곳 전에 안장바위가 있겠지?"(13:52)

▼무명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안장바위 능선

 

 ▼사불암 뒤로 반야봉이 보인다.

 

이곳 주변은 예전 화마가 휩쓴 흔적이 아직도 생생하고 곧 안장바위를 지난다.(13:57) 

 안장바위 가는 길의 암릉 

 

▼뒤돌아본 무명봉과 묘봉(우) 

 

▼옛고개 위로 고개내민 공덕산

 

▼가운데 능선에 사불암이 보인다.

 

▼안장바위

 

○ 묘적암 뒤 안장바위와 나옹의 전설

날이면 날마다 안장바위 위에는 항상 남들이 볼 때 게으르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나옹이 앉아 있었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고된 농사일을 하던 산 아래 마을 농부들이 이 바위에서 놀고만 지내는 나옹이 보기 싫어 안장바위를 깨뜨려버렸다. 그러자 그로부터 수년 간 가뭄과 흉년이 계속됐다. 그래서 농부들은 나옹이 범상치 않은 스님임을 알고 안장바위를 다시 이어 놓고서야 가뭄과 흉년이 끝났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안장바위를 지난면 조망바위인데 이곳에는 오르내리는 곳 양쪽 모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안장바위와 묘봉 

 

▼로프가 걸린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포암산과 조금 전 지나온 봉우리  

 

▼줌으로 당겨본 사불암

 

▼뒤돌아본 조망바위 

 

암릉긴은 잠시 더 이어지다 순한 육산으로 변한다.

▼이어지는 암릉길의 풍경 

 

묘적암이 보이고 묘적암은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등로에 깔아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였고 그곳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묘적암  

 

○ 묘적암(妙寂庵)

묘적암은 823m봉 남서릉 동쪽 사면, 사불암이 마주보이는 곳에 앉은 암자다. 이 암자는 선덕여왕 15년(646년) 부운(浮雲)거사가 창건했다.

고려 말 나옹(懶翁)화상(1320-1376)은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 이 암자에서 요연(了然)선사에게서 득도한 다음 의정부 회암사를 거쳐 원나라 연경에 가서 고려사찰인 법원사에서 인도승려 지공(指空)화상에게 사사(師事)했으며 특히 평산 처림(平山處林)과 천암 원장(千巖元長)에게 달마(達磨)로부터 내려오는 선(禪)의 요체를 배워 체득했다. 귀국해서는 오대산 상두암, 전주 송광사, 여주 신륵사 등지에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 나옹은 은사 지공의 임종소식을 듣고는 ‘태어남이란 한 조각 바람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못에 비친 달그림자일 뿐이다. 죽고 살고 가고 옴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라고 삶과 죽음을 평했다.

나옹혜근은 “청산은 나를보고....”라는 유명한 시를 남겨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고승으로 기억되고 있다.

 

“청산은 나를보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聊無愛而無惜兮 (료무애이무석혜)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바다는 나를보고 청정히 살라하고  대지는 나를보고 원만히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푸르른 저 산들은 티없이 살라하네 드높은 저 하늘은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이 길은 묘적암을 좌측에 두고 좁은 산길을 잠시 따르면 묘적암과 통하는 넓은 길로 내려선다.

▼묘적암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보이고.... 

 

넓은 길로 내려선 다음 1분가량 길을 따라 내려가면 좌측으로 시맨트와 돌을 섞은 깔끔한 계단이 보이는데 이곳이 마애불 가는 길이며 마애불까지는 1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14:12~13)

▼마애여래좌상 

 

○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 지방유형문화재 제239호

윤필암에서 묘적암방향 좌 도로 150m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거대한 암벽에 음각되어 있다.

높이 6m, 폭 3.7m, 머리상부에 화염문을 간략하게 변형시킨 2개의 연꽃형 뿔모양으로 지닌 것이 특징이다.

조각수법이 각주의 약화(略化)현상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불교미술양식 변천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다시 큰길을 따라 1분정도(?)내려가니 또 다시 좌측으로 산길이 보인다.

이 길 또한 지나치기 쉬운 윤필암 가는 길이다.

산자락하나만 돌아넘으면 사불전이 능선으로 보이고 그 밑으로 난 길로 몇 걸음가면 싱겁게도 사불전 아래 절마당이다. 이곳에서 직접 사불전으로 올라 갈 수는 없다.(14;16)

▼사불전, 통유리를 통해 사불암을 보고 예불을 올리는 것이 봉정암과 흡사하다. 

 

윤필암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는 곳은 사불암과 윤필암 관음전 정도인지 그 외의 입구에는 출입금지 간판이 뭇 중생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데 이곳 역시 그 안은 수행을 위한 선원이 많은가 보다.

▼윤필암, 사불전은 이 마당을 지나 작은 다리와 계단을 거쳐 올라갈 수 있다.  

