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먹을거리
교수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I. 신자유주의와 농업
1. GATT
1944년 미국의 브레튼우즈에 모인 연합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세계경제질성에 대해 의논을 했다. 그 결과 채택된 것이 바로 브레튼우즈체제이다. 이 체제는 흔히 고정환율제의 도입이라고 말하는데 과거 금 보유량에 따라 정해지던 화폐의 가치를 금 1온스를 달러 35달러고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이 달러를 기준으로 하여 각국의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제 각국은 금이 아니라 달러만 많이 보유해도 된다. 미국은 달러를 찍고 그 달러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무역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주로 선진국이 중심이던 연합국들에서 브레튼우즈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세계는 미국 중심의 무역체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무역체제가 바로 GATT(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이다. GATT의 주 내용은 소위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으로 관세를 없애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한다. 이제 GATT를 알기 위해 비교우위론을 잠깐 고민해 보기로 하자.
비교우위론은 그야말로 이론적으로 가장 완벽한 듯 보인다.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를 신봉하고 이를 토대로 FTA 를 찬양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시간에 배운 것들이다. 그 시절 우리는 수요/공급곡선을 배우고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배운다. 계량(숫자로 계산이 가능하다는 의미)경제학의 가장 기본 그래프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그래프는 소위 x축과 y축 두 개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변수는 오로지 두 개여야 한다. 그래서 이 수요/공급곡선에는 ‘단, 다른 변수는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그래프를 배운다. 왜냐하면 수요/공급곡선에서는 이런 개인의 효용가치라는 변수를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교우위론도 마찬가지이다. 두 가지 상품을 두고 비교하는데 다른 변수는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 이 이론을 포도와 휴대폰에 적용해보자. 우리나라는 포도 한 송이 생산에 1000원이 들고 칠레는 500원이 든다. 우리나라는 휴대폰 하나를 생산하는데 1000원이 들고 칠레는 2000원이 든다. 둘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휴대폰, 칠레는 포도 생산이 더 유리하다. 이때 우리는 포도를 포기하고 칠레의 포도를 먹고 칠레는 휴대폰을 포기하고 우리나라 휴대폰을 사면 된다. 그런 식으로 포기하고 나면 포도보다 휴대폰이 더 비싸기 때문에 칠레에 휴대폰을 파는 우리가 훨씬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무역을 시작하면 칠레에서의 휴대폰 수입은 점차 줄어들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포도 수입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고려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래프는 오로지 포도와 휴대폰을 표시할 수 있을 뿐 다른 변수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치로 나타나고 그래프로 나타나는 이론 속에서 GATT는 1948년 선진국의 상품무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1960년대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정책에 힘입어 그 무역의 국가적 범위는 확장되었다. 상품무역을 통해 달러를 벌고자 하는 국가가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도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70년대 ‘수출만이 살 길이다’란 표어 하에 열심히 외국에 물건을 팔아 외화벌이를 했다. 그러나 이런 무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역수지의 적자 폭만을 늘렸고 개발도상국 등의 후발주자인 많은 나라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농산물 수출이 점점 어렵게 되면서 미국은 잉여농산물 처분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었고 개발도상국의 제조업 발전으로 인한 제조업의 쇠퇴와 함께 서비스업종의 확대로 인한 경제위기가 지속되었다. 이런 대내외적인 위기는 더이상 상품무역 중심의 GATT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로 연결되었다.
2. 우루과이라운드
상품무역만으로 한계를 느낀 미국은 1986년 우루과이에서 새로운 협상을 시작하였다. 이는 대내외적인 불만으로 인한 압박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장의 확대’를 꾀하기 위한 협상이었다. 바로 2차 상품 위주의 시장을 1차상품인 농축수산물과 3차상품인 서비스업종까지 확대를 꾀한 것이다(물론 지적재산권, 투자 등에 관한 협정도 포함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논외로 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의 반발을 샀고 협상은 1993년 타결되기까지 지루하게 지속되었다. 초기부터 협상은 농산물시장에 대한 엄청난 반발로 난항을 거듭했으나 최종타결시점에는 농산물시장은 개방하기로 한 반면 서비스시장은 개방이 아닌 개방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결과 오늘날 UR을 논할 때는 처음 시작이었던 농축수산물과 서비스업종 대신 농축수산물 수입개방으로 상징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쨌든 UR의 타결로 미국은 잉여농산물의 수출을 위한 길을 열었고 우리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의 농산물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비교우위론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능력이 안되는 농업을 포기하고 그 노력을 다른 산업에 기울이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고 이를 수출함으로써 벌어들인 외화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는 오늘날 정부의 논리는 이로써 더 확고해졌다.
