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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공손혜의 저돌적인 공격
1
"흐흐, 네년들이 천룡쌍미라는 천룡신검의 두 손녀로구나."
강시대마의 눈빛이 사악하게 번뜩였다.
천룡신검,
강시대마에게는 뼈에 각인된 이름이었다.
"흐흐흐, 네년들을 잡아 강시로 만든 다음 천룡신검에게 보낸다면 노부의 사십 년 한이 한꺼번에 풀리겠구나."
사악하게 웃는 그의 시커멓게 죽어 있는 눈이 천룡쌍미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공손화 등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전신의 소름이 올올히 일어섰다.
한참 동안 그의 눈을 마주보고 있다가는 생기를 모조리 빼앗길 것만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용해린의 입에서 한 소리 비아냥이 흘렀다.
"쯧쯧, 나이를 헛먹었군."
"뭣이?"
용해린의 말에 강시대마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증손자뻘도 안 될 어린놈이 분명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 말이었다.
강시대마가 무어라 하려 할 때 용해린의 말이 먼저였다.
"노인네가 무덤에 들어갈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염왕(閻王)이 졸고 있는 것 같소."
"이 찢어 죽일 놈, 터진 입이라고 잘도 주절대는구나."
용해린의 비아냥에 강시대마의 분노가 터졌다. 그것은 곧 살기로 이어졌다.
"네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리라!"
이어 강시대마의 신형이 기쾌하게 용해린을 향해 폭사해 갔다. 동시에 그의 쌍장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부골흑장(腐骨黑掌)!"
슈우우우―!
강시대마의 쌍장에서 거무스름한 기류가 폭사하듯 용해린에게 뻗어 나왔다.
그 막강한 공세에 옆에 있던 공손화 자매는 깜짝 놀라 한 발씩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스윽……!
용해린이 그녀들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수중의 창룡노를 비스듬히 내리 그었다.
"파(破)―!"
굼뜬 당나귀같이 아무런 위력이 없어 보이는 용해린의 공격에 강시대마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크크, 그래도 한 가닥 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 별것도 없……."
그러나 다음 순간 강시대마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용해린의 아무런 위력이 없는 손짓에 의해 하나의 선(線)이 그어지며 자신의 부골흑장을 반으로 갈라 버린 것이다.
"헉!"
부골흑장을 가른 선은 그대로 강시대마에게로 향했고, 갑작스런 상황에 강시대마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물러나야 했다.
그의 새하얀 얼굴이 낭패감으로 인해 검게 변했다.
"으음, 대단한 놈이군. 나의 부골흑장을 간단히 깨뜨리다니."
"후훗! 강시대마란 자도 별 것 아니군. 허명뿐인 것 같은데."
용해린의 말에 강시대마의 얼굴이 붉으락해지며 일그러졌다.
하나 얕볼 수 없는 강적이었다.
"으, 내가 너를 너무 가볍게 봤구나."
그는 천룡일운검이 조사동 같은 요지에 용해린 같은 젊은이를 놔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좀 더 일찍 했어야 했다. 그러나 강시대마는 고개를 저었다.
"흐흐,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 천룡보는 무림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말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동 아니겠소?"
"좋아, 배포가 큰 놈이군. 너 같은 놈을 만난 기념으로 나의 유령십시를 선사하겠다."
"유령십시?"
"크크크, 내가 사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놈들이지. 자, 유령십시와 한 번 놀아 봐라."
삐이이익― 삐익―!
그의 입에서 기이한 소성이 새어나왔다.
"크카카!"
"카카!"
그 소리와 동시에 강시대마의 뒤에 섰던 열 명의 괴인들이 기음을 토하며 꼿꼿이 신형을 세운 채 곧장 용해린을 덮쳐 왔다.
"물러나라!"
용해린의 입에서 호통이 터지며 창룡노가 휘둘러졌다. 백색의 기류가 뿌려지며 유령십시를 향해서 뻗어 나갔다.
쾅! 콰쾅!
요란한 소리가 나고 유령십시들은 삼 장 밖으로 퉁겨져 날아갔다.
하나, 삼 장 밖으로 날아갔던 유령십시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듯 재차 용해린을 공격해 들어왔다.
"꽤나 단단하군."
용해린의 눈이 반짝였다.
일만 근의 위력이 담긴 자신의 일격에도 유령십시는 멀쩡했으며 다시 공격해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용해린은 입가에 나직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훗, 너희들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설사 금강불괴일지라도 내 앞에선 무용지물(無用之物)!"
용해린은 내공을 배로 끌어올렸다. 더불어 창룡노를 일직선으로 앞을 향해 내뻗었다.
순간 그의 창룡노에서 칼날 같은 역도가 일어나며 주변의 공기가 미친 듯이 일렁거렸다.
쏴아아아……!
동시에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며 창룡노에서 뻗어 나온 백색의 기운이 마주 달려오는 유령십시들을 덮쳐 갔다.
펑! 퍼펑! 펑―!
마치 가죽 공이 터지는 음향이 터졌다.