 

○ 윤필암(潤筆庵)

윤필암은 묘적암 아래 골짜기에 위치해 심산유곡에 든 기분이 나는 암자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각관(覺寬)비구가 초창한 비구선원(禪院)으로 유명하다. 여승들만 사는 절이라 경내의 모든 것이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청정도량이다. 이 절 서쪽 축대 위 건물이 사불전(四佛殿)으로, 계곡 건너 암릉 상의 사불암이 마주보인다.

윤필암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유형문화재 제300호), 윤필암 후불탱화(문화재자료 제348호) 등이 있고 이외에도 고려시대의 작품인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을 가운데 두고 탑돌이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 않다.

▼사불전에서 바라본 사불암  

 

▼당겨본 사불암  

 

▼비구니들의 수도처인 윤필암 전경, 탑돌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던데 탑은 어디에? 

 

좀 더 빨리 사불암으로 가려고 경내 종무소 뒤쪽 그리고 사불전 주변을 왓다갔다 살폈으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 3분여 시간만 낭비하고 "윤필암에서 나가면 좌측 어딘가에서 사불암가는 길이 있겠지. 사불암도 관광을 겸한 주요 산길인데...." 윤필암 경내를 빠져나오자 곧 바로 좌측으로 산길이 보인다.(14:25)

 

 윤필암 ~ 사불암 [ 실거리 0.6 Km ]

몇 몇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살폈으나 윤필암부터 사불암까지의 자세한 산행기록이나 들날머리 정보가 없었으니 초행인 나로써도 헤멜 수 밖에.....

완만한 산길을 4분가량 오르자 등로 좌측 바로 위 산비탈에 부도 한기가 외롭게 길목을 지키고 있다.(14:29)

▼우부도

 

○ 우부도(牛浮屠) : 대승사에서 윤필암으로 가는 산길 아래에 위치. 부도가 1기 세워져 있는데, 우리나라 부도 중에 소(牛)를 대상으로 조성된 것은 드문 일로 우부도를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절을 초창할 때 한필의 소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리 무거운 짐을 실어 날라도 지치지 않았으며, 사람이 이끌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가고 했다. 역사(役事)를 마친 후는 스스로 죽었다. 사람들은 이상히 여겨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부도를 조성하고 우부도라 일렀다.

 

우부도에서 2분 정도 더 진행하면 간략하게 표기된 <대승사 / 사불암> 표지판이 나오고 사면불가는 길인 좌측 능선길은 제법 가팔라진다.

곧 나무사이로는 한 순간 사면불이 모셔진 바위가 보인고...

▼한순간 모습이 비쳐지는 사면불

 

가팔라진 길 좌측으로는 묘한 바위들과 돌탑들을 보며 사면불이 있는 거대한 바위아래에서 우측으로 돌아오르자 허름한 나무판의 방향표지가 좌측으로 가라한다.

▼사면불 가는 길의 기암과 돌탑들

 

▼사면불 가는 길의 기암과 돌탑들  

 

▼이 바위를 우측으로 돌아오르면 좌측으로 사면불이 보인다. 

 

▼오늘 산행의 또 다른 보너스산행지만 이 공덕산의 주인이신 사면불

 

사면불 앞에서 우선 합장으로 친견인사를 마치고 주변을 샅샅히 살폈다.

높다란 바위 위 아무런 바람막조차 없는 곳에서 1,400여년이나 모진 풍상을 견뎌온 사불암, 그만큼 마모가 심해 그나마 상태가 좋은 동면과 북면의 부처님마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사전 정보없이 찾았다면 한낱 돌덩이로 생각할 정도였다.

대승사 대웅전 우측 출입문 아래 건물의 두 현판[天降四佛] [地湧雙蓮] 중 [天降四佛(천강사불)]은 ‘하늘에서 사면불이 내려오고,...’의 뜻으로 이는 이 사불암에 대한 현판이라고 한다.

▼사불암

 

○ 사불암(四佛岩 : 사면체 바위에 양각된 4개 불상)

사불암(四佛岩)은 삼면이 수직절벽으로 된 너럭바위 위에 있는 높이 2.5m에 각 면이 1.5m 안팎이 되는 사면체 기둥바위로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4면 모두에 여래상을  돋을 새김했는데 동, 서면은 좌상이고 남, 북면은 입상이다.

삼국유사 권3에 전해지는 사불암에 관한 설화는 다음과 같다.

‘진편왕 9년(587년) 하늘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반듯한 사면체 바위가 붉은 비단에 싸여 이곳에 내려졌다.

이 소식을 들은 진평왕은 이곳까지 찾아와 예배한 후 이 바위 옆에 대승사를 지었다’,

‘그리고 연경을 외우는 비구 망명을 주지로 삼았으며 받침돌인 공석(供石)을 깨끗이 씻어 그 위에 향화(香火)를 끊이지 않게 하였고, 산 이름을 역덕산, 또는 사불산이라 했다’,

‘그 뒤 비구가 죽어 장사를 지내자 그 무덤 위에 연꽃이 피어났다’는 내용 등이다.

