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녹차와 장미
박양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한 해 걸러 실시하는 검진결과통보서가 왔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수치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는데 비만관리를 하라는 판정단의 지침엔 나도 모르게 찔끔하였다. 걷고 살림하는 소소한 일상생활이 곧 운동이라는 자기변명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도 티브이 시청 외에는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바로 집 앞이나 다름없는 은평구청 뒷산을 오르기로 했다. 아니, 오르고 말 것도 없이 그저 아기자기한 공원길을 걷다가 곳곳에 설치된 운동기구들을 사용해서 근력운동을 하면 된다. 덧붙여 식습관을 고치면서 설탕을 듬뿍 넣은 믹스커피 대신 지방 분해가 탁월하고 혈액을 맑게 해서 암까지 예방한다는 녹차도 마시기로 했다.
때마침 모 방송국의 주부 대상 먹방 프로에서 ‘냉장고 파먹기’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데 우리집 냉동고에서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녹차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십 수 년 전, 북경에 있는 주중대사관에 근무하는 남편 후배의 초청으로 중국을 드나들 기회가 많아서, 유명한 용정차를 선물 받기도 하고 오다가다 재미삼아 종류별로 사들인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두 번 시음하곤 그대로 냉동고로 직행했는데 지금 보아도 향이나 때깔이 그대로인 걸 보면 마셔도 되지 않을까.
나름대로 시간을 대충 때우고 땀이 촉촉이 밸 정도의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유월이 제철인 넝쿨장미 한 송이를 딴다. 녹차에 띄우기 위해서다.
뜨거운 찻물을 장미 위에 부으면 꽃잎이 하얗게 탈색되면서 연녹색 녹차가 서서히 진달래빛으로 변해간다.
나는 꽃의 정기를 마시는 기분으로 새로운 향을 음미해본다.
문득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 쯧쯧 혀를 찰 친구가 생각난다.
땅끝 마을 해남의 고찰 대흥사에서 고승으로부터 다도를 정식으로 배운 불제자 친구인데 지금은 예향 광주에서 여유롭고 우아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집안일로 남도에 내려가면 그 친구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는데 빠질 수 없는 게 녹차 마시기다.
운치 있어 보이는 청자 다기를 낮은 다탁에 정갈하게 늘어놓고 찻물을 끓인다. 다기를 헹구고 물 온도를 맟추는 모든 동작들이 너무 진지해서 차가 상징하는 휴식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엄숙한 의식에 가까워서 몹시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편하지 않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정성껏 찻잎을 우려낸다.
은은하게 번지는 다향(茶香) 속에 해묵은 사연들이 넘쳐나는데……
나는 기도하고 친구는 합장한다.
*수필*
두 번째 봄
박양자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키가 큰 왕고들빼기, 쑥, 명아주 등 약성이 강한 야생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봄이 무르익는 4월이나 5월 쯤, 전철을 타고 인근 교외로 나가면 이런 봄나물들을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계절의 전령사들을 바라보며 문득 2년 전에 떠난 그를 생각한다.
남편은 평소에 아무런 자각증상도 없었는데 위 내시경으로 말기 위암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 대신 자연의학을 선택하게 된 것이 내가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중의의 도움으로 한약을 복용하는 한 편 위장에 좋다는 약초효소를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일상은 꼭 나아야겠다는 암과의 사투가 아니라 그냥 편안한 암과의 동행이었다.
환자가 친구와 바둑을 두기 위해 외출하면 나는 부리나케 들판으로 내달린다. 돌아오는 길엔 온갖 들풀이 마대에 가득이다. 씻어서 말리고 설탕에 절이는 등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이 그냥 방방 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먹다 남은 한약, 말린 개똥쑥 등은 이미 버렸지만 약초발효액들은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아무리 버리고 비워도 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고 간 흔적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마치 이혼하는 부부들이 각자의 소지품을 가르듯이 남편에게 속한 물건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이혼이든 사별이든 우리는 이제 가는 길이 다르므로 그에게 속한 것들은 모두 추려내어 정리하기로 했다. 불가에서는 망자의 소유물을 저승으로 함께 보내는 의식으로 불에 태워주기도 한다는데 괜찮은 방법 같다.
한 친구는 사별한 지 5년인데 남편이 생전에 쓰던 물건과 옷가지들을 그 모습 그대로 진열해두고 바라보며 산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무섬증 때문에 남편과 둘이서 살던 집엘 못 들어가고 딸네 집에서 살다가 결국 그 집을 팔았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싸우며 날마다 그의 유품들을 없애고 치웠다.
그러면서 두 번째 봄을 맞는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유형의 것들은 다 사라졌지만 다만 그가 남긴 마음의 상처와 추억들은 어떻게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듯하다.
