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용/아나운서: 1636년(병자년) 12월, 조선의 역사를 뒤흔든 어마어마한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바로 오랑캐라 부르던 청나라가 압록강을 건너와서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었죠. 한양을 떠나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결국 47일만에 청나라에 굴복하고 마는데요. 여기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 물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영화 남한산성에서 홍이포 등장) 이것 이었습니다,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이 가진 비방의 무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대포였죠-----------
청나라 장수/배우代役: 홍이포라는 대포요, 원래 서양에서 들어온 것인데 명나라 놈들한테서 빼앗은 것이오. 당신들의 임금이 숨어있는 작은 성벽도 이 홍이포 몇 발이면 무너져 내릴 것이오.
이광용: 그리고 시작된 청군의 포격, 홍이포는 엄청난 폭음과 위력을 자랑합니다. 조선의 성벽은 하릴없이 무너져 내리고 성벽을 훌쩍 넘어 성 깊은 곳까지 떨어진 포탄에 조선군은 혼비백산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죠. 결국 인조는 홍이포의 위력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이병헌/인조代役: 조선의 왕이 황제 폐하의 신하가 되기를 이제 맹세하였습니다. 제발 저들의 목숨만은 지켜주소서.
이시원/배우: 우리가 흔히 아는 대포처럼 생겼는데 홍이포는 뭔가 달랐나봐요?
허준/방송인: 저는 청나라 것인 줄 알았는 데 명나라에서 빼앗은 거라고 나오네요.
이광용: 지금 홍이포에 대한 궁금증이 마구마구 샘솟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 준비하느라고 며칠을 노력했는지 몰라요 (홍이포에 씌웠던 카버를 들어냄), 홍이포 등장!
이시원: 너무 새것 같은데요.
최원정: 그래도 제작진의 노력에 박수
이광용: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사용했던 홍이포를 그대로 재현한 모형입니다. 홍이포의 무게가 수백 킬로그램에서 일 톤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가져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이동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모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걸로는 포탄을 쏘지 못하죠.
최태성/한국사 강사: 박물관에 가보면 저 홍이포 반드시 전시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저 포는 왜 전시되어 있는지 잘 몰라요.
이광용: 가져온 이유가 있습니다. 이 홍이포의 위력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최대 사거리가 놀라지 마세요 무려 9킬로미터입니다.
최태성: 9킬로미터?
이광용: 어느 정도냐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는 여의도죠. 서쪽으로 직선거리 김포공항 바로 앞에마곡까지 고요. 동쪽으로는 압구정까지~
이시원: 엄청나네요. 당시에 이건 거의 핵무기 기술수준 아닌가요?
허준/방송인: 이거를 현대와 비교해도 답이 나와요. 현대 보병들이 사용하는 게 박격포 라는 게 있거든요. 60밀리 81밀리 121밀리가 있는데 예는 최대 사거리가 3~6킬로미터 정도 밖에 안돼요.
최원정: 그러면 홍이포는 그거에 두 배 이상 되는 거예요 17세기에?
이광용: 그러니까요, 17세기에 병자호란 당시에 청군은 남한산성이 멀리 보이는 망원동에 포대를 설치하여 놨습니다. 그리고 인조가 항복하기만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조선이 굴복하지 않자 어떻게 했다? 포를 쏴대기 시작한 거예요. 추운 날씨 풍족하지 않은 식량에도 잘 버티었던 조선과 인조, 하지만 홍이포를 쏜지 열 흘 만에 청에 항복하고 맙니다. 당시 홍이포의 위력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오랑캐가 성안에 대포를 쏘았는데 탄환이 거위 알 만했으며 맞아서 죽은 자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했다 (인조실록 1637년 1월 19일)------대포 소리가 종일 그치지 않았는데 성첩이 탄환에 맞아 모두 허물어졌으므로 군사들의 마음이 흉흉하고 두려워했다(인조실록 1637년 1월 25일),
최태성: 그 엄청난 굉음과 공포 속에서 저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감은 정말 극도였을 것 같애요.
이광용: 하지만 처음부터 청이 홍이포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홍이포를 보유한 것은 명나라였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위력적인 홍이포가 청나라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청나라가 거대한 명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비밀이 바로 오늘 공개됩니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삼백 아흔 일곱번째 역사저널 그날 17세기 명청전쟁의 판도를 뒤흔든 홍이포 이야기로 시작을 해 봤습니다.
허준: 신무기라 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한번씩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하면 항공모함이라는 무기가 등장을 하면서 완전히 전쟁의 역사를 바꿔 놓았거든요. 요즘의 경우는 수백만원대 무기 드론이 수십억 원 짜리 탱크를 잡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데 이게 새로운 무기의 등장이죠.