 

▼사진의 왼쪽이 동면이고 우측이 북면인데 이 두 방향의 부처님 형상도 잘 살펴봐야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북면 부처님의 측면 모습 

 

▼윤곽이 가장 뚜렷한 동쪽 방향의 부처님 측면 모습  

 

▼남쪽과   

 

▼서쪽은 형체를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하다. 

 

▼사불암에서 바라본 윤필암과 묘적암, 사진 중앙부의 다른 전각보다 높은 곳에 있음이 이곳에서도 확연하다. 

 

▼묘봉 

 

▼반야봉~공덕산 능선이 건너편으로 보이고 

 

▼저 아래에 대승사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는데 도로가 급격히 휘어지는 곳 밑 계곡쪽에 나도야 바위가 그리고 그 우측 아래가 윤필암 입구 주차장인 듯 하다.

 

사불암을 출발(14;42)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려다 묘하게 선 바위에도 사진 한장, 그리고 주변 산비탈 모습도 한장....

▼누군가 이 바위가 사면불인줄 알고 한참을 바라봤다고 한다.

  

 사불암 ~ 윤필암 입구 주차장 [실거리 1.8 Km ]

그런데 사불암부터 대승사까지 소요시간을 모르니(여러 곳을 검색해 봤지만 기록이 없었다.) 마음은 급하다.

잰걸음으로 내려오니 올라갈 때 눈여겨 보았던 장군약수터(?)가 왼쪽으로 보이고 장군 약수터에서 한바가지 퍼 마시고 비탈길을 따른다.(14:48)

▼장군약수(?)

 

○ 장군수 : 대승사에서 윤필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에 있고 이 물을 마시면 장군과 같이 힘이 난다고 한다.

 

이 길은 스님들께서 주로 이용하는 길이라고들 하는데 산길은 아주 좋다.

사면을 따르는 길로 3분 정도 가자 낮은 산등성이를 돌아넘는데 그 우측에 조망이 괜찮을 것 같은 바위들이 보였는데 대승사까지의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그냥 지나쳤다.

후에 생각하니 이곳이 "有無有"라는 화두가 새겨진 바위였나 보다. 이는 ‘존재한다는 것은 허무한 것일 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장군약수에서 대승사로 이어지는 길은 산비탈을 거슬러 다시 주능선으로 향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조금은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생각이 기우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곧 대승사 일주문 아래 공사중이던 현장이 먼저 시야에 들어오더니 곧 대승사 전체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일주문과 본 법단 사이의 주차장에는 우리가 타고온 버스는 보이지 않아 아침 산악대장이 말한 것 처럼 사찰 측에서 장시간 주차할 수없다고해 그 밑 어디 공터에 주차시켰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청련당 앞마당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14:55)

▼청련당

 

청련당 옆에는 대웅전이 자리하는데 그 앞 마당에는 공덕산까지 등산객을 안내했던 백구가 보이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백구를 부르지만 녀석은 다가올 기미도 보이지 않다가 잠시 바로 앞까지 오더니 카메라를 들이대자 다시 도망간다.

▼다시 만난 백구, "범종루 복원"이란 현수막 위에 천강사불. 지용쌍련이란 현액도 보인다. 

 

주어진 시간내에 도착했고 출발시간을 15:00에서 15:30분으로 할 테니 천천히 안전산행해 달라던 산악대장의 말이 생각나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아침에 둘러보지 못한 경내를 모두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두 보물이 모셔진 대웅전이 첫 관심사

▼대웅전

 

▼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두 보물

 

○ 모각탱화와 관계문서 : 보물 제575호  1973년 12월 보물로 지정. 탱화는 길이가 약 4m, 폭 3m이고 관계문서는 당초 영주부석사에 있던 탱화를 대승사로 옮겨오므로 소유권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사찰보수비조로 250냥을 부석사에 변상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문서 4점이 있다.

○ 금동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 : 보물 제991호 1989년 4월 보물로 지정.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조선중종(中宗) 11년(1516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  근엄한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쓴 가슴과 배, 무릎에 장식된 영락(瓔珞) 장식이 특이하다.

 

우측 측면으로 들어서니 보살과 처사 가각 한 분이 정성스레 축원하고 있다. 내심 두 보물을 촬영하고픈 욕심에 법당 안에는 아무도 없기를 바랬는데.....

우선 공양부터 하고 나도 가족의 안위를 축원하며 삼배를 올렸다.

축원을 마치고 일어나는데 바로 우측에서 축원하던 처사가 "절에 많이 다니시진 않으셨나보죠?"하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예."