우루과이라운드의 결과 농축수산물을 수입하면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 가지만 언급해 보자. 1994년 유럽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 해당 쇠고기는 사육 당시 성장촉진호르몬을 투여하여 기른 것인데 유럽은 이 고기를 먹은 아이들의 조기성숙 등을 이유로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수입금지조치를 내린 것이다(물론 이 조치는 이후 미국에 의해 WTO에 제소되어 미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유럽은 여전히 미국산쇠고기수입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그결과 수출길이 막힌 미국산 쇠고기는 우리나라의 수입개방 조치로 인해 우리나라로 대량 수입되었으며 우리는 쇠고기를 배불리(?)먹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후 우리나라는 당시 유럽과 똑같은 문제, 즉, 어린이들의 성조숙증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3. WTO
UR을 거치면서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르는 이러한 무역갈등을 손쉽게 해결하기 위해 브레튼우즈 당시 계획하였으나 시행하지 못했던 세계무역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WTO를 출범시키는 것을 UR 협정문에 포함시켰다. 그리하여 1995년 WTO가 출범하였으며 협정에 불과하여 강제가 불가능했던 GATT는 WTO로 편입되면서 더욱 강력한 국제무역질서의 기준이 되었다. 즉, WTO에의 제소가 가능하게 함으로써 모든 무역 분쟁은 GATT/WTO 하에서 강제가 가능한 규범이 되었다. 오늘날 모든 FTA 등의 다양한 무역협상에서 정부가 항상 WTO에 제소될 것이라는 협박아닌 협박을 국민에게 일삼을 수 있게 된 것은 다 이 때문이다.
문제는 UR과 WTO 출범 이전에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자국의 농업을 비롯한 무역분야에 대한 각종의 보호조치를 다 마련하였으나 상품수출을 위한 경제성장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이던 개발도상국들은 이런 보호조치를 미처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상품수출을 위한 지원은 있으나 수출품목에서 제외된 분야에 대해서는 이런 지원책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농업이다. UR 이후 추가적인 각종 보조금정책은 지유무역을 저해하는 요소로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경쟁력없는 산업으로 전락한 농업은 우리나라에서 퇴출산업 정도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UR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식량자급을 위한 노력을 더 이상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정해진 땅덩어리에서 농가소득을 증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농민 수를 줄여서 개별 농민들의 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마치 농업/농민을 위한 정책인 양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II. 먹을거리와 농업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개최한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그 이전과는 획을 긋는 새로운 결의가 나왔다. 그것은 바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명제 하에 생물다양성협약과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한 것이다. 이 두 가지 협약이 가지는 가장 큰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한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마도 인류가 공통으로 느끼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의미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당시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조건으로의 개발 및 발전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즉, 이미 망가진 환경 및 생태계를 복원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두 가지 협약은 이러한 지속가능성 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농업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생물다양성협약에서는 토착민들의 지식과 자원을 보호하는 데 현재까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분야가 바로 농업관행에 관한 것이다. 즉, 어떤 종자를 어디에서 어떻게 보유하고, 재배하고, 수확하고 분배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중요시한다. 기후변화협약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통하여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농업의 역할이다. 농업이 지구온난화의 문제에 관하여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농업이 주로 식물의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식물이 가지는 산소배출의 문제와 물 보유력의 문제는 농업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의 농업관행, 특히 소농 중심의 제3세계 국가를 제외한 대규모 경작을 통한 농업생산과 수출을 중시하는 국가들의 농업관행은 오히려 지구온난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농업은 또다른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식량위기의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식량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 속에서 또다시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발생함으로써 농업은 그야말로 지구온난화의 악순환에서 뜻하지 않은 악역을 맡게 되었다.
