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기적
신외숙
형민은 어릴 때부터 늦된 아이였다.
성장발달이 느리고 두뇌 수준이 낮은 것은 태생이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한글과 숫자를 가르쳤다. 집안이 넉넉하다면 유치원을 보내도 될 일이었겠지만 형편이 빈한한지라 집에서 간단한 숫자놀음부터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그는 하나에서 열까지 세지를 못했다. 겨우 자기 이름 석자 쓰고 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학습능력 부진이라는 오명을 썼다.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기 일쑤였고 판단력 없는 것도 모자라 성격은 소심하고 옹졸했다. 더구나 친화력이 없어 친구 한명 없이 늘 외톨이로 지냈다.
좀 더 자라면서 그는 각종 질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병명도 원인도 없는 통증이 몸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몸과 마음을 가위 눌리듯 했다. 잘 먹지 못해 얼굴에는 항상 버짐이 퍼져 있었고 뼈만 남은 듯한 몸매는 바람만 불면 곧 날아갈듯 위태해 보였다. 가정은 늘 풍비박산 일보직전이었다. 그는 자주 자리에 앓아 누웠다.
그의 가족은 그를 애물단지 취급하며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가 열두 살 되던 무렵이었다. 기운이 없어 바닥에 누워 잠든 그를 친척 어른이 업고 병원으로 뛰어 간 적이 있었다. 장티푸스에 걸려 거의 다 죽어가던 그를 살려낸 은인이었다. 그는 머리칼이 홀랑 빠지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서 돌아왔다.
아무리 부족하고 힘들어도 옆에서 용기를 주고 조언해 주면 나아질 것을 주변사람들은 그에게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대했다. 그는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사실 그의 두뇌 수준보다 더 힘든 건 인간관계였다. 적응력이 부족해 학교생활을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아이들은 돌아가며 때렸다. 어떨 땐 여자애들까지 가세해 주먹을 날렸다.
그가 맞고 돌아오면 가족들은 창피하다며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그는 울다가 바지에 오줌을 싼 적도 있었다.
“저 새끼 저렇게 크다 군대나 갈려나 몰라.”
그의 부친은 그의 귀에 대고 수없이 많은 악담을 날렸다.
“그러지 마세요ㅡ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누가 알아요, 좀 더 커지면 나아질지.”
집에 놀러온 숙모가 말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의 성적은 조금씩 나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바닥을 맴돌던 성적이 중간 근처로 진입하자 가족들은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혼미하던 정신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도 그 즈음이었다. 그러나 전신쇠약이라는 병명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자주 자리에 앓아 누우면서 허무맹랑한 공상에 시달렸다. 그건 현실을 부정하는 얼토당토한 인생역전이었다. 그는 백지를 꺼내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현실 대신 미래라는 단어를 써 넣었고, 가난 대신 부자라는 단어를 썼다. 그 외에 명예, 성공, 자긍, 겸손, 사랑이라는 단어도 써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소영이 사랑해라는 단어를 써넣고는 밀봉해 버렸다. 해가 바뀌고 6학년이 되었다. 조그만 시골 읍내 학교에서는 전학사태가 벌어졌다.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서울로 대전으로 청주로 대도시로 이사와 함께 전학을 가는 것이었다. 소영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영이는 아빠가 서울로 전근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서울로 가버렸다. 반에서 제일 예쁘고 마음씨 착한 소영이는 누구보다도 그의 마음을 다독여준 은인이었다.
“형민아, 내가 서울 가면 너한테 꼭 연락할게, 그리고 고등학교는 꼭 서울에서 같이 다니자, 알았지? 그땐 우리 모두 서울 하늘 아래서 잘 지내자.”
소영이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소영이 가족이 서울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나던 날, 그는 울고 또 울었다. 소영이는 떠나던 날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프지 말고 꼭 건강해야 돼, 그래 이 다음에 꼭 서울서 만나자.”
읍내 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더 단절된 외로움을 느꼈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몸도 마음도 자라면서 소영이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번 떠난 소영이에게는 어떤 기별도 오지 않았다. 서울 생활에 재미를 붙이느라 바쁜 모양이라며 그는 공부에 최선을 다했다. 쇠약한 육신 붙잡고 공부하느라 애썼지만 간신히 상위권 언덕을 넘볼 뿐이었다.
가정도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면서 그의 서울행은 기정사실화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갑작스런 별세로 그는 고향에 주저앉고 말았다. 장남이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부친의 고집이었다. 한번 고향을 떠나면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는다는 게 마을의 정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나와 농사지으며 고향을 지키는 게 뱃속 편하다는 게 부친의 변함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떡하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꼭 대학을 가고 싶었다. 사실 서울에 가봐야 마땅히 기거할 집도 없었다. 자취를 해야 하는데 그의 병약한 몸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서울행을 고집하는 데는 소영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태어나 한번도 서울을 가 본 적이 없는 그는 서울만 가면 곧 소영이를 만날 줄로 알았다. 그래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쪽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먹거리는 시골에서 부쳐오는 농산물로 해결했다. 학자금도 해결되었지만 용돈 조달은 스스로 해야 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신문 돌리고 도서관 청소도 하면서 모은 용돈으로 당시로서는 거금인 컴퓨터도 장만했다. 몸집이 불어나면서 멋도 내기 시작했다. 모자와 티셔츠, 청바지로 빼입고 길을 나서면 여학생들이 흘끔거리며 눈길을 주기도 했다. 그는 차츰 서울 지리도 익히면서 촌티를 벗기 시작했다.