"까아아!"
"크카카!"
유령십시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갔다.
날아가는 그들의 심장 부분에는 모두 사발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용해린의 창룡노에 의해 유령십시의 심장이 모두 부숴져 버린 것이다.
"으으으, 이럴 수가…… 나의 사랑스런 유령십시가 이렇게 허무하게 모두 부숴져 버리다니."
강시대마의 두 눈이 충혈 됐다.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유령십시가 너무도 간단히 부숴진 것이다.
사십 년의 세월이 단 일 촌의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었으니 강시대마의 눈이 뒤집힐 만 했다.
"으으, 내 네놈을 가만 두지 않겠다. 모두 나가라!"
발악을 하듯 그는 흑의인에게 명령을 내렸다.
스스슷― 스스스슷―!
강시대마의 명에 따라 사백여 명에 달하는 흑의인들이 용해린 등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다가들고 있었다.
파도같이 밀려드는 흑의인들의 모습을 보며 용해린이 천룡검사들에게 외쳤다.
"저들은 내가 맡을 것이니, 그대들은 쌍미를 보호하시오."
그의 말에 백여 명의 천룡검사는 일사분란하게 공손화와 공손혜를 중심으로 둥글게 검진을 형성했다.
천룡검사는 순식간에 견고한 검진을 만들며 완벽한 방어진을 형성했다.
용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천룡검사들이다. 단지 백여 명 뿐이나 웬만해서는 뚫기 어려운 검진을 만들었다.'
감탄을 하던 용해린은 이내 창룡노를 고쳐 잡았다.
'후훗, 안심해도 되겠군. 그럼, 마음 놓고 놀아 볼까나.'
용해린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츄츄츄― 슈슈슉― 치리리릿―!
강대한 힘이 담긴 흑의인들의 공세가 어느 새 그의 지척에 가까워 있었다.
그러나 용해린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 오래간 만에 몸 좀 풀자! 간다―!"
용해린의 신형이 그대로 앞으로 쭈욱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둠을 가르는 하나의 섬광과도 같았다.
"아!"
"아아……!"
무작정 달려 나가는 용해린의 모습에 공손화 등은 가슴을 조였다.
무림인들을 많이 보아 온 그녀들이라 흑의인들의 무공이 어떤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흑의인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일류 이상의 수준들이었다.
그런 고수들 사백여 명을 향해 용해린은 혈혈단신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장강수룡방의 배들을 부술 때 그의 무공이 대단한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지금의 상대는 그들보다 적어도 한 단계 이상 강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 그녀들은 곧 두 눈을 번쩍 떠야만 했다.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갈기를 휘날리며 승냥이들 속을 휘저어 버리는 한 마리 사자였다.
용해린이 창룡노를 휘두를 때마다 이삼십 명의 흑의인들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컥!"
"크악!"
"하하핫! 이거 신나는구나."
용해린은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창룡노를 더욱더 사정없이 휘둘러댔다.
용해린은 그들의 진영 속을 이 잡듯이 누비며 창룡노를 휘둘렀고 그들의 빈자리는 점점 늘어만 갔다.
병기를 들어 용해린의 창룡노를 막으려 하나 그들의 무기는 모두 부러지거나 잘려져 나갔고 그들의 신형은 창룡노에 맞아 여지없이 나가떨어졌다.
흑의인들의 숫자는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시대마의 전신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으으으…… 대체 저 자가 누구란 말이냐?"
그는 오랫동안 잊었던 공포(恐怖)라는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너무도 강하다. 중원단의 일급 고수들이 손도 대보지 못하다니."
그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도 수하들은 계속 쓰러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또 반이 줄어들었다.
"으으, 괴물이다. 유령십시를 간단히 부숴 버리고 총단의 고수들 사백 명도 상대가 되지 않는 괴물이 있을 줄이야!"
강시대마의 신형이 눈에 보일 만큼 떨리고 있었다.
진한 두려움과 공포가 그의 전신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안되겠다. 이 상황에서는 퇴각이 상책이다.'
순간, 강시대마의 신형이 하늘로 치솟았다.
"모두 퇴각하라!"
한마디 외침과 함께 그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흑의인들도 그를 따라 빠르게 사라져 갔다.
부상당한 흑의인들도 분분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상당한 자들은 많았으나 죽은 자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공손화 등은 멀뚱히 용해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새삼 그의 무공에 감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들을 향해 용해린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이쪽은 해결된 것 같으니 이곳은 천룡검사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연무장으로 가 봅시다. 아무래도 보주님께서 힘드신 상황인 것 같소이다."
"예? 아버님이 힘드시다니요?"
"강시대마가 사라질 때 천시지청술(千視地聽術)로 대전의 상황을 살폈는데, 보주님에게도 힘겨운 자가 나타난 모양이오."
"그 자가 누군데 아버님이 힘들어 하시죠?"
"혈성추혼마라고 사마 중 한 명이 나타난 모양이오."
"혈성추혼마요?"
"아, 그 자까지 나타나다니……?"
