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린푸드는 1973년 현대백화점그룹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 내 케이터링 사업 부문에서 출발한 회사다. 2010~2011년에 걸쳐 식자재 유통을 담당하는 현대 H&S와 단체급식회사인 현대푸드시스템, 소매유통업 및 외식업을 운영하는 현대 F&G를 흡수 합병하면서 종합 식품 기업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에 따라 현대그린푸드는 위탁 급식 사업 대기업 계열사 반열에 들게 됐다.
그러나 대기업의 위탁 급식 사업은 사실 1990년대 초반부터 점차 포화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012년, 정부가 공공기관 급식 입찰에서 현대그린푸드를 비롯한 아워홈, 에버랜드 등 상위 6개 업체의 참여를 제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관련 시장 규모는 더욱 줄어들게 됐다.
결국 경쟁사들은 해외 급식이나 외식 사업과 같이 급식 주변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에 집중했다. 하지만 2015년 현대그린푸드에 부임한 박홍진 대표는 생각이 달랐다. 식품 제조 영역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식품 제조 영역은 현대그린푸드의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시장 내 절대 강자들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이 가운데 박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의 눈에 들어온 키워드가 '고령화'였다. 국내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성인병 질환자 수가 매년 증가했지만 이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특수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강식품 분야에서 약품이 아닌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사업이란 블루오션을 찾은 것이다.
케어푸드 사업은 현대그린푸드가 잘하는 것, 즉 급식 사업장을 운영하며 쌓아 온 '영양 설계' 역량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구체적인 방향의 실마리를 발견한 건 2016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식품박람회에서였다. 한국보다 고령 사회 진입이 빨랐던 일본에선 고령자를 위한 식품인 '케어푸드' 시장이 크게 발달한 상황이었다. 귀국 직후 해당 사업을 위한 TF(테스크포스)가 꾸려졌다. 이들은 이듬해인 2017년 그리팅의 전신인 B2C 케어푸드 브랜드 '그리팅 소프트'를 론칭했다.
출처 : 현대그린푸드
웰빙 HMR 식단을 완성하기까지
그리팅은 간편함에만 치우치지 않고 건강을 생각한 재료와 조리 방법으로 '프리미엄 HMR 식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빨리 해치우는 한 끼 도시락이 아닌 장기간 구독해도 좋은 '슬로푸드'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 초기 현대그린푸드 임직원들은 일본 케어푸드 제조 기업을 벤치마킹해 국내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당시 국내엔 고령 인구나 음식물을 섭취하기 어려워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푸딩이나 죽 형태의 연하식, 식사를 보충하기 위해 섭취하는 분말 형태의 제품 정도가 케어푸드로 인정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음식의 모양과 맛은 유지하면서 씹고 삼키기 편하게 만든 식사를 도시락으로 개발하는 수준까지 와 있었다. 이에 임직원들은 일본의 케어푸드 기업을 견학하는 동시에 조리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같은 실험 끝에 이듬해인 2017년, 케어푸드의 일종인 연화식을 소비자 테스트용 제품으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연화식은 삼킴 장애가 있는 환자들이 먹는 연하식과 달리 음식의 맛과 모양은 유지하면서 저작 작용이 어려운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음식을 말한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들은 2020년 브랜드 공식 론칭 이후 출시한 제품들의 밑바탕이 됐다.
차별화 키워드로 '건강'을 선택했던 만큼 그리팅 식단을 통해 건강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는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에 현대그린푸드는 제품 개발 초기 서울 아산병원 내분비센터와 협업해 당뇨 질환자를 대상으로 식단의 혈당 조절 효과에 대한 임상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를 통한 임상 결과가 의학저널에 게재될 정도로 성과는 긍정적이었다.
현대그린푸드는 메뉴 제조를 위해 개발 인력 투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례로 2018년 케어푸드 연구소 '그리팅랩'을 설립해 신장 질환자용 식단 등 지속적인 식단형 식품을 개발 중이다. 2022년 9월 현재 그리팅이 제공하는 케어푸드 식단의 메뉴는 총 330종에 이른다.
브랜드 성장의 발판이 된 투 트랙 전략
새로운 사업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 그리팅이 마주했던 가장 큰 위기는 '식품 유형'에 대한 이슈였다. 협력 병원과 함께 제품 임상까지 마쳤던 사업 초기, 해당 식단 제품의 이름을 정하던 2020년 3월 당시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하는 '환자용 식단형 식품'이라는 유형이 없었다.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제품의 효과를 전달해야 하는 마케팅팀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당뇨 환자들을 대상으로 저당 식단 제품 출시를 준비할 때도 같은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 밥상 주치의 그리팅'이라는 문구를 마케팅팀이 고안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의에서 수정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일반 소비자들이 '치료'의 의미로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그리팅팀은 한발 물러나 '저당식단' '웰니스식단' '라이트식단' 등의 이름을 붙여 제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객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저렴한 일반 도시락을 접하다 우연히 그리팅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식단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다"고 평가했다.
출처 : 현대백화점그룹
마침내 그리팅팀이 찾은 해결책은 국내 현실에 맞게 질환자를 위한 '메디케어'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데일리케어' 2개 트랙으로 소비층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케어푸드 시장처럼 고령자 및 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 환자용 식단을 놓지 않으면서도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 라인까지 두 가지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 가능한 단품류, 즉 '건강 반찬'의 품목 수를 대폭 확대했다.