시간 날 때마다 소영이가 다닌다는 고등학교를 찾아가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수없이 많은 여학생들 가운데 소영이를 찾는 것은 남산 밑에서 김서방 찾기였다. 그래도 서울 생활은 재미있었다. 새로운 환경은 과거의 아픔을 잊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몸도 건강해져 그토록 소원하던 운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는 서울 애들에 비해 훨씬 뒤떨어졌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처음부터 일류대학은 기대 하지도 않았고 오직 목적은 소영이를 만나는 것이었다. 고향을 떠나던 날 소영이와 하던 약속을 그는 철저하게 믿고 기억하고 있었다.
“형민아, 내가 서울 가면 너한테 꼭 연락할게, 그리고 고등학교는 꼭 서울에서 같이 다니자, 알았지? 그땐 우리 모두 서울 하늘 아래서 잘 지내자.”
그때 소영이는 손을 흔들며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프지 말고 꼭 건강해야 돼, 그래 이 다음에 꼭 서울서 만나자.”
그런데 이 넓고 넓은 서울 하늘 어디에 소영이가 살고 있단 말인가. 그때 문득 소영이 아버지가 다닌다는 직장이 생각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정직 공무원이었다. 틀림없이 서울 근처에 있는 교도소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다한들 어떻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름도 직책도 모르는데.
윤중로에 벚꽃이 만개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학교 별 백일장 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경복궁 연못가에서 각 고등학교에서 선발된 재량들이 모여 기량을 뽐내는 데 하나같이 총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저절로 기가 죽었다. 온몸에서 기가 빠져 나가면서 영감(靈感)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그 앞에 나타나 불쑥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이름이 형민이 맞지?”
놀라 얼굴을 쳐다보니 거기엔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날씬한 여학생이 서 있었다.
“소 소영이?”
“그래 나 소영이야, 형민이 너 많이 컸네, 옛날엔 쬐그만 어린애였는데.”
그는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몇 번인가 살을 꼬집어보았다. 천사가 따로 없었다. 옛날보다 더 성숙한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신인배우같았다. 그때였다. 그의 뇌리 속에 온통 영감(靈感)이 충만하게 떠오른 것은. 그는 그날 백일장 시 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소영이는 장려상을 받았다. 그것도 그가 코치해 준 덕분이었다.
그날 둘은 경복궁 경내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소영이 넌 그동안 내 생각 한번도 안했나?”
“생각할 틈이 어디 있어? 공부하느라 바빴지. 나는 죽어도 꼭 이화여대 갈 거야, 우리 엄마 아빠가 꼭 그러랬어.”
“뭐? 이화여대? 대단하다.”
그는 놀라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넌 어느 대학 갈 건데?”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다. 앞날에 대한 예측과 자신의 꿈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는 순간 낙담했다. 남들처럼 학원도 괴외도 하지 못하고 알바에 매달리는 자신의 현실이 슬펐다. 잠시 후 소영이의 입가에서 야무진 일성이 나왔다.
“아빤 여전히 시골에서 농사짓고 계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슬픔과 충격으로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응 내가 잘 되기만을 항상 기도하고 계시지.”
“너희 아빠 하나님 믿으시니?”
“응 응?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렇단 말이지.”
“무슨 말이 그래?”
이제 완전히 비아냥조로 변했다. 그때 소영이가 인왕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대 대통령 부인들 중에 이화여대 출신들이 많대, 우리 엄마가 그랬어.”
“그 그래?”
“뭐야? 그럼 여적 모른 거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이화여대 나오면 시집 잘 간다고 꼭 이화여대 가라고 했어, 넌 어느 대학 갈 건데?”
소영이는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눈길 속에 조소가 담겨 있었다.
“난 난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쓰는 작가가 될 거야.”
“뭐라구? 그거 할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그보다 아빠가 허락하실까.”
“상관없어, 내 마음이니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었다. 영화감독은커녕 대학도 언감생심이었다. 간신히 대학에 붙었다 해도 소나 논마지기나 팔아야 대학 등록금이 나올 판에 영화감독이라니. 아무리 대답이 궁해도 어디서 그런 거짓말 할 용기가 났을까. 그는 부끄러움에 심장이 두 방망이질을 했다. 고등학교도 겨우 알바해 용돈이나 해결하는 주제에 게다가 그의 두뇌는 여전히 둔치에 가까웠다.
시골 읍내 중학교에서도 상위권 진입에 실패했던 성적은 서울로 오자 중위권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친구들은 고액과외에다 쪽집게 과외까지 해가며 소위 스카이 대학을 가기 위해 불을 켜는데 자신은 그저 급한 현실 불끄기에도 바쁜 것이다. 그런데 소영이에게도 어느새 일류 바람이 불어 상류사회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가난한 농사꾼 집안 장남에 동생이 넷이나 되는 자신의 처지와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그동안 소영이를 향해 품었던 꿈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헛된 것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날 소영이와 이야기하는 동안 얼굴이 하얗고 모델 같은 남학생들이 계속 주변에서 맴도는 걸 볼 수 있었다.
