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권 제 12장
피(血)의 폭풍
열국십팔무존의 지하비전이 있는 탑란오소에 몰려든 무림인들,
그들이 어찌 평범한 인물들이겠는가.
게다가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 잔혹했던 피의 쟁탈전과 대폭발에서
빠져나온 인물들이니만치 비록 수효가 오십여 명에 불과하다 해도 어느
한 명 고수아닌 인물이 없었다.
가히 무림을 대표하는 엄청난 고수들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사막의 능선을 뒤덮으며 솟아난 오백여 명의 흑의검수들,
그들의 기도는 실로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쓰----윽!
일렬로 늘어선 그들은 거침없이 다가왔다.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듯 일사불란 했으며 그 움직임 또한 얼음 위를
미끄러져 오듯 괴이 망측했다.
[ 흐흐흐흐....뭐하는 놈들이냐! 환가가 뭐 대수냐----! ]
꽈릉----
중인들 중 가장 성미가 화급한 남해의 천괴궁 다전이 돌연 등에 메고
있던 뇌궁(雷弓)에 강전을 매겼다.
무서운 백광이 뇌전 치듯 다가오고 있던 흑의검수 쪽으로 쏘아져 갔다.
헌데,
카----앙!
탁!
흑의검수들은 전혀 손을 쓴 것 같지 않은데 강전이 그들의 삼장 전면
허공에서 두 쪽이나 떨어지지 않는가!
[ 으음.... ]
[ 제법 한가락 하는 놈들이로군. ]
중인들이 내심 한기를 삼켰다.
일대일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그들이었다.
허나 놀라운 기도를 지닌 흑의검수들의 수효가 무려 오백여 명에 이르
고 있었던 것이다.
쓰으으읏....
모래먼지를 발밑에서 일으키며 미끄러져 오고 있는 오백여 명의 흑의
검수들,
허리까지 늘어진 긴 흑발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무심하기 이를 데 없는 눈빛,
오백여 명의 호흡이 하나로 일치하는 듯한 행보(行步),
그들의 이런 모습은 어찌 보면 아름답기까지 했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사----악!
쓰으읏!
오백여 명의 흑의검수들이 무서운 기세로 중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검은색의 해일이 밀려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차----앙!
꽈꽈꽈----꽈앙!
[ 크----악! ]
그것은 폭풍이었다.
죽음의 이빨을 번뜩이는 무서운 폭풍,
십여 명씩 한조가 되어 지하비전에서 빠져나온 고수들에게 덮쳐드는데
거칠게 없었다.
이곳에 운집해 있는 오십여 명의 고수들은 모두 각파의 종사급 고수들
인지라 쉽사리 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덮쳐는 오백여 명의 흑의검수들이 사방에서 마구 추풍낙엽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너무도 가공스러운 기세에 아무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
[ 이, 이런 미친놈들! ]
[ 멈춰라----! ]
정신없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는 죽음의 파도에 사람들은 진정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였다.
지켜보고 있던 소연황의 눈 깊은 곳에서 살기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소연황의 신형이 한줄기의 사풍(沙風)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악!
[ 크----악! ]
스스스스스....
카아아!
돌연,
사방의 허공 위로 만월(滿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원월책----가거라----십이선법----! ]
파----앙!
스스스슷....
먼저, 여인의 눈썹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아미월이 허공으로 밀려났다.
아미월은 반월로....그리고 만월로....다시 그믐달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
마치 인간의 손에서 무수한 형상의 달이 탄생되는 듯한 광경,
아니면 월제(月帝)가 환생해 한꺼번에 무수한 달그림자를 토해내는 듯
하다.
허나 뉘라서 알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죽음의 달그림자였던 것이다.
[ 크----아악! ]
[ 와악! ]
중인들의 눈이 커졌다.
무엇인가 한줄기의 백영이 새파란 월광 아래 쉬지않고 번뜩이고 있을
뿐이다.