최원정: 똘똘한 신무기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네요.
최태성: 임진왜란 때는 사실 조총 때문에 우리가 깜짝 놀랐는데 병자호란 때는 홍이포 때문에 깜짝 놀라는 거예요.
이시원: 근데 어쩌다가 홍이포가 청한테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솔직히 우리 역사에서 병자호란은 진짜 마음 아픈 치욕의 역사잖아요.
박금수/무기 및 전략전술 전문가: 오랑캐는 그 전에는 말타고 공격할 뿐이지 공성전에는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홍이포를 입수해가지고 임금이 있는 궁에다가 포탄을 때려 버리니까 큰 공포감이 있을 수가 있죠.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총통있죠. (天字銃筒-임진왜란 때 맹활약한 조선의 주력 대포), 천자총통, 천자총통의 위력이 30근까지 포탄을 쓰면 1.4킬로미터 날아가요.
이시원: 근데 아까 홍이포는 9킬로미터 까지 날아간다고 했는데 천자총통이 1.4킬로미터면 너무 짧은 거리인데~
박금수: 홍이포는 천자총통보다 10배 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었고 홍이포가 그만큼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최원정: 오랑캐가 홍이포를 가지고 있었다, 오랑캐 전문 교수님!
박민수/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홍이포의 구체적인 규격이나 성능은 각종 기록마다 과장이 심한편이거든요. 사실 믿기 힘든 측면도 있지만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겁니다. 이 홍이포는 아까 나온대로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건 아닌데요. 홍이포의 이름에서도 그 원산지를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붉은 홍(紅) 오랑캐 이(夷)자입니다.
허준: 붉은 오랑캐네요.
박민수: 붉은 머리와 수염을 가진 오랑캐나 쓰는 대포다 라는 뜻인데요.
허준: 바이킹족이잖아요?
최원정: 서양인들! 유럽쪽이네요.
박민수: 바로 유럽인들 중에서도 紅夷=네덜란드인들을 가리켰다고 그래요.
이시원: 빨간 머리 많잖아요.
박민수: 당시에 천주교로 개종했던 명나라 대신들이 무섭게 커가고 있는 후금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서양식 화포를 도입해야 했고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포르투갈인들을 통해서 네덜란드 포였던 컬버린 포가 들어오면서 거기에 이제 붉은 오랑캐의 대포가 홍이포 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거죠.
이시원: 이게 정말 전 세계를 거쳐서 온 거네요.
허준: 이름 부치는 것도 자기 중심적이다. 남의 선진 문물을 가지고 오면서 붉은 오랑캐들의 무기라고~
최태성: 사실 조총 같은 경우에도 일본으로 전달해준 사람이 포르투갈인이잖아요. 유럽 사람들이 이 당시에 중국이나 일본에 굉장히 많이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죠.
최원정: 우리로서는 피해를 많이 받는데~
허준: 정말 역사가 우연히 들어오면서 내용이 크게 바뀌잖아요.
박민수: 청은 처음엔 홍이포를 가진 명에 밀리다가 결국에는 우여곡절 끝에 홍이포를 손에 넣고 명에 대한 승기를 잡게 되는 과정 바로 이것이 오늘 살펴볼 내용입니다.
최원정: 대포 이야기 함께 하는 명-청 전쟁 이야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죠.
최태성: 저번 시간에 시원씨가 안 계셔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후금하고 명나라 하고 싸우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둘이 맞붙은 거예요. 요 일대에서 사르후 전투라는 것이거든요. 후금이 이겼어요. 이러면서 심양과 요녕 일대를 후금이 차지했고 후금을 통일시켰고 이후에 전성기를 이끈 토대를 만들었던 누르하치!
최원정: 일대일 특급 과외네요. 스폰지가 쏙쏙 빨아들여요.
이시원: 명나라 입장에서는 지금 여기 전투에서 크게 졌고 땅도 뺏겼고 코너에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박민수: 후금의 다음 목표는 어디가 되었을까요?
이시원: 당연히 명나라 수도 북경? 근데 교수님, 길게 처져있는 북방의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해서 쌓은 만리장성이죠. 저것은 후금 기병들이 뚫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박민수: 대부분 이 만리장성을 넘어서 더 넓은 중원으로 가기 위해서도 꼭 들려야 했던 관문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산해관(山海關)이라는 곳인데요. 만리장성에는 곳곳에 관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동쪽 끝에 있는 관문입니다. 산해관, 이름 그대로 산과 바다에 있는 관문이라는 것이죠. 여기 나와 있는 天下第一關 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정말 천혜의 요새를 자랑했습니다.