남편의 것은 그렇다 치고 나의 사후는 어쩔 것인가. 유난히 가구나 옷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크고 작은 살림살이가 결코 적지 않은데, 내친걸음에 내 아이들의 일을 덜어주기로 했다. 이사하는 것처럼 온 집안을 들쑤시다보니 여자가 쓰다 남기게 되는 유품(?)이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오늘은 무엇을 버릴까.-
눈만 뜨면 날마다 그 궁리뿐이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간소한 삶을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끊임없이 구매하고 바꾸는 등 똑 같은 삶을 강요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가구는 의자와 침대, 벽난로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불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끌어안고 살아왔는가.
소로의 충고야말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전략이 아닐까. 나는 눈에 띄게 헐렁해진 공간 속에서 간소한 삶이 주는 자유로움을 누리며 고독과 친구가 되리라는 운명을 예감해본다.
*수필*
운동하는 여자
박양자
한눈에 보아도 환자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빌라 단지 주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파마기 없는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 큰 키에 날씬한 몸매지만 한 쪽 다리가 많이 불편해 보였다.
옷은 언제나 위아래 빨간색 추리닝 차림이고 운동화를 신었는데, 어쩐지 정성껏 걷는 품새가 안쓰러워보여서 돌아보다가도 그 여자의 무관심한 듯한, 아니 오히려 적의를 품은 듯한 시선에 움찔하곤 했다. 아마도 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세상과 격리되어 살면서 생긴 일종의 경계심이려니 싶었다.
그렇게 반년 쯤 시간이 지난 무렵에, 나도 모르게 불쑥,
“운동하는 거예요?”하고 말을 걸게 되었는데 예상과 달리 또렷한 음성으로 대꾸를 하는 게 아닌가.
“네, 어디 다녀오세요?”
지난봄에 남편과 사별한 후, 세상과의 모든 관계를 접으며 은둔하다시피 사는 나와, 병마를 떨치고 세상으로 다시 나가기 위해 재활운동을 하는 그 여자와의 소통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우리의 맞은 편 빌라에 사는 그 여자, 양미란에게는 치과병동의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을 내조해야하는 삶의 짐이 너무나 버거웠던 것일까. 7년 전, 과로로 인한 뇌졸중으로 쓰러져 생사를 넘나드는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한 동안은 말도 어눌했다는데 지금은 회복된 편이어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그 당시 병원에선 절망적이라는 선고를 내릴 만큼 중태였는데 이렇게 치유된 것은 작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극진한 간호와 기도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사람은 때로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인가보다. 가족이라는 멍에 속의 시부모는 어려운 대상이지만 죽음의 계곡에서 그 여자를 끌어올린 것, 또한 그분들의 사랑이었다.
그 여자는 운동하는 시간이 아주 규칙적이어서 나와 시간이 맞으면 집으로 불러서 가끔 티타임을 갖기도 했다. 아직도 식이 조절을 하는 중이라 차 한 잔 나누는 것도 조심스러워 과일주스도 반 컵만 따라주면 단숨에 들이키고 맛있다며 더 달라는가 하면, 매트 위에서 내가 하는 요가 동작도 잘 따라하는 편이다. 인지 기능은 많이 회복되었어도 보행이 어려워서 혼자 차를 타고 바깥나들이를 한다는 건 아직도 먼 이야기처럼 보인다.
사흘이나 혼수상태에 있었다는 그 여자의 임사체험을 들은 후,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 내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하려는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천국으로 가기 전에 짐을 꾸리는 모습은 누구나 똑같다고 한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므로. 비정하리만큼 깔끔하게 남편의 유품을 정리했는데도 집안을 둘러보면 물건들이 아직도 많기만 하다.
혹시라도 내가 죽은 후에 자식들이 성가셔하지 않도록 사소한 장식품이나 집기들을 이웃에 나누어주기도 하고 기증하기도 하는데 꼭 돈 들여 사지 않아도 공짜로 우송되어오는 책도 만만치 않은 짐 꺼리다. 몇 상자 쯤 단체에 기증했지만 여전히 월간지들은 쌓인다.
그 여자에게 책을 보겠느냐며 수필집을 한 권 건네 봤더니 깜짝 반겼다. 나중에 만나서 물어보면 제대로 읽고 감동받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걸 보니 독서를 통해 그 여자의 재활치료를 돕는 듯한 보람도 느껴진다.
가끔 내가 교회에 가는 시간을 용케 기억했다가 빌라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기도 하는 게 신통해서 교회로 가져가든 책 중에서 시집을 두어 권 꺼내주기도 한다. 우리는 20여년의 나이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필요 없는 좋은 친구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