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레위기 3부에 이어서 4부 말씀의 교제를 시작하겠습니다.
4부의 말씀은 레위기 1장 6절을 중심으로 진행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6.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며 놓으면,
7.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 위에 장작을 지피고,
8.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고기 저민 것과 그 머리와 기름기를 제단에서 불타는 장작 위에 벌여 놓아야 한다.
9.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모두 제단 위에다 놓고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이 신약 성경에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피흘리시고 돌아가신
이 사건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고 인생의 삶을 사시고 생애를 사시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소유하게 하셨는가를 이 레위기 1장 말씀에서 아주 자세하게 계시하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물의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졌다라는 이 말씀은 희생 제물되신 희생제물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생애의 결정체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그 그리스도의 인생과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몸으로
우리에게 내 살을 받아 먹으라 하시는 그 주님의 양식 되시는 살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그분께서 어떠한
삶 어떠한 인생의 고통과 학대를 당하시고 그 과정을 통하여서 말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과 학대의 삶을
통과 하셨는지를 보여주신 말씀이 바로 레위기 1장 6절에 그는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한다
라는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죽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육체를 덮어주고 보호해 주고 추위로부터 더위로부터 또 더러움으로부터
부정한 것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 외형적인 옷이라면 짐승들 생명체를 가진 동물들의 짐승의 가죽은 양과
소와 염소 이러한 것들의 가죽은 바로 그 짐승 자체의 특유의 탁월한 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 주는 것이
바로 가죽입니다.
여러분 사자의 가죽이 다르고요 표범의 가죽이 다르고 호랑이의 가죽이 다릅니다.
그리고 하얀 색깔을 지닌 얼룩말의 그 가죽이 다르고 악어의 외형적인 모습인 가죽이 다릅니다.
그 가죽을 통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구나라는 그 어린 양의 가죽을 통해서
이 번제물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충만한 외형적인 인생의 삶을 사신 아름다움의
외적 표현이 바로 가죽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 되시는 어린 양의 가죽을 벗기는 것 또는 여러 가지 유형들의 제물들의
가죽을 벗기는 것은 그 제물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외형적인 아름다운 삶의 표현 그 실체를 완전히
벗겨버린 것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번제물이 되셔서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이러한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성을
지니신 성령님으로 잉태됨으로 말미암아 성육신 하셔서 신성한 본성을 지니신 그분이 인자로서의 인성의
거룩한 본성을 외형적인 삶의 생애에 미덕들의 외형적인 표현들을 통해서 완전히 고통 당하고 시련당하고
학대를 당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사탄에게 자신의 모든 아름다운 거룩한 인성의
본성들 아름다운 주님의 선한 것들 아름다운 품성들을 이런 외형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삶을 사시고
도무지 흠과 점과 결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미덕들을 소유한 그리스도의 외형적인 표현들이
모두 벗겨지고 모두 잘라지는 일을 허락하셨다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 1장 6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7장35절 말씀인데요
예수님의 옷이 로마 병정들에 의하여 제비 뽑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철저히 이 희생제물의 가죽으로 상징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을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빼앗김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강제적으로 강탈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약 성경의 말씀 시편 22편 18절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22장 17~18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7.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 셀 수 있을 만큼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원수들도 나를 보고 즐거워합니다.
18.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
여러분 이 시편 22장 말씀은 전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새벽 암사슴 되신 그리스도께서 정말 강제적으로
강탈당해서 자신의 가죽을 벗김당하고 그리고 각이 떠지는 이런 삶의 모습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는
말씀이 시편 22장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보면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12절부터 많은 황소가 저를 둘러싸며 바산의 힘센 황소가 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13. 으르렁대며 찢어 발기는 사자처럼 입을 벌리고 나에게 달려듭니다
14. 나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빠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녹아내려, 절망에 빠졌습니다.
15. 나의 입은 옹기처럼 말라 버렸고, 나의 혀는 입천장에 붙어 있으니, 주님께서 나를 완전히
매장되도록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16. 개들이 나를 둘러싸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무리가 나를 에워싸고 내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17.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 셀 수 있을 만큼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원수들도 나를 보고 즐거워합니다.
18.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
시편 22장 특별히 18절 말씀을 이루시고 성취하신 말씀이 바로 이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을 당하셨을 때 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의 겉옷이죠. 의복이죠. 그 의복을 겉옷이라고 했습니다.
이 겉옷은 가죽이 벗겨지는 것으로 나타내고 표현되고 상징되고 있는 것입니다.
의복이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강제로 강탈 당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의 의복이 벗겨졌다라는 것은 그분의 아름다운 이 거룩한 본성을 지닌 인성의 아름다운 미덕들의
모든 표현들이 완전히 벗겨지는 것을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물이 각이 떠진다라는 것은 무슨 말씀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온 전체를 인생의 삶을 사시고 생애를 사시면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그분의 전 존재를 조금도 남김없이 조금도 아낌이 없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조금도 남김이 없이 완전히 철저하게 온전하게 이 대적자들과 대적자들의 손을 빌은 그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온 존재가 깨어지고 부서짐을 허락하셨다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한다 라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을 벗겼다 라는 겁니다.