박금수: 산해관 서쪽을 보면 큰 산맥이 있죠. 산 넘기도 힘든데 그 위에 장성까지 쌓았어요. 기동성을 유지하면서 통과하기란 쉽지 않겠죠. 근데 대병력이 바다로 가자니 문제가 있으니까 결국은 산해관을 통과할 수 밖에 없는 거죠.
박민수: 명의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되는 최후의 마지노선 같은 곳이었습니다.
최태성: 이게 뚫려버리면 바로 북경까지 가는 상황이에요. 산해관은 너무나 중요한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는 곳이죠.
박민수: 그래서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을 해서 전략을 짜놓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원숭환이라는 유명한 장군입니다. 사실 원숭환은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 여진족의 침입을 물리쳤던 악비 장군과 더불어서 한족의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최태성: 우리나라에 이순신이 있다면 명나라에는 원숭환이 있습니다.
이시원: (원숭환 초상화) 저렇게 생기셨구나.
최원정: 문관 스타일이신데~
최태성: 이미지상 장수스타일은 아닌데~
박금수: 조선이나 명이나 큰 대장군들은 대개 문관출신들이 많아요. 지략이나 작전계획을 세울 때는 문관이 대개 했었는데 제가 아마 안경을 벗으면 좀 닮았나요?
최원정: 아니 안돼요. 눈 크기가 너무 달라서 안 돼.
허준: 안경 벗으니까 숭환 얼굴
박금수: 어쨌든 문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법에 능통했대요. 보기와는 달리 담대했고 남의 눈치 안보고 원칙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원숭환은 만리장성 안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해관 밖에 200리 밖에 100킬로미터 이거든요. 먼 거리에 전진기지를 배치하고 寧遠城을 축성한 것입니다.
최원정: 山海關이 뚫리면 북경까지 일사천리니까 방어선을 앞 당겨 옮긴 거네요.
박금수: 사실 성벽의 높이 굉장히 높은 규모가 있는 성이었습니다(성사진)
박민수: 사진으로 봐도 가슴이 뛸 정도로
이시원: 엄청 견고해 보여요.
최태성: 성 밑에 사람하고 자동차 사이즈 하고 비교하니 더 웅장해요.
허준: 그리고 보면 성 문을 감싸 안은 양쪽으로 둥근 기둥이 다 방면에서 공격하지 못하게 저 안으로 들어오면 저 성벽 위에서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질 수 있죠.
최태성: 독 안에 든 쥐
이시원: 굉장히 방어에 특화된 성이네요
박금수: 높이만 높은 게 아니라 두께도 6미터에 달하는
이시원: 10미터에 두께가 6미터면 거의 건물이 서 있는 느낌이에요.
허준: 두께가 두껍다는 건 여러 궁수가 겹겹이 서서 돌아가면서 쏠 수 있다.
이시원: 성 위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최원정: 저기에다가 신식 무기를 장착했을 것 아니에요.
박금수: 그렇죠, 11개의 홍이포를 설치 했죠. 포만 놓는다고 자동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홍이포를 운영할 수 있는 훈련된 부대를 배치해 가지고 신속히 재장전 할 수 있는 인력들을 배치했다고 합니다.
허준: 淸 입장에서는 정말 뚫기 어려운 말 그대로 영원한 성이 되네요.
최원정: 難攻不落의 성이에요.
박민수: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성이죠.
허준: 그럼요, 지금부터 하면 무조건 명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박금수: 후금군이 당시 기세가 승승장구하였잖아요. 사르후 전투에서 기동성을 이용해 가지고 다 격파를 해 버린 상황이잖아요. 그 이후에 기세를 얻어 가지고 1626년 1월 23일 후금군 20만 대군이 寧遠城 앞에 당도를 합니다. 저걸 깨버리자~ 우리가 저 정도 못 깨 버리겠어. 이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허준: 후금은 20만이 갔는데 영원성은 몇 명이 지켜요?
박금수: 1만에서 2만 정도가 지킵니다.
이시원: 아니 영원성이 뚫리면 산해관 북경까지 진군이 될텐데 왜 2만 밖에 안 보냈어요? 훨씬 더 많이 보내어 지켜야되는 것 아닌가요?
박민수: 사실 원숭환만 빼고 다른 장수들과 부대들은 모두 산해관으로 철수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명조정에서는 병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각개격파 당하니까 한 곳에 모여서 산해관을 지키는 게 낫겠다. 비효율적으로 산해관 밖을 지키는 것 보다는 산해관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켜서 지키는 게 낫겠다는 주장이 나왔던 겁니다.
최원정: 그것도 일리는 있네요.