그녀들의 눈이 커졌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혈성추혼마라면 천룡일운검으로서는 벅찬 상대였다. 천룡보에서 오직 천룡신검인 자신의 할아버지만이 상대할 수 있는 자임을 그녀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해린 오빠! 어떻게 해요?"
공손혜는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용해린은 미소를 지었다.
"후후, 염려 마라. 내가 있지 않느냐?"
"그를…… 상대할 수 있겠어요?"
공손화도 기대 어린 표정으로 용해린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용해린은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훗! 걱정 마십시오. 혈성추혼마라면 일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자요. 그리 힘든 상대는 아닙니다."
"아! 그렇다면 어서 가 보도록 해요."
"그럽시다."
삼인의 신형이 그곳을 떠났다.
2
백여 장이 넘는 거대한 크기의 연무장이 동서남북으로 네 개가 연해 있는 곳이다.
지금 그곳은 피가 난무하고 있었다.
수천여 명의 무사들이 뒤엉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난전을 벌이는 그들은 두 패로 나뉘어져 있었다.
황백색(黃百色)의 옷을 걸친 검사들과 흑의와 갈의 등 여러 색의 옷을 입은 고수들이 삼천여 명.
황백색의 옷을 걸친 검사들은 천룡보의 검사들이었다.
지금 그들은 계속 밀리고 있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데다 적들 중 흑의를 걸친 자들의 실력은 다른 자들과 월등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가장 격렬하게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두 곳이었다.
서편 연무장에서 천룡십검노가 자신들을 포위한 채 공격하고 있는 삼십 팔 인의 괴인들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대전이 있는 동쪽의 연무장, 그곳에서 천룡일운검 공손웅이 한 명의 혈의노인과 대적하고 있었다.
혈의노인을 상대하는 공손웅은 전신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그가 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황은 천룡십검노와 천룡일운검 공손웅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흐흐, 천룡십검노! 네놈들은 오늘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다."
"크크, 그렇지. 내년 오늘이 네놈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어둠 같은 흑의와 회의를 걸친 이 인, 그들이 바로 마혼각의 각주와 잔혈방의 방주였다.
흑색 옷을 걸친 뱀눈의 인물이 마혼각주 일점사홍(一點死紅)이었고, 회의의 매부리코 노인이 잔혈방의 방주 잔혈수라(殘血修羅)다.
그들은 지금 흑의복면인 삼십 육 인과 함께 천룡십검노를 격렬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삼십 육 인의 흑의인들은 묘한 진세를 형성한 채 천룡십검노를 압박하고 있었다.
더구나 일점사홍과 잔혈수라가 가세하고 있어 천룡십검노는 시간이 갈수록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검의 귀신들이라 할 수 있는 천룡십검노도 검진(劍陣)을 펼쳐 그들을 대적하고 있었다.
오십 년을 함께 한 천룡십검노의 검진은 아주 강해 흑의인들의 강력한 공세에도 잘 버티고 있었다.
천룡십검노의 단단한 검진을 깨기 위해 오히려 일점사홍과 잔혈수라 등은 조급하게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천룡십검노들에게 당분간은 위험이 없어 보였다.
하나, 천룡보주 천룡일운검은 지금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상대는 너무도 강한 자였다.
혈성추혼마(血星追魂魔).
십대고수의 일 인인 혈성추혼마가 천룡일운검의 상대였던 것이다.
비록 혈성추혼마가 십대고수에서 제일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는 십대고수의 일 인이었다.
"천룡항마(天龍降魔) 십칠식(十七式) 천룡단천(天龍斷天)―!"
공손웅의 검에서 검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가며 혈성추혼마를 휘감아 갔다. 그의 검세는 혈성추혼마를 관통할 기세였다.
하나,
"혈성난무(血星亂舞)―!"
혈성추혼마의 수중에서 핏빛 섬광이 일어나며 공손웅의 검세를 무력화시켰다.
"으음,"
천룡보주는 신음을 삼켰다.
이번 공격에서도 오히려 손해를 봤던 것이다.
'벌써 모든 검식을 다 펼쳤다. 남은 건 마지막 초식뿐이다.'
공손웅은 검을 가슴에 세우며 내심 빠르게 생각을 굴렸다.
'설마 혈성추혼마가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항상 홀로 행동한다는 혈성추혼마는 천여 명의 흑의무사들과 마도의 강파인 마혼각과 잔혈방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공손웅은 짙은 의혹을 느꼈지만 혈성추혼마에게 연신 밀리고 있어 더 이상 생각은 진전되지 않았다.
"흐흐, 역시 대단하군. 천룡항마검식을 구성 가까이 익혔다니. 하나, 내 상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으음……."
"구성의 천룡항마검식으로는 나를 상대할 수 없지. 흐흐, 공손웅! 이제 슬슬 끝을 내야겠다."
혈성추혼마의 공세가 갑자기 배로 증가했다.
드디어 본 실력을 드러내며 공손웅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팟― 파파파팟―!