그분의 아름다운 거룩한 본성 완전하고도 온전한 하신 거룩한 본성의 미덕들의 아름다운 그분의 온 존재의
표현을 우리가 다 벗겨버렸다라는 겁니다.
그분의 온 존재를 완전히 깨어지고 부서지고 찌름으로 말미암아 창에 찔림 받는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완전히 온 존재가 이 죄를 지은 부정한 자들 타락한 자들 첫 사람 아담의 후손들인 인류에 의해서 완전히
부서지고 깨어지고 짓밟혀지고 찔림 받았다 라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 바로 제물의 각이 떠졌다 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을 통하여서 십자가의 온 결정체가 되는 그러한 마지막 삶의 모습이
번제물로서 드러나고 있는데 그분은 우리의 번제물이 되어주시는 과정에서 인생의 삶과 전 생애와 마지막
삶의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 있기까지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뜨여지는 사건을 기록한 것이 바로
마태복음 27장 35절 말씀과 시편 22장 18절 말씀이 실제적으로 십자가 상을 통해서 완전히 이루어지고
성취되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마지막 입을 열어 외치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말씀이 선포하신 말씀이
이루었다라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의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허락하지 않으셨다라면 그 고통과 그 시련과 그 아픔과 부끄러움과 수치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담당해야
될 몫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야 될 그 고통과 그런 학대와 시련과 부끄러움과 수치 그런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죽음을 당해야 되는 우리 대신에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상에서 대신 그것을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없애고 그리고 우리가 학대받고 고통당하며
시련당하며 죽어야 되는 그런 모든 것이 구속되어지는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 효력으로 그 능력으로 우리에게 부여해 주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도살당해야 됩니다. 우리가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도살당하는 죽음을 우리가 경험했어야 됩니다. 각이 떠지는 그 고통과 학대를 나 자신 우리들 모두가
경험했어야 될 그러한 우리들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한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그리스도께서 대신 번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자신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러한 모든 시련과 아픔과 고통과 죽음과 사망과 학대 이러한 아픔의 모든
경험들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경험하시고 체험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전해줄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 상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시는 이 도살당하시는 찔림 받아서 피를 흘리고 가죽이 벗겨지고
각 이떠지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자로서의 거룩한 본성을 지니신 죄 없으시고 흠과 결함이
전혀 없으신 완전하고도 온전한 그분의 외형적인 그 거룩한 본성의 표현이 완전히 벗김 당하고 우리 대신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고통과 학대와 아픔을 죽음을 친히 경험하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각이 뜨여졌다라는 것을
깨닫는 그것이 내 살을 받아 먹어라 내 피를 받아 마셔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향해서 부여해 주신 것을 충만하게 인식하고 깨닫고 그것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반응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피와 살이 영양분이 되어서
내 인생의 삶에 본질이 바뀌어지고 그 섬유질이 바뀌어지고 나의 온 존재가 그리스도 화 되어서 그리스도와
같은 자가 되어서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러한 극심한 고통들과 학대들과 부끄러움과 수치와 죽음과 사망 이러한 아픔들을
경험하셨을까요? 아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3부에서 우리가 그 말씀을 교제를 나눴는데요 바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히브리서 10장 7절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0:7 그 때,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 보십시오. 나에 관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을 하러 왔습니다.
이것은 첫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입니다.
옛 언약을 폐하시고 새 언약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구속의 이 문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이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절대적으로 행하기 위한
그분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철저한 복종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을 사랑하고자 했던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 의지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대신에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을
경험하게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한 히브리서10장 5절 부터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에 찔림 받아 도살당하고 십자가에 달리는 그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 철저하게
완전히 도살당하고 겉옷이 벗겨지는 그 수치와 부끄러움 하나님 앞에 우리가 그 수치와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공포심을 우리가 가지고 체험해야 될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 십자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일이 첫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이러한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희생 제물 번제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번제물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번제이신 그리스도와 만약에 관계가 없고 그 번제가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소유하지
않는다 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삶의 고통의 인생의 그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뜨여지는 그런 체험되고
경험된 삶의 과정을 통해서 생명주는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영 곧 영원히 영원토록
생명 주는 영이 되어 주셔서 우리 안에서 번제의 자격을 갖춘 생명을 살도록 움직이고 친히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그리스도의 영 곧 부활의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생명주는
영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나온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생명 주는 영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만
성육신하셔서 육체를 지니시고 인자의 삶을 사시고 이 아름다운 거룩한 본성을 지니신 그분의 아름다운
이런 삶의 거룩한 존재의 본성들이 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쪼개지고,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이러한 삶을
그 십자가 위에서 경험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러한 번제로서의 자격을 갖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그분을 위해서 생명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친히 움직이게 하시는 분이 바로 주의 영
부활의 영 생명 주는 영 이신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십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이 되신 것입니다.