경복궁의 아름다운 정취와 더불어 소영이는 화보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근처 삼청동에서 산책을 마친 그들은 악수를 한 뒤 각각 헤어졌다. 버스 창밖으로 고풍스런 거리와 광화문 일대의 고층 빌딩들이 휙휙 지나갔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외로울 때는 옆에 소영이가 있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한가닥 희망이 세월과 함께 스러진 것이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인사동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화랑과 골동품 가게와 토속음식점을 지날 때마다 그는 아련한 꿈을 꾸었다. 내 인생도 저렇게 예술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화려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문화적 향락에 취해 산다면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현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얼토당토한 꿈을 꾸며 인사동 거리를 걷는데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났다. 조명이 부서져 내리는 노천극장에서 아이돌 그룹이 모여 격렬한 댄스와 힙합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이 새카맣게 모여 있었다. 그들의 거침없는 동작은 자유 그 자체였다.
좁은 공간에서 마음껏 자유와 노래를 구가하는 그들은 어린 방랑자들이었다. 그들의 공연이 끝나자 비보이들의 춤이 이어졌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동작은 춤, 연기(演技) 아니 묘기(妙技)였다.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맴을 돌 때면 환호성과 함께 격정 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오른쪽 삼일공원에서는 노인들의 힘겨운 표정과 고양이들의 숨바꼭질 속에 또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살인적인 물가 시대에 2000원 짜리 곰탕과 자장면, 국밥이 노인들의 주머니를 달래주고 있었다. 아! 세상은 이렇게 이분법적이구나. 발길을 종로 쪽으로 돌리니 예쁘고 날씬한 여자들이 하이힐을 신은 채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그녀들은 소영이보다 더 예쁘고 환상적이었다. TV속에서나 봄직한 여자들이 몸에 쫙 달라붙는 옷에다 매끈한 다리를 허벅지까지 내놓은 채 마구 활보하고 있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발걸음은 각양 소리를 내며 차도와 인도를 향해 걸어갔다. 저들은 어디를 향해 저렇게 바삐 움직이는 걸까.
순간, 인생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졌다. 한번 뿐인 인생길 어떻게 살아야 값지고 보람된 걸까. 많은 단어가 떠올랐다.
명예, 부, 행복한 가정, 권세, 사랑, 예술, 애국, 종교, 선과 정의.
맨 마지막 부분이 그의 마음에 와 닿았다. 선과 정의는 가치관의 척도였다. 그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힘이 없으면 지켜내지 못할 덕목이기도 했다. 더구나 세상은 돈과 권세가 먼저 상통한다. 또한 빠르게 변하는 세태 속에 선과 정의의 기준은 형태를 매우 달리할 것이다.
힘이 없으면 악조차 선을 누르고 승리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역사는 악의 심판을 거론하지만 그것도 다 때가 지난 다음의 후손에 의해 진실이 밝혀졌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고래(古來)로 악처럼 끈질긴 것도 없으리라. 그는 어릴 때 땅 문제 때문에 집안 친척 어른과 다툼을 벌이는 아버지를 보았을 때 처음 느꼈다.
힘이 없으면 있는 재산도 빼앗기는구나. 친척 어른은 면(面) 서기하는 자기 아들을 앞세워 집안에 몇 뙈기 남지 않은 논밭 문서를 가로채 갔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 자식들과 살기 힘들 지경인데 있던 것마저 빼앗기고 나자 아버지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날마다 술로 연명하던 아버지는 정신을 수습한 뒤, 소작을 부쳐 간신히 호구지책은 면했지만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게거품을 물었다.
집안 친척은 전답 문서를 빼앗아 갈 때 아주 합법적이고 교묘한 방법을 썼다. 그게 바로 배운 자의 횡보였다. 한마디로 사기(詐欺)였다. 만일 그때 정의(正義)의 신(神)이 살아 있었다면 그와 같은 수모는 당하지 않았으리라. 가난은 때로 불운을 부르고 피해의식과 함께 분쟁을 낳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다. 도시에 나가 수술만 받으면 살 수 있었는데 그 원수 같은 돈이 없어 생떼 같은 목숨 줄을 놓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후회의 기색도 없이 장례비 걱정만 했다. 자식들이 상급학교 진학할 때도 돈 많이 들어간다고 성화를 부리다 술주정까지 했다.
그럴망정 그는 돈에 목숨 걸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예술적 상상에 파묻혀 살고 싶었다. 그건 그가 꿈꾸는 마지막 도피처이자 정신적 허영심이었다. 또 하나 그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꿈꾸었다. 예쁘고 착한 아내를 만나 다정하게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면서 똑똑한 아들 딸 낳고 살고 싶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소영이가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소영이를 더 이상 마음속에 품었다간 큰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현실적이고 영악한 소영이가 한낱 어릴 때 기억 하나만으로 자기를 받아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음속에 미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과거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라면 현실은 그 토대이고 미래는 현실을 뛰어넘어 달려가는 미지의 세계이다.