그의 수중에서 핏빛 혈섬들이 폭사했다.
세 개의 혈성비표가 공손웅을 향해 날아갔다.
"하앗!"
공손웅은 전력을 다해 혈성비표를 내쳤다.
그러나 수천 근의 힘이 담긴 혈성비표를 내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앙! 탕―!
공손웅의 검과 부딪힌 혈성비표는 하늘로 퉁겨져 올랐다.
하늘로 치솟은 혈성비표는 다시 공손웅을 공격했다.
이기어비(以氣馭飛)로 날리는 혈성비표가 재차 공손웅을 공격해 왔다. 공손웅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하나 혈성비표에 신경 쓰느라 정작 혈성추혼마가 바싹 다가서는 것을 보지 못했다.
"흐흐, 잘 가라, 공손웅!"
어느새 다가온 혈성추혼마가 이 장 앞에서 장력을 날리고 있었다.
"헛!"
공손숭은 다급히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나 혈성추혼마의 장력을 맞받을 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장력을 막게 되면 혈성비표가 자신을 꿰뚫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로 진퇴양난의 죽음의 도가니 속에 빠진 것이다.
천룡일운검 공손웅이 이대로 무너지는가?
바로 그때였다.
휘우웅……!
기이한 음향과 함께 기적처럼 하나의 물체가 무서운 속도로 혈성추혼마의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헛!"
막 공손웅의 심장을 가격하려던 혈성추혼마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대로 가면 공손웅의 심장을 박살낼 수 있었지만 자신도 허리가 성치 않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는 재빨리 장세를 거두며 옆으로 비스듬히 물러났다.
파팍!
그가 물러남과 동시에 그의 앞에 창 같은 길다란 물건이 청강석 바닥에 깊이 박혀 들었다.
'휴우……!'
혈성추혼마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가 끝까지 공손웅의 목숨을 끊으려 했다면 저 창 같은 물건은 바로 자신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을 것이다.
헌데 문득 바닥에 박힌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이, 이것은……!"
혈성추혼마는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창룡노!
바로 무적해룡을 상징하는 창룡노였다.
일전에 그는 한 번 무적해룡 용해린에게 낭패를 보지 않았던가?
'설마 그 자가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아니다. 그 자가 아닐 것이다. 무적해룡 그 자는 분명 남해 바다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었다.'
강하게 고개를 젓던 혈성추혼마는 빠르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떤 놈이냐? 감히 어르신의 일을 방해한 놈이."
노한 음성을 발하는 그의 말에 대답이 있었다.
"후훗! 노마(老魔)가 그 새 목소리만 커진 것 같군."
돌연 낭랑한 음성이 바로 혈성추혼마의 등 뒤에서 들려 왔다.
"으헛!"
그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듯한 섬뜩함에 신형을 황급히 옆으로 피했다.
바로 등 뒤에 사람이 서도록 몰랐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이다.
몸을 피한 직후 목소리가 들려 온 곳을 돌아보던 혈성추혼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으으, 살아 있었다니……."
그의 시선이 닿은 곳, 어느 새 다가온 용해린이 공손웅의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용해린은 장난스럽게 한 눈을 찡긋하며 입을 열었다.
"후훗! 잘 있었소?"
"으으,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날 줄이야……!"
"후후, 당신만큼 내 명도 상당히 질기다오."
혈성추혼마를 보며 말을 하면서 용해린의 손은 장난스럽게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 있던 흑의인들이 몇 십 명씩 쓰러져 갔다.
3
"으으으……."
혈성추혼마에게 있어 지금 용해린의 미소는 염라대왕의 손길과도 같았다.
유희를 즐기듯 웃으면서 출수하는 용해린의 가벼운 손짓 몇 번에 벌써 자신의 수하들이 백여 명 이상 쓰러졌고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무공이 더욱 좋아진 것 같다.'
혈성추혼마는 용해린의 기세에 전의를 잃고 말았다.
'아마도 저 놈 때문에 칠호법 강시대마도 실패한 것 같다.'
용해린이 온 방향을 짐작한 그는 내심 침음성을 발했다.
장내의 전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열세를 보였던 천룡보의 무사들이 이제는 반대로 승기(勝機)를 잡아가고 있었다.
용해린이 연무장에 들어서기 무섭게 흑의인들을 쓰러뜨러 갔던 것이고, 그에 의해 수백여 명의 흑의인들이 쓰러졌다.
덕분에 천룡보의 무사들은 숨통이 확 트였고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혈성추혼마를 대면하는 와중에도 용해린의 출수는 멈추지 않았다.
용해린의 손에 벌써 오백여 명에 가까운 흑의인들이 비틀대며 쓰러져 갔다.
그 시간은 불과 일곱, 여덟 번의 숨을 들이쉴 정도의 시간뿐이었다.
하나 그것을 지켜보는 혈성추혼마는 서너 시진이 족히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혈성추혼마는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실로 무서운 자다! 저놈이 나타난 이상 오늘의 거사는 완전 실패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수하들을 모두 잃게 된다.'