박민수: 그런데 원숭환이 반대를 하면서 나는 영원성을 지켜야 되겠다 해서 원숭환이 이끄는 부대만 영원성에 남게 된 거죠.
허준: 명나라 쪽 입장에서는 그래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네가 결사대 데리고 거기서 후금군 많이 갈아놓으면 우리가 산해관에서 막아 놓을게~ 어떻게 보면 버리는 카드이자 네가 알아서 총알 받이 해 이런 느낌이에요.
이시원: 차라리 산해관 말고 원숭환과 영원성에서 다 같이 싸우면 안 되나?
허준: 못 도망가잖항요. 산해관은 여기가 뚫리면 북경으로 도망갈 수 있잖아요.
이시원: 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싸웁니까, 못 들어오게 막을 생각을 하고 싸워야지~
최원정: 퇴로를 생각해 놔야지.
이시원: 장수가 어떻게 먼저 퇴로를 생각합니까, 그러면 전쟁에 당연히 지는 것 아녜요?
허준: 이순신 장군인 줄 알았어.
이시원: 어떻게 도망갈 걸 생각하고 싸웁니까 죽을 각오로 싸워야지.
-----------(영원성전투 동영상)------------
내레이션: 영원성으로 진격하기 시작한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명의 심장부로 진격한다. 마침내 영원성에 도착한 누르하치는 1626년 1월 23일 새벽 영원성을 향해 대공세를 펼친다. 하지만 영원성에서 쏟아지는 포탄에 후금군의 전열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엄청난 위력을 지닌 홍이포의 위력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누르하치의 패배, 결국 누르하치는 나흘만에 영원성에서 퇴각하며 최악의 패배를 경험한다. 이 전투는 후금을 상대로 한 명의 첫 승리이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명나라 장수 원숭환이 있었다.
최태성: 영원성의 홍이포 위력이 어마어마 했네요.
허준: 홍이포 한 방 탕 쏘면 줄이 죽죽 밀려나고.
박민수: 후금군의 입장에서도 처음 보는 무기였고 사정거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길었기 때문에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했던 거를 몰랐던 거죠.
이시원: 신무기에 원숭환이란 훌륭한 장군, 이 영원성 이거 難攻不落아닌가요.
박금수: 병력은 적었지만 명군은 후금에게 없었던 신무기 홍이포를 가졌던 거죠. 홍이포는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였는지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금수: 전격공개 홍이포 사용법------------
이광용: 여러분, 이 대포는 전차와 함께 화력전을 대표하는 무기라고 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7세기 홍이포는 어땠을까요?
박금수: 제가 홍이포를 직접 장전해 보겠습니다.
최원정: 이게 모형인데 가능헤요?
박금수: 쏠 수 있다니까요. 이렇게 앞에서 포구를 닦아 줍니다. 충분히 닦아주고 나서 이렇게 화약이 보기좋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화약을 포구에 밀어넣습니다.
최태성: 거기에 따라서 화약 개수가 달라진단 말씀이지요?
박금수: 네, 그렇습니다. 이게 아까 말했던 원래는 포환이 포구에 딱 맞아요. 그만큼 정밀도가 올라간 거죠. 끝까지 공간이 없도록 포환을 밀어넣습니다.
최태성: 꾹꾹 눌러주는 군요.
박금수: 네, 그렇죠, 그 다음에는 뒤에 보면 약실이 있어요. 홍이포의 모양을 보면 뒤로 갈수록 점점 두꺼워지죠. 여기서 압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두껍습니다. 앞에는 얇아지죠.
최태성: 압력을 높여서 더 멀리 빠르게 쏘려고 하는 거죠?
박금수: 네, 그렇죠, 그리고 또 길기 때문에 그만큼 화약의 가스압력이 멀리 길게 전달이 되면서 탄환에 포환의 속도가 훨씬 빨라지는 거죠.
최원정: 그래도 9킬로미터 까지 갈 수 있다는 게
박금수: 발사하려면 이제 어떻게 하죠?
이광용: 불을 부쳐야 하죠.
박금수: 불을 부쳐 보십시오.
이광용: 저는 몰기만 했어요. 쏜 적이 없습니다.
박금수: 저는 운전병 출신인데~지화식이라고 해서 뒤에 심지가 나와요. 심지에 불을 부치면 잠시 후에 발사가 되구요.
최태성: 화약이 탁 터지면서 쫙~ 나가는 거죠.