아 ! 여러분 얼마나 우리의 지난날의 생애의 삶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나 자신이 주님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살지 못했다 라는 것이 번제의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알아가고 깨닫고 그것을 충분히
충만하게 인식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부족함이 너무나 많이 드러나는 것을 통해서 그 부끄러운마음 죄송한 마음이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만을 위해서 그리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러한 삶을 사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레위기 1장 1절부터 17절 말씀은 번제물에 대한 규례들
입니다. 율례와 규례가 있죠. 율례는 하나님의 심판을 동반하고 있습니다만 규례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하나님의 철저하고도 강권적인 권면의 말씀 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 번제물 가운데 여러 가지 희생 제물 가운데 첫 번째 하나님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사신
그리스도를 표현함에 있어서 1절부터 17절 말씀 가운데 6절 그는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한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심을 당하는 사건으로
말미암은 사건은 오직 하나님의 만족 하나님의 배부름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을 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번제되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려주시고 고통당하신 그분을 통해서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철저하고도 완전하고도 충만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 1장부터 번제물이 기록된 것은 이런 희생 제물 가운데 번제물되신 그리스도를 앎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고 그리고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온전한 경배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이런 하나님 나라의 아주 지고한 법 가운데 하나인 거룩한 삶을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레위기 1장부터 7장 까지의 희생 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1장은 오직 번제되신 그리스도의 드리는 방법 그분이 십자가 상에서 어떻게 자신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사랑하고 존중하고 순종하고 복종하고자 했는가를 말씀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러한 희생 제물 번제물되신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그 길을 가도록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그 길을 따라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이끌고 인도하시기를 갈망하고 소원하고 완전한 바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충만히 내 삶을 통해서 체험하고, 경험하여서 그 그리스도를
내 영 안에서 경작하고 자라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주시는 양식을 충만히 먹고 영양분이 될 수 있도록
정말 소화가 될 수 있도록 그분의 피를 마심으로 말미암아 그 피와 살을 통해서 우리가 완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그 소유한 그리스도를 주님께 내보이고 드릴 때 주님은 기쁨과 만족이 되는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를 또한 만족하게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닌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를 만족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영접한다 라는
이 의미를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번제물되신 그리스도가 씻겨졌다고 레위기 1장 9절에이 렇게 나오는 데요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번제물을 왜 씻습니까? 이미 흠이 없고 점이 없고 결함이 없고 죄가 도무지 없는 완전하시고 온전하신
그리스도는 이미 깨끗해진 상태인데 왜 씻겨져야 됩니까? 바로 그것은 우리 때문입니다.
그것은 번제되신 그리스도 그분 자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드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드려야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그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그 아름다운 양식 맛있는 음식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 무결하신
분입니다 . 도무지 죄를 짓지 아니하신 거룩한 성령님으로 잉태됨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본성을 지닌 신 이면서 인성을 지닌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있으신 완전 무결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이 그리스도가 1장 9절을
통해서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어놓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완전 무결함, 깨끗함, 순결함, 거룩함 안에서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완전 무결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한 그리스도를 드려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는 씻겨진 그리스도라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드리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번제물되신 그리스도는 먼저 이 5절에서 보면 황소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쭉 보면은 또 이 소에 대한 얘기뿐만이 아니라 무슨 말씀이 나오냐면
10절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11 그가 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바치는 제물이 가축 떼 곧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서 번제로 바치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 제물로 바쳐야 한다 또 14절에 보면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이 가난한 자들 돈이 없는 자들 좀 이렇게 빈곤한 자들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주 가격이 떨어지고 누구나 이렇게 보편적으로 희생제물로 바칠 수 있는 번제물 가운데 산비둘기 또는 어린이집 비둘기 가운데에서 골라서 제물을 드려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은 분량의 아주 영원하신 분입니다. 완전하시고 그 크기와 높이와 넓이가 하늘처럼 땅처럼 바다처럼 그렇게 크시고 충만하시고 말할 수 없이
광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각자 개인의 그리스도를 체험한 분량은 이 사람 저 사람 다 같지 않고 다를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그리스도 저 사람이 경험한 그리스도 같은 것도 있겠지만서도 제각기 종류별로 체험하고 경험되어진 그리스도는 각기 모양과 종류가 다 다를 것입니다.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에 따라서 바로 번제물 되신 그 희생 제물이 숫소이냐 아니면 작은 가축 떼인 양이나 염소이냐 아니면 그보다도 더 훨씬 작은 새들 가운데 집비둘기
또는 산비둘기 아니면 집비둘기 새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숫소를 드리면 얼마나 좋습니까? 숫송아지 5절에서 숫송아지를 얘기하고 있죠 젊은 황소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젊은 황소는 아주 싱싱하고 힘이 센 강건한 바로 그런 제물을
바치기를 다 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도 온전한 커다란 만족을 드리기 위해서 이왕이면 큰 그리스도를 드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크기의 정도의 크기가 증대될수록 증가될수록 확장이 될수록 확대가 되고
이렇게 나타내질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그 우리가 드리는 그리스도의 증가의 크기에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달라진다라는 것을 여러분 명심하시고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들린 자보다는 양이나 염소를 드린 자가 훨씬 크죠
왜냐하면 그 양이나 염소를 드린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드린 사람보다 체험한 그리스도가 훨씬