그가 그렇게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였다.
"후후! 그럼 우리 한 번 놀아 봅시다."
말과 함께 용해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어 바닥에 박힌 창룡노를 뽑아 들었고 한 걸음 한 걸음 혈성추혼마에게 다가갔다.
"예전에는 상황이 좋지 않아 제대로 겨뤄 보지도 못했으나 오늘은 마음껏 놀아 줄 수 있소."
용해린과의 거리가 점점 더 좁혀질수록 그의 심장도 조금씩 수축되어 갔다.
혈성추혼마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으으으, 붙어서 이득을 볼 상대가 아니다. 분하지만 퇴각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어 그는 입을 오므려 기이한 소성을 냈다.
삐이익―!
멀리 퍼져 나가는 그 소리에 격전은 갑자기 멈춰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천여 명에 이르는 흑의인들이 썰물 빠져나가듯이 천룡보를 떠나갔다.
뒤이어 혈성추혼마도 이내 신형을 솟구치고 있었다.
"빠득―! 번번이 네놈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구나. 무적해룡! 오늘은 이만 물러간다만 다음에는 네놈을 반드시 요절내겠다."
긴 여운을 남기며 그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쩝! 오늘도 그와 정식으로 붙어 보지 못했군."
투덜거리는 용해린의 말을 들으며 좌중은 멍한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천하의 십대고수에 드는 혈성추혼마가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을 하다니.
천하의 천룡보도 그와 그의 수하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는데, 그런 그들을 용해린은 참새 쫓아내듯 간단히 몰아낸 것이었다.
어느 새 용해린이 천룡일운검 공손웅 곁으로 다가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공손웅도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으음, 다행히…… 자네가 적절한 때 도움을 줬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네. 고마우이."
"후훗! 별말씀을……."
용해린은 나직이 웃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그는 능히 아버님과 대적할 정도의 고수이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천룡일운검은 이내 좌중을 둘러보았다.
연무장 곳곳에 죽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이들은 대부분 흑의인들이었다.
천룡보의 무사들 중 부상당한 사람들은 꽤 됐으나 죽은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천운(天運)이 닿았군. 존망의 위기에 처한 본 천룡보에 무적해룡 같은 절대자를 보내 준 하늘에 감사한다. 그가 없었다면 육백 년 전통의 천룡보는 오늘 나의 대에서 멸망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공손웅이 용해린에게 감사의 눈길을 던졌다.
"다시 한 번, 그대 무적해룡에게 감사를 드리오. 그대가 없었다면 천룡보는 오늘 무림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소이다. 이 은혜는 천룡보의 사람 모두 영원히 기억할 것이오."
"후훗,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좋아서 한 일입니다."
고개를 흔들던 용해린은 혈성추혼마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흠, 그나저나 혈성추혼마와 또 싸워 보지 못했군."
"해린 오빠는 그와 싸워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가 보군요."
공손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이없는 시선으로 용해린을 올려다보았다.
"후훗, 그는 암기술을 이기어검(以氣馭劍)의 경지에 이르도록 연마한 자다. 무림인으로서 일가를 이룬 인물과 대전해 봄은 당연하지 않느냐?"
용해린은 진한 아쉬움의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다음에 다시 그를 만나면 꼭 대전해 볼 것이다."
"세상에…… 혈성추혼마와 같은 마두와 겨뤄 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에요."
"후후훗!"
용해린은 그저 웃기만 했다.
공손웅이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자네는 남해에만 있었다고 했는데 중원의 혈성추혼마를 어떻게 아는가?"
"몇 달 전 남해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제게 수하들을 많이 잃었었습니다."
대답을 하던 용해린은 한 가지 사실에 진한 의문을 가졌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용해린이 공손웅에게 질문을 던졌다.
"혈성추혼마는 항상 혼자 움직이는 인물로 알고 있는데, 먼저 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보니 그는 상당한 수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더군요."
"으음, 나도 그 점이 이상하다네. 그가 돌연 마혼각과 잔혈방을 이끌고 쳐들어오다니, 그들과 본 천룡보는 지금껏 아무런 은원관계도 없었는데 말이네."
"오늘 온 모든 무사들은 모두 마혼각이나 잔혈방 소속입니까?"
"아니네. 오늘 온 자들 중 흑의를 걸친 자들은 마혼각이나 잔혈방의 무사들이 아니라네."
혈성추혼마가 이끌고 온 흑의인들은 공손웅으로서도 생전 처음 보는 무사들이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용해린은 몇 개월 전 십대고수에 속하는 한령빙마와 혈성추혼마가 같이 행동했음을 떠올렸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혈성추혼마도 오늘 온 마혼각과 잔혈방의 뒤에 웅크린 제 삼의 단체에 속한 것 같습니다."
"혈성추혼마가 우두머리가 아니란 말인가?"
"예."
"그럴 리가……?"
천룡일운검은 고개를 흔들었다.
"혈성추혼마가 어떤 자인데 남의 밑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제 말은 사실입니다. 또한 제가 남해에 있을 때 전 그와 함께 한령빙마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령빙마도?"