2022년 9월 기준, 그리팅이 제공하는 건강 반찬과 국 등 단품 메뉴의 가짓수는 약 200여 종에 달한다. 데일리 케어 식품 라인은 '질환자용 전문 식단'이라는 낯선 용어를 일반인들에게 익숙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믿을 수 있는 음식을 선보이기 위한 노력을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에 현대그린푸드 내부에서는 그리팅 온라인몰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의 '세이프티 스코어'를 체계화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세이프티 스코어란 식품의 영양소나 가공도, 첨가물 정보를 고려한 별점 제도다. 위해성이 있을 수 있는 영양소의 함량이 적거나 식품이 원물에 가까울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스코어는 시중에 판매되는 가공식품 2만 개를 분석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덕분에 그리팅 온라인몰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은 제품마다 부여된 세이프티 스코어를 참고해 제품을 고를 수 있다.
또한 그리팅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그리팅 가이드' 역시 제공한다. 그리팅 가이드는 구체적으로는 유기농, 무농약 등 국가 및 공식 기관에서 부여하는 품질 인증을 비롯해 저칼로리, 저당 등 영양소 지표, 마지막으로 비건이나 친환경 식재료 사용 등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지표로 나뉘어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자신의 상황이나 기호에 적합한 음식인지 식별할 수 있다. 현재 자사 온라인몰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아이콘을 부착하고 있다.
이렇듯 식품 정보를 통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진심을 전달함으로써 더 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케어 식단의 경우 50대 고객이 전체 21.1%를 차지하지만 맛있고 건강한 간편식을 표방한 '건강마켓'은 3040대 고객이 주를 이룬다.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패키징
이렇게 영양과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세계 유수 기업들을 능가할 자신감을 확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바로 가장 중요한 '맛'이었다. 건강 개선의 효과는 확실했지만 임상 테스트 시 참가자들로부터 '만족스러운 맛을 느끼지 못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건강만을 생각한 식단을 제공하는 데 치우쳐 환자들의 기호나 취향을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접한 뒤, 고객 피드백을 바탕으로 하나씩 개선점을 찾기 시작했다. 150여 종의 한약재로 개발한 반찬 개수를 호불호가 적은 10여 개로 압축했다. 또한 나물 반찬 대신 유사한 영양소를 갖춘 샐러드를 포함해 식이섬유 메뉴의 다양성을 늘려갔다. 따라서 소비자들도 질리지 않고 식이섬유를 섭취할 수 있게 됐다. 가열해야 하는 음식과 가열하지 않아야 하는 음식을 따로 분류해 포장하기 위한 자체 용기도 개발했다.
또한 음식의 맛을 유지하고 택배 배송에 적합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체 용기 속 반찬에 개별 포장을 추가한 '구획 실링' 포장을 적용했다. 일반적인 도시락 사업의 경우, 유통 시 반찬이 섞이는 것을 막기가 어려워 편의점과 외식업체 인근 지역에서만 사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팅의 경우, 전용 공장에서 만든 뒤 택배로 배송해야 했기에 반찬 칸마다 따로 실링 장치를 해야 했다. 이런 세심한 기획은 요리 고유의 맛을 유지하고 유통기한도 늘리는 효과를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장재가 혹여나 소비자들의 편의를 해치면 안 됐다. 따라서 그리팅 제품의 포장 비닐을 손쉽게 뗄 수 있는 '이지필(Easy Peel)' 기능도 적용했다. 일본의 고령자용 식단이 노인들도 비닐을 쉽게 뜯을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것에 착안한 부분이다. 이러한 포장재의 접착력이 계절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까지 계산에 넣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계절에 따라 포장의 압착 온도와 시간을 다르게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제조와 학습을 반복하는 스마트 푸드 센터
사업이 안정화되자 2019년 현대그린푸드는 전용 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다품종 소량 생산 식품 공장인 '스마트 푸드센터'가 2020년 경기 성남시에 설립됐다. 현대그린푸드의 투자액만 833억 원. 이런 대규모 투자 결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매일 바뀌는 식단'이란 콘셉트를 위해서는 자체 공장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현대그린푸드가 운영하던 급식사업장 일부에서 조리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도가 어려웠다.
실제 전용 공장 설립으로 얻은 가장 큰 효과는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개선된 메뉴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제조-측정-학습 과정을 반복하는 시스템을 제조 공정에 활용 중이다.
향후 현대그린푸드는 그리팅을 활용해 '토털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우선 첫 단계로 그리팅몰에 적용 중인 세이프티 스코어를 현대백화점 식품관에서 판매되는 일부 제품에도 도입해 대중들에게 상품에 대한 영양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키, 몸무게, 질병 등 개인 인적 사항에 따라 달라지는 적정 섭취 기준치를 반영해 일대일 개인 맞춤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그리팅 식단뿐 아니라 시중 가공식품, 식재료까지 추천해 실질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역량을 십분 활용해 시너지도 내겠다는 구상이다. 건강기능식품의 원재료를 생산하는 '현대바이오랜드', 가정용 의료기기 렌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대렌탈케어', 최근 노인 등 사회적 여행 약자를 위한 여행 상품 운영에 나선 '현대드림투어' 등이 그 대상이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