분량이 크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스도 그 자체는 어제나 오늘이나 그 분량의 크기가 똑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온 우주를 덮을 만큼 만유를 포함하신 광대하시고 우주적이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말 땅보다도 넓고 바다보다도 깊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가지고 있다고
에베소서 3장 19절에 그런 말씀이 써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리스도의 크심과 높으심과 넓으신 그 말할 수 없는 만유 모두를 다 포함하신 다 품에 넣으신 우주적
만물의 모든 우주의 광대함보다도 더 큰 그분의 크심에 있어서 넓으심에 있어서 우리 그리스도가 황소로
이렇게 희생 제물을 드려지는 크기가 그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서 보여주시고자 한 그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표현되고 표출되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 그런 것이 체험되면 체험될수록 우리는 산비둘기나
집 비둘기가 아닌 양과 염소를 드리게 되고 양과 염소보다도 더 큰 수컷 황소를 드릴 수 있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크기의 분량은 오직 광대하시고 우주적인 그 분량의 정도가 영원하신 분이시지만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가 어느 정도의 분량이냐에 따라서 내가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려지는 나의 번제물 희생
제사가 각기 사람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다 다르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어떤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기쁘고 만족하게 하기를 원하시는가요
아마도 열두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그 사도 베드로와 요한 또 사도 바울 선생님 이런 분들은 아마도 커다란
젊은 황소를 아마 잡아서 체험하여서 경험하여서 주님 앞에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왕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보다는 양을 드리기를 원하고 양보다는 커다란 젊은 항소를 드리기를
날마다 이렇게 관심을 갖고 소원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드림에 있어서 이렇게 다른 정도의 다른 차원의 여러 가지 크기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충만하게 인식을 하고 알아간 그분을 통해서 믿음으로 승화시켜서 내가
친히 체험한 그리스도를 드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합니다.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가 나의 믿음의 삶 가운데 그것이 없다라면 우리는 어쩌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같은
번제물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그 만족도는 아주
적을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생각과 하나님이 받는 그 차원의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레위기 1장을 통해서 이 번제물된 희생 제물의 크기가 젊은 황소 또는 양 또는 염소
또 산비둘기와 집 비둘기 이 제물의 크기가 다른 유형의 크기로 나타난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그러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아주 양식인 그리스도를 드림에 있어서 체험된 바 된 그리스도를 드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 항상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내가 알고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체험한 그리스도를 항상 가지고 이렇게 드려야 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레위기 1장 2절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만족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하나님과 친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그 무엇인가는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만족한 양식이요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만족할 수 있는 양식을 원한다니까요 하나님께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원하는 그러한 음식은
바로 오직 십자가에 달리시고 생애를 사신 그리스도 외에는 이 예물 외에는 하나님께 가장 귀한 선물이
있을 수가 없다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해 드립니다.
여러분 항상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무언가를 여러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이 있는데 그 미련한 처녀들은 하나님께 그 주인에게
무언가 좋은 것을 드리려고 하는데 없습니다. 남에게 빌리려고 하는데 그것도 되지도 않습니다. 사려고 하는데도 시간이 없어서 사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바칠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나님만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내 생명의 양식과 음식으로
먹고 체험하여서 그 체험된 양식이 소화가 되고 영양이 되어서 내 온 존재를 바꿔놓은 그리스도를 하나님
앞에 내놓는 삶으로 반응을 보여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받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번제물되신 바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정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과
생명과 뜻을 다하여 살고 수고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싸우기까지 하면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심 전력을 다하여 온 생애를 그 가나안 땅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만 살았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는 그분을 소유하기 위해서 정말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28~29절 말씀을 보면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정말 죽기까지 피흘리기까지 이러한 수고와 애씀을 통하여 내가 그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소유한
그리스도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때 내 보일 때 하나님은 그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를 기쁨과 만족 가운데
영접하고 받으시고 품에 우리를 안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만을 소유하기
위해서 분투해야 되고 정말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라 하는 것처럼 정말 온 생애를 바쳐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성품과 마음을 다해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리스도를 내 안에 생명의 씨가 될 수 있도록 양식을 먹고
소화시켜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자라고 그 자란 그리스도가 성장되고 아주 많은 열매들을 맺을 수 있도록
경작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밭입니다.
우리는 농사를 짓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아름답고 충만하게 산출시킬 수 있는 그 그리스도를 내 안에서 내 삶을
통해서 자라게 하면 그 자라난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키는 이 문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나 개인의
체험의 문제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 2절에 보면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칠 때는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골라 예물을 바쳐야
된다 라고 이 제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 고르반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귀한 선물 여러분 하나님께 가장 귀한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까 ?
돈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봉사도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만족한 선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고 만족해 하시는 하나님의 양식과 음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내 안에서 자라고 성장하게 하고 경작하여서 그리스도를 산출시킬 때 내가 체험한 그 산출되어진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내어보일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만족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안에서 자라나게 해야 됩니다 .
