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the-truth
"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명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알려줄 수 있을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것이 인류의 '통념'이며..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이다.
이와같이..
모든 '질병의 원인은 무엇인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
즉 "치매.. 암 등의 불치병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는 명제,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나 말고 다른사람들이 알려줄 수 있을거"라고 믿는 것 또한 "인류의 통념"이다.
say-the-truth
인류의 통념이 이와 같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알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까지도.. 나 말고.. "남들이 알려줄 수 있을거" 라고 믿는다는 것..
인류의 통념이다. (자아무지, 자아모순)
이런, 인류의 통념을 벗어난 지식을 '메타지식, 깨달음, 진리, 도' 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래의 영화 '컨택트' 그리고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보니..
"진리의 언어, 비밀의 언어.. 진리, 도"를 설명하는 '붓다(깨달은자들..)'에 대해서..
인류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한..
'메타인류'라고 부르는 것 같다.
아니.. "메타인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say-the-truth
사실, 두 권의 책과.. 이곳 '카페'의 모든 이야기들이 '메타인류'의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이곳의 모든 이야기들은..
시간에 포박된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위에서 바라보는 "동시적 사고"가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라는.. 시간, 공간이 본래 없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설명이며, 더 나아가 "언어가 본래 없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여러 방편설명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념, 인류의 통념으로 본다면..
"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메타인류"인 셈이다.
사실, 싯다르타-고타마의.. "나는 하늘도 아니요, 땅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 낯선 말은 아닐 것 같다.
물론, 인류에게는 이런 설명들이.. "방언, 사투리, 하나님의 말씀, 부처님의 말씀, 신의 저작물"이 아닐 수 없겠지만.. 이런 사실을 지적으로나마 분명히, 올바르게 인식하는 인물들이 있다면.. 오직 "도가"의 고급 수행자들이며..
세상에 오직 그들만이.. 시간과 공간... 과거, 현제, 미래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지극히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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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텍트"를 본적이 없고.. "네 인생이 이야기" 라는 소설 또한 본적이 없다.
뉴스의 제목들을 훝어보다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있기에...
어리석은 중생들이.. 서로 아는체 하여 마구 떠들어대는..
"도, 진리, 깨달음, 성령, 불성... '붓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실로.. 진리를 갈망하는 거룩한 인물들..
"도가의 일념법수행자"들을 을 위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 아 래 ---
이로사 칼럼니스트
[경향신문] ㆍ영화 ‘컨택트’와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 <컨택트>를 보기 전에 좀 더 고민했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원작 소설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다시 펼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다음에 묘사할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스포일러다. 그리고 이 장면이 바로, 누군가에겐 이 영화를 보는 일이 중대한 선택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물론 이것을 글로 읽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
지구에 어느 날 갑자기 12대의 우주선이 찾아온다. ‘셸’이라 불리는 거대한 조개껍데기 모양의 우주선은 지구 곳곳에 가만히 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려 하지만 소통이 불가능하고, 한 언어학자가 이들과의 소통 작전에 불려간다.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 두 번째 세션.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애덤스)는 불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헵타포드’(7개의 다리)로 통칭되는 외계 생명체와 마주하고 있다. 인간은 아직 두꺼운 유리벽 바깥에 대해,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대해 알지 못한다.
루이스는 벽 가까이로 다가가 화이트보드에 ‘인간(HUMAN)’이란 글자를 써 보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읽는다. “인간.” 일곱 개의 다리(인지 팔인지 지느러미인지 촉수인지)를 가진 그들은 말이 없다. 루이스는 불안하지만 기대에 찬 얼굴로 계속해서 말한다. “인간. 인간. …난 인간이다. 당신은 무엇인가.”
그때 외계 생명체가 처음으로 유의미한 반응을 보인다. 그는 긴 촉수를 뻗어 공중에 문자를 쓴다(혹은 쏜다, 뿌린다, 그린다). 인간의 문자와 전혀 다른 형태의, 간결하지만 복잡한 의미를 품은 기호처럼 보이는 글자. 그것은 순식간에 쓰이며, 검은 연기처럼 살아 움직인다. 루이스는 그제야 눈물을 머금고 웃는다. 대화는 이제 시작될 수 있다.
이 장면은 망설임 없이 ‘올해의 장면’ 후보에 올려놓을 만큼 신비롭고 아름답다. 고대의 동굴 속에 설치된 미래의 스크린 같은, 단순하고도 우아한 우주선 내부의 묘사와 유리벽 너머 검은 안개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생명체, 그리고 그들이 화면에 써내는 동양적인 형태의 아름다운 문자와 두 생명체 간의 더듬거리는 대화는 매혹적이다.