문제는 농업이라는 것이 이러한 악역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분야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물과 먹을거리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결국 농업의 문제, 즉, 오늘날의 식량위기의 문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식량문제도 해결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지경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하여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다.
III. 식량권과 식량주권
1. 식량권
1948년의 UN의 세계인권선언 제25조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권리의 하나로서 식량권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식량권의 문제는 2004년 FAO가 식량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함으로써 국제적인 화두로 등장하였다. FAO에 따르면 식량권은 인간의 기본권으로 영구적이며 제한해서는 안되는 물리적이고도 경제적인 권리이다. 따라서 식량에 대한 접근권은 질이나 양의 측면 모두에서 적절하고 충분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이 권리의 보장을 위한 FAO의 식량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물론 법적 강제력이 없으나 국가 차원에서의 식량안보를 위한 기준으로서 법적인 문제, 국가 정책적인 문제, 시장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문제, 영양적인 문제, 교육 및 여성 등의 약자의 권리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기아에 대한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구호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식량권에서 주요하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식품안전의 문제보다는 식량안보의 문제이다. 즉, 세계 인구 가운데 8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기아로 고통받고 있고 영양실조가 최소한 22개 이상의 국가에서 국가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타개책으로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이 법적 강제성을 가지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이 식량권의 문제가 WTO 체게 하에서의 무역자유화와 대립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기아나 영양실조의 문제가 농산물 무역자유화의 문제와 대립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본식료품이라 할 수 있는 식량작물을 생산하지 않고 수출을 위한 상품작물을 생산하는 농업현실에서 나온다. 즉, 지역의 생존을 위한 식량안보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과 수출시장을 위한 작물 생산 사이에서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식량권의 문제는 식량안보의 문제와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농산물 무역자유화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FAO는 식량권 보장을 위한 대안 모색에서 그 근본적인 대안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기존의 자유무역체제, 산업중심의 경제체제 속에서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공학제품을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2002년에 ‘기아와의 전쟁’을 주제로 FAO는 로마에서 제2회 세계 식료 써미트를 개최하고 기아에 대한 대응방안으로서 유전자조작 등의 생명공학을 사용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당시의 써미트는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생명공학에 대한 승인의 배경에는 미국의 강력한 압력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2004년 세계식량농업백서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이러한 FAO의 한계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식량주권개념이다.
2. 식량주권
식량주권에 대한 최초의 토론은 1996년 멕시코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 세계 총회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비아캄페시나의 회의뿐만 아니라 UN에서도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2002년 UN NGO 포럼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식량주권을 위한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식량주권의 개념 내지는 범위에 관해서는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식품안전에 관한 관심이 그대로 식량주권운동의 한 방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소비자가 주축이 되는 일부 직거래 단체들이 유기농산물을 중심으로 직거래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단체들은 특히 유기농업이라는 것에 중요성을 두기 때문에 수입유기농산물에 대해서도 비교적 너그럽게 대처한다. 그리고 직거래 방식의 수입유기농산물 품목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반면 농민단체들의 경우에는 식량안보라는 관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즉, 국내 농업 살리기를 위한 식량자급률 법제화 운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단체들은 소위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관행농업이라 하더라도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함께 보호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2001년 비아캄페시나의 ‘민중의 식량주권(People’s Food Sovereignty)’이라는 자료에서는 식량주권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으며 그 성과가 바로 2007년의 ‘닐레니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식량주권은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문화적으로도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또한 민중들이 그들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 생산 체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이다. 식량주권은 식량체계와 정책의 중심을 시장과 기업의 요구가 아니라 생산과 공급,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하며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식량주권은 현재 초국적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식량체계에 맞서 지역적 생산자들을 중심에 둔 식량, 농업, 소목축업, 어업 체계의 방향과 전략을 제시한다. 식량주권은 지역, 국민경제와 시장을 우선시키고, 농민과 가족농이 추구한 농업, 어민, 목축인과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유지를 토대로 한 식량생산, 공급, 소비의 권한을 부여한다. 식량주권은 모든 민중에게 공정한 수입을 보증 할 수 있는 투명한 무역과 소비자가 식량과 영양물을 관리 할 수 있는 권리를 증진시킨다. 식량주권은 우리의 토지, 영토, 물, 종자, 가축, 생물의 다양성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권리가 식량 생산자의 손에 있다는 점을 보증한다. 식량주권은 불평등과 탄압이 없는 남녀, 민중, 인종, 사회계급, 세대차이의 새로운 사회관계를 의미한다.”
