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늘 자라나는 과정 중에 있다. 소녀라던가 소년이라는 단어가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임을 상기하면 그것이 아주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28호의 신발을 신던 작은 소년을 41호의 신발을 신는 큰 소년으로 성장 시키는, 자라나는 글이라고 하면 좋을까?
이 글에 등장하는 좀머씨는 지팡이를 짚고 배낭을 매고 매일매일 미친듯이 걸어다니는 남자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단 하나 미친듯이 걷는 것에만 몰두하는데, 그것도 어딘가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이다.
그런 기묘한 남자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바로 소년이다. '나'는 바람을 타는 것 만큼 나무 타기를 즐기던 어린 소년으로, 카롤리나를 사랑하게 되고, 풍켈 선생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점점 자라난다.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지만 사실은 자전거 타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 할 정도로 귀여운 소년인데, 어느날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가 우박을 뚫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좀머씨를 불러 세우면서 소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좀머씨의 '말'을 듣는다.
"그러니 나를 좀 그냥 제발 놔 두시오!"
그렇다. 상관하지 말라는 아주 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살다보면 나랑 전혀 상관 없는 것인데도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어릴 때는 엄마의 "잠깐만"이라는 말이었고, "위험해"라는 말이 전부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이상한 것들도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문제는 차라리 말이라거나 어떤 사람, 사물 같은 것이라면 그것에 저항을 할 수도 있고 대들어라도 볼 법 한데, 이제는 그것들이 더이상은 "무엇무엇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상이라던가, 이념이라던가, 신념, 가치관, 생각, 관점 등등등.
문제는 이 수많은 다양성 속에서도 사람들은 스펙트럼의 일부를 "기준"이라던가 "평범함"으로 규정하고 그 틀 밖에 있는 사람들을 이상함이라는 정말이지 이상한 묶음으로 묶어 버린 다는 것인데, 그렇게 묶었으면 그냥 내버려 두질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이해 가능한 범주 안으로 들이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그러다가 죽겠어요!"
라는 다른 사람들의 고요한 외침, 그 시선들에
"그러니 나를 좀 그냥 제발 놔 두시오!"
하고 외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상함"이라는 주머니에 그들을 가두어 버린 것은 소위 이야기 하는 "평범함"속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편 [좀머씨 이야기]는 세계대전이 종전하고 과거의 전원 생활을 회복해 가는 독일의 한 마을에서 소년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글의 제목에도 등장하여 소년의 소년기를 닫는 인물이 되는 좀머씨는 폐쇄 공포증이 있어 늘 밖을 걸어다닐 수 밖에 없다는 남자로 세상에서, 현실에서, 아마도 참전의 과거나 혹은 어떠한 잔인한 기억에서 달아나려는 인물이다. (물론 오로지 내 추측이지만.)
내가 전에 뒤샹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글 속에서 '나'-소년-는 끊임없이 '그'-좀머씨-가 달아나려고 한다고 했지만 정작 좀머씨의 병명은 폐쇄 공포증이었기 때문이다.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폐쇄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 고립당하고, 고독하고, 외롭지 않으려고 했다는 게 진실이라는 것 말이다. (뒤샹이 레디메이드 작품인 샘으로 세상을 뒤집어 엎은 이래로 문학사에서는 이런 글이 이렇게 늦게 나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요, 내가 이구역의 뒤샹덕후요ㅠㅠㅠㅠㅠㅠ앤디워홀 보러 한 달 한 번씩 뮌헨 다녔던 여자가 납니다ㅠㅠㅠㅠ내가 원래 모던아트 덕후여라ㅠㅠㅠ)
게다가 아직 온전한 성인이 아닌 소년의 눈에 비친 늘 걷는 남자 좀머씨가, 마침내는 홀로 호수에 걸어들어가는 모양을 그저 지켜만 본다는 사건으로 끝나는 것도 포스트모더니즘 적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특유의 생생하고 명랑한 어투(이것도 이상한 일이다. 사실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야말로 그냥 내버려 둬! 라고 외칠 것 같은 신경 쇠약적인 남잔데!!!)로 전하는 소년기의 종말이 바로 그 사건인데, 마침내 한 줄의 긴 단어와 같은 풀네임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로 남아버리는 좀머씨의 행방불명과, 그 남자의 행방을 영영 침묵해 버리고 마는 과거의 소년이라니, 멋지지 않을 수 없달까?
물론 이렇게까지도 필요 없이 그냥 동화처럼 읽어도 좋다. 피아노 선생님한테 시달리고서 나무 위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하는 그 장면까지는 특히나 너무나도 귀엽다. (그 장면 바로 뒤에 좀머씨가 등장하여 소년은 죽지 못한다.) 거기에 꼬마 니콜라로 잘 알려진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이 곁들여져서 더 동화같다.
사실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향수]로 가장 유명한 작가지만 [향수] 뿐 아니라 [콘트라베이스]라던가 [비둘기]같은 책도 읽어 볼 법 하다. [좀머씨 이야기]가 그랬듯이 다른 책에서도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가장 소외받고 고립 '당하는' 현대의 인간을 재조명하고 그들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나를 좀 그냥 내버려 두시오!
좀머씨가 버럭 거렸던 까닭을 굳이 그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감금 당했기 때문에 그렇게 외쳤을 것이리라. 나는 댁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이상하지 않다고, 아니 나는 아주 정상이라고 외쳤기에 더욱, 절박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
독어판으로도 읽어 보았는데, 독어로 읽으신다면 발음의 운율(?)도 라임 맞게 써 놓은 부분이 있어서 더 좋더라고요. 독어 되시면 독일어 판으로도 읽어 보세요. 꼭 어린애 동화책 같아요. 얇아서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네네. ^-^
첫댓글 "그런데 정작 "이상함"이라는 주머니에 그들을 가두어 버린 것은 소위 이야기 하는 "평범함"속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 구절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먼저 겉모습으로 판단부터 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저에게 넓은 시야를 갖게 해주기도 하고 동화책 같은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그를 통해 배우면서 짧은 줄거리지만 재밌게 읽었습니다. 꼭 사서 봐야겠어요~
그렇지요. 그저 걷기만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울림을 주는 건 뭔가 특별한 공감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