문제는 눈앞에 현현한 그 거대한 표의문자다. 시각은 힘이 세다. 더구나 이처럼 재능 있는 감독이 만족스럽게 잘 만들어놓은 이미지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너무 강렬해서, 나는 더 이상 테드 창의 소설 속 ‘문자’를 생각할 때 붓으로 휘갈긴 원형의 초서체처럼 쓰인 그 이미지 외에 다른 것을 떠올리기 어렵게 되었다.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볼 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론이다. 그러나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테드 창의 소설 속 언어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 특별히 더 아쉬운 측면이 있다.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2002)에는 8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데, 그중 상당수 작품에 ‘완벽한 언어’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다. 그 바탕에는 언어의 세계가 사고의 세계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완벽한 언어는 완벽한 사고를, 초인적 언어는 초인적 사고를 가능케 할 것이다.
■ 거대한 표의문자를 상상하는 즐거움
<컨택트>의 원작인 표제작 <네 인생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외계어 ‘헵타포드’는 인간의 언어처럼 순차적이거나 선형적이 아닌, 동시적이고 비선형적인 언어다. 순서대로 쓰이는 게 아니라, 목적을 지각한 상태에서 한꺼번에 쓰인다. 시간에 포박된 인간이 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위에서 바라보는 듯한 동시적 사고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형태는 이런 식으로 묘사된다.
“해독하려는 의도 없이 이 문자를 보았을 때는 초서체로 그린 기상천외한 사마귀들의 집합처럼 보인다. 이들 모두가 마치 에셔가 그린 격자무늬처럼 서로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각자가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최면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사이키델릭 포스터를 방불케 한다.”
여기서 이 문자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기는 힘들다. 문장들은 단지 이 문자를 상상하는 데 필요한 단서의 조각들을 던져줄 뿐이다.
한 인간이 약물 부작용으로 초인적인 지각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해>에선 주인공이 한계치에 이르는 지각을 완전히 담아내기 위해 고차원의 언어를 창조해낸다. 그는 이 언어를 통해 자신의 사고 구조와 작동 원리를 메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언어가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이 언어는 게슈탈트 지향적이며, 사고 활동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쓰기나 말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이 언어는 선형적인 단어 배열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대한 표의문자의 형태로 표현된다.(…) 전 우주를 묘사하는 거대한 표의문자를 상상하며 나는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
‘사고에 최적화된 언어’라는 개념은 <인류 과학의 진화>에서 인간을 넘어선 ‘메타인류’가 사용하는 ‘DNT(디지털 신경 전이)’로 변주된다. DNT 기능이 없는 인류는 메타인류의 과학연구 결과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학문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테드 창이 묘사하는 언어는 인간의 한정된 사고로는 그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궁극의 언어로 느껴진다. 초인간적 사고를 담은 언어를, 인간이 그려 보일 수 있을 리 없잖은가. 우리는 각고의 사유를 거친 작가가 제시하는 비전을 통해(테드 창은 5년 동안 언어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네 인생의 이야기>를 썼다.) 그 너머를 슬쩍 엿볼 뿐이다. 나는 지금도 <컨택트>의 공식 스틸컷 중 원작의 팬들에게는 큰 스포일러가 될 이 문자의 형상이 나온 사진이 있다는 사실, 이 문자의 형태를 담은 사진이 어떤 경고도 없이 여기저기 나붙어 있다는 사실이 좀 의아하다(물론 이 글에도 자료 사진으로 그 장면이 첨부될 가능성이 크지만).
애초 창의 머릿속에는 이 언어가 어떤 이미지로 떠올라 있었을까? 그는 글을 쓸 때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상상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절대로 아니다. 나는 산문의 엄청난 팬이다. 나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각색 불가능권’ 소설의 영화화
사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는 깨달음은 <컨택트>가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컨택트>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영화화가 불가능한 소설로 꼽혔다. 외계어의 구문 체계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이것을 물리학의 어떤 법칙, 시간의 본성과 겹쳐 보는 묘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난해한 소설을 시청각예술로 번역하는 일은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컨택트>가 잘 번역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소설에서 느껴졌던 태도가 형식적으로 영화에 구현되어 있어서다. <컨택트>는 간결하고 아름답다. 영화의 우주선은 하나의 도형에 가깝다. 어떤 레이저빔이나 버튼, 장치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계 생명체의 묘사는 시적이다. 우주선으로 진입하는 통로는 잘 고안된 갱도 정도로 보이며, 중력의 방향이 세로에서 가로로 바뀌는 단순한 설정만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을 우아하게 묘사한다. 이 같은 묘사는 테드 창 소설의, 간명하고 실용적인 것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물리학과 컴퓨터과학 전공에 ‘기술설명서’를 쓰는 직업을 가진 그는 “나는 항상 명확한 설명에 끌려왔다. 좋은 설명은 유용할 뿐 아니라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각색 불가능권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성공한 <컨택트>의 감독 드니 빌뇌브는 올해 또 하나의 ‘불가능’으로 꼽혔던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내친김에 그는 SF소설 중 가장 어려운 도전과제인 컬트작 <듄>(1965)을 영화화한다고 발표했다. 그때 누군가는 또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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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메타인류"라고 가정한다면.. 이름 짓는다면..