즉, 식량주권은 식량에 관한 것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식량주권을 위한 운동은 각 나라마다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대체로 공통적인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농업이 WTO 하에서의 여타의 협정에서 협상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둘째, 농업정책 수단은 각국이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GMO 등과 같은 잠재적 위험을 가진 기술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IV. 먹을거리의 위협요소
1. 쌀시장개방과 안전한 먹을거리
쌀수입이 본격화된 것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타결이 되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2004년 2014년 세 차례의 쌀 수입에 관한 협상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매 시기마다 정부나 국민 언론이나 방송의 태도는 달랐으나 지난 2014년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한 때는 없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농축수산물 수입개방을 당연시하는 협상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그토록 쌀문제를 중요시한 것은 다른 농작물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쌀이 상징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었을 때 우리 협상단들은 아주 자랑스럽게 ‘쌀은 지켰다’고 말했다. 당시 많은 농민들이 그 말에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말의 이면에는 또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쌀을 실제로 지킨 것이 아니라 쌀수입을 자유화하는 것을 10년 유예하는 대신에 의무적이로 일정량을 수입하기로 약속하고 왔다는 사실이었다. 5만톤을 시작으로 그 양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 2004년 약속된 10년 유예기간의 종료를 앞두고 정부는 여전히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결국 농민들은 나락을 태우기 시작했으며 이미 파탄지경에 이른 농업에서 주곡인 쌀마저 개방된다면 농업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음을 항변했다. 그런 농민들의 주장과 이를 함께 해준 많은 국민들 덕에 2004년 쌀은 또한번의 유예를 얻어냈다. 그러나 두 번째 유예기간은 더 많은 의무수입량과 그 가운데 일정양을 밥쌀로 써야하는 조건을 붙인 다음에야 가능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4년이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농민들은 쌀문제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정부에 문의했다. 그러나 별 뾰족한 답변을 듣지도 못했다. 그러더니 2013년 어느날 문득 여론조사의 결과라면서 농민들이 쌀개방을 원하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통계를 근거로 전면개방을 기정사실인 듯 발표하였다. 즉,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식량문제를 위한 그 어떤 뚜렷한 문제의식도 그 해결을 위한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만을 낳았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주 정부는 정해진 수순인 양 쌀 관세율 513%를 발표했다.
그 후 발표한 쌀 관세화 후의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은 더 심각하다. 우선 고정직불금 인상, 이모작 확대, 영세․고령농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농가 소득안정 장치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둘째, 장기적으로 수입쌀과의 경쟁에 대비하여 생산․유통의 규모화․조직화, 비용 절감, 품질 제고 등을 통해 국산 쌀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벼 재배면적과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쌀 산업이 위축되지 않도록 소비와 수출 촉진 및 가공산업 육성을 통해 수요기반을 확충하고 우량농지 중심으로 생산기반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3개의 대책은 그럴 듯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고령자들은 돈을 주고 농업이라는 산업(이들은 쌀을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산업이라고 말한다)에서 은퇴하게 하고 논을 전업농 중심으로 규모화하여 대량생산을 꿈꾼다. 그렇게 생산된 쌀은 가공산업 등을 통하여 상품으로 만들어 수출을 하고자 한다. 이런 정책은 이미 1980년대말 이후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한 대책이라는 이름을 시작으로 때론 WTO, 때론 FTA에 대한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제시하고 적용해 왔던 정책들의 재판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쌀만은 국산쌀을 먹을 것이라고 너무 쉽게 믿기 때문에 쌀수입에 대한 체감온도가 다른 작물보다 현저히 낮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한때 쌀 자급률이 100%를 넘던 시절 쌀소비 촉진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종류의 쌀 가공식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쌀자급률은 이미 100%는 커녕 80%대까지 떨어지고 있다. 농민들이 벼농사를 짓지 않아서? 아니다. 그것은 1990년대 쌀이 남아돌던 그 시절 그 해결방안으로 쌀(또는 밥) 중심의 밥상문화를 되살리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대신 쌀 가공식품을 만들어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시장에는 쌀가공품이 넘쳐나고 그 가공품들은 모두 수입쌀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쌀 수입 전면개방을 선언하면서 정부는 의외로 당당하다. 세종시 농식품부 현관을 들어서면 쌀 관세화가 결코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홍보물이 버젓이 하루종일 상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쌀 관세화를 홍보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513%의 관세를 부과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쌀보다 2배 이상 비쌀 것이기 때문에 수입량이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의무수입물량인 40만톤 이상의 쌀을 5%의 낮은 관세로 수입해왔다. 앞으로는 513%의 높은 관세로 수입하게 될까? 아니다. 의무수입물량은 여전히 5%의 관세로 수입해야만 하고 추가수입분에 대해서만 513%의 관세를 적용한다.
