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이들 제166호 용처럼 말하는 미국이 일어났다
성령에 대한 연구: 증인이신 성령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만약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믿는 영혼은 하나님의 의지에 완전히 순복합니다. 하늘의 왕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는 사람과 거룩하고 친밀한 교제를 하십니다. 그리고 풍성하게 나타난 그분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은 부드러워져서 어린아이 같은 의존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속절없고 무가치한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는 그분의 능력과 기꺼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과 몸을 의탁해야 합니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저 끊임없이 활동하는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혼들을 이끌고자 하는 한 목적을 가지고 열성적인 믿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는 것은 논리적인 설교, 즉 지성을 확신시키는 설교가 아닙니다.
마음은 설득되고 부드럽게 녹아져야만 합니다. 그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되어야만 하고, 모든 열망은 하늘을 향해 지향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삶에 실천해야 합니다.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장악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물은 우리 자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임명하신 것을 믿음으로 보기 때문에 전혀 혼돈이나 불신은 없습니다.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고, 우리가 믿기만 하면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시겠다는 엄숙한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성령에 대한 연구: 성령의 본질은 오묘임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7).
성령이 어떠한 분이신지 우리가 꼭 정의할 수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혜사, 즉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시면서 성령께서는 "자의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분에 대해서 분명히 언명되어 있습니다(요 15:26; 16:13).
성령의 본질은 오묘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을 설명할 수 없는데, 이는 주께서 인간들에게 그것을 계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공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성경절을 모아 거기에 인간적인 해석을 가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하여 교회가 튼튼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이러한 오묘에 관하여는 침묵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성령의 직무는 다음의 그리스도의 말씀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죄를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죄인이 성령의 소생시키는 감화에 응답하면 그는 회개하게 되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일의 중요성에 관하여 깨우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회개하는 죄인에게 성령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성령은 구주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효력 있게 만들어 주는, 재생시키는 대리인으로서 보내신 바 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의 시선을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 드려진 위대한 희생 제사로 향하도록 이끌고,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며, 죄를 깨달은 영혼에게 성경의 귀중한 것들을 열어 보이시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십니다.
사랑의 편지: 산 아래 골짜기를 지나며
오랜만에 바쁜 일상을 벗어나 산으로 향했습니다. 까마득히 높은‘스모키’산 정상까지 구불구불 닦여진 길을 거뜬히 달리는 차 속에선, 모처럼 함께 하는 나들이에 흐뭇해진 가족들이 얼굴에 한껏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비록 빗방울이 하나 둘 돋는 흐린 날씨였지만 산을 향하는 마음은 더없이 가벼웠습니다.
낮은 산봉우리에 걸쳐있는 회색 구름을 뒤로 하며 점점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차창 밖으로 골을 채운 하얀 안개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흩어지곤 합니다. 흐르는 계곡물과 함께 어우러진 산 구비 길을 몇 번이나 돈 다음 드디어 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꼭대기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햇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산 아래 골짜기와 산꼭대기가 이렇게 다르다니! 갑자기 다른 나라에 옮겨온 듯 너무나 다른 빛나는 산 위의 모습에 모두 놀라고 말았습니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어두운 골짜기의 구석구석을 비치는 환한 햇살을 보고 산에서 마신 푸른 공기와 서로 나눈 웃음으로 행복해진 산행은, 답답한 일상이 기다리는 낮은 세상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습니다. 산 아래로 돌아오는 길, 차도 산에서 내려오기 싫은지 괜히 흔들리는 듯 느껴졌습니다.
변화 산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 빠듯한 일상으로부터 지친 몸을 쉬던 제자들은, 환한 하늘 영광의 빛으로 변화하신 예수님과 함께 그냥 산 정상에 눌러앉아 살고 싶었습니다. 마치 하늘이 땅에 내려온 듯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황홀하게 펼쳐져 있는 빛난 변화산 꼭대기는, 시험과 시련이 도사리고 있는 산 아래 골짜기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져야 할 고난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산 아래의 삶과는…
세 제자의 마음은 다 같았습니다. 다시 마주해야 할 산 아래의 일상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그러나 이내 환한 빛은 사라지고 그들은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변화산 꼭대기에서 주님과 황홀한 시간을 가집니다. 일상의 시름은 찬송 속에 녹아 없어지고, 가슴 뜨거운 기도는 아름다운 향처럼 피어 오릅니다. 하늘이 가슴 속에 열리고, 계속되는 주님과의 달콤한 교제로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마냥 산꼭대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려가 우리를 기다리는 산 아래의 삶과 만나야만 합니다.견뎌내야 할 시련과 시험이 뭉친 골짜기의 일상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온갖 어려움의 실타래들이 엉킨 산 아래의 삶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섬겨야 할 영혼들이 서성이는 낮은 세상으로 내려와야만 합니다.
변화산에 있었던 사람은 산 아래 골짜기를 잘 지냅니다.하늘의 영광이 머무는 산꼭대기에서 하늘빛에 푹 잠겨 본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함께 나누던 하늘의 대화를 들어본 사람은…
변화산에 있었던 사람은 어둔 세상 골짜기를 잘 견딥니다.가슴에 간직된 환한 하늘빛이 어두운 세상 구름 다 몰아내고 마음 가득 담아온 하늘의 사랑 차가운 세상 공기 다 녹이기에…그리고 변화산에서 들려주신 주님 음성 아직도 귀에 울리기에…“이는 내 사랑하는 자니…”
주님의 흔적 담긴 인생의 변화산은 삶의 골짜기를 환하게 비춰줍니다. 주님의 체취 담긴 마음의 변화산은 산 아래 삶을 윤택하게 해줍니다.
