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
♥
―누가복음 11장 35절
남해의 논과 밭을
푸르게 누비는 마늘과 보리 위로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겨우내 묵혀 두었던 땅을
갈아엎는 바쁜 일손을 틈타
졸음에 겨운 하품이 잦은 요즘,
노변과 산야에는 벚꽃이 난만하여
온통 하얀 빛깔들을 지어내고 있다.
올망졸망 작은 섬들이 솟아오른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배경으로 두르고
노변을 따라 흰 비단 폭을 끊임없이
펼쳐놓고 있는 벚꽃의 행렬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장관이었다.
나는 가지를 흔들어 유혹하는
눈부신 벚꽃들의 빛깔에 이끌려,
잠시 일을 내려놓고 꽃구경을 나섰다.
가족과 함께 나선 봄나들이다.
그리 먼 곳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남해대교 입구에서 시작하여
우리 교회가 둥지를 튼 고현 지역까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에 늘어선 벚나무들이 손을 맞잡은 채
꽃 터널을 이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흰 구름이
가지마다 걸려 있는 듯 꽃 사태를 이룬 터널을,
온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한동안 걸었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향기에 취해 걸으면서,
나는 눈부신 빛을 지어 전하는
벚나무들의 설교를 온 몸으로 듣고자
문을 활짝 열었다.
이 신성한 대자연의 사원에 들어와서
말씀 한 마디 듣지 못한 채
떠나가는 것이 싫었고,
저 대자연이 공들여 드리는
장엄한 예배를 보고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대자연의 사원에 들어선 자의 감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개개의 피조물은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관해 기록된 한 권의 책입니다.
개개의 피조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쐐기벌레만큼 작은 피조물이라도 곁에 있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다면,
나는 설교를 준비하지 않겠습니다.
개개의 피조물은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만물 속에 새겨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만물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니,
참으로 보배로운 눈과 귀를 지닌 분이 아닐 수 없다.
내게는 만물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환등기의 사진처럼 드문드문 보이고
연음이 아닌 단음으로 끊어져 들리건만,
도대체 저 영성의 대가는
얼마만큼의 훈련을 쌓았기에
개개의 피조물을 보면서 그 속에
하느님이 가득 계심을 발견하는 것일까?
우리 가족이 벚나무 숲을 거니는 동안,
흐드러진 손짓으로 벌과 사람을 부르는
눈부신 꽃숭어리들이,
잉잉거리며 파고든 벌들을 힘껏 안아 주고,
때마침 달려든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에
환한 빛을 지어주고 있었다.
잠시 벚나무 숲에 깃들인 사람마다
가슴에 벚꽃의 광채를 흠뻑 들이고는
기쁨에 겨운 웃음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축제의 즐거움을 새겨주고 있는
벚꽃들의 정겨운 풍경을 보는 중에
이런저런 생각이 느릿느릿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도대체 저 나무에는
얼마만큼의 빛이 들어 있기에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하는가?
저리도 환한 빛을 짓기 위해
캄캄한 시련의 시간을
저 나무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겪었을까?
사람은 저마다 빛을 찾아 헤매건만,
저 나무들은 제 속에 있는 빛을
저리도 밝게 지어내고 있구나.
사람은 불을 밝힐 줄 몰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있건만,
저 나무는 어디서 배운 바도 없이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불을 댕겨
주위를 밝히는구나.
이 우주에 깃들인 만물이라면
저마다 힘닿는 데까지 제 빛을 발하도록
창조주로부터 본래의 빛을 타고났을 터인데,
사람은 제 속에 있는 희미한 불씨마저
잿빛 물욕과 집착으로 덮어버리고,
빛 아닌 것을 빛으로 여겨
찾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 끝에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대장장이가 되기를 바란 한 젊은이가
어느 대장장이의 도제가 되어
온갖 필요한 기술,
곧 화저(火箸) 집는 법,
큰 망치 쓰는 법,
모루 치는 법,
풀무질하는 법 등을 모두 배우고,
도제로서의 수련기간을 마친 후
왕궁의 대장간에 고용되었지만,
불 피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크게 탄식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몸담고 사는 현대 사회의 풍조를
적절하게 빗댄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제일이라며
소위 재(財)-테크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도구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온갖 기술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격증들을
취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학생들의 인격을 도야시키는
도량(道場)이 되기보다는
상급학교의 진학과 취업을 위해서만
교육을 일삼는 학교와 선생들,
자녀를 성숙한 시민으로 양육하기보다는
경쟁사회에 걸맞은 전투적 경쟁자로
만들려고 하는 부모들,
이들 모두 불 피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대장장이가 아닐는지.