또한 미래는 무한정의 가능성이 내재돼 있는 보물창고와 같다. 노력과 운만 따라준다면. 그는 현실이 깜깜할 때마다 그것을 부정하고 미래에 집착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건 현실의 고통을 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무작정 미래에 대한 찬란한 꿈을 꾸었다. 갖가지 단어를 떠올리며.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그는 종로 거리를 걷다 무심코 한 발걸음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손에 검은색 가방을 들고 반짝 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 신은 구두를 신은 그 발걸음은 차도를 건넌 채 지하도로 내려갔다. 지하상가를 걷다가 그는 문득 전철역 개찰구 앞에 섰다. 따라 걷기 시작한 발걸음이 그곳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발걸음의 주인공은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감색 싱글 양복에다 눈빛이 온순하고 이지적이며 정감이 흘렀다. 카리스마와 권위가 느껴지는 인상은 어떤 든든한 믿음마저 갖게 했다. 개찰구를 빠져나간 발걸음은 달려오는 전동차를 향해 나는 듯이 달려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몸을 들이 민 그는 뒤따라오는 존재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학생,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네? 뭐라구요?”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너무도 당황해 할 말을 잊었다.
“몇 살이지?”
“열일곱이요.”
“그래 그럼 앞으로 진로 계획은 세워 놓았나?”
“아 아직요.”
부끄러움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불가능이란 단어가 재빨리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일을 계획하여도 그 일을 성취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다. 또 이런 말씀이 있지.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고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도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학생 잘 하는 게 뭐지? 아니 하고 싶은 게 뭐지?”
“글쎄요.”
그저 자신이 없어 주저주저했다. 혹시 멸시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건 다름 아닌 대인공포증이었다. 상처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이었다.
“하나님은 인생을 이 땅에 보내실 때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재능 하나씩은 주셨지. 그 재능을 가지고 먹고살도록 말야.”
생각해 보니 이제껏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아둔한 탓이리라.
“전 공부도 잘 못하고 잘 하는 게 없는 걸요.”
“아니 분명히 있을 거야. 뭘 잘하지?”
“………….
“그럼 뭘 좋아하지?”
“책 읽고 상상하기, 그림 그리고 드라마 보기, 뭐 하나같이 비생산적인 거예요.”
“음 그렇담 말이지, 일단 글을 써 봐, 그림도 배우고.”
“그림을요? 돈이…….”
그는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눈치 챈 남자는 명함을 그의 손에 쥐어주더니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는 받아든 명함을 읽지도 않고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전동차가 다음 역에 닿았다. 그는 내리자마자 끝도 없이 높아 보이는 계단을 에스컬레이터도 타지 않고 걸어서 올라갔다. 그리고 길거리에 보이는 쓰레기통에 명함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짐작하건데 남자는 프리랜서이거나 교육 계통에 근무하는 요원이리라. 말투로 보아서는 목회자나 학원 강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차림새나 어딘지 모르게 경직된 듯한 인상으로 보아서는 목회자 같은 분위기가 더 강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난생 처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골몰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지구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내 모습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러다 그는 아차! 싶었다. 낮에 자기에게 명함을 주었던 남자가 떠올랐다. 공연히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구나. 그날 밤 그는 자면서 수없이 많은 꿈을 꾸었다. 그건 20년 후 자신의 모습이었다. 꿈에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고 있었다.
가끔씩 탄성도 터졌고 알 수 없는 음성들이 그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는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천장에서 빛이 온몸을 덮으면서 박수갈채 소리도 들렸다. 칭찬과 야유, 부러움과 시새움의 소리도 들렸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빛이 함몰되면서 어둠이 급습했다.
꿈을 깬 순간 정신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또다시 잠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크고 화려한 무도회장 같았다.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무대 중앙을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스펑크가 잔뜩 달린 의상을 입은 여자들은 긴 다리를 공중을 향해 찌를 듯이 쳐들며 미소를 지었다.
연미복을 입은 남자들은 조각 같은 몸매를 뽐내며 여자들의 마음을 유혹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곳은 무도회장이 아닌 공인(公人)들의 회식 장소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명사인 상류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송년회를 하느라 웃음꽃과 떠들썩한 만담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부와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위태해 보이는 표정이 언뜻 언뜻 얼굴을 스치고 있었다.
그는 그들 사이를 지나 문 밖으로 나갔다. 문밖은 수많은 계단들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었다. 급경사인 계단은 지하로 S자 형태로 이어졌는데 길은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계단은 내려갈수록 어둠이 배가 증가되면서 아무리 보아도 출구가 없었다. 두려움과 한계라는 단어가 가슴을 압박하면서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위한 가장 정확한 해답은 공부 이왼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용이 머릿속에서 산산이 분해돼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백지 상태가 된 듯 머릿속이 텅 빈 것이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세월이 가도 둔치는 여전히 둔치였다.
어떨 땐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일 뿐 전혀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특히 응용력이 부족한 그는 약간만 변형된 질문만 나오면 그만 당황해 질문의 요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돌처럼 딱딱하게 변한 건 아닐까. 아님 유전인자 속에 낮은 지능지수가 흐르는 건 아닐까. 원인이야 어찌됐든 노력도 다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이 성적 가지고는 서울은 고사하고 경기도에 있는 전문대학도 가기 힘들다. 그는 스스로 낙담했다. 그런데 뜻밖에 고향에서 소식이 왔다. 대학만 붙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학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아버지의 전갈이었다. 전 같으면 매우 감격했을 그였지만 그는 쓴웃음만 나왔다.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마당에 무슨 …….