그 가나안 땅에 일곱 족속을 정복하여서 완전히 좋은 땅에 농사를 지어서 열매를 산출시키게 한다는 그 의미는 그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라고 했어요. 왜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일까요?
그리스도 그 좋은 땅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인데 좋은 땅 그것은 그리스도가 실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경작하고 자라나게하고 성장하게 하고 산출시켜서 많은 열매들을 맺게 하려면 농사를 짓는
경작하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땅을 갈아야 돼요 씨를 뿌려야 돼요 해충을 잡아줘야 됩니다.
정말 많은 노력과 애씀이 있어야 됩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을 정복하기까지 그러한 많은 노력과 수고와
애씀이 있어야 그 땅에서 좋은 소출들 경작지인 그 가나안 땅에서 좋은 열매들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고 경작한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농작물처럼 돌보는 것입니다.
많은 애씀과 노력과 수고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유익하고자 하는 물질을 사용 하고자 할 때 그 농작물이신 그리스도를 돌보기 위해서
희생과 고통과 아픔 이런 것이 함께 동반되는 것입니다.
농부의 삶은 말할 수 없는 미래에 나타날 곡물의 열매만을 보고 그가 그렇게 애를 쓰고 수고하는 것처럼
내 안에서 자라고 경작된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삶이 그 미래의 아름다운 소망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우리가 인내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때 모든 것을 이기며 정복하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한 이 그리스도를 정말 잘 자라게 하고 성장시켜서 좋은 열매들을 맺을 수 있도록 경작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경작되어진 열매로 보여진 그 선물을 보시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시게 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번제이신 그리스도의 그것을 우리가 소유하고 경험하고 체험해야 됩니다.
지금 이 레위기 1장을 통해서 어떻게 번제물을 드렸는냐가 아니라 제물을 어떤 방법으로 드리는냐를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이 되기를 하나님이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번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레위기 1장 5절에 그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십자가 상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실 때 번제물이 되신 그 분의 죽음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겪으셨던
그런 아픔과 시련과 외로움과 쓸쓸함 그 말할수 없는 고통들 이런 것을 우리는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일들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체험을 해서 우리 것으로만들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용납하시고 모든 것을 허락하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 형을 선고하려는 그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께서 고개를 숙이시고 그 빌라도가 최종 선고하는
그 십자가 형 그 모든 유대인들이 저 예수를 죽이라라고 그렇게 크게 외치는 외침 소리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님께서는 바로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런 삶을 통해서
우리의 것을 대신 담당하시고 주님께서 가졌던 그 거룩한 본성 안에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성품들
아름다운 미덕들을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신의 뜻을 행하기 위한 일을 하신 그리스도를 보시고 굉장히 기뻐하시고 만족해
하시고그 그리스도만을 하나님의 양식으로 삼으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가오는 외부적인 내부적인 어떤 가족이나 직장에서나 삶을 통해서 다가오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저항하지 마십시요 허락하십시요 그것이 희생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삶의
길입니다.
왜 그분께서 죄없는 삶을 사시고 죄 없는 본성을 지니신 그분이 거룩한 본성을 가지신 그분이 왜 죽음을
그렇게 허락하셨을까요? 오히려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왜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놓으셨고 내려놓으셨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일을 경험해야 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주님께서 학대받으시고 고통 당하시고 죽음을 경험하신
것은 하나님의 번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의 양식이 되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고 만족하게 하는
일들을 하시기 위해서 그 모든 일을 허락하시고 인내하시고 정말 아버지만을 위에서 드리고자 하는 그분의
존재의 모든 것을 영과 혼과 육체를 통해서 표출된 아버지 하나님만을 극진하게 생각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이런 고통들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하나님만을
기쁘고 만족하게 하시려는 그분의 절대적인 사랑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것이 번제물로서의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드림입니다. 이 드림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 그것이 살을 먹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생애를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그것을 우리가 그 몸을 통해서 이루어주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분의 살을 먹는 행위요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속죄제물이 되셔서 인간의 본성의 죄들을 제거시켜주고 그 본성의 죄들 본성 안에 있는 죄들을
통해서 허락된 그 열매로 나타난 죄들과 허물들을 바로 제거해 주기 위한 속건제물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번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희생 제물의 효력을 갖고 오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예수님과 같은 그런 마음을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내 몸을 내 마음을 내 모든 존재를 허락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의 준비가 여러분 있으신가요?
매일의 삶을 통해서 매 시간 시간에 조그마한 이러한 드림이 조금씩 조금씩 나타날 때 그것이 자라게 되고 경작되어져서 아름다운 열매가 되어서 그 아름다운 열매의 소출을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작된 그리스도 자라난 그리스도 내 안에 그리스도를 자라게 해야 됩니다.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자라게 됩니다. 여러분 굉장히 아주 중요한 의미 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과 피흘리심을 통해서 죽임당하신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바를 내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인생의 삶을 사시면서 조금씩 조금씩 경험하고 체험하여야 결국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소출의
열매 경작된 그리스도를 내가 내어 보일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번제물의 가죽을 벗긴다라는 이 말씀은 제가 한 17년 전에 이 말씀에 대해서 자세하게 여러분들과
교제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본성 속에 있는 인자로서의 인성으로서의 미덕에 외형적인 모든 보여지는 표현들이 완전히 발가 벗겨지도록 허락되어졌음을 내버려 두셨음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는 일입니다.