박금수: 그렇죠,
허준: 이게 전장식 포인데 화약을 넣고 총 알을 넣고 발사시키는 건데 여기다 심지에 불을 부쳐서 발사를 하는 거죠. (前裝式-총 또는 포의 양쪽에 탄환을 넣어 발사시키는 방식),
박금수: 그렇죠,
허준: 한 발을 쏘고 나서 어떻게 하죠? 총구를 다시 돌려서 총구를 닦아야 해요. 열심히 닦고 화약 붓고 총알 넣고 쑤시고 다시 또 발사해야 되잖아요. 이게 전장식이기 때문에 느립니다. 나중에 후장식에 가서 어떻게 되냐 하면 뒤에서 장전, 그러면 발사를 한 후에 뚜껑열고 총알 넣고 화약 넣고 또 발사~ 훨씬 빠르겠죠. 아직까지는 전장식이에요.
박금수: 하나 더 설명을 드리면 전장식은 운영자와 운영하는 병사들이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어요. 근데 후장식 같은 경우는 엄폐를 한 상태에서 재장전하고 쏠 수 있기 때문에~
이광용: 그리고 참호 같은 것을 만들어서 포신만 밖으로 놓고 숨어 있을 수 있죠.
최원정: (이광용 아나에게) 운정병이지만 대포에 대해서 좀 아네요.
이광용 & 박금수: 예비역 병장입니다. 충성!
일동: 웃음
박금수: 여러분 좀 어색하지 않아요? 분명히 화약은 중국 송나라 때 발명이 돼서 유럽으로 전달이 된 거잖아요. 근데 왜 유럽에서 만든 홍이포가 더 강력할까요? 그 이유는 15세기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부터 대포가 공성전에 본격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이 무너지면서 유럽이 한 마디로 싸움판이 돼요. 그 이전에는 중세 영주들이 가졌던 성들이 대포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경쟁적으로 대포의 성능을 높힐려고 모든 기술력이 다 집약이 된 거죠.
최태성: 그때 진짜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 저 포 만든 사람이 민족도 필요없다 나라도 필요없다 무조건 돈이면 다 된다. 돈이면 다 되니까 다 기술개발에 뛰어든 거잖아요.
박금수: 공성을 위한 주조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계속 경쟁적으로 개발하다 보니까 특히 성을 무너뜨리는 공성을 위해서 개발하다 보니 훌륭하게 된 것이죠.
최태성: 동양에서 화약이 유럽으로 건너 갔는데 하지만 대포는 유럽에서 더 발전하게 되었어요.
박금수: 딴딴한 쇠 덩어리가 9킬로미터 이상을 날라가서 모든 걸 다 파괴해 버립니다. 속도가 엄청 빨랐겠죠. 후금군은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2~3킬로미터 앞에서 공성준비하고 사다리 들고 일렬로 들어갑니다. 후금군을 향해 홍이포를 거기 배치해 가지고 사다리 방향을 향하여 쏴버렸겠죠. 특히 홍이포의 화력은 공성무기를 무력화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홍이포는 후금군의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었습니다.
최태성: 지휘부가 홍이포에 맞으면 진짜 공포스러웠겠다.
이광용: 이 위력적인 홍이포를 전략적으로 정말 잘 사용한 명나라 장수가 누구?
일동: 원숭환
이광용: 결국 명나라가 후금군을 이겨요. 그런데 후금군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 이후에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후금군에서는 엄청난 엎친 데 덮친 격 같은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시원: 상상 못한 누르하치가 갑자기 죽다니~
최태성: 영원성 전투에서 누르하치 사망, 이 소식이 조선에도 전해집니다.
이시원: 어떻게 죽은 거예요?
최태성: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이 전투에서 바로 저 홍이포의 파편에 맞아 죽었다더라, 또는 영원성 전투의 대패로 인해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죽었다더라. 아직도 그 사망원인은 정확히 몰라요.
최원정: 왜 아직도 몰라요, 아직 연구가 안 되었나요?
이시원: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말 유언은 웬지 이거 였을 것 같애요 홍이포~
허준: 사르후 전투부터 시작해서 전체 여진을 통일하고 명이 휘청 휘청할 정도의 힘을 가졌던 공포의 대상 누르하치~홍이포에 의해 무너졌다. 이거는 완전히 현재 역사에서는 중요한 사건이죠.
박민수: 누르하치는 태어나서 원숭환 때문에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거예요. 누르하치가 심양성으로 돌아갈 때 이렇게 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아~ 내가 25살 때부터 싸워서 진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 영원성 하나를 얻지 못하는가! 라고 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허준: 전투에 첫 패배인데 죽었어요.
박민수: 어떻게 죽었는지는 사료상에 나오진 않지만 어찌 되었던 백전노장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에서 홍이포로 크게 타격을 받았던 것은 확실하죠.