졸업하고 나면 군대나 가버릴까. 제대하고 나면 그 다음엔 뭘 하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나한테도 재능이란 게 있는 걸까. 자신에게 집착할수록 열등감은 수치로 온몸을 친친 감고 늘어졌다. 수치와 모멸감, 자괴감과 열패감. 무능감과 한없이 낮은 자존감이 언젠가 꿈속에서 보았던 낮은 지하 계단 속으로 끝없이 끌고 내려갔다.
그때 그는 마음속 깊이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아이.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외롭고 소외된 아이. 아이가 있는 곳은 지하 동굴 속 마치 영화에 나오는 죄인을 취조하는 감옥소 같았다. 나방과 박쥐가 출몰하는 거미줄로 잔뜩 엉킨 그곳은 지하 감옥을 연상케 했다. 어둠과 두려움이 아이의 몸과 마음을 친친 감고 늘어졌다.
아이는 벗어나기 위해 울고 몸부림쳤지만 어둠은 강한 힘으로 더욱 옥죄일 뿐이었다. 그런데 창문 하나 없는 그곳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디서일까. 천사들의 합창도 들리기 시작했다. 빛과 노랫소리는 아이의 마음속에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강한 힘으로 아이의 몸과 마음을 묶고 있던 끈을 풀어내고 있었다.
어둠은 빗속에 함몰되면서 세력이 점점 소멸돼 갔다. 노랫소리는 아이의 마음에 희망을 불어 넣기 시작했고 닫혔던 지혜의 문을 신의 음성으로 열어갔다. 따스한 온기가 아이의 몸과 마음을 만지면서 그는 기력을 회복했다. 산만했던 정신에 집중력이 생기고 쇠약했던 육신에 치유의 광선이 비치기 시작했다.
부정적 시각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각을 지배하면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보였다. 자신감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계절의 변화가 그에게는 꿈결같이 느껴졌다. 죽었던 감성이 시구(詩句)를 떠올렸고 음률이 악상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 시나리오 대사가 떠올랐고 무한한 상상력이 의지로 발전했다.
그가 글을 쓸 때면 창조의 신이 그에게 한없는 영감(靈感)을 선사했고 완성의 기쁨을 주었다.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성적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해력과 응용력이 머릿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누군가 자신 안에서 계속 음성을 들려주고 있었다. 사랑과 격려의 음성, 할 수 있다는 강한 긍정의 음성이었다. 길을 걸어가면 누군가 옆에서 붙들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건 샘솟는 희망, 미래에의 거대한 포부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 결정을 위해 고심하던 무렵, 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언젠가 그에게 미래와 재능에 대해 질문하던 바로 그 중년남자였다. 그는 미모의 여인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손에는 검은색 가방이 들려져 있었는데 그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전철 안에서 본 것이었다.
그는 여인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며 심각한 표정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동네 비탈길을 지나는데 길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다가와 무어라 소리치며 인사를 했다. 그는 아이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여인도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들은 부부 사이 같았다.
형민은 말없이 그 부부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부부는 비탈길을 내려가 좁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대문 앞에 서더니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형민은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하고는 잠시 대문 앞에 멈추어 섰다. 잡풀과 연탄재가 흐트러져 있는 지저분한 마당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강아지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강아지는 이방인이 자기를 쳐다보는 데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픈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먼지가 더께 더께 묻은 현관문 사이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끔씩 우렁찬 소리도 들려왔다.
“의인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리니 혹 그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곧이어 노랫소리도 들려왔다. 어찌 보면 노래 가사는 청승맞기도 하고 가슴을 찢는 듯 애절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고통한 후에 기쁨 있고 십자가 후에 면류관과
숨이 진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는 진리로다‘
뭔가 인생의 위급함을 알리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필시 누군가 병이 들었거나 피치 못할 급한 사정이 생겼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사안의 심각함을 알리 듯 고함도 이따금씩 터져 나왔다.
“주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 그러고 보니 그들은 목사부부였다. 고난을 당한 교인들을 심방 다니며 기도와 위로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저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기도보다 현실적인 도움인 돈이 아닐까. 기도 한마디보다 당장 필요한 쌀과 치료비가 먼저가 아닐까. 그러나 그 모든 돈 문제를 목사가 해결해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일 신이 살아 계신다면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 걸까. 그리고 왜 가끔씩 악이 선을 누르고 대신 왕 노릇하는 걸까. 왜 아프리카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어린이들을 인간방패로 전쟁을 하는 인간 악마들이 버젓이 활동하는 걸까.
신은 공평하고 전능하며 더구나 정의로운 분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세상은 점점 어둠이 강해지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막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 학생.”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심정이었다.
“저 말인가요?”
“그런데 어디서 많이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전에 전철 안에서 한 번 뵌 것 같은데…….”
“아! 그래 맞아. 그때 내가 학생한테 말한 기억이 나, 그런데 이곳엔 어쩐 일인가.”
“저 이 동네 살아요. 얼마 전에 이사 왔어요.”
“아! 그런가 그렇담 다음 주일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게, 저쪽 슈퍼마켓 골목 끝에 있는 교회일세.”