그날 스모키 산 위에서 쬐던 햇살이 아직도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듯…
글/강영은
신앙1부: 사라지는 미국 언론의 자유
뉴욕 리버티 섬에 우뚝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 무게 225톤, 횃불까지의 높이 46m, 집게손가락만의 높이도 2.44m나 되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 오른손에는 평화의 상징인 횃불이 들려 있고, 왼손에는 미국의 독립 기념일인 1776년 7월 4일이 적힌 독립 선언서가 들려 있다. 여신상의 발은 노예 제도를 상징하는 쇠사슬을 밟고 있고,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의 뾰족한 일곱 개의 첨단은 세계 일곱 개의 바다와 일곱 개의 대륙에 자유가 퍼져 나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의 여신 조각상이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를 나타내고 있지만, 미국의 자유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쇠퇴의 길에 접어들고 있으며, 암암리에 개인과 시민의 자유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헌법의 재해석이라는 명제 아래 미국의 헌법에서 보장하던 자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1) 위협받는 미국 언론의 자유
미국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자유를 부르짖으며 등장한 자유 진보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들의 주장이 더 나은 자유를 미국 사회에 가져올 듯이 보이지만, 사실 미국의 진정한 자유는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보이지 않게 언론과 미디어계에 자유가 억압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 닥터 로라 토크쇼와 언론의 탄압
1998년경에 미국에서 방송되던 Dr. Laura의 라디오 토크 쇼“Do the right thing”은 미국 국민 수백만 명이 즐겨 듣는 인기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 쇼 중 두 번째로 꼽히던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Laura Schlessinger”박사는 이 쇼로 유명세를 타게 되어 저작 및 강의와 세미나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고 그녀의 토크 쇼의 청취자는 나날이 늘어갔다. 적어도 2000년도 9월 “GLAAD”(동성연애자 옹호협회)라는 엄청난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로라 박사는 정통 유대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많은 부분에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녀의 배경과 관점이 동성연애자 협회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로라 박사는 한 잡지의 인터뷰에서“나는 결코 동성연애자들을 변태적인 사람들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동성연애는 이성 간에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벗어난 것이며, 성경이 금하는 것이라고만 말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그녀의 이런 관점은 많은 종교 단체의 관심을 끄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자 이 일로 인해 로라 박사는“GLAAD”(동성연애자 옹호협회)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GLAAD 협회의“닥터 로라 프로그램 중지시키기 운동”이 착수되었다. 로라 박사가 텔레비전에 출연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 첫방송 일정 6개월 전인 2000년 3월, 동성연애자 협회에서는“StopDrLaura.com”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그 웹사이트의 목적은 파라마운트 텔레비전에 로라박사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웹사이트가 개설된 지 10개월 만에 5천만 명이 이 사이트를 방문하기에 이르렀고, 이것 때문에 로라 박사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까지 34개 도시에 생겨났다. 로라 박사는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협박과 폭탄테러의 위협을 받았다. 그 결집한 반대 운동의 결과로, 170개의 광고주가 닥터 로라 박사 TV 프로그램 후원을 중단했고, 30개가 넘는 라디오 방송국이 그녀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거절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하여 2001년 3월 30일 그녀의 토크 쇼는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2. 왜곡된 이중 잣대와 표준
레즈비언 자유연애주의자“태미 부르스”는“The New Thought Police”라는 책에서 동성연애자협회를 옹호하면서 매우 불일치한 행동을 나타냈는데, 그것은 곧 동성연애자들이 그들의 의견과 감정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나타낼 언론의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닥터 로라같이 동성연애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언론의 자유는 무시해버리고 매장하는 것이었다. 곧 그들은 자신들의 표현 자유는 주장하면서, 그들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의 표현 자유는 억압하는 것이다. 동성연애옹호협회(GLAAD)를 후원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단체 중에, 거대한 방송국으로 꼽히는 MTV와 보드카 주류 회사가 있다. 그런데 그 배후를 살펴보면, 보드카 회사는 MTV와 GLAAD의 자금을 대주는 주 후원세력이며, 놀라운 사실은 동성연애자협회 대표자가 MTV의 대표회장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배후의 세력과 GLAAD의 천재적인 노력으로 로라 박사의 바른 증언과 그후원자들, 즉 미국의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의 관점은 점점 수그러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3. 부당한 탄압
닥터 로라의 경우는 더 이상 드문 예가 아니다. 지금 미국은 도덕과 전통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이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방법으로 공격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현재의 흐름은 동성연애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의 화살이 당겨져 있다. 미국의 그리스도 말일성도 교회(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의 교인이었던 케넷씨는 얼마 전 동성연애자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단체였던 그의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그 이유는 케넷이 그의 종교적인 이의에 대해 그의 보스에게 보낸 사적인 이메일 때문이었는데, 케넷은 세 명의 고위직 간부에게 불려가 그의 불평이 담긴 이메일은 부적당한 것이며, 연방정부의 방침을 위협하는 것일 뿐 아니라, 회사에 수치를 가져오는 것이었다는 경고를 받았으며 곧 해고되고 말았다.
덴버에 있는 AT&T Broadband에서 가수로 일하던 침례교회 교인이었던 알버트씨는 그가 부르던 노래 가사 중“서로의 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 계속적인 반대를 받다가 결국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는 그의 종교적인 관점을 그냥 노래가사에 실었을 뿐이지 동성연애에 대해 특별한 비판을 가한 것이 아니었다는 설명의 편지를 상사에게 보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로 가장 맹렬한 공격을 받은 사람은, 동성연애를 중단하고 그 세계를 떠난 자신의 경험담을 전하고 다니는 사람“팀 윌킨스”였다. 노스캐롤라이나“랄리 뉴스”신문사의 부장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전 동성연애자였던 그의 과거와 그것을 청산한 경험을 표현한 이유로 직장으로부터 해고당했다. 또 전 레즈비언이었던“이벳 쉬나이더”는 과거를 청산한 자신의 변화 이야기를 강의하기 위해한 대학 캠퍼스로 가던 중 일단의 동성애자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결국 경찰의 호위를 받고야 겨우 강의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2) 지구촌 세계 언론 자유의 위협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또한 종교의 자유가 공격을 받는 일은 비단 미국에서 뿐만이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성적인 일에 관하여 어떤 단체를 비판하거나 증오하도록 선동하는 것을 범죄로 간주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캐나다 헌법 조항 C-250에는 어떤 개인이 자신의 도덕적 확신이나 표준으로 동성연애에 대한 비판이나 증오를 사회에서 표현하면 법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된다. C-250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법이 언론의 자유, 특히 종교 단체의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동성연애를 정죄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도“증오 인쇄물”로 간주될 것에 대해 매우 염려하고 있다.
캐나다는 이미“Hate Crime”법(어떤 인종이나 단체나 사상을 비판하는 말이나 그런 인쇄물을 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동성애자들의 활동을 비판하는 것을 핍박하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법이 좋은 취지로 제정된 법이라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진리 그대로를 믿는 신앙인들에게 불리한 법이 될 소지가 농후하다. 왜냐하면, 성경이 정죄하는 죄를 죄라고 불러야 하고, 또한 성경이 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정체나 짐승의 정체 등을 연구하고 밝혀야 하는 요한계시록 연구나 성경 예언을 다룬 인쇄물들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영국 콜롬비아의 교사 크리스 캠플링씨는 동성연애자들의 생활에 대한 비판적인 편지를 경찰관과 신문에 보냈다는 이유로 한 달 동안 징계 처분을 학교로부터 받았다. 동성연애를 학교 안에서 증대시키려는 모임과 활동을 저지하는 그의 도덕관과 신앙으로 오랫동안 지속적인 모욕을 당하던 그는 결국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해 교사직을 사직하고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자신의 도덕적인 확신을 표현하는 자유가 규제와 반대를 받는 일이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점점 증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규제는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되어 있지 않다. 2010년 4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학교에 다니던 16세 이슬람계 여학생“Najiwa Malha”는, 이슬람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히잡”을 벗으라는 학교의 권고를 거절하자 강의실에 들어가 수업을 받는 일을 금지당했다. 여러 날 수업을 빠진 그녀에게 스페인 헌법의 기본 교육의 의무를 위배한 이유로 벌금형이 선포되었다. 2010년 중반 Pew 설문조사 기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75%나 되는 사람들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들의 신조나 신앙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억압당하며 사는 것이 드러났다. 개인적인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조차 종교에 대한 규제와 적대감이 점점 더 증가되고 있는 현상이 포착되었다. 한 예로 스위스에서는 이슬람교 회당의 뾰족탑을 세우는 일이 금지되어 있고,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에 있는 이슬람 문화센터 건물 때문에 분쟁이 일고 있다.