"예."
용해린은 한령빙마 등을 만났던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특히 그들이 서로를 칭할 때 오호법과 육호법이라 했던 것에 중점을 두며 얘기했다.
용해린의 이야기를 듣던 좌중의 표정은 믿을 수 없는 표정들이다.
"아, 그럴 수가……?"
"천하의 사마 중 이 인이 한 단체에 속해 있다니……?"
"너무도 엄청난 사실이 아닐 수 없소이다."
좌중은 너무도 가공할 사실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오호법과 육호법이라니?
그렇다면 그들이 어떠한 단체에 속했다는 것이고, 그들보다 뛰어난 고수가 적어도 넷은 더 있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득 천룡일운검 공손웅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상황은 의외로 심각했다.
십대고수에 드는 이 인이 호법으로 있는 세력.
그리고 일류의 괴고수들이 즐비하게 있으며 중원마도의 마혼각이나 잔혈방 같은 강파도 아우르고 있는 세력이 천하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속한 단체에 대해 먼저 알아야겠군. 급히 사람을 보내 제왕검문에 계신 아버님께 이 사실을 알려 대책을 세워야겠다."
공손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형을 틀었다.
그런 그를 보며 용해린이 다시 질문을 했다.
"제가 용정에 있을 때 강시대마란 자가 수하들을 이끌고 왔더이다."
"강시대마! 그 자가 아직도 살아 있었단 말인가?"
공손웅의 시선이 공손화에게 향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공손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분명히 강시대마였습니다, 아버님."
"으음,"
"그 자는 할아버지에게 복수한다며 우리들을 강시로 만든다고 말했을 때는 얼마나 놀랬다고요."
공손혜가 치를 떨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시대마까지 투입됐을 줄은 몰랐군."
놀람을 발하는 그를 보며 용해린은 계속 말을 이었다.
"강시대마란 자는 나타나자마자 화룡보주를 갖고 간다고 하더군요."
"화룡보주를……?"
"맞아요, 아버님. 강시대마는 조사전에 안치된 본보의 가보인 화룡보주를 얻으러 왔다고 했어요."
"그래요. 저도 똑똑히 들었어요."
"그 자가 어찌 본보의 화룡보주를 안단 말인가?"
천룡일운검은 기이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강시대마가 어떻게 본보에가보로 내려오는 화룡보주를 알고 있는 건가…… 그것도 이상하지만 그것을 왜 필요로 하는 것이지?'
그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가문의 조사전에 깊이 안치되어 있는 보주를 노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의아해 할 때 용해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
"외람되오나 화룡보주란 것이 어디에 쓰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화룡보주는 본보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라네."
공손웅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화룡보주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이지만 신비하게도 지상의 어떠한 물기라도 내모는 기이한 힘이 담겨 있는 보주였다.
심지어 빙기(氷氣)나 한기(寒氣)까지 몰아낸다.
그 묘용으로 천룡보의 조사전에 안치돼 습기를 제거하는 효능을 하고 있었다.
그런 화룡보주를 강시대마가 가져가려 한 것이다.
"강시대마는 그것을 어디에 쓰려고 한 것일까요?"
"글쎄, 그것까지 알 수는 없지."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득 공손웅이 입을 열었다.
"하여간 오늘은 너무도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일단 정리를 하고 난 후 다시 얘기를 하도록 하지.“
* * *
용해린과 공손혜는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고 있었다.
천룡보 안에 자리한 하나의 조그만 계곡이다.
나지막한 구릉을 넘어가자 들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사방에 널려진 꽃들이 춤을 추며 두 사람을 반기는 듯하였다.
"혜린오빠! 너무 아름다워요."
용혜린은 꽃 속을 헤치며 달려오는 양홍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너무 아름답구나."
꽃이 아름답다는 것인지 꽃 속에 떠오른 양홍균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인지 말을 하고도 자신이 알 수 없었다.
그런 용해린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공손혜는 꽃을 바라보는 용해린의 미소가 너무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저런 미소를 짓는다면 나는…….'
"여기서 잠시 쉬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좋겠군."
그렇게 말을 하며 용해린은 조그만 바위에 걸터앉았다.
공손화는 용해린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룡보의 은인이라 하여 그녀는 손수 그를 대접할 음식들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언니 공손화는 아침을 준비하느라 적어도 반 시진 안에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공손혜는 눈빛은 반짝이며 용혜린을 바라보았다.
"혜린 오빠, 더운데 저기 계곡에 내려가 잠시 쉬었다 와요. 언니가 아침을 준비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그 동안 물가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어요."
공손혜는 구릉의 아래쪽 으슥한 계곡을 가리켰다.
그녀의 작은 가슴 속에는 묘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밤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공손혜는 밤새 내내 생각했다. 오늘은 자신의 마음을 반드시 전하고 말리라는 결심을.
그러나 소녀의 부끄러움에 망설여지는 공손혜였다.
여자는 어두운 곳에서 용감해 진다고 했던가?