허나 백영이 스쳐 지나가는 곳에는 환상적인 달그림자들이 떠오르고 있
었고, 거의 동시에 현란한 혈화(血花)가 허공에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퍽----
퍼퍼퍽!
[ 크흑.... ]
[ 와악! ]
아아....
뉘라서 이 광경을 믿을 수 있으랴.
어느 누구도 소연황의 단 일초를 감당해 내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서운 기세로 중인들을 공격하던 흑의검수들이 사방에서 추풍낙엽처럼
무너져 내렸다.
소연황의 신형은 단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았다.
동쪽에서 십여명의 흑의검수들이 휘황한 월영(月影)에 휩싸여 있는 순
간 오히려 소연황의 신형은 반대방향에 나타나고 있었다.
[ 와하하하하핫.... ]
허공에서 소연황의 피에 젖은 광소가 터져나왔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거꾸로 지면을 향해 내리꽂히는 순간 또다시 처절한 비명
성이 연이어졌다.
[ 으----악! ]
[ 왁! ]
헤아릴 수도 없는 수급들이 한꺼번에 피보라를 뿌리며 사방으로 솟아올
랐다.
쿵쿵쿵쿵....
썩은 짚단처럼 넘어가고 있는 목 잃은 동체들,
아아,
진정 잔혹스럽기 그지없고, 또한 너무도 어이없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구대제가 중 지금은 모든 천하인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져 버린 유가
일맥,
그 유가일맥의 후예인 소연황의 신화가 화려하게 피어날 일대혈투가 아
닐 수 없었는데....
이때였다.
소연황이 오백여 명에 달하는 환가의 살인자들을 맞아 유가일맥의 화려
한 등장을 예고하는 죽음의 춤을 연출해 내고 있는 순간,
언제부터인가 이 싸움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지 않은가.
삼백여 장 정도 떨어진 사구(砂丘)의 정상,
그곳에는 당당한 기도의 한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외로운 늑대의 기질....
동시에 또한 태양처럼 밝은 표정,
아아!
바로 마검아수라 북궁완우가 아니겠는가!
무서운 신위로 하나의 신화(神話)를 창조해 내고 있는 소연황을 바라보
고 있는 마검아수라 북궁완우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솟아났다.
[ 흠....어쩐지 범상치 않다 했더니....바로 구대제가 중 하나인 유가의
후예였단 말이지....? ]
더할 나위 없이 담담한 독백이다.
허나 어쩐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독백이기도 했다.
[ 후후후....이렇게 되면 구대제가 중 대부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종횡가의 구천단성, 묵가의 장군부....불가의 대소림, 도가의
무당파....그리고 환가와 유가마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
인가....? 좋아....아암....멋있는 일이지. 일천여년 전에 승부를 가
리지 못했던 일을 당대에서 매듭지을 수 있으니 말이야.... ]
마검아수라 북궁완우의 독백이 담담히 이어졌다.
광오하리만치 자신감에 차 있는 음성이었다.
[ 후후훗....후후후....이제....음양가와 독가의 숨은 후계자만 모습을
드러내면 천하는 나 마검아수라 북궁완우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나
머지 팔대제가 위에 군림할 새로운 법가의 탄생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
이다. ]
---새로운 법가의 탄생이 시작될 것이다.
어찌보면 패기만이 담겨져 있는 광망스러운 태도이다.
허나 만월이 떠올라 있는 대사막의 천공을 향해 으르릉거리는 듯 야망
을 토하고 있는 마검아수라 북궁완우의 이런 태도는 실로 일대패웅의
그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독백이 아직 허공에 떠돌고 있는 시각,
언제 사라져 버렸음인가?
마검아수라 북궁완우의 신형이 연기꺼지듯 이미 사산의 정상에서 깨끗
이 지워지고 없었는데....
반시진,
그렇다.
단 반시진만의 결과였다.
그 짧은 시간에 환가의 살인자들인 오백여 명의 흑의검수들이 이미 반
이상이나 쓰러져 있지 않은가.