3) 자유의 대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유가 허용된 민주 국가라고 하면서, 어떤 개인의 사적인 생각이나 자유로운 사상을 표현하는 일에 제재를 당하게 되어 있는 사회는 결국 독재자와 독재의 정신을 길러 내는 양성소가 되고 만다. 표현의 자유가 있고, 그런 자유가 보장되고 맘껏 활용되는 곳에서 독재의 권력은 자라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가 치러지는 것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언론 탄압의 현상과 이슈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덕과 종교에 관한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보수파들과 자유주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진보파 사이에 압력이 서서히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런데 보수적인 사람들은 아직 자유주의 사람들보다 조직력이나 연합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수파 기독교인중에 극우파 기독교인들의 결성과 과격한 행동들이 드러나 주목을 끌고 있다.
4)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한 종교 운동
성경은 마지막 때에 거대한 종교 운동, 곧 정치와 연합한 종교 세력이 온 세상을 휩쓸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보라. 현시대의 진보 좌파의 두드러진 활동과 노력은 성경 예언의 성취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런데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앞으로 도래할 종교 연합 세력 하에서의 개인의 자유와 종교 자유의 전망은 어둡다. 비록 이 연합 종교세력이 이적을 베풀어 온 세계를 미혹시키므로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놀라운 운동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이 연합세력은 하늘로부터 인정받은 세력이 아니다. 종교를 가장한 이 세력은 하나님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남은 자손을 핍박하기 위하여 사단이 사용할 하나님께 반역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불행한 사실은, 사회의 도덕과 종교가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많은 진실한 사람들이 이 거짓 해결책을 받아들이고 인간이 만든 법을 따르며, 그 권한으로 사람들을 강요하여 그들의 정의를 사회에 실현하려고 하리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5절에 따르면 이 세력과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이 세상의 도덕과 자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방법과 해결책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보호해야 할 것이며, 자유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이 지구 상에 평화와 도덕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날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가 무법과 압박과 고통의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우주의 죄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오셔야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가 바라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다.“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신앙2부: 사라지는 미국의 개인의 자유
미국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 개인적인 자유가위협을 당한다는 의미는 전 세계의 사람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당하고있다는 의미가 된다.
동물 권리 및 환경 운동가인“케이티 토마스”는 자신이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경찰차들과 헬리콥터들이 항상 그녀를 미행했고 한때는 연방수사관으로부터 제지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시가 사라졌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그녀를 감시하던 일에 싫증이 난 것일까? 그러나 다른 환경 운동가들이 말하는 GPS 추적장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자신의 차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녀의 차 바퀴 안쪽을 손으로 더듬어 본 결과 그녀는 강한 자석에 의해 부착된 30센티 길이의 배터리에 가는 선으로 연결된 전자기기를 발견하였다. 그녀는 그 전자 기기를 차에서 제거한 후 관계 기관에 알리는 것이 두려워 자동차 뒤 트렁크에 보관했다. 후에 그녀의 변호사가 미국 연방 검사에게 알리자, 그 검사는 그 전자 기기가 미국 연방 수사국 소유라고 인정했고 그 전자 기기를 연방 수사국에 반환하도록 요청했다.
비록 이 사건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2011년 5월 자“Wired”라는 미국의 주요 기술 월간지에 실렸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한 동물보호 운동가가 이런 취급을 당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실리콘 시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공상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기구들이 이제는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기구들이 우리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심각한 도구로 사용되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위성통신, 인터넷, 휴대전화에 의해 사용되는 온라인 은행, 휴대용 컴퓨터 그리고 휴대용 태블릿은 이제 대부분 사람들의 생활의 방편이 되었다. 이러한 방편들을 통해서 우리가 중요한 전자 데이터의 흔적을 남기게 될 때, 그리고 이런 것들이 잘못된 손에 넘겨지게 될 때 그 일은 우리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최근 들어서 군대는 최신식의 하드웨어로 현대화되었고 드론, 스파이위성, 사이버 전쟁 그리고 스파이 행위와 전쟁에 사용되는 다른 과학기술에 관한 뉴스를 보고 많은 사람은 경악하고 있다.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너무나 급성장하여 일반시민이나 단체들, 심지어 정부들까지도 그들이 당면한 미지의 영역, 즉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특히 가장 걱정거리인 법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1) 첨단기술 시대에서의 사생활 VS 안보
테러리스트에 의한 9월 11일의 미국 본토 공격으로 대두된 국가 안보의 필요성은 최첨단 기계들의 발명과 더불어 개인의 자유들의 합법적인 보장과 심각하게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911 사태 이후에 발효된“애국자 법”(Patriot Act)은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시켜 버렸다. 10단어로 구성된 USAPATRIOT은 단어마다 의미 있는 뜻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U - Uniting (연합하는)
* SA - Strengthening America (미국을 강하게 함)
* PAT - Providing Appropriate Tools (적절한 기구들의 제공)
*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 (테러를 막기 위한 차단이 필요함)
비록 애국자 법의 주요 대상이 테러리스트로 되어 있지만 무고한 시민도 선의의 피해를 보게 될 여지가 다분하다.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911 사태 이후 45일 만에 급하게 통과된 법인“애국자 법”은, 정부가 경찰기관으로 하여금 선량한 시민을 감시하는 방법으로, 전화 통화 도청, 전자 메일 열람, 은행계좌 추적 그리고 인터넷 사용 추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무고한 시민을 감시하게끔 제도를 바꾸어 놓았다. 대다수의 미국인은 이 법이 테러리스트를 추적해서 잡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애국자 법은 실제로 평범한 시민을 테러 용의자로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 많은 국회의원은 애국자 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권에 충격적인 침해를 끼칠 수 있음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후에도 경찰 기관이 영장 발부 없이 시민을 감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에 미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법안은 경찰기관이 개인들의 전자 통신, 이메일 그리고 소셜네트워크에 들어있는 내용과 클라우드 베이스 속에 들어있는 개인 정보들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색 영장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 법안은 먼저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검토한 후에 2013년 회기 중에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만일 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경우 미국시민의 국민자유에 대한 위대한 승리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미국인들의 사생활 권리의 헌법 보장을 유지하기 위한 힘겨운 투쟁이 남아있다. 미 연방 대법원 판사인“사무엘 엘리토”는, 얼마 전 열린 재판 미국 정부 대 존스의 판결문에서“여러분 아십니까? 나는 현 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상황이 변하고 있음은 압니다. 기술이 변하고 있고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한 기대도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를 가정해 볼 때, 90%의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고, 한 사람당 500명 이상의 소셜 친구들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들은 서로 휴대전화를 통해서 하루에 24시간, 일 년 365일 동안 그들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 상세하게 서로 알려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엔 사생활에 대한 기대는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2) 하늘 위의 눈
자 통화를 감시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비밀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감시 카메라와 같은 감시 기구가 요즘에 자주 사용되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런 기구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사회에 끼칠 심각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라. 비밀 감시기구들이 어떤 형태이든지 선량한 시민을 거의 매일 용의자로 주목받게 하고 있다. 더 슬픈 사실은 한 개인을 계속 감시한다는 것은 국가가 경찰국가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찰기관은 사람들 위에 더 많은 감시 기구를 설치하려 한다. 공식적으로 UAV(Unmanned Aerial Vehicle), 즉 무인 항공기('드론'이라고도 불림)라고 불리는 이 기구는 처음에는 스파이 행위 차단이나 전쟁을 위해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경찰기관에서 선량한 시민을 감시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2011년 12월“로스엔젤스 타임즈”지에는 무인 항공기가 처음으로 국내에서 사용된 내용이 실려 있다. 그것은 미국 세관과 국경 수비대에서 마약 밀수와 불법 약품을 단속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었다. 이 기구는 경찰 업무에 사용되기도 했다.