그는 잠시 멈칫했다. 공연히 교회에 나갔다가 내 인생 붙들리는 건 아닌가. 형민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형민의 부정 의사를 확인한 목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교회 구경이나 할 겸 한번 왔다 가는 건 어렵지 않은가. 그래 줄 수 있지?”
형민은 귀찮은 듯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비탈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형민이 슈퍼마켓 골목 끝에 교회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후였다. 가을 소낙비가 지나고 난 은행잎이 온통 거리를 샛노랗게 물들이던 입시철이었다. 입시를 앞두고 무엇으로 전공과목을 택할까 몹시 고민할 때였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앞으로의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모티브가 된다. 즉 일생의 밥벌이 수단으로의 기로가 되는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적성이 우선이었다. 그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성적도 어느 정도 상승해 있었고 숨어 있던 재능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 같아선 방송 일을 하고 싶었다.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PD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꿈을 화려하게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한때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짜 그의 꿈은 언젠가 소영이에게 말했던 것처럼 시나리오를 직접 써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거기에는 재능도 재능이려니와 막대한 자본과 필수적인 인간관계가 따라 주어야 할 것이다. 우선 영상학과에 진학해 영화에 대한 자세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알았다. 만일 아버지가 알면 대노할 것이다. 그것보다도 형민은 어떻게 집안 사정이 나아졌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그래서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에게 진학문제를 의논할 겸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동안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집안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집안 친척 어른이 빼앗아 갔던 논밭 마지기를 원주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나서 눈을 감은 것이었다.
무려 3000평에 가까운 땅은 택지개발로 규정돼 땅값이 엄청나게 뛰어 있었다. 아버지는 진학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내려온 아들보다 땅 문제로 인해 행복한 고민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버지, 저 대학 전공 때문에 그러는데 아버지 의견을 여쭈어 보려고요.”
“전공이라면 거 뭣이냐, 대학교 졸업허고 나서 취직 잘 되는 걸로 정하믄 되았지 뭔 걱정이다냐?”
“저 그게 사실은 제가 하고 싶은 건 말이죠.”
“대체 뭐가 하고 싶은 겨? 니 생각은?”
“………….”
“왜 말은 않고 가만있는 거냐? 왜 애비가 니 허고 싶은 거 못허게 헐까봐 그러냐?”
“네.”
그는 모기만한 소리로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엉뚱한 말을 꺼내 그를 놀라게 했다.
“니 엄마가 살았다믄 얼마나 좋았을까, 그깟 수술비 몇푼 마련 못혀서 생떼같은 목숨을 잃은 생각을 허믄 내가 억장이 무너진다. 지금까지 살았으믄 내가 호강도 시켜줄 틴디.”
“그런데 그 어른께서 어떻게 우리 땅문서를 돌려줄 생각을 다 했대요? 그 지독한 양반이.”
“거 죽으려면 맘이 변하다고 하지 않더냐.”
“그렇다고 다 그런 거 아니잖아요?”
“거 뭣이냐 교를 믿었다 하더라.”
“교라뇨?”
“읍내에 있는 새로 생긴 교회에 나가더니 사람이 회까닥 바뀌었다 하더라, 죄인 삭개오가 뭐랬다더라, 내 들었는데 다 잊어뿌렀다, 어찌 됐던 간에 그때 빼앗겼던 전답 도로 찾으니 얼매나 마음이 좋은지, 이잔 니도 허고 싶은 공부 맘대로 해라. 내 다른 건 몰라도 대학등록금 만큼은 얼매든지 대줄끼구먼 한번 힘껏 혀봐라.”
“정말요? 아버지?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공부 제 맘대로 해도 되는 거죠?”
“무슨 공부인데?”
“있어요, 영화 만드는 거.”
“뭐? 영화?”
일순간에 아버지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면 그렇지. 낭패감에 그의 마음은 하늘 높이 올랐다 땅바닥에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영화도 만들고 방송 일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방송 일이라면 거 피딘가 뭔가 그런 거?”
“일테면 그렇죠.”
“그 일이 엄청 힘들다 하던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다 자기 하기 나름이지.”
“취직은 잘 되는 거인가?”
그는 두려움에 대답했다.
“열심히만 하면요.”
“뭐 대학 졸업했다고 다 취직 잘 하믄 뭔 걱정이겠냐? 니의 사촌들도 서울서 대학 나왔다 하믄서 다 집구석에서 딍굴고 있다 하더라, 내 촌무지렁이가 돼 잘 모르겠지만 니 하고 싶은 거 해라.”
웬일이래? 하늘이 두쪽 나도 허락 안 할 줄 알았는데 기적이 따로 없었다. 말 속에 부드러움과 관용과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그 부드러움이 역겨울 정도였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는 읍내에 있는 친구들을 만날 겸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새로 산 양복을 입고 마당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그러더니 반짝 반짝 구두를 닦아 신더니 대문가를 나서는 것이었다.
“아버지 어디 가세요?”
아버지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전 처음 보는 계면쩍은 표정이었다.
“응, 요 앞 아니 그 그 어른이 다녔다는 교회 좀 다녀오려고?”
“네? 교회라고요? 거긴 왜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교회길래, 내 빼앗아 간 땅 문서를 돌려주었는지 한번 알아 보려고그런다. 그런데 넌 어디 가냐?”
“읍내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려고요?”
“웬만하면 일찍 일찍 다니고 그래라, 돈도 아껴 쓰고.”