공손혜도 밝은 아침 태양 아래서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용혜린은 공손혜의 재촉에 못 이겨 그녀와 함께 계곡으로 내려갔다.
우거진 숲에 가려진 계곡은 그늘로 뒤덮여 있어 공손혜의 마음을 한결 안심시켰다.
계곡의 한 구석에 바위들로 감싸인 으슥한 곳이 있었다.
삼면이 바위로 감싸여 있었고 바닥은 부드러운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한쪽도 숲으로 이어져 있어 일부러 길 없는 숲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알수가 없는 곳이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던 공손혜는 눈부신 용혜린의 미소를 보고 결심을 하였다. 그녀는 갑자기 그 바위로 둘러싸인 으슥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 공손혜를 보고 용혜린은 머슥한 얼굴이 되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소녀가 으슥한 곳으로 들어갈 때는 급한 생리적 욕구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부시륵… 부시륵…!
가까이 있는 용해린의 귀에 여인의 옷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그리고 뾰족한 공손혜의 비명이 울렸다.
4
"혜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공손혜의 비명을 들은 용해린은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어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녀가 용변을 보고 있는 줄을 알면서 다가간다는 것이 용해린은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해린가가! 빨리 좀……."
그녀의 당황한 듯한, 다소 부끄러운 듯한, 그리고 애써 다급한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용해린은 공손혜가 있는 으슥한 그 바위 틈으로 들어갔다.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에 망설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윽……!"
용해린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터졌다.
눈앞의 광경!
볼 수도 없고,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릴 수도 없는 광경이었다.
하의를 무릎까지 내리고 사타구니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공손혜는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마 하의를 내리고 볼 일을 보려다 무슨 일을 당한 것 같았다.
공손혜의 열여덟 눈부신 허벅지가 햇살이 가려진 그늘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사타구니를 감싸 쥔 손을 비집고 드러난 거뭇거뭇한 소녀의 거웃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혜…… 매……! 무슨……?"
용해린은 차마 더 볼 수 없어 눈을 돌리며 그렇게 물었다.
"해…… 린가가…… 뱀에게 물려……."
그녀는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지만 부끄러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라! 오빠를 가질 수 없다면 죽고 말리라!'
공손혜의 어여쁜 손이 그녀의 눈부신 두 다리 사이에서 떨고 있었다.
"뱀……?"
용해린은 자신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공손혜의 움켜쥔 손의 위치를 보면 그녀의 뱀에 물린 위치를 알 수 있지 않은가?
그곳은 차마 쳐다볼 수도 없는 소녀의 은밀한 부위의 바로 옆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둔다면 뱀독이 전신에 퍼져 사태가 어찌 될지 뻔하지 않는가?
'뱀독을 뽑아내려면 입으로 그곳의 독을 빨아내야 한다.'
용해린은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혜…… 매…… 어떻게……?"
공손혜가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아마 그녀의 부끄러움을 몰아내려는 스스로의 몸부림이리라.
"어떻하긴 뭘 어ᅟᅥᆨ해요? 죽게 내버려 두세요. 홍균 언니였으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겠지요?"
용해린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공손혜에게 다가가 그녀의 사타구니를 가리고 있는 손을 젖혔다.
가슴이 뛰고 손끝이 떨림을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지 열여덟 소녀의 은밀한 부위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거뭇거뭇한 거웃의 숲과 갈라진 분홍빛 속살이 향기로운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늘로 찌른 듯한 두개의 혈점(血點)이 사타구니 안쪽 여인의 은밀한 곳의 바로 옆에 선혈을 머금고 있었다.
사실 공손혜가 일부러 뾰족한 것으로 상처를 낸 곳이었다. 허나 그러한 것을 용해린이 알리 없었다.
"혜…… 매……! 살갗이 깨끗한 것을 보면 독사가 아닐 수도 있어."
차마 입을 대지 못하고 있던 용해린은 엉겁결에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
"흥! 그러다 독사면 어떻게 하구요? 내버려 두세요. 나는 여기서 죽고 말 테니까."
만일 그렇다면 시각을 요하는 일이었다.
용해린은 할 수 없이 입술을 가져가 공손혜의 은밀한 허벅지 사이에 입을 대고 빨고 말았다.
입 속에 비릿한 혈향(血香)이 퍼졌다. 하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뺨에 와 닿는 말랑한 살, 공손혜의 아직 성숙하지 않은 여린 속살이 뺨에 닿은 것이다.
허벅지 깊은 안쪽의 뱀에 물린 자국을 입으로 빨아내려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속살이 뺨에 닿았다.
"하…… 악……!"
사내의 뜨거우면서도 부드러운 입술이 허벅지를 빨아들이자 공손혜는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더욱이 자신의 엷은 분홍빛의 속살이 그의 뺨이 문지르고 있으니 공손혜의 숨결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런 자세가 유지됐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해린오빠! 이젠 됐어요."
공손혜의 말에 용해린은 얼굴을 들었다.
"혜…… 매……!"