“노스다코타”의 한 보안관이 몇몇 사람들과 그들의 목장에서 언쟁을 벌이다 쫓겨났다. 다음날 그 보안관은 유용한 다른 무리와 함께 그 목장으로 쳐들어갔는데, 그 무리는 다름 아닌 경찰 특공대, 폭발물 제거반, 고속도로 순찰대 그리고 놀랍게도 무인 정찰 항공기였다. 무인 항공기가 그날 아침 용의자들이 숨어 있는 건물에서 2마일 반경으로 순찰하면서, 항공기 앞에 장착된 열 탐지기 센서가 건물 안에 있는 세 용의자가 비무장임을 밝혀내자, 경찰 특공대가 건물 안으로 잠입해서 그들을 생포하므로 그동안 전투에서나 사용되던 무인 항공기가 미국 내에서 시민을 상대로 사용된 첫 사례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무인 항공기를 사용하는 데 대한 법적인 조항이 없었다. 그 당시 여론 대부분은 무인 항공기를 마치 비행기를 사용해서 오랜 세월 동안 감시활동을 해왔던 것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인 항공기에는 그동안 단순히 공중에서 감시용으로 사용하던 비행기보다 훨씬 더 정교한 기술이 장착되어 있다. 예를 들면 무인 항공기에 장착된 열 화상 장치와 적외선 추적 장치는 건물 안에 있는 용의자들을 볼 수 있고 신원파악까지 가능하게 해준다. 조용하고 식별이 거의 어렵고 또 특정한 장소 주변을 20시간 이상 맴돌 수 있는 무인 항공기의 기능은 기존에 사용하던 항공기의 수준을 제한 없이 능가한다.
2012년 2월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민과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미국 연방항공청이 미국 내에서 시민을 상대로 올해 말부터 무인 항공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에 사인했다. 그 법은 미 국민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무인 항공기는 아주 작은 로봇 벌레처럼 만들어지기도 하고, 모형비행기처럼 만들기도 하고, 큰 제트기처럼 만들어지기도 한다. 현재 CIA에서는 이 무인 항공기를 감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미군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에 사용하고 있으며, 또 공공 단체나 사립 단체에서도 무인 항공기가 국가 안보에 큰 유익이 되고 탐색과 구조에도 도움이 되며, 연구 및 조사와 법의 집행에도 유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인 항공기는 이미 자연환경 보호가들이 인도네시아, 태국 그리고 플로리다에서 밀렵꾼들을 포착해내는데 도움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멸종위기에 있는 동식물들을 감시하는데도 사용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일반 비행기로서는 할 수 없는 따분하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일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인 항공기의 실제적인 혜택에도 시민의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인 항공기의 감시나 경찰기관에서의 사용에 있어서 미국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이 안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3) 미국의 자유에 대한 유산이 위협당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지구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져 올 때에 큰 세력을 가진 한 나라가 일어날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데, 이 나라는 평화를 상징하는 어린양 같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엔 용처럼 말한다고 되어 있다(계 13:11~17). 한때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상징이었던 나라가 무자비하게 핍박하는 나라로 변할 것이 그렇게 예언된 것이다. 예언에 의하면, 이러한 핍박은 어느 한 나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것이 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과거 종교 암흑시대 때 6세기에 걸쳐 진행된 종교재판은 국가와 종교가 과도한 힘을 발휘한 단적인 예이다. 그 당시 교황권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절한 60만 명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순교한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종교재판을 채택한 나라들에는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첫째는 시민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은 대신 그 나라의 국가와 종교를 지지하도록 강요했다. 그 강요에 순종하지 않으면 생명까지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시민의 종교 활동을 감시하는 스파이들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결국엔 그들에 의해서 시민이 유죄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13장 15~17절에는 언젠가는 용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초강대국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그들의 요구를 따르라고 강요당하는 때가 올 것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이야말로 온 세계의 나라에 미국의 의지를 강제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이 자국민들을 상대로 비밀 감시를 계속하고 다른 나라 시민에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은, 미국으로 하여금 어떤 사람이 미국의 생각과 적대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찾아내고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농후함을 보여준다. 만일 미국이 개인을 이처럼 가볍게 취급하도록 국제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면 아무도 그들의 연합된 의지에 대항해서 홀로 설 수 없을 것인데, 오직 최후의 희생을 치를 각오가 돼 있는 자들만이 그들과 대항해서 설 수 있을 것이다.
신앙3부: 미국의 변화와 허물어지는 정교분리
미국의 건국 이념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대표적인 정신, 곧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벽이 허물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미국 사회는 자유인들로 이루어진 자유사회에서 출발했다. 미국 사회가 그렇게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건국 초부터 유럽 같은 군주나 귀족제도, 성직자와 같은 세습적인 특권층과 봉건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 자유를 위해 이주한 청교도들로 시작된 미국이었기 때문에 미 국민은 지극히 종교적이었고, 압도적으로 기독교적이었다. 미국의 건국 정신에 들어 있는 자유적 프로테스탄티즘과 정치적 자유주의, 민주적 종교와 민주적 정치 그리고 미국적인 신앙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심지어 어떤 학자는 "미국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유주의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까지 말했다.