자,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보자. 정부 말대로 더 비싸다면 누가 수입을 할 것인가. 사실 이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국민들 중 자신이 수입쌀을 사서 밥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 비싼 데다 잘 팔리지도 않을 쌀을 누군가 수입한다면 그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2000년 우리나라 쌀 생산은 529만톤이었지만 2013년에는 423만톤으로 줄었다. 생산량은 18%가 줄었고 재배면적은 22%가 줄었다. 그러나 소비량은 늘어서 2000년에는 자급률 100%가 넘던 쌀은 2010년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3년 부족한 쌀을 채우기 위해 의무수입물량인 40만톤을 넘어서 약 58만톤을 수입했다. 우리는 이미 쌀을 자급하지 못하고 의무량 이상을 수입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이 1년 간 밥쌀로 소비하는 양은 2013년 약 67kg이다. 이를 전체 밥쌀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약 300만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국산쌀 가운데 123만톤이 남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재고쌀도 풀고 거기에 더해서 58만톤을 수입했다. 약 200만톤의 쌀이 밥쌀 외의 용도로 쓰였다는 말이다.
쌀생산과 밥쌀소비는 계속 줄고 있지만 수입량은 계속 늘어난다. 밥쌀이 아닌 쌀은 아마도 대부분은 정부가 좋아하는 가공산업을 위해 쓰였을 것이다(오죽하면 ‘쌀가공산업육성법’까지 만들었겠는가). 농민이 쌀 생산에서 생산비를 못 건져도, 쌀농사를 포기해도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가공산업은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도 이 513%는 여전히 유지될 것인가. 아니면 공장이 문닫으면 노동자들 굶어 죽는다는 그 흔한 기업논리를 가지고 쌀 수입을 촉진하게 될 것인가. 1990년대 국산쌀이 남아돌아 허용한 쌀 막걸리가 지금 원료로 쓰는 쌀이 무엇인지 우리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단추를 잘못 꿰기 시작한 것일까? 20년이 지나면서 이제야 하나하나 되새겨지는 일련의 기억들이 있다.
첫 번째 떠오르는 기억은 쌀소비 촉진이다. 1990년대 처음 학교급식 논의가 시작되던 그때 몇몇 경제학자들이 학교급식을 해야 하는 이유로 쌀소비 촉진을 들었다. 당시 1인당 쌀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쌀자급률이 100%를 넘는 상황에서 쌀소비 촉진은 아주 중요한 문제처럼 보였다. 이를 위해 막걸리에서부터 각종 과자류까지 쌀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다. 이렇게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쌀 소비가 늘어나면 그것은 언젠가는 결국 값싼 수입쌀을 원료로 하는 상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쌀이 중심이 되는 우리의 전통적인 밥상을 되찾는 것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쌀 소비 촉진이라는 구호에 너무 쉽게 동화되었던 셈이다.