갈릴리 사람이다 그게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
갈릴리 사람 혼혈족속 원래는 유대인이었으나 전쟁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그 적국에서 이 갈릴리 지방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어떤 세상적인 풍속을 따라 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혈통을 혼합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유대 민족의 다른 민족으로 부터 제외시키기 위한 그런 정책적인 일들 가운데 혼혈 정책이 있었습니다.
이방 사람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그들이 순수 유대민족의 혈통을 이렇게 빼앗겨 버리고 그만 이렇게 혼혈 족속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 같이 갈릴리 사람까지도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모욕을 당하시는 부분은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그분의 아름다운 본성 선하신 그분의 품성 말할 수 없는 그런 인자로서의 성품이 완전히 벗겨 버려지는 그 아름다운 품성이 모두 제거되어지는 일들을 자신이 그러한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질과 조롱과 업신여김과 비웃음을 다 허락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번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기 위한 그리스도의 생애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48절에 보면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우리가 하지 않느냐 사마리아 사람 그들은 잡혼족
이에요. 유대민족에서 벗어나서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유대 사람으로서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자들이었습니다. 아 ! 당신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우리가 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 당신은 도대체 어떤 자냐
이 말할 수 없는 모욕 말할 수 없는 비웃음 말할 수 없는 조롱이죠.
당신은 귀신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 하는냐 당신은 바알세블의 왕의 도움을 받아서 그러한 능력과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사단에 능력을 힘입어 그러한 이적들 표적들을 기사들을 행한다 라고
그들이 그렇게 왜곡하여서 말했을 때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귀신들려 당신이 미친 것이 아니냐
우리가 당신의 가족을 다 아는데 그 가족 당신이 어떤 사람이야 당신의 출생은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이러한
모든 일들은 모든 그 상황들 속에 펼쳐진 그러한 사건들은 번제물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아름다운 거룩한
본성을 통하여 지니셨던 그 아름다운 품성들이 모두 가죽이 벗겨지는 의미라고 볼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일들 열두 제자들이 그러한 생애를 살았고 사도바울 선생님이 그러한
가죽 벗겨지는 삶의 생애를 살 았던 것을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 우리가 살다보면 오해를 많이 받을 수가 있죠 실제 잘못해서 오해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롱과 비웃음과 간교한 말로 인하여 오해의 헛된 소문 잘못된 이슈로 말미암아 부끄러움
당하는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을 여러분 개의치 마십시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번제물되기 위한 가죽이 벗겨지는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 체험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결코 호소하거나 변명하거나 핑계 대지 마세요.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고 이 일을 시키려고 말씀을 하였다면 예수님보다도
더 많은 말을 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허락하시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것은 희생 제물 번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을 기쁘고 즐겁고 만족하게 하는 음식이 되고자 그런 모든 일들을
감수했다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예 하나님께 생명의 양식 기쁨의 양식 만족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 펼쳐진 여러분들의 많은 비난과 수난과 시련과 아픔과 고통 학대 조롱 비웃음 여러분 이것을 허락하십시요 내버려 두십시요 그것에 변명하거나 저항하거나
그것에 핑계를 대면 희생제물 번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을 만족시키신 그리스도를 내가 잃어버리고 빼앗겨 버리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단의 악한 영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이런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 8절에 사도바울 선생님이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 하나님의 종으로서 정말 자신의 외적인 그런
거룩한 본성을 지닌 아름다운 품성이 다 벗겨지고 이렇게 부끄러움과 수치와 창피와 조롱을 당하는
사역자들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을 뜬다 라는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죽이 벗겨지는 일들을 통해서는 여러 가지 오해나 조롱과
부끄러움과 수치와 손가락질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나 자신을 보호하거나 이유를 대거나 핑계를 대지 않는
것이 가죽을 벗겨지는 삶을 산다는 것과 함께 각을 뜰 것이요라는 말씀을 합니다.
각이 떨어진다라는 것은 뭡니까? 여러분 각 부분을 다리면 다리, 내장이면 내장, 머리면 머리, 다 그분의
용도에 따라 부위별로 다 잘라짐을 제거함을 분리됨을 나뉘어짐을 당하는것,제험하는것,경험하는 것이
바로 각이 떠진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남들이 우리를 보고 평가할 때 좋게 평가하면은 우리의 잘려지는 일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데
나쁘게 오해의 소지가 너무나 많을 수 있도록 전혀 무관한 일들에 대한 헛소문과 잘못된 일들 잘못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것을 핑계를 대고 이유를 대고 변명하고자 합니다.
잘려짐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막고자 합니다.