처음에 미국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1620년 11월 11일 메이플라워호 선상에서 서로 약속을 다짐했다.“신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증진 그리고 우리 국왕과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로 시작하는‘메이플라워 서약’은 한마디로 미국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청교도적 복음주의가 미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착하도록 힘썼다. 그러나 한편 미국 국가를 세운 건국 시조들은 기독교도였지만 종교보다 이성을 중요시했다. 그들은 종교가 국가의 일에 개입할 때 생길 부작용을 경계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의 일을 맡고, 국가는 세속의 일을 맡는 정교분리 원칙을 정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의회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는‘국교 조항’(Establishment Clause)이 그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1) 미국의 변화의 진보 좌파의 등장
그러나 미국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적어도 20세기 중엽까지는 자유사회를 유지해 왔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이 잘 지켜졌으며, 종교의 자유, 만인의 평등, 행복추구권, 자유 및 생명권 등 헌법에 규정된 사항들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것은 평등권, 공화제, 대의제, 사유재산,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구현하는 제도를 확립했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근면, 자조, 절약, 도덕 생활 같은 것이 국민 윤리로 자리를 잡았다. 정부는 각 개인이 자신을 실현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사상이었고 그래서 미국에서 개인의 자유는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활방식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공산주의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나 독재 사상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929년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그런 사조가 깨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시행하면서, 미국도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개입 또는 국가통제의 방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이에 더하여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체제를 흔드는 두 번째 도전이 있었다. 그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신좌파’세력이 등장하여 미국적 체제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신좌파는 구좌파에 반발하면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토니 주트”는“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라는 그의 저서에서 캐밀 파야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위대한 이상을 품고 1960년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는 결국 자유주의를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주트에 따르면, 1960년대 신좌파들은 불황과 억압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의 잘못에서 온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변혁의 주체는 서서히 남성에서 흑인, 학생, 여성 등에 넘어갔고, 곧 동성애자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신좌파는 단지 자본주의의 불의에만 항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억압과 복지 국가를 비판했다. 이전의 사회에는 사회, 계급, 공동체가 중요한 개념이었다면,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신좌파의 개념에서는 공동의 목표나 전통적 권위는 존중되지 않았고, 개인적 주관주의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와 욕망이 중요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신좌파 세력은 청교도의 윤리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진한‘성 혁명’과‘마약 혁명’이 미국에 세속주의의 문화를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롭게 자리 잡은 문화는 흔히 대항문화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들은 이 대항문화가 청교도주의에 토대를 둔 전통문화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전통문화와 대항문화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미국인들은 오랜 국민적 합의를 깨고 새로운 사상을 가진 자유주의파인 진보파와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려는 보수파, 곧 좌파와 우파 등으로 대립하게 된 것이다.
2) 기독교 극우파의 등장
파든 우파든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지 그 의미는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보수파는“보수-우파 연합”(a conservative-right coalition)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진보파는“진보-좌파 연합”(a liberal-left coalition)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프랑스에서 선거 때 수많은 정당이 ‘우파 대연합’과‘좌파 대연합’으로 크게 나뉘는 현상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그 구분이 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정치 조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말하면서 왜 굳이 우파와 좌파를 언급해야 하는가?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미국이 전통적인 입장을 잃어버리고 너무 진보적인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을 우려하여 극단적인 보수파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부분의 사람이 미국의 전통적인 입장과 종교를 고수하는 기독교인들과 공화당의 정치인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통적인 기독교를 주장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정치의 힘을 빌려서 기독교의 전통적인 입장을 강요하려고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기독교 극우파라고 불리는 보수 세력은, 진보-좌파 사람들이‘국가와 종교의 분리’원칙을 내세워 미국 사회를‘세속화’하려는 데 대해 맹렬히 반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속주의자들이 공립학교에서 기도 시간을 없애고, 공적인 행사에서 기독교 의식을 금지하려는 데 대해 분개하였다. 왜냐하면, 진정한 미국 시민이라면 미국의 국민정신인 청교도주의를 당연히 국가 종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국의“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의 실질적 운영자인“랄프 리드”(Ralph Reed)는,“미국의 정치와 종교”(Politically Incorrect)에서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미국적인 올바른 방식이라고 주장하게 되었고, 그 조직의 대표“팻 로벗슨”목사도 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지지하였다.“그들은(Secular Humanists: 세속적인 인본주의자)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우리를 억압해 왔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의 분리란 말은 헌법에 없다. 그것은 좌파들의 거짓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극우파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인 종교만이 사회와 국가의 세속화를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정치적인 힘과 세력을 이용해서라도 종교의 힘을 강요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3) 기독교 극우파의 왜곡된 해결책
극우파 기독교인들의 주된 주장은 미국이 처해 있는 세속화 현상에 대한 우려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 극우파들은 미국의 세속화 현상이 종교적인 요소들, 곧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한다든가, 보수적인 신앙관과 생활태도를 보인다든가, 도덕적인 규범을 가진다든가 하는 종교적인 요소들을 배척하는 데서 생기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나라다. 전체 국민의 77%가 기독교 신자다. 기독교 신자의 40%가 개신교, 25%가 가톨릭이다. 개신교 신자의 25%가 기독교 근본주의, 25%가 자유주의, 20%가 복음주의다. 미국의 각종 설문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대부분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고 있고, 삼 분의 일이나 되는 사람들이 매주 적어도 한 번씩 교회나 유대회당에 참석하고 있는데, 그리고 많은 사람이 기독교적인 보수 성향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처럼 성서적 도덕규범이 사방에서 무너지며 사회가 세속화가 되는가? 보수주의자들, 특히 그들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에 관한 책임을 일반 방송매체와 미디어, 그리고 유흥산업체들과 특히 할리우드 영화 산업체에 지우고 있다. 그러나 만일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미국인들 대다수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부도덕한 영화들을 관람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런 영화나 유흥업체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겠는가? 아이러니한 일은, 미국 동남부 주 중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주민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이며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들인데,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서 외설물을 판매하는 소매점들이 가장 많이 산재해 있는 주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외설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누구란 말인가? 교회에 출석하는 보수적인 교인들인가, 아니면 그 외의 20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인가? 미국의 세속화의 문제를 외적인 종교 생활의 결핍으로 보는 기독교 극우파들의 문제 해결책은 성경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마음과 사상의 변화와 사회의 변혁은 내적인 신앙과 거듭남의 변화에 달린 것이지 외적인 종교 생활을 강요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과학 및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죄악의 물결이 교회의 문화권 안으로 침투되자, 이로부터 자신들과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관심을 정치적 활동으로 돌리게 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들의 의도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사상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과 예수께서 사회와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법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인 힘을 빌려서라도 사회를 정화하려는 잘못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기독교인들을 선동하여 그들의 종교를 정치적인 입장으로 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영적인 병기가 아닌 육적인 무기로 이 죄악들을 물리치려고 하고 있다. 곧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것으로 성경에 묘사된 마지막 시대의 상태를 인간의 행위의 힘으로 막으려고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금까지 그들이 잘못 믿고 가르쳐온 반쪽 복음의 결과인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인간이나 사회나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경건의 능력, 곧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발견하면서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어떤 다른 힘을 도입하게 될 때, 그것은 바로 강제성과 강요의 세력으로 거듭남과 변화를 꾀하려고 하는 헛된 시도가 되는 것이다.