“네, 저 저녁 차로 서울 갈 테니 없더라도 찾지 마세요.”
“알겄다.”
아버지는 그동안 엄청나게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잃었던 전답 마지기를 찾은 것이 그렇게 좋았던 것일까. 과연 돈의 힘은 사람의 마음마저 바꾸어 놓는 것인가. 수수꺾기를 하는 심정으로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광명한 세상이 밝아오는 느낌이었다. 몇 년 사이에 동네 길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마을 앞에도 도로가 생기고 집집마다 자동차가 없는 집이 없었다. 더구나 친척으로부터 되찾은 땅에는 아파트가 곧 들어설 예정이어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평생을 돈 걱정에 찌들어 사느라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아버지에게는 꿈같은 일이었을 게다. 생전 안 하던 죽은 아내에 대한 생각까지 할 정도이니.
마을 앞에서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내리니 친구들은 모두 부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좋겠다.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되어서. 뉘앙스가 얼굴에서 읽혀졌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호기를 부렸다. 읍내에서 가장 잘한다는 중국집으로 가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대접하고는 장래의 포부를 밝혔다.
친구들 중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는 형민 포함 두 명이었다. 대부분 고향에서 농사를 짓거나 타지로 나가 직장을 잡을 생각이었다.
“형민이 너는 전공은 뭘로 할 건데?”
“응 영상학과.”
“그기 뭐하는 건데?”
“응 그러니까 영상학과로 말하자면 직접 시나리오를 쓰면서 카메라 기법을 배울 수 있는 영화감독과 작가들의 실습 무대이지.”
“거기 나오믄 취직 잘 되나?”
“응 경우에 따라선, 무대 연출, 영화 현장의 스텝으로 취업 되는 경우도 있고 영화 감독으로 등단을 하거나 독립영화를 찍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
그는 마치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대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업성을 배제한 독립영화의 예술성을 우선시 하는데 재미있는 건 영상학과 교수님들은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스타 교수님들이지. 상상만 해도 멋있지 않니?”
그는 감격에 들떠 말했다. 순간 친구들의 입가에 묘한 비웃음이 감돌았다.
“그 중에서 니는 뭐 할긴데? 그보다 취직하기란 억수로 어렵겠다 그치?”
“나? 나는 그 중 시나리오를 쓰거나 스텝으로 활동하고 싶어.”
“그럼 영화감독? 왔다 그거 진짜 어렵겠다. 돈도 많이 들고.”
“뭐 하다가 진로를 바꿀 수도 있는 문제고.”
“그보다 느거 아부지가 허락 하시겠나?”
“응 나 하고 싶은 하라고 그러셨어.”
“참말? 니거 아부지가 참말 그랬단 말이지, 우와! 기적이 따로 없네.”
친구들은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버지의 완고함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었으니까.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그는 내내 깊은 후회를 했다. 자신도 없는 말을 너무 떠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말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 그는 입시 일이 닥친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내내 강박증에 시달렸다.
만일 입시에 실패해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 문제를 두고 형민은 목사를 찾아 갔다.
“능력도 안 되는 데 공연히 말만 떠벌인 건 아닌가 걱정돼요.”
“사람이 마음으로 그 일을 계획하여도 성취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시다, 그분께 네 앞날을 맡기고 자유해라.”
도무지 못 믿을 말만 하면서 목사는 그에게 기도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는 도무지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동안 시나리오를 몇 편인가 써보고 나름대로 영화 평론도 해 보았지만 전혀 자신감이 안 생겼다. 영상학과는 필기는 물론 적성검사를 통해 선발한다고 하지 않는가.
걱정 반 두려움 속에 마음속에 잔잔한 음성이 들려왔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무슨 생각으로 어떤 준비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입시는 그럭저럭 잘 치러졌고 기적과도 같이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합격 기준이 뭐였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합격이라는 사실이 그는 무진장 행복했다. 고향에서 합격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이 이미 영화감독이라도 된 듯 동네 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그 역시 기적이었다. 아버지는 비닐하우스에다 신종 품종을 개발해 외화벌이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무농약 유기농 웰빙 음식은 강남의 부유층에 대세로 작용하고 있었다. 동생들도 모두 지방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집안은 빠른 회복세를 탔다. 그건 형민의 집안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읍내에 살고 있는 친구들도 웰빙 바람을 타고 고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지방자치 단체로 변하면서 돈이 되는 거라면 너도나도 뛰어 들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고향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 도시의 면모를 갖추더니 어느날 시(市)로 승격했다. 논밭이 아파트 군단으로 변하고 대형 슈퍼마켓과 공장단지도 들어섰다.
형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지방의 방송사에 취직했다. 그곳을 3년 쯤 다니다 엔테이먼트 회사에 취직했다. 그곳은 가요계는 물론 영화계까지 망라하는 자본과 인력 면에 있어 국내 굴지의 그룹이었다. 그는 촬영 현장을 지켜보면서 시나리오를 써 응모했다. 컴퓨터 첨단 기법을 사용한 촬영에 성공해 인정받은 적도 있었다.