잘못해서 비난을 당하면 당연하죠. 그러나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비난당한다라면
그게 바로 각이 터지는 행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셨던 그분의 삶 속에서 비난을 받을 만한
일들이 있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당신이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냐? 귀신 들린 자가 아니냐?
이러한 여러 가지 비난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예수님께서 각이 떠지는 삶을 사신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해서 좋게 얘기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리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쁘게 전혀 다르게 하얀 것을 검다 하고 검은 것을
하얗다라고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행위에 대해서 일들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것에
대해서 기쁨을 가지고 받아들일 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허락하시고 받아들이고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것이 각기 떠지는 삶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과 오해 어떤 나쁜 소문들 이렇게 우리를 향해서 나쁜 것이 이렇게
다가올 때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나 자신의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하기로 정합니다.
본성적으로 핑계를 대고 이유를 대고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서 내가 그러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일생을 사는 동안에 33년 반 동안의 특별히 공생애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끊임없이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일을 전혀 외부로 부터 다가오는 그러한 공격에
전혀 방어할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위해서 자신의 그 유월절 어린양이 되는 십자가 상에서 죽는 그 시기와 때를 마치는 것을
어그러뜨리는 그 일이 아니고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방어하거나 하는 그런 행동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바로 그러한 삶을 사실 때 그분의 존재의 생명은 산산이 산산이 각이 뜨여지고 분리가 되고 나뉘어지고
잘라지는 고통을 감수하는 그러한 삶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감수하는 삶이 생명이 되어서 하나님께 만족을
드릴 수 있는 양식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을 감수한 생명 그 생명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족스러운 음식 그것을 우리가 똑같이 경험하고 체험할 때 그 그리스도가 경험한 그 삶의 고통을 감수한 생명의 삶을 하나님께 우리가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를 기뻐
받으신다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러한 고통을 감수하는 각이 떠지고 가죽이 벗겨지고 아픔과 시련과 학대와
고통을 감수하는 생명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내 안에 그리스도를 자라게 해야 되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살게 해야 됩니다. 살아 나타나줘야 됩니다. 생명이 되어줘야 됩니다. 그리스도를 내가 소유해야 됩니다. 그리스도를
임재시켜야 됩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경작되어서 아름답고 큰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그러한 경작되어진 삶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살면 그와 같은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런 삶의 생이 저절로 그림자처럼 따라오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은 비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하여도 다가오지 않습니다.
순교한다고 그래서 죽음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나요? 아닙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체험한
고통을 감수하는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런 고통을 감수하고 학대를 감수하고 아픔과 죽음을
감수하는 생명의 삶을 살 때 우리가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더지는 그런 삶의 길이 우리 앞에 현연하게
실제적으로 나타 나진다는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내 안에 계신 번제물 되시어서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뜨여진 그리스도를 따라 삶의 길을 살면
저절로 그와 같은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진 그 생명의 고통을 감수하고 생명의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같은 삶의 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두려운가요 무섭습니까?
예 조금 조금씩 매일매일의 삶을 통해서 그러한 일들을 여러분이 가지셔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그것이 물로 씻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인생을 사시고 생애를 사시고 3년 반
동안에 정말 공적인 생애를 사시면서 움직이셨을 때 그리스도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더러움으로
부터 완전하게 매일매일 매 순간 그리스도를 씻어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보존하시고 방어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서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삶의 길을 가고자 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하고 방어한다라는 이 사실 우리가 아닙니다. 성령님에 의해서 씻김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 9절에서 보면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물은 바로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성령님께서 우리를 씻어주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막아주십니다.
그러한 길을 가고자 할 때 그것을 이겨나가고 정복할 수 있도록 강건한 자로 우리를 만들어 주십니다.
이 세상이 우리를 더럽게 하고 부정케 하고 죄의 얼룩짐으로 어둠이 다가옴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실족시키려
하지만 성령님께서 우리를 막아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씻어주셔서 하나님 앞에 기쁨과 만족이 되는 희생 제물인 번제의 제물이 피흘리고 도살
당하고 죽음을 당하고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질 때 하나님께서 완전히 기뻐 받으시는 만족스러운 향기다라고 그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 내용입니다.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와 같이 그리스도는 피 흘리시고 십자가 상에서 도살당하시고 죽으심을 당하면서까지 가죽이 벗겨지시고 각이 뜨여졌습니다.
그 씻겨진 다음에 제단에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연기가 올라가겠죠.