죽음의 폭풍,
천하의 그 누구라도 항거할 수 없는 힘(力)의 움직임....
헌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 ]
소연황은 문득 자신의 주위에 기이한 암류(暗流)가 형성되고 있음을 깨
닫고 신형을 멈춰 세웠다.
전신을 옥죄어 오는 듯한 기이한 압박감이다.
허나 주위에 저혀 새로운 인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있다. 엄청난 고수이다.)
그렇다.
진정한 고수라면 상대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도 상대방을 느끼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소연황은 돌연 무엇인가 엄청난 힘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마치 어둠에 잠겨 있는 숲속에서 야수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기
분이라고나 할까!
[ 흐흐흐흐....유가일맥의 후예였다니...... ]
돌연,
아무도 없는 빈 허공 한 곳에서 음침한 음성이 길게 울려 퍼졌다.
뿐이랴!
팟!
터질듯이 압축되었던 공기가 한 순간 소연황의 주위로 화악하고 밀려
들었다.
한 자루의 기형 장검이 공기를 끊어냈다.
아미월처럼 크게 휘어져 있는 한 자루 흑검,
이 흑검의 출현은 실로 돌발적이었다.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돌연 허공중에서 기이한 흑검이 튀어나오
며 소연황을 베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소연황이 크게 긴장하며 예의 흑검을 젖혀내는 순간 어디선가 환상처럼
괴이한 음성 하나가 소연황의 뇌리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귀로 흘러들어 온 것이 아니라 예의 음성은 곧 바로 그의 대뇌로 침투해
오고 있었는데....
----본좌는 환가의 후예 일천미조(一天迷租)이다.
[ ......! ]
소연황의 눈에 경악의 빛이 솟아났다.
예의 음성은 불문의 혜광심어인양 인간의 귀를 통해 들려오지 않고 곧
바로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예의 괴이한 전어는 또한 불문의 혜광심어와는 또 달랐다.
----네놈이 구대제가 중 유가의 후예가 확실하다면....일천 년에 결하
지 못했던 선조들의 승부를 너와 결하고 싶다. 따라 오겠느냐....
(환가의 후예 일천미조?)
(으음....환가에서는 열국십팔무존의 비학들을 모조리 취해 천하를 장
악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군.)
소연황의 눈이 잔잔히 빛을 뿌렸다.
일천여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환가의 고수들이 등장하고 다시
그 지존마저 모습을 드러냈음이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흐흐흐흐....본좌는....네가 열국십팔무존의 지하비전에서 가장 많
은 비학을 취한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절대로....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소연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 좋다. 유가일맥의 후예로서....제가(諸家)의 도전을 결코 피하지 않
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나는 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가 평가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고 싶었던 참이었다. ]
휘----이이익!
순간,
무엇인가 희끄무레한 물체 하나가 소연황의 일 장 전면에 형성되었다.
인간인지 악령인지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한 윤곽....
예의 기괴한 물체는 무서운 속도로 맞은편 절벽 윗쪽으로 치달려가기
시작했다.
한 무더기의 연기이련가?
아무리 시력을 집중시켜 보아도 그 형체가 확연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의 희끄무레한 괴영의 속도가 인간의 속도로 믿어
지지 않을 정도로 가공스럽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기문둔갑과 환술등, 이단사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환가다운 공포스러
운 능력이 아니겠는가.
[ ......! ]
소연황의 눈이 잔잔히 빛을 뿌렸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 역시 한 줄기의 유성인 양 맞은편의 절벽을 향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환가의 후예 일천미조가 바로 그곳에서 대결하자는 의도임을 깨달은 것
이었다.
구대제가의 제삼차 격돌....
그렇다.
이렇게 감춰져 있던 구대제가들이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고....
그 엄청난 전설의 가문들은 일천여 년 만에 다시 격돌하며 천하를 피의
폭풍으로 몰아넣기 시작하는데....
중권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