최원정: 누르하치는 홍이포로 화병이 싸여서 죽었다는 추론이잖아요. 그러면 원숭환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 사람은 거의 명 나라를 구한 영웅이잖아요.
박금수: 누르하치는 홍이 하고 죽었지만 원숭환은 공로를 인정받아 가지고 요서지방을 관할하는 총사령관이 됩니다.
최태성: 그래야지
최원정: 이렇게 되면 후금은 누르하치 죽음 이후 혼란에 빠졌을 것 같애요. 누르하치 없는 후금은 상상이 안가는데요.
박민수: 누르하치는 1626년에 사망하면서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조카한테 대권을 넘겨줍니다(차남 다이샨, 5남 망굴타이, 8남 홍타이지, 조카 아민), 대신에 어떤 한 사람이 독재를 하지 말고 같이 공동통치를 해라 하는데요. 그래도 지도자가 필요하니까 일단은 나이도 가장 어리고 서열도 가장 낮은 홍타이지를 한(han) 으로 추대합니다. 이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여덟번 째의 아들인데요. 홍타이지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최원정: 교수님,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만주어예요?
박민수: 네, 만주어 이름이죠. 홍타이지는 한자어로 쓰면 皇太極 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황태자 라서 황태극이라고 했나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홍타이지라는 말은 만주어로 훌륭한 아들이란 뜻입니다. 굉장히 흔한 이름이에요. 그래서 몽골족이나 만주족 중에 홍타이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거든요.
최태성: 누르하치는 무슨 뜻이에요?
박민수: 누르하치는 멧돼지 가죽이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거죠.
최원정: 누르하치 멧돼지 가죽이 홍타이지 훌륭한 아들을 낳아서 지금 후금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최태성: 사실 홍타이지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해요. 왜냐하면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인물이고 청황제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직접 와가지고 삼전도에서 인조를 무릎꿇게 했던 그 인물, 청태종 숭덕제가 바로 홍타이지입니다.
이시원: 여덟번 째 아들이라고 했잖아요. 보통 장자 계승의 원칙이 있을 법도한데 그런 게 없었나봐요.
박민수: 홍타이지의 묘호가 태종이거든요. 태종하면 뭔가 심상치 않나요?
최태성: 왕자의 난이 일어날 것 같은데
박민수: 중국 당 태종, 조선 태종 이방원, 이들이 다 형과 동생을 죽이고 골육상쟁을 일으키죠. 또 창업주인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카리스마로 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청 태종 홍타이지도 똑 같았습니다. 총 4명이 공동섭정에 오르게 되는데 넘버 4로 시작하는 거죠. 거기서 하나씩 하나씩 형님들을 누르면서 결국 황제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는 거죠.
최태성: 후덕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허준: 지금 홍타이지가 형제들을 다 제끼고 한(han)의 자리에 올라간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분명 너는 너무한 거 아냐, 원망하는 세력도 있을텐데 이때 제일 좋은 건 창 끝을 바깥으로 돌리는 거잖아요. 게다가 명분도 있잖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원수~ 무조건 창을 바깥으로 돌려서 가야지
이시원: 할아버지 복수하러 가야죠. 원숭환 잡으러 가야죠.
최태성: 그런데 반전, 당연히 그러면 어디를 쳐야 돼요? 중국 영원성엘 가야 될 것 아녜요? 그런데 권력을 잡고 홍타이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명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조선을 먼저 공격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1627년 1월 27일 정묘호란, 홍타이지가 처음한 일이에요.
이시원: 왜 갑자기 조선을 쳐요? 중국에 명분도 확실한데~ 왜 돌렸을까요?
박민수: 명분은 확실하지만 무시무시한 홍이포가 영원성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인 거죠.
이시원: 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겨요?
최태성: 조선하고 명나라하고 친하죠, 그러면 조선도 홍이포 우산을 받았어야지.
최원정: 결국 명나라의 홍이포가 후금을 조선으로 향하게 한 것이네요.
박민수: 그렇죠, 홍이포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홍타이지가 정묘호란을 일으킨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인데 다른 데 있었습니다. 당시 17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little ice age) 였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평균 기온이 낮아지고 강수량이 적어지니까 기근도 많아지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명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역이 끊긴 상태죠. 식량난이 더 심각해진 것입니다.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도 식량확보가 절실했고 물자확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돌파구가 되었던 곳이 바로 조선이었던 거죠.
최원정: 조선은 임진왜란 끝난지 얼마 안 돼서 다 수탈당했는데 뭘 가져갈 게 있다구
이시원: 간을 빼 먹을 심정으로 간 거죠.
박민수: 만약에 홍타이지가 명분에만 휩싸였다면 다시 한번 원숭환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조선을 침략하게 된 거죠.