4) 진보파와 기독교 극우파의 갈등
1993년부터 클린턴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진보-좌파 세력이 집권하였다. 그런데 의원들 가운데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학위를 가진 의원들과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베이붐 세대’나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는 보수-우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이들 진보-좌파 엘리트 집단들이 시행하는 정책들에 대하여 보수-우파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클린턴 정부에서는 복지 정책뿐 아니라, 낙태허용, 동성애 인정, 여성 해방 등을 인정했기 때문에 보수파들은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막고 원래의 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극우파 자신들이라고 믿었다. 사실 현재 미국 사회가 당면한‘사회 붕괴’현상은 심각하기는 하다. 이혼의 일상화로 가족이 해체되고, 자녀는 폭력과 난잡한 성 문화에 노출돼 있으며, 일부 주는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했다. 대학 사회도 건전한 학교생활보다 술, 마약 등에 빠져들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 사회는 급속히 보수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인 기독교 극우파의 활동이다. 그들은 미국이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이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을 대표하는“Moral majority”(도덕적 다수) 모임을 이끄는“제리 폴웰”목사는 911 사태 발생 직후“모든 것이 이교도, 낙태론자, 페미니스트, 동성애자, 미국을 세속화하는 집단들이 저지른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다. 911 사태는 앞으로 일어날 더 무서운 사건들의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신앙4부: 기독교 보수파의 활동과 무너지는 정교분리의 벽
최근 미국 교회의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기독교 보수파, 또는 기독교 우파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정치에 끌어들이기 위한 초교파적 사회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기독교 우파는 크게 세 분류로 나뉜다.
* 기독교 근본주의
신복음주의파: 기독교 근본주의 내 온건파로서 흔히 복음주의라고 불린다.
현재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져서 이제는 둘을 합쳐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부르게 되었고 여기에 오순절 파가 포함되어“기독교 우파”라고 불리고 있다.
* 오순절 교회: 성령운동을 강조함.
* 카리스마 운동파: 특정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성령의 은사 즉, 직접 계시, 방언, 예언, 영의 구분 등 특정한 사람들의 종교경험을 강조함.
1) 기독교 우파 활동과 정치 개입 시작
사실 처음에 미국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교회도 그렇지만, 소위 보수 기독교인들은 자신과 다른 신앙이나 교파를 배척하거나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는 종파주의 경향이 있기 때문에, 초교파적인 기독교 사회운동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이들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미국에서 급속히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데, 교회 중심으로 선교하던 방법에서 탈피하여 텔레비전, 라디오, 출판, 인터넷 등을 주로 이용한다. 텔레비전 선교는‘텔레밴절리즘’(Televangelism)이란 신조어를 낳을 만큼 인기가 높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유명한 목사들은 대부분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다. 출판 선교도 놀랍다. 종말론을 소설 형태로 쓴 팀“라헤이”의“뒤에 남은 사람”(Left Behind) 시리즈는 전체 12권 가운데 5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총 5,800만 권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성경의 올바른 진리에서 빗나간 휴거 등이 이야기로 꾸며져 있는 잘못된 내용의 책인데도 말이다.
초교파 국제기독교 단체인“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전 세계 교회 가족을 대신해 미국 교회에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미국 대선에서 일부 보수적 교회가 당파성에 빠졌음을 지적하고 교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1970년대 말 미국 공화당은 보수 기독교인들과 결탁하여,“기독교인의 소리”(Christian Voice),“도덕적 다수” (Moral Majority)등의 보수 기독교단체들을 활성화했다. 특히 침례교 목사“제리 폴웰”이 주도한“도덕적 다수”는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때부터 보수 기독교인들은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1980년대 미국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정치에 적극 개입하여, 낙태반대,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민권 부여 반대, 학교 내 종교교육 부활 등 이슈들을 밀었다.
2) 1980년대 말 - 1990년대 이후의 활동
1980년대 말 이후 미국 기독교 우파운동은 미국 침례교 설교자 팻 로버트슨(Marion Pat Robertson)이 주도하였다. 그는 미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개신교교회를 아우르는 교계 인사 접촉을 시도했는데, 그 실례로 그는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역사적 계승(사도적 계승)이라는 점에선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고, 예전에서는 성공회 신자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장로교회 신자이며, 거룩성에서는 감리교회 신자이며, 신자들의 사제직과 세례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침례교회 신자이다. 또한, 성령세례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오순절 교회신자이다.”이렇듯 자신을 모든 교파를 수용할 수 있는 관대한 사람인 것처럼 미화하는 언변은 미국 기독교 우파운동이 초교파적인 사회운동으로 성격이 바뀌게 하였다. 1989년에는 기독교 우파운동의 중심세력인 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을 조직하였으며, 2000년에는 공화당 후보를 대선에 당선시킨다는 계획을 세워 성사시켰다. 2000년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가 기독교 우파로부터 40%의 표를 받아낸 것이다.
1990년대의 기독교 우파의 특징은, 복음주의와 초교파적 입장이 강화되었고, 종파주의의 약세를 보였다. 적극적인 선거참여 장려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도록 기독교인들을 교육하고, 공립 학교 내 종교 교육을 제창했으며, 조지 부시를 미국 대통령 당선시킬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다. 또한, 이슬람 같은 타 종교에 대한 적대성이 강했는데,“빌리 그레이엄”의 아들“프랭클린 그레이엄”과“제리 폴웰”은 이슬람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 국수주의 성향을 띠어 대표자 제리 폴웰은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국을 보호하던 손을 거두었다"면서, 미국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신정국가인 양 주장하기도 했다.