두 번째 떠오르는 것은 육류를 거의 주식처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서 어느 순간 고기를 먹고 체력을 길러야 공부도 한다는 유행 아닌 유행이 불면서 밥상에 고기가 올라가기 시작하고 밥대신 고기로 한 끼를 대신하는 빈도도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밥을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떠오르는 것은 어느 순간 밀가루 음식마저 주식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쌀이 부족하던 시절 끼니를 잇기 위한 곡류 중 하나였던 밀이 아침밥상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바쁜 현대인’이라는 단어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가사노동의 최전방에 있던 부엌노동이 남녀차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밥과 국, 반찬으로 이루어진 밥상은 너무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낭비하는 것이 되고 부엌노동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빵과 우유로 아침을 대신하는 것이 현대인의 조건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드라마들이 우리에게 아침에는 빵과 음료와 과일 몇 쪽으로 간단하게 해치우는 것이 밥상을 책임지는 엄마를 위한 일인 듯이 보여주었던가. 어디 그뿐이랴. 시간을 쪼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공부에 한시가 급한 학생들에게는 빵과 고기로 이루어진 패스트푸드가 제격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외식이다.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외식의 비율은 식비의 반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고기를 먹는 회식문화에서 패스트푸드, 패밀리레스토랑으로까지 확대된 외식문화는 더 이상 밥이 주식인 나라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무엇을 먹건 하루 필요한 열량과 영양만 채우면 되는, 아니 밥만으로는 보충할 수 없는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도 밥 중심의 밥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셈이다.
우리가 쌀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아니다. 우리는 쌀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쌀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쌀이라는 농작물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논농사에 전념하는 농민들을 지키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의 우리의 삶을 지탱해왔던 오랜 방식을 지키는 일이다.
밥, 국, 반찬으로 이루어진 밥상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사시사철 다양한 모습으로 올라오기 마련이었다. 봄에는 각종 산나물과 들나물들로, 여름에는 텃밭에서 나는 온갖 채소들로, 가을에는 산에서 들에서 익은 다양한 열매들로, 겨울에는 그 모든 계절에 먹고 남겨 두었던 온갖 말린 나물들과 저장식품들로, 그렇게 우리 밥상은 우리가 사는 땅에서 자라는 것들과 함께 이루어져 온 것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여름 장마도, 겨울 추위도 견뎌내는 잡곡들과 쌀로 지은 밥이 있었다. 그 밥이 우리에게 필요한 열량을 제공하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산과 들에서 나는 모든 것들로 이루어진 반찬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을 제공하는데 충분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어떻게 이것을 골고루 나눠 먹을 것인가였지 밥상문화 자체가 아니었다. 언제인지 모르게, 어느 순간 우리 뇌리에 박힌 ‘우리의 굶주림의 원인이 우리 밥상에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시작된 서양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우리에게 주입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허상일 뿐이다. 그게 바로 사대주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쌀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쌀이라는 하나의 농작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던 우리 밥상문화를 지키는 것이다. 또한 쌀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 수천 년의 삶과 앞으로 이어질 미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 쌀소비를 촉진이라는 이름으로 쌀가공품을 먹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밥상에 밥대신 고기나 빵을 올리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쌀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가공식품과 표준화/규격화
학창시절 도시락을 싸다니던 세대들의 도시락 반찬에 대한 로망을 하나 꼽자면 소세지반찬이 있다. 그것도 달걀을 입힌 것이라면 환상이다. 오죽하면 지금 식당이나 술집에서 곧장 파는 옛날도시락이라는 메뉴는 양은 도시락에 밥과 달걀입힌 소세지와 신김치, 멸치와 달걀프라이로 이루어져 있겠는가. 그 소세지에 대한 로망은 80년대가 되면서 부모가 되기 시작한 세대들이 아이들에게 반드시 먹이는 반찬이 되었다. 마치 자신들의 로망을 자식을 통해 해결하듯이.
그러던 어느날 아질산나트륨이 발암물질로 문제가 되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소세지는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가니 먹지 말자라는 좋은 해결 대신 아질산나트륨을 빼고 먹자라는 방향으로 갔다. 그렇게 해서 발갛던 소세지가 허연 소세지로 바뀌고 이를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안전한 소세지라고 광고를 한 곳들이 있다.