인류는.. "육체에 얽매인 정신에서 풀려나는 일"에 대해서.. "삼매" 또는 "깨달음" 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시간과 공간에 얽매인 정신에서 풀려나는 일"에 대해서 "삼매" 또는 "깨달음"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위의 '저자'는.. 그런 일에 대해셔.. '우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메타인류'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굉장한 말재간으로 "자아무지, 자아도취"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다른 인간류들을 현혹하는 것이며..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똑 같은 중생이 뛰어난 언술로써 다른 중생들을 농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대와.. 개개인 인간들의 존재의 이유..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써..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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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누구나 제각기 '자신의 인생'이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똑 같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생각할 뿐,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여러 방편을 들어 설명했기 때문에..
요약하자면, 사람들 누구나 "내 인생"라는 통념에 갇혀 있을 뿐..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모르기 때문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유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
다만, 인류중에.. 극 소수의 인물들만이, 이런 설명에 대해서 사유가 가능다는 것이며..
그 극 소수의 인물들이.. "도가의 일념법" 수행자들이다.
오직 '도가의 일념법수행자'들만이..
인간류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보는 현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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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인류는.. '자신과 자신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자신과 자신의 경계.. '나와 나의 경계'에 갇혀있기 때문에..
"나와 너" 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 집안에 두 사람이 서로 화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며..
인류가 추구하는 '행복, 자유, 평화, 사랑'은.. 말만 무성할 뿐.. 경험될 수 없는 것이며..
사람들 누구나..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다가..
노력만 하다다.. 노력중독에 걸려, 일찍 병들고.. 늙고..
두려움과 공포, 고통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죽음으로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이라는 말과 같이.. 인간 삶이 허무맹랑한 것이기 때문에..
"약견제상비상"의 진실된 '앎'으로.. 거듭나라는 뜻이며..
인류가 상상하는.. "메타인류"가 곧 "진리를 깨달았던 인물들이 설명하기 위한 방편언어"로써의 다른 '이름'인.. "여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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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와 "나"의 경계라는 말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설명된 이야기들이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소위, 깨달음에 대해서..
1. 육체에 얽매인 정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2,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일...
3. 하늘과 땅, 우주라는..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일..
모두 옳은 말이지만..
사실, "깨달음" 이란.. '이름' 또는 '언어'에 한정된 "나"를 초월한 "나"를 뜻하는 것이다.
도가의 '일념법강좌'에서 설명하는..
"도가의 고급수행자"들이 설명하는.. "명색의 이치"에 대한 설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사유할 수 있다면.. 진리와 벗삼는 인물들이며.. 오직 '도가의 고급 수행자들'만의 "메타지식'이며..
그들이 곧 "메타인류"로 거듭날 것이며.. "존재의 거듭남"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요, 성령"이라는 말로 전해지는.. '예수의 진실된 뜻'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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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의 목적이..
위의 '컨택트' 라는 영화 이야기나..
또는 "네 이야기" 라는 소설 등의.. '남들의 이야기'에 집착하거나..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서 살거나..
갈대를 구경하기 위해서 살거나..
세상에 훌륭하다는자들의 '진리'가 아닌..
'그럴듯한 거짓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기 위한 삶이라면..
사실,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가치있는 삶, 검증된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면..
남들의 그럴듯한 거짓믈을 의존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아는 진실된 앎이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남을의 남들에 의한 남들의 삶이 아니라..
진실로 그대 자신의 삶, 자신의 인생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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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며..
유일한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며..
"도가의 일념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서이며..
그대의.. 자신의 "나" 대해서..
자신의 자신이 모르는.. 모든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자신은 모르지만.. 아마도 다른 "남들이 알려줄 수 있을거"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뜻이다.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알라는 뜻이다.
그대가 스스로.. '일념법'을 의존하여, '메타지식, 메타인간" "메타인류"로 거듭나라는 뜻이다.
그대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것과 같이..
위의 저자 또한 그러하며.. 다른 남들 또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우이독경'의 중생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발견하는 자신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서.. "깨달음, 도, 진리" 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say-the-truth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까지도...나 말고 "남들이 알려줄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는 것...인류의 통념이다.(자아무지, 자아모순)> 감사합니다.
<사실, "깨달음"이란...'이름' 또는 '언어'에 한정된 '나'를 초월한 '나'를 뜻하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이해될 수 없는 것...비밀의 언어인 것...볼 수 없는 것...들을 수 없는 것을
인간들의 언어로 이러쿵 저러쿵...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상상의 나래의 표현이
언어로 이뤄진 문학작품, 영화와 같은 저작물임을...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