"오해는 마시고 부처님 앞 붉은 세개의 방석 중 가운데는 주지스님, 그리고 그 좌우 붉은 방석은 스님들께서 예불 드리는 곳이고 일발 신도는 그 좌우측에서 법회에 에불을 드립니다. 혹 다음에 어딜 가시던 참고하시라 말씀드립니다."라고 하면서 점잖게 일깨워 준다.

"예,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예법을 모르고 있었는데 다음부터는 꼭 지키겠습니다."

이런 예법도 공부한 터에 대부분의 사찰에서 부처님에 대한 사진촬영을 금하는 두 보물에 대한 사진촬영은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얼핏 둘러보았으나 법당안에 "사진촬영금지"란 글씨는 보이지 않았지만.....

엉거주츰 갈등하며 망설이는데 마침 법덩 문을 열고 보살 두분이 들어온다.

이때다 싶어 황급히 욕심을 채우고 조금전 깨우침을 주었던 그 처사의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법당을 빠져나왔다.

신발을 신고 대웅전에서 내려서려는데 바로 앞의 현판 두점이 발길을 멎게 한다.

▼대승선원 측면 처마의 현판

 

현판의 천강사불 지용쌍련(天降四佛 地湧雙蓮)이란 글귀는 이는 ‘하늘에서 사면불이 내려오고, 땅에서 쌍련이 솟아났다’라는 뜻으로 대승사 창건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적었다고 할 수 있다.

대웅전 뒷편 우측의 삼성각과 응직전 밑을 지나자 대승사 전각에서 가강 고색찬연한 모습을 띈 극락전이 응직전 밑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각과 응직전

 

▼응직전 아래 고색찬연한 극락전 

 

극낙전에서 계단을 내려오니 좌에는 명부전이 그리고 우측에도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백구가 또 나를 맞아준다.

▼명부전(우)과 극락전

 

마침 스님 한분이 계서서 백구의 이름을 물으니 모른다고 하면서 이곳은 출입이 제한된 곳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지나온 곳에 출입제한의 표식이 없었는데 그말을 듣고보니 양 옆의 건물들은 선방처럼 느껴졌다.

▼대웅전은 두 건물 사이 안쪽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급히 절마당을 벗어나니 아침에 우리가 들머리로 삼았던 그 길, 일부문으로 향한다.

곧 아침에 보았던 그 부서진 모습에서 대승사의 역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돌탑이 나오고 그 아래에는 무료찻집이 있다.

문을 열자 따뜻한 훈기가 얼굴을 감싼다.

▼무료차실 내부

 

산사에서 온몸으로 느낄 차 한잔의 향기가 간절하지만 우선은 주차장소까지 가는 것이 급선무다.

2분가량 내려오니 일주문에 적힌 불이문이란 현판이 또 다른 화두를 던지는 듯 하고.....(15:08)

▼일주문이 던진 또 하나의 화두 

 

 

 

 

 

▼나도야 바위16

 

○ 나도야바위

윤필암 갈림길에서 일주문으로 오르다가 오른쪽(남쪽) 협곡 아래 약 100m 거리에 마치 고깔을 닮은 기암이 있다. 이 기암은 본래 평지의 너럭바위 위에 놓여 있는 바위로만 보였었다. 그런데 92년 수해 때 계곡쪽으로 토사가 십수m 깊이로 쓸려내리면서 너럭바위 삼면에 숨겨져 있던 오버행(천정바위) 절벽이 드러나면서 절벽 위에 얹힌 바위로 변한 것이다.

나도야바위는 도로에서 보면 대승사 방면으로 뱃머리처럼 돌출된 절벽 위 너럭바위 바닥과 얹혀있는 기암 밑바닥 사이가 대부분 벌어져 있다. 마치 볼록렌즈를 측면에서 보는 듯 공간을 이룬 바위 사이로는 건너편 수림지대가 휑하니 보인다.

높이와 폭이 각각 약 4m에 직삼각형인 이 기암은 보는 이들 느낌에 따라 앉아 있는 부엉이, 또는 앉아 있는 짐승 같이 보이기도 한다. 옛날 중국에서 비단보자기에 싸여 이곳으로 날아왔다는 황당한 전설이 전해진다.

 

▼포대화상. 나도야 바위 위치의 좋은 표적이고 그 앞쪽에 볼록거울도....17

 

▼윤필암 입구 주차장19

 

 윤필암 주차장 이후의 스케치 

 

▼속리산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구병산16:42

 

 

윤필암 입구 주차장 앞 15:19~27출발

속리산 휴게소 16:57출발

북영주 IC 남이분기점 청원IC 버스 백미러 고장으로 신탄진경유 오정동 사거리 하차 111-1번 버스 승차 대전역에서 지하철로 집에오니 19:40분이다.

주간근무시간대와 마찬가지로 대전역 18: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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