고기로 먹으면 가장 간단한 것을 일부러 각종 가공과정을 거친 소세지로 만들어 먹고 그 원료 중 문제가 되는 것이 나오면 그때 그때 한가지씩 빼기 시작하고, 그 결과 무첨가 소세지가 여전히 득세다. 소세지라는 것이 육식을 하던 종족이 남은 고기를 장기보관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만들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중고등학교 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냥 시험을 위한 것일뿐 실제 생활에서는 응용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것에는 1960년대 경제성장정책을 시작한 이래 항상 적용되는 원칙이 있다. 바로 표준화/규격화이다. 그 표준화/규격화의 표식이 바로 우리가 70년대까지 들어야 했던 ‘KS마크를 확인하세요’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러나 이 KS마크를 지금 시대에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60년대의 산업기술은 이제 충분히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공산품들은 굳이 그 마크를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표준화/규격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장식 대량생산이라는 산업분야에 뒤늦게 뛰어든 식품산업에서는 아직 충분한 표준화/규격화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가 소세지를 밥상에 즐겨 올리던 80년대 말 경에는 말이다. 이를 그냥 놔둘 리가 없다.
먹을거리도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기 시작하면 이 표준화/규격화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실제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는 식품산업에서의 표준화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표준화/규격화가 식품에 적용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사과나무에 열리는 사과는 그 색이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물론 같은 나무에 열렸다고 해서 맛이 똑같지도 않다. 그건 다른 과일도 다 마찬가지이다.
자, 다음은 사과주스 또는 감귤주스를 생각해 보자. 내가 먹는 것과 똑같은 사과나 귤로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표가 붙어서 나오는 주스는 분명 사과나 귤과는 다르다. 그것은 병마다 다른 맛이나 색을 내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지겠는가? 분명 끊임없이 새로운 사과와 귤이 계속 그 가공공정과정에 투입되고 있을 것인데 말이다. 이럴 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각종 첨가물이다.
맛, 색, 향 등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동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첨가물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러니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것은 법이 정한 원칙인 표준화/규격화를 위해서라도 첨가물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합성이건 천연이건 간에 첨가물이라는 것은 어쨌든 그 식품이 원료농축수산물이었던 시절에는 없었던 어떤 것을 표준화/규격화를 위한 과정에서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이렇게 집어넣은 것들로부터 발생한다.
V. 안전한 먹을거리
먹을거리에 관한 관심은 주로 소비자단체와 농민단체의 관심사였으며 특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나 한살림 등 직거래 단체의 주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단체들은 웰빙바람을 타고 비약적 성장을 했다. 생협전국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생협이나 한살림 등 직거래단체의 조합원 수는 2001년과 비교하여 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특히 2001년에서 2003년까지의 증가는 평균 3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이 증가는 2004년부터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하여 2005년에는 한 자리 수의 증가에 그쳤다. 이 단순한 통계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기의 열풍이 생협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결과 얻어진 성장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생협은 이후 먹을거리 교육에 더많은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이전의 생협은 농산물 직거래를 통하여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받는 것과 동시에 농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중시하는 등 신뢰관계에 기초한 활동이 주였다. 즉, 생협 등이 농민과의 직거래를 더 강조하던 시절에는 많은 교육이 생협이 취급하는 농산물만이 아니라 생산자를 알고 먹는 즐거움 내지는 생산자와의 끊임없는 교류 등을 가장 큰 장점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성장세는 먹을거리 교육의 필요성을 불러왔으며 먹을거리 교육이 주가 되면서부터는 생협이 취급하는 농산물 자체가 왜 좋은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교육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생협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비자단체와 환경단체의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이후 각 단체들이 먹을거리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들었는데 각종 강좌나 정책관련사업 등에서 먹을거리 자체가 주제로 등장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 사업들도 2004년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듯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불과 3년 만의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하고 점점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단체들이 먹을거리 교육에서 집중해 온 것은 TV 프로그램이 그러했듯이 다양한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이걸 먹으면 이렇게 문제가 된다. 저것을 먹으면 저렇게 아프게 될 것이다. 유기농을 먹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며 유기농이 아닌 것은 마치 독약처럼 먹어서는 안된다고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 먹을거리 교육의 주 내용이 되었다. 사실 초기 교육에서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들은 소비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앗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소비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단체의 교육 내용은 소비자들에게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들로 비쳐졌다. 결국 소비자들이 먹을거리 자체가 아닌 먹을거리로 대표되는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한 교육에는 등을 돌리게 되고 초기의 충격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안전한 먹을거리, 바른 식생활을 통한 정치, 경제, 문화의 변화를 기대하던 과거의 고민들은 점차 퇴색하면서 마치 기업이 먹을거리를 이윤을 위한 상품으로 생각하듯이 우리조차도 먹을거리를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시킨 결과를 낳았다.