3) 기독교 우파의 왜곡된 신앙관
프린스턴신학교 신학과 문화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마크 루이스 테일러”(Mark Lewis Taylor)는, <종교, 정치, 그리고 기독교 우파>라는 책에서 911 사태 이후로 미국 기독교가 더욱 전투적인 종교로 변형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호전적 기독교 뒤에는 소위‘기독교 우파’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테일러는 기독교 우파를 복음주의 내의 그룹으로 보지만, 복음주의 그 자체와는 별도로 구분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실상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부시의 전쟁 정책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기독교 우파의 '군사적 신앙'이 알 카에다의 테러활동과 다른 점이 있는가?”라고 질문하며, 이 둘은 다 종교적 극단주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테일러는 911 사태 이후로 미국 정부가 이분법적 선과 악의 이해로 국제사회를 불신과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라크 정부를 독재와 폭력의 정권으로 사탄화하고, 미국을 테러국가를 무장 해제하는 정의의 사도로 영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의 정서에는 깊이 뿌리 박힌 신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은 하나님이 계획한 신성한 나라라는 건국신념이다. 911 사태는 이러한 미국의 특수주의 건국신화를 무참히 깬 사건이다. 부시는 그때에 미국의 건국신화로 국민의 관심을 전향시키며 하나님의 선택으로 세워진 미국에 도전하는 세력은 '악'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911 사태 이후로 소수 미국 시민과 지성인들이 부시의 이라크전쟁 허실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는“Patriot Act”(애국법)를 통과시켜도 이제 미국 대중은 저항할 줄 모르게 되었다. 미국의 안전을 위해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 순진한 미국민의 애국주의이다. 부시 정부는 미국의 위대성과 특수성을 강조하고, 기독교 우파는 미국을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특수주의를 종교적으로 합리화했다. 이러한 사상이 사회의 중심 사상으로 떠오르면서, 그 정신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애국심이 없는‘테러 옹호자’로 취급받게 되었다.
4) 기독교 우파의 활동들
1. 가정 수호 운동
기독교 우파의 활동 중에 가정 수호 운동이 있다. 가정문제는 1980년대의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오랫동안 가정 수호의 원리를 사회 질서의 뿌리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가정수호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1979년에‘라이브러리 코트’ 집회를 열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집단에는‘도덕적 다수파’,‘진보입법반대 보수협의회’와 같은 수 많은 단체가 소속되었다. 그들의 주공격 대상은 여성해방운동가들의 조직인 전국여성기구(NOW)였다.
그 일은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려는 남녀평등헌법 수정조항(ERA)의 비준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생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공격이 여성해방 운동가에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며, 진보-좌파 전체에 대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높은 이혼율, 취학 이전 아동을 둔 여성 근로자의 증가, 낙태의 증가, 성병의 만연, 사생아의 증가, 음란물의 범람, 동성애, 어린이 성 학대와 같은 사회악은 모두 진보-좌파들에 의해 조장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가정보호법안은 근본적으로 미국을 건국 초기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개신교의 신앙과 윤리가 미국 사회 전반을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2. 국가구원의 십자군 운동
기독교 우파 대중이 가장 분노하는 사실은 진보-좌파에 의해 미국인의 생활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중산계급과 청교도의 나라로부터 빈민과 범죄자의 나라로 타락하고 있으며, 미국 사회가‘세속화’되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의미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연방 정부의 복지정책을 맹렬히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성실한 근로자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빈민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의 게으름과 부도덕함을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클린턴 대통령과 같은 반전주의자들이나 병역기피자들이 사회지도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나 진보-좌파 지식인들이 범죄에 관대하고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맘이 편치 않았다. 그들은 진보-좌파 엘리트가 청교도의 나라인 미국을‘세속화’시킴으로써 도덕적인 타락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특히 여성해방운동가들이 내세우는‘성의 해방’은 이혼과 가정 파괴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동성애와 같은 비정상적인 행위까지도 받아들이는 사회풍토를 조성하고 있고, 마약에 대한 관대한 태도는 미국 국민을‘에이즈’의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개하게 된 것이 국가구원‘십자군’운동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좌경화와 세속화를 막는 것을 주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것은 빈민, 범죄자, 마약 중독자, 동성애자의 미국을 청교도, 애국시민, 중산계급의 미국으로 되돌리려는 도덕적인 운동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진짜 미국’의 복원, 즉 기독교 국가로서의 미국을 되살리는 데 있었다. 기독교인들의 활동은 1980년대에 그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들의‘기독교 미국’의 회복 운동은“기독교인의 목소리”(Christian Voice)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강화되었다. 그 방송은 목사들과 신도들에게 의원들의 입법 투표 활동을 알려 주고, 정치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할지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라는 조직이었다. 그것은“옛 복음의 시간”이란 방송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제리 폴웰 목사가 조직한 단체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조직은 1992년에 팻 로벗슨 목사가 만든“기독교 연합”(The Christian Coalition)이었다.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은‘기독교 미국’의 부활이란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슈들을 정치적으로 밀었다. 예를 들면, 미국 국민이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추수감사절 직전 일요일을 국가 지정 기도일과 국가 지정 금식일로 선포하도록 요구하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기도 시간을 갖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학교와 공공건물에 기도 장소를 마련하고, 공공장소에서의 행사가 기독교 의식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게 만들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은 미국 사회가 더는 세속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텔레비전에서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음란한 프로그램을 추방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기업들이 그런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고, 그것을 어기는 상품에 대해서는 불매 운동을 벌였다.
5) 용처럼 말하는 미국
성경은 미국에 대하여 예언하기를“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새끼 양과 같이 두 뿔이 있”지만“용처럼 말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건국되었으나, 앞으로 국가와 교회가 합하여진 종교적 정치를 할 것을 말한다. 또한, 앞으로 미국이 할 일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4, 15). 이 말씀은 곧 이 어린양처럼 생긴 짐승으로부터 나온 종교와 정치적 방침이 전 세계의 정치권을 장악할 것이며, 이 나라가 추구하는 종교를 따르지 않을 때에는 누구든지 핍박과 죽임을 당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중세 암흑시기 때에 나타났던 정치적 현상이었다. 중세 종교 암흑시기에는 교황권이 전 세계를 자기의 종교를 믿도록 탄압하였으며, 또한 교황의 명령을 받은 왕이 자기 나라 백성에게 무력을 통하여 천주교를 믿도록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성경에 있는 진리를 사수하다가 순교하여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정치와 종교 분리의 원칙이 무너지고 그 둘이 연합할 때에, 강제로 종교를 믿게 하고 강요하는 세력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미국의 기독교 보수파 세력은 결국 정치적인 권력을 획득하면서, 예전에 국가 권력과 결탁한 종교가 자행했던 박해를 반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미국의 미래는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일치되지는 않지만, 서로 같이 공통으로 주장하고 있는 몇몇 교리들을 중심으로 연합한 미국의 교회들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들의 법령을 강요하고, 그 다음에는 개신교 미국이 로마교회의 권력 구조의 우상을 형성하여 그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시민법의 처벌을 부과받도록 할 것이다. 그들의 왜곡된 종교적 열심은 미국의 국가의 이념이 되고 있는“종교의 자유”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일하게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은 변해가고 있다. 진보 좌파의 세력 때문이든, 극우파의 세력 때문이든, 개인의 자유가 박탈되고, 정치와 종교 분리의 벽이 허물어졌으며, 이제 연합된 종교의 세력은 왜곡된 종교적 열심으로 성경과는 다른 교리와 법을 강요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할 것이다.