그 연기를 통해서 냄새가 올라가겠죠. 멀리 하늘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 그 제물의 음식에 그 양식에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만족스러운 향기를 통해서 기쁨으로 받아들이셨듯이 번제물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또한 만족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하게 기쁨으로 받으시는 양식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번제물 되셔서 불에 불살라진 그 번제물되신 그리스도를 우리도 똑같이 그런 삶의 길을 따라 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와 같은 번제물되신 희생 제물과 똑같은 삶의 길을 가진 자들을 가장 만족스러운 향기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것입니다. 그 번제물은 한꺼번에 태워진 것이 아닙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오랜 시간을 통해서 태워짐으로 말미암아 그 태워짐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만족스러운 향기 여러분 화제라고 그랬어요. 화제 만족과 화평과 화해와 안식을 가져오는 향기 그런 화해의
만족스러운 향기는 하나님께 가장 기뻐받으시는 그런 누림의 양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번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하나님만을 위해서 전적으로 절대적으로 살고자 했던 그와 같은 삶의
모습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그리스도와 같은 삶의 번제물이 되신 우리를 보시고 만족스러운 향기를
맡으시고 우리를 다 그 하나님께로 올라갈 수 있는 기쁨의 향기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기억하는
그러한 자들이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한다면 우리에게는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그분으로 인하여 평안과 화평 안식이 동시에
우리에게 소유하게 하는 것이 참 놀라운 비밀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하신 이상 하나님은 하나님의 달콤한 그 열납된 향기를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번제의 의미입니다. 하늘로 올라간 그 향기는 하나님께로 갈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하늘 공중에 퍼져
있을 것입니다.
그 번제물의 결과가 희생제물 번제물을 들인 재로 나타납니다.
그 재는 뭡니까 나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해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드리기 위해서
그 드리고자 했던 희생 제물에 하나님께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하게 받으셨구나! 만족하게 받으셨 다는 것을
재를 통해서 그 재가 아주 소중하고 귀중한 것입니다.
재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재가 효력을 갖고 오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만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 바로 번제의 희생 제물의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번제물이 되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께 달콤함을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함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까지도 안식으로 인도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예수님께서 번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유일한 길은 번제물되신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의 삶을 사는 일입니다.
그분의 생명은 다투는 생명이 아닙니다. 허락되고 낮아지시고 내놓으셔서 자신을 아낌없이 버리는 삶이었습니다. 내놓는 삶이었고 허락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죽은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고통을 감수하는 생명이 되므로 그 생명의 그 삶의 모습과
결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위한 생명으로 사는 것 하나님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만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사는 삶 하나님을 위한 생명을 위한 삶 그것이 번제로서의 그리스도를
취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번제물 되셔서 그 가죽이 벗겨지고 그리고 각이 떠지는 그 다툼의 생명이 아니라
자신을 내놓는 자신을 내려놓는 각이 떠지고 가죽이 벗겨지고 생명을 내놓는 고통을 감수하는 생명을 살 때
우리는 그분과 하나가 되어 안수한다 라는 의미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어 연합되어서 이 땅에 사셨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고 깨끗이 씻어지는 일들을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주신다 그게 경작하고 자라게 하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살리는 일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자라나게 하는 일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고 성장시켜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온전한 하나님이
만족시키는 그러한 자로 이렇게 조성해 주시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가 이렇게 있기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선제적으로 이러한 모든 과정들
고통과 시련과 아픔과 학대와 죽음과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을 말할 수 없는 그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떠지는
그러한 말 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들을 통과하는 일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번제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번제 제물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소유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그리스도의 양식을 우리가
소유해서 그리스도를 내놓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기쁨 가운데 만족스럽게 받으신다는 것을
끝으로 말씀을 마치며 이 레위기 말씀 1~4부까지의 말씀을 여러분 묵상하셔서 여러분이 이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여서 여러분 심령안에 자라게 하시고 잘 경작하셔서 하나님앞에 아름다운 양식으로
이왕이면 산비둘기 집비둘기가 아니라 숫소와 같은 향기로운 번제물이 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 나무 내가 겪어야 할 고통과 시련 내가 받아야 할 조롱과 학대와 멸시 내가 발가 벗겨져서 수치를 당해야 하고 내가 각이 떠지는 고통을 당해야 하고 피흘리고 죽어져야 했음에도 나의 주님 예수그리스도 께서 대신 담당하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셨음에 그동안 이 것이 제것인줄 알고 허랑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있었고 그 피흘리시고 죽으셔서 3일만에 부활의 영으로 살리시는 영으로 오신 성령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내안에 받아들이지 못하여 경작하지도 않았으니 열매가 당연히 없었습니다 너무나 죄송스럽고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감사한것은 이 말씀 정리하는 것을 허락하사 날마다 씻을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을 왜 하는냐고 비난받을때 변명하고 방어 하기에 바빴던 저의 부끄러움을 드러나게 하는 말씀 이었습니다 아무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번제 희생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서 단 한마디도 자신을 위해 변명하지 않으셨던 모습에 이런 저의 모습이 부끄럽고 부끄럽고 너무나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런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신 주님께 존귀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말씀을 읽으시는 우리 독자분들 께서도 다른 말씀도 다 귀한 말씀이지만 이 레위기에 희생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 말씀은 내안에 소유하게 될때까지 묵상하셔서 부디 생명을 소유받는 그리스도를 내안에 모셔서 경작하여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어서 하나님앞에 내어 놓을수 있는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께서 흡족하게 받으신 후에 우리에게
다시 내려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누리는 안식과 화평을 갖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깊이 묵상 하시다 보면 마태복음에 나오는 열처녀의 기름이 무엇인지 열왕기하 4장에 나오는 엘리사의 기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게 되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