이시원: 홍타이지는 무서운 사람이네요. 이게 눈이 뒤집혀서 갈 법도 한데 치밀하게 계획을 해서 먼저 조선을 침략한 거잖아요. 이거 MBTI 검사하면 분명 J(계획적) 나옵니다.
허준: 계획을 많이 한 사람이다
이시원: 전 극단의 P(즉흥적)거든요. 전 바로 눈 돌아가서 갑니다.
허준: 원숭환한테 가는거야, 아~ 홍타이지가 P였어야 되는데, 그래야 우리가 사는데
박금수: 당시 후금의 상황이 배고프다 물자가 부족하다 이 정도가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 였느냐면 너무 식량이 부족하니까 살인을 해서 인육을 먹을 정도로 극단적인 식량 부족에 처했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명나라를 치고 들어갈 생산량이 뒷받침이 안 되니까 그나마 약하고 만만한 조선을 치고 들어온 것이죠.
박민수: 그리고 중요한 것이 바로 시장을 열도록 강요를 합니다. 시장에서 made in china, made in Japan 중국산 일본산 물품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조선을 통한 중계무역이 당시 후금의 숨통을 틔워 준 거죠. 그래서 이때 조선의 많은 물품도 후금 사회에 전파가 되는 돼요. 약간 TMI이긴 한데 홍타이지가 조선의 과일을 맛보고 굉장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감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감을 홍시나 곶감으로 만들어서 바치라고 수차례 요구 했다고 합니다.
허준: 곶감 잘게 말려 놓은 거요. 씹을 때 씨 없는 부분 오독오독한 거 그거 탁~ 먹으면 절대 못 잊지
박민수: 곶감 말고도 일본을 통해서 조선으로 전파된 신대륙 작물이죠, 담배, 담배도 이때 후금으로 전파가 된다고 해요. 후금 사람들이 담배를 너무 피우니까 나중에 홍타이지가 나라 전체에 금연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허준: 곶감 담배하고 이제 호랑이만 수입하면 돼네요.
이시원: 그때부터 한류가 유행했던 거네요.
최원정: 조선을 통해서 물자를 확보했으니까 이제 계획적인 남자 홍타이지가 명을 치게 되나요?
박금수: 네, 그렇습니다. 홍타이지는 조선을 치고서 어느 정도 보급을 받은 상황에서 영원성을 공격하게 돼죠. 그런데 원숭환이 워낙 수성의 대가였던 거죠. 벽을 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힘이 정말 북방을 다 막고 있었던 것이죠.
최태성: 이순신 장군께서 바닷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원숭환이 대륙의 북경으로 가는 길을 막고있는 거예요.
허준: 그러면 명 기록에는 원숭환이 이순신 장군처럼 호국의 영웅으로 등재되어야 되는 거 아녜요?
박민수: 그렇죠, 원숭환이 오랑캐의 침입에 맞서서 물리친 최고의 한족 장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시원: 아버지와 그 아들 둘 다 원숭환이가 진짜 너무 뛰어나서 너무 미웠을 것 같애요.
최태성: 영원성이 아니라 원숭환을 뛰어 넘어야 돼
박금수: 성벽이 아니라 사람을~
박민수: 그랬을 때 내가 만약 홍타이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이시원: 원숭환을 살살 꼬시는 거예요, 미인계!
허준: 이거는 반대로 생각해 봐요. 만약에 일본이 이순신 장군한테 그렇게 했다고 넘어가겠어요? 안돼, 절대 원숭환이 바뀌지 않지
박민수: 홍타이지는 고민 끝에 원숭환이 지키는 영원성 산해관 루트를 피해서 다른 방향으로 만리장성을 넘어서 북경으로 향합니다.
이시원: 어떻게요?
박민수: 홍타이지는 당시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만리장성을 넘는데요. 일단 부하들한테 영원성을 공격하게 해서 원숭환의 시선을 유인하고요. 그 다음에 자기가 직접 주력군을 이끌고 1629년 10월 2일 심양을 출발해서 내몽골 초원으로 우회를 해서 10월 27일 다른 장성의 관문을 넘는 거죠.
최원정: 이거야말로 聲東擊西를 한 거네!
이시원: 원숭환의 시야를 피해서 다른 길로 갔다는 거예요.
박금수: 그렇죠, 험난한 지역 예상치 못한 곳을 통해 북경 앞으로 병력을 집결시켰던 것이죠.