이런 사정은
교회 내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자기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더불어 성도들의 영혼에 불을 댕겨 주기보다는
"성장만이 제일이다." 하면서
교회의 외형을 키우기 위해 안달하는 목회자들,
이런저런 세미나를 전전하면서
성장의 비결을 배우느라
안간힘을 쓰는 일부 목회자들,
하느님을 맛보아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자기의 내면에 자리한 빛을 환하게 지어
어둔 사회의 구석구석에 비추는
참 신자가 되기보다는
자기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느님을 종으로 부리려고 하는
일부 교인들이 있으니 말이다.
불 피우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채
임금이 계신 궁궐에 드는 것은 불경스러운 짓이다.
우리의 임금이신 주님은
우리에게서 빛을 찾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사람을 찾고 계신다(마태 25:1-13).
그분은 당신께서 품부해 주신 불씨가
우리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지,
우리 안에 간직해 두신 빛이
환히 빛나고 있는지 살피신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영혼의 심지를 돋우어
불을 환히 밝히는 대장장이를 찾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대장장이가 되어
임금께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을 안겨드려야 할 것이다.
빛을 찾아 밖으로만 나돌고,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
떠도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살펴보아라(누가 11:35)."
이 말씀은
"빛은 저기 바깥이 아니라 네 안에 있다.
바깥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라.
네 안에 있는 빛을 지어 환히 비추라."는 뜻이다.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
엘 그레코에 얽힌 일화다.
어느 화창한 봄날,
한 친구가 엘 그레코의 집을 방문했다.
때마침 엘 그레코는
문을 꼭꼭 닫고 커튼을 친 채
어둔 방안에 앉아 있었다.
그런 엘 그레코를 보고
한심한 생각이 든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햇빛을 좀 쏘이게나."
그러자 엘 그레코는
"지금은 그럴 수 없어.
그렇게 하면 내 안에서 빛나고 있는
빛을 어지럽힐 테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
곧 저기 바깥에서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제 속에 있는 빛을 잘 보살피고 지켜서
어둔 밤을 환히 밝히는
반딧불이 같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보는 이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의 울림을 낳는 명화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듣는 이의 마음에
기쁨과 감격을 일구는 명곡으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영혼에게 도전을 주고
결단을 촉구하는 참 설교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일게 하는 유머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공들여 지은 밥 한 그릇으로
가족과 이웃에게 삶의 기운과 사랑을 불어넣는
모성적 섬김으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절망과 낙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희망의 뭍으로 들어올리는
한 마디 따뜻한 위로의 말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살아 있음의 황홀에 겨워
한 판 춤사위로 펼쳐지든지,
아니면 이슬비로 내려 사람들의 영혼을
촉촉하게 적시는 한 줄기 시로 태어나든지,
속에서 알차게 영근 빛이
활활 타올라 밖으로 분출하는 모습은
그지없이 위대하고 아름답다.
무언가 별난 기법을 익히겠다고
이리저리 떠도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 틀어박혀 뿌리를 뻗고,
간간이 불어드는 바닷바람에
하얀 비단 폭을 나부끼며 향기를 흩뿌리고,
창조주께서 자기 안에 넣어두신 심지를 돋우어
환한 빛을 누리에 가득 짓는 벚꽃처럼,
우리도 영혼의 등불에 박힌 심지를 돋우고,
빛이 어둡지 않도록 기름을 공급하고,
불을 환히 밝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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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빛이 넘쳐 나는군요...^^ 이 빛이 차츰차츰 제 마음을 온화하게 태우고, 의식을 정화하고, 성화하고.. 맑게 밝힐 수 있도록, 자주자주 조금씩, 묵상하고 읽어봐야 겠습니다.. ^^ 가족들의 표정이 다들 환~하십니다~ 좋은 봄나들이에 동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
초대해주신 축제의 거리에서 환한 가족들과 함께 더불어 즐겁습니다. 저마다의 영혼에서 피워내는 향기가 한잎한잎 어울어진 이 꽃숭어리들 같이 찬미를 향한 하루입니다. 점점 다가오는 부활의 승리를 다가가는 생명의 하루입니다. 고운빛으로 주신선물 감사합니다.
헤세드님! 함께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자연이 공들여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여 같이 드리고나면 영혼과 의식 모두 말할 수 없이 푸르러지고, 잊혀지지 않을 말씀을 갈무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피조물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 읽는 것이죠. 그것이 또한 내 영혼을 갈무리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
세드님! 축제의 거리에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빛그림에는 향기를 담을 수 없더라고요. 향기는 저마다 자기 내면에 담아야 할 것 같아요. 내가 향기에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속에도 그만한 향기가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형태공명, 곧 닮은 것이 닮은 것을 찾는 법칙인 셈이죠. 하루하루 생명의 길로 걸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