진정으로 밥상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면 먹을거리를 인간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생명산업으로 되살려야 한다. 옛날 농업은 생명산업, 즉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고 생명을 거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농업은 생명을 살리거나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식량’으로 불리웠고, ‘식량’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소비자들은 돈만 있으면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것이 식량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에 발맞춰 농민들도 농업은 생명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되었으며 더 이상 생명을 살리지도, 거두지도 않게 되었다. 농업이 변하면 모든 것이 따라 변한다. 농업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먹을거리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것은 내 입에 무엇이 들어가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옛 어른들의 말처럼 그 속에 세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먹을거리 교육도 단순히 무엇은 먹어도 되고 무엇은 먹으면 안된다는 식의 교육이 되면 곤란하다. 그것이 관행농법으로 지어진 농산물이냐, 아니면 유기농산물이냐만을 기준으로 먹을거리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이미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행해져 온 먹을거리 교육이 잠간의 충격을 주고 사라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먹을거리 교육은 근본을 알려주고 함께 고민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근본은 우리가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관계맺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먹을거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교육이라면 더욱 좋을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분명 유기농을 먹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붙여준 인증표시가 바로 유기농이라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유기농’은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기농에서의 관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기농에서의 관계는 농업을 영위하는 주체인 인간과 농업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요소들- 흙, 공기, 물, 햇빛, 바람-, 그리고 농업환경을 둘러싼 다양한 생태계 속에서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이 자연요소들은 단순한 무생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유기물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기농은 인간과 생태가 하나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둘째, 유기농은 산지에서부터 밥상에 오르기까지 사회 속에서의 인간간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야 한다. 즉, 생산, 유통, 소비의 전과정 속에서 각각의 과정을 담당하는 인간들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즉, 이 관계는 한 과정에서 다른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서로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계맺음을 알려주는 먹을거리 교육이 가장 바람직한 교육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먹을거리 교육을 바탕으로 내 땅에서 나는 제철 먹을거리를 찾아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과제이다. 그리고 그 먹을거리들이 하나하나 과거의 유기적인 관계를 살리도록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한 먹을거리라는 유기농은 하루아침에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국내 농업이 살 길이 없는 마당에는 이 요구는 오히려 사치일 뿐이다. 왜냐하면 유기농은 기본적으로 관계맺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지역개념을 벗어나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외국 땅에서 ‘organic'이란 딱지를 붙이고 나타나는 것을 유기농이라 부를 수는 없다. 우리나라 농업이 살아야 하고 그리고 그 농업이 지속가능하게 살아남기 위한 대안이 유기농업으로의 전환이 되어야 한다. 국내농업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몇 년 후의 안전한 농산물을 위한 우리의 보험이다.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관한 대부분의 논란의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가공식품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공식품의 원료에 관한 것인 이유는 바로 원료에서부터 가공과정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문제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안전한 밥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 핵심은 간단하다. 되도록 공장에서 만든 가공식품을 줄이고 땅에서 난 원료 농축수산물 위주로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물론 이 원료는 국산일 때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으로 재배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가장 안전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차선으로 국산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원료 농산물은 제철일 때 가장 좋다. 제철일 때는 흔하기 때문에 값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봄에는 산과 들에서 나는 풀들로 밥상을 차렸고 여름에는 텃밭의 온갖 푸성귀들로 밥상을 채웠다. 가을에는 산과 들에서 나는 각종 먹을거리들을 밥상에 올렸고 봄, 여름, 가을 동안 남은 농산물을 절여 놓은 절임식품과 김장김치로 겨울을 났다. 이것이 제철에 가장 흔한 것들을 밥상에 올린 지혜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밥상이다.
오늘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때문에 사람들을 밥상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되도록 편리한 방식으로 밥상을 차리려고 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그 요구에 맞춰 냉동식품류, 장류, 김치류, 국․찌개류에서 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공장에서 만들어 팔고 있다. 그러나 안전한 밥상은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