차츰 경력을 쌓아 가던 어느날 그의 영화가 크랭크인 되는 날이었다. 모험이나 도박과도 같은 영화제작에 혼신의 힘을 쏟던 날 그는 꿈을 꾸었다. 꿈에 그는 어느 예술인 단체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곳은 영화인들 뿐 아니라 예술이라 총칭하는 각종 부류들이 모여 있었다.
미술, 음악, 사진, 연극 영화, 국악, 무용, 문학 예술인까지 모여 예술인의 잔치를 하고 있었다. 예술은 클래식 상업예술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다. 수많은 트로피가 오가고 박수와 팡파레가 울려 퍼지며 분위기는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산해진미가 쌓인 뷔페 음식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 샹들리에 불빛은 점점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예술인들은 하나같이 얼굴과 몸매가 뛰어 났다. 개중에는 남자 무용수도 있었는데 몸매가 조각 같았다. 간혹 비주얼이 보였는데 십중팔구 문인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중앙에 있던 커튼이 내려졌다. 그와 동시에 안쪽에 숨겨져 있던 무대가 나타났다.
대형화면의 노래방 기기와 장구와 드럼 기구가 보였다. 천장에서는 사이키 조명이 천천히 돌아갔다. 창밖은 눈 덮인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예술인들의 얼굴에는 모두 끼가 흐르고 그것은 마치 신기(神氣)와 같았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머리칼을 파머한 늘씬하고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 가수였다.
마이크 줄을 잡은 그는 노래방 기기에 맞춰 신들린 듯 노래를 불렀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연예인다웠다. 딴따라 기질이 얼굴에서부터 흐르는 그는 평생을 노래만 부르며 살아왔다. 노래를 부르는 표정과 제스처 하나 하나가 라이브 예술 그 자체였다. 그가 마이크를 놓더니 이번에는 순수음악을 하는 테너가수에게 옮겼다.
그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실내에는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긴장과 환호 격정과 열정이 그의 목소리에서 얼굴에서 관중에게로 퍼져 나갔다. 그가 후렴구를 부를 때에는 곁에 있는 베이스가 합류했다. 둘의 합창은 관중을 압도하다 못해 무한한 감동을 연출해 냈다. 테너와 베이스의 합창은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잔잔한 호숫가를 거니는 듯 따스한 봄날을 음률로 노래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감동의 세러머니로 마음을 압도했다. 곡이 끝나자마자 앵콜이 쏟아졌다. 그들은 얼굴과 표정, 옷차림 목소리에까지 예술 아닌 것이 없었다. 온통 예술적인 끼로 뭉친 그들에게 비범함은 필수로 다가왔다. 지그시 감은 눈 사이로 예술적 감성이 관중을 휘몰아치고 음률이 가슴을 적셨다.
그 뒤로 국악인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작은 체구의 중년 남자 국악인은 한강수 타령을 멋들어지게 불러 제쳤다. 흥을 돋우기 위해 나온 여자 국악인들은 무용팀으로 완벽한 연출을이끌어 냈다. 미술인들이 노랫소리도 감동을 연출했다. 그들은 옷차림부터 미적 감각을 더해 직업의식을 나타냈다.
특이한 건 머리칼이 하나같이 장발이라는 점이었다. 사진팀 무용팀의 공연도 이어졌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을만큼 하나같이 외모가 출중했다. 특히 무용팀은 그야말로 몸짱이었다. 가는 몸매 곡선과 움직임은 하나의 무용 작품이었다. 그들의 몸놀림은 어느 것 하나 율동이 아닌 것이 없었다.
연극인들의 노래는 오페라 뮤지컬을 연상케 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연극대사였다. 눈빛은 감동의 대사였고 몸놀림은 엑스타시 그 자체였다. 예술인들의 공연이 진행될 때마다 형민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만히 말했다.
「모든 예술인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재능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니까.
세상에 재능이 있다 해서 다 자기 재능대로 살아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돈이라는 현실에 막혀 재능을 사장(死藏) 당하고 외면하고 삶이라는 도구에 끌려가는 것이다. 예술은 먹고살기 위한 방책이 아니다. 예술은 자기 재능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예술 그 자체에 자신의 삶을 던지는 것이다.
형민은 꿈속에서 감격했다. 가슴 벅찬 감동이 멈춘 것은 맨 마지막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무용팀이 등장해 발레를 하는데 그 표정이 어딘지 낯익었다. 긴 다리를 쳐들어 올리며 미소 짓는데 그는 한순간 숨이 멈추는 듯했다. 자기를 바라보고 웃는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소영이었다.
발레리나로 변신한 소영이가 그에게 백조의 호수를 연출하며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의 하늘거리는 율동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무대를 가리는 마지막 커튼이 드리워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타깝게 소리쳤다.
소영아! 소영아!
그는 꿈에서 깨어난 후 자기에게 말했다.
영화가 흥행하든 안 하든 나는 예술인이다. 영화개봉을 앞두고 형민에게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지하로 내려가는 수많은 계단들이 그를 낙심케 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도 많았고 고층빌딩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순간에 올라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는 성공이라는 고지가 눈앞에 보인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절대자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미래를 이끄는 힘은 따로 준비되어 있다. 꿈과 소망, 바로 긍정적 마인드다. 어느날 그의 마음속에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무도 보거나 듣거나 생각조차 못한 것을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셨다’
끝
첫댓글 소설의 소재를 아주 먼데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선별하는 작가의 놀라운 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