이렇듯 마지막 예언의 성취가 우리 눈앞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참 백성과 증인 될 사람들을 찾고 계시다. 그들은 바로“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사람들이다(계 14:12). 지금 짐승의 우상이 다 세워졌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우상이란, 개신교회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강요하기 위하여 정부의 권력 지원을 요구하며 생기는 세력을 가리키는데, 참 그리스도의 정신을 떠난 배교한 개신교회가 정부의 힘을 빌려 그들의 종교를 강요할 때 세워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와 정치, 국가의 분리가 허물어지며 생기는 세력이다. 이제는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고 그 표를 강요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표의 환란과 짐승의 세력에 굴하지 않고 벗어날 자들, 곧 하나님의 성품으로 완전히 변한 사람들, 그리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환난을 넉넉히 이기고 짐승의 세력을 이길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모두 속히 변화되고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어 짐승의 표의 환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증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어서 속히 그렇게 변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촉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일에 모두 참여하게 되시는 독자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 드린다.
가정기사: 이해 받고 싶은 아이들
아이들의 노래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아이들의 노래를 그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가?‘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나비야 나비야’,‘예수 사랑하심은’등등의 노래를 함께 부를 만큼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동심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아이들과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 부모인가?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몇 곡이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즐겁게 공감하며 부를 수 있는가? 아이들과 같이 큰소리로 얘기하며 함께 깔깔대며 즐겁게 웃을 때가 얼마나 되는가?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하려고 하기 이전에 그들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아니, 이해하려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 자녀들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그 생각에 공감하는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을 해야 비로소 교육을 시작할 수 있는 시점에 온 것이다. 만일 지금 우리의 자녀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의 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더 장성하여 청년기나 장년기에 접어들 때에 부모와 자녀가 가지게 되는 세대 차이는 얼마나 크게 벌어질는지 알 수 없다. 고대 그리스 기록뿐 만 아니라 세종대왕 어록에 같은 기록이 실려 있어 흥미를 끄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요즘 젊은 세대들은 버릇이 없다’는 기록이다. 그 기록들로 보아 벌써 옛날에도 세대차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효과적인 교육의 지름길이며, 지금 우리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터득하고 그것을 실생활에서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과거에 노인들이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혜와 생활에서 얻은 지식 덕분이었다. 그 때는 경험이 곧 자산이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지식이 퍼져있다. 책만 해도 그렇다. 요즘은 한해 나오는 책의 종류만 160만종이 넘는다. 그나마 인터넷의 정보는 제외한 통계다. 그러므로 현 시대는 세상을 오래 살지 않아도, 많이 공부만 하면 지식과 지혜를 갖출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9년 한국은 인구성장률이 최저치에 다다르고 그때부터 인구가 감소 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그 말은 곧 한국 사회가 노령화 사회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노인은 더 이상‘현인’이기보다 젊은이들의 보호를 받아야 할‘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이나 충고가 잔소리로만 취급되는‘말이 통하지 않는 세대’,‘이해할 수 없는 세대’라는 비판을 받는다면 부모로서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자녀들의 청년기에도 부모가 청년이 된 자녀들과 잘 소통하고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들의 세계를 최대한으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부모가 권위적이지 않기에 자녀들이 반항하지 않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인격체로 존중하는 가정,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인가! 이해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해하는 부모가 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부모들은 자녀들이 유년 시절을 빨리 벗어나도록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세대 그대로를 이해해야 한다. 청년들도 마찬가지이다. 청년들에게서 장년 세대의 특성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적이 있는가? 자녀의 손을 잡고 잠깐이라도 자연 속에 함께 서 있어 보았는가? 아이를 이해해 주어야 아이도 부모를 이해해 줄 수 있다. 이런 것이 가정의 행복이지 않은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연구: 갈라디아서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서 1:1~5)
모든 복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기초하고 거기에서 그 권위가 유래합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이셨으며(요 1:1; 17:5 참조)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골1:17)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는 대등한 관계에 계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아버지와 아들은 한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히1:3; 8:1; 계3:21참조). 두 분 사이에는 평화의 의논이 있었습니다(슥6:12,13 참조).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셨으나 그의 일생 동안 줄곧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성결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로 그의 친자권이 온 만물에게 증명되었습니다(롬1:3,4참조).
갈라디아서 1장은 사도바울의 인사말로 시작됩니다. 바울은 그의 사도직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주님의 보냄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요3:34). 그러므로 바울은 권위를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서신이나 성경의 다른 말씀들을 대할 때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해야 하며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뿐만 아니라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벧전4:11)라는 명령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서신은 바울의 사도직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권세를 가지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인사말은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를 이루시므로 여기에서도 바로 창조적인 말씀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이렇게 말씀으로 모든 창조 사업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시33:9). 그러므로 여기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인사말을 그저 시작하는 인사말로 읽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의 모든 축복들을 가져다 주는 창조의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3:15).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보내셔서 모든 사람에게 의와 구원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드리신 것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로부터 그가 사신 것인 우리의 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이 악한 세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죄 있는 자아,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세상을 악하게 만든 것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악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세상을 도피하여 수도원에 갔었지만 그 곳에서 그의 죄가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한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 무겁고 짓누르는 짐을 우리의 마음과 등에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에 "악이 함께 있는 것"(롬7:21)을 발견합니다. "이 악한 세대가 항상" 함께 있으므로 탄식하고 절망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소리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자신도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광야에서 가장 큰 시험을 만나셨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은둔 생활이나 수도 생활이 하나님의 계획에는 들어 있지 않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부패를 막는 소금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향기가 세상이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사람들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소금은 썩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과 잘 섞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했을 때에 우리는 무엇을 확신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셨기 때문에 그 죄들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고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주장할 권리 또한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죄의 행위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있고 또 나타나는 죄들을 사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에 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우리 자신들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들을 그리스도께서 사셨다는 사실에 뒤따릅니다. 우리의 죄들은 우리 자신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사시면 역시 우리 자신도 사시는 것입니다. 딛2:14, 고전6:19, 벧전1:18,19절을 읽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상점에서 원하는 물건에 값을 치르고 샀다고 하십시다. 상인은 그 물건을 구입자에게 빨리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이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구입자는 자기 물건을 소유하기 위하여 강경한 조치를 취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복종하고 안 하는 일이 예수님께는 무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자신의 피로 사신 영혼들을 무한하신 사랑으로 사모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므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엡1:4~6) 우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하나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세가 아버지에게 있으시다는 것을 인정하므로 그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시100:3). 권세와 영광은 같은 것입니다. 엡1:19,20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권세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롬6:4절에서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알리는 "영원한 복음"을 마지막으로 선포하는 취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14:6,7)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갈라디아서는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는 책이며 특별히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위해서 주신 기별입니다.
· 디도서 2:14 -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전서 6:19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베드로전서 1:18,19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