고개를 들은 용해린은 공손혜를 바라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공손혜는 자신의 목에 비수(匕首)를 들이대고 있었다.
"왜……?"
용해린은 말을 맺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해린 오빠, 저는 오늘 여기서 죽고 말겠으니 오빠는 홍균언니와 한평생 행복하게 사세요."
"혜…… 혜매, 이러지 마라!"
공손혜의 얼굴은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용해린이 오늘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어차피 죽기로 작정하지 않았던가?
"저는 오늘 오라버니에게 여자로서 차마 보일 수 없는 곳을 보여 주었어요. 이런 몸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갈 수가 있어요? 해린오빠에겐 홍균언니가 있잖아요. 그러니 죽게 내버려 두세요."
용해린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순결한 소녀의 은밀한 곳을 보았고 뺨으로 비벼대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갈 수 없다는 그녀의 말은 당연한 말이었다.
양홍균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물론 그녀는 여러 여인을 얻는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것도 한둘이어야 했다.
양홍균 외에 담황아, 요지선녀 금유란, 대해천봉 해옥랑. 헌데 이제는 공손혜까지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으니.
순간 그에게 스쳐간 불길한 한 마디가 있었다.
-자네에게는 도화살이 끼어 있네.
전날 창해약선 담대우가 얘기했던 그 도화살이라는 빌어먹을 운명이 점점 현실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양홍균의 놀라는 얼굴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공손혜를 이대로 둘 수가 없었다.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의 성격에 정말 비수로 자신의 목을 찌를 것만 같았다.
"혜…… 혜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어?"
용해린은 차마 공손혜를 바라보지 못하고 물었다. 용해린의 그 말에 공손혜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뭘 어떻게 해요? 그냥 죽게 내버려두든지 오빠가 저를 책임지든지 해야지? 오빠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도 안지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군요."
"아…… 알았어! 내가 책임질 것이니 제발 그 칼은 치워!"
공손혜의 눈꼬리가 옆으로 찢어졌다.
"흥! 칼을 치우면 나중에 나 몰라라 하려구요……?"
이제 용해린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 마지막 쇄기를 박아야 한다.
"혜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용해린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말로는 안 돼요. 약속을 보여 줘요."
공손혜는 비장한 표정을 다시 보이며 그렇게 용해린을 다그쳤다.
"어떻게 하면 되겠어?"
다시 용해린이 그녀에게 물었다.
용해린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공손혜의 얼굴이 붉은 홍조로 뒤덮였다.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그녀의 얼굴은 요염하면서도 청순한 소녀의 매력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저를 가지세요. 바로 여기서, 약속의 표시로……."
그렇게 말을 한 공손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해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그건……?"
생각지도 못한 공손혜의 말에 당황한 용해린은 말을 더듬고 있었다.
'또 먼저 하자고……?'
지금까지 양홍균을 비롯해 모든 여인들이 다 그랬다.
"그건 안 돼! 아직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양홍균을 생각하며 용해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 일은 먼저 양홍균에게 알려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흥! 그럴 줄 알았어요. 지금 임시로 위기를 넘기려고 저를 책임지니 어쩌니 한 것을 내 모를 줄 알아요?"
그렇게 말을 하는 공손혜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그럼, 해린 오빠 행복하게 사세요."
공손혜의 목에서 가는 혈선이 생기더니 선혈이 베어 나왔다.
"아…… 안 돼! 잠깐만 기다려!“
5
용해린의 부드럽고 딱딱하며 뜨거운 살덩어리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공손혜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비수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용해린의 엉덩이를 잡아 힘껏 자신에게로 당겼다.
마치 다시는 달아나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렇게 힘주어 자신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퍼득!
용해린의 육중한 무게를 느낀 공손혜는 전신을 경련하며 신음을 삼켰다.
그리고 한순간 그녀는 하체 일부에 가해진 엄청난 작렬감에 하얗게 두 눈을 치떴다.
하체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으스러지는 듯한 지극한 통증, 그 격렬한 파과(破瓜)의 고통은 공손혜를 거의 반 실신 상태에 이르게 했다.
'이, 이렇게 아플 줄은…….'
공손혜의 눈가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음…… 혜매……!"
용해린은 고통에 겨워하는 공손혜의 교구를 부축이며 그녀를 깨뜨려 버릴 듯 무서운 기세로 여체를 탐하기 시작했다.
빡빡하게 조여 오는 공손혜의 좁은 옥문은 그의 것을 단단히 물고는 잘 놓아 주지를 않았다.
거기에서 오는 긴밀한 압박감에 용해린은 자제력을 잃고 격렬히 움직였다.
'아아…… 이 고통은 잠깐 뿐이야…….'
공손혜는 용해린의 여인이 되기 위한 고통이라 생각하고 이를 악물며 파과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주르르……!
그녀의 두 눈에서 흐른 눈물이 그녀의 두 뺨 위로 흘러내렸다.
그런 그녀의 위에서 용해린은 격렬하게 움직였다.
작은 숲에는 때 아닌 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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