박민수: 영원성을 우회해서 갈려면 중요한 게 바로 몽골세력이었습니다. 영원성을 넘어서 갈려면 몽골 초원을 우회해서 가야 하거든요. 요 때 도움을 준 게 혼인을 통해서 우리 저번 시간에 배웠죠. 사돈(Sadun) 관계, 사돈관계로 맺어진 몽골세력들을 길잡이로 세운 거예요. 몽골 세력들이 길잡이를 해서 초원을 넘어서 만리장성의 다른 관문을 넘은 거죠. 이 홍타이지는 몽골세력 덕분에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루트로 북경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이시원: 홍타이지 결혼 잘 했네요. 명나라 입장에서는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산해관만 잘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을텐데 갑자기 떡 하고 바로 북경 위에 후금군이 와 있으니까. 혹시 계획적으로 몽골 여자와 결혼한 건가요?
박민수: 몽골과 사돈관계를 맺는 것은 누르하치 때부터 계속 되어왔던 것이고요. 만주족에게 몽골은 전략적 파트너이자 가까운 경쟁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몽골과 후금이 당시에 식량난에 있을 때 같이 제휴를 해서 명에 대한 약탈전에 나서게 된 거죠.
최태성: 명나라가 정신이 없었네, 원래 명나라는 전통적으로 이이제이 (以夷制夷-오랑캐를 이용하여 다른 오랑캐를 다스린다) 라고 해서 뭔가를 이간질을 시켜서 저희들 끼리 싸우게 만드는 거거든요. 그런데 둘이 손을 잡고 있으니
최원정: 깜짝 놀랐겠네요. 코 앞에 나타나서
박금수: 원숭환 장군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헐레벌떡 산해관을 통과해서 북경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후금군은 북경을 함락할 수 있었을까요?
박민수: 후금 홍타이지와 명의 원숭환이 붙었습니다.
이시원: 원숭환 장군이 헐레벌떡 오느라 불리했을 수도
최태성: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시원: 불리할 때도 설마 이기나요? 또 이겨요?
박금수: 네, 이깁니다. 후금군은 원숭환에 패배라고 물러섭니다.
최원정: 명나라 입장에서는 우리 무적 친구~ 태권 브이 라는 노래를
박금수: 그만큼 원숭환 장군의 지휘력과 카리스마가 대단했다고 봐요,
최태성: 홍타이지는 그렇게 힘들어서 왔는데 참 안됐네.
이시원: 홍타이지는 원숭환이라고 원망하며
허준: 진짜 대단하다. 원숭환이라는 장군
박민수: 홍타이지 입장에서는 정말 두려운 존재이고 얄밉고 분한 존재였겠죠. 그런데 이 원숭환이 갑자기 죽어버립니다. 그것도 명 황제에 의해서 아주 처참하게 능지처참으로~
허준: 능지처참을 당했다구요, 아니 나라를 구한 영웅인데?
이시원: 갑자기요?
최원정: 뭐 예요? 왜 갑자기 죽어요?
이시원: 능지처참이라는 건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한테 하는 거잖아요.
허준: 나라를 구한 사람이 아니라 역모를 한 죄인에게나 내려질 법한 형벌이잖아요.
최태성: 제가 능지처참을 간단히 설명하면 (車裂刑-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고 수레를 끌어 죄인을 찢어 죽이는 형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건 팔다리 묶고 소나 말이 끌도록 해서 사지를 찢어서 죽이는 거잖아요. 사실 그걸 거열형이라고 하는 거구요. 진짜 중국의 능지처참은 뭐냐면 죄인을 기둥에 묶어요. 중국의 능지처참은 묶고 살점을 떼어 내는 거예요. 살점을 떼어 내는데 툭 살점을 떼어내면 피가 빨리 나와서 빨리 죽잖아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뼈와 살을 발라내는 거거든요. 극도의 고통을 당하면서 끝까지 말려 죽이는 게 능지처참인데 이걸 원숭환이 당한 거예요.
이시원: 고문을 당하면서 죽었다니 저는 진짜 이해가 안 가요.
-------------------(충격에 빠진 스튜디오)---------------
최원정: 그거 설명을 하지 마시지
최태성: 원숭환이 당하다니
최원정: 아니 구국의 영웅인데 장수를 어떻게 그렇게
이시원: 내가 억울해요.
내레이션: 후금군이 만리장성을 넘어 명을 침략하자 백성들 사이에선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백성: 들었어? 후금군이 쳐들어온 건 원숭환 때문이래, 성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원숭환이 화친을 원했는데 폐하께서 거부하시자 후금군을 불러들여서 폐하를 협박한 거래,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원숭환을 찢어 죽이고 싶어
내레이션: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홍타이지는 치밀한 계략을 꾸민다.
-넌 누구냐?
-원숭환 총독의 밀사 유안입니다.
내레이션: 포로로 잡힌 명나라 환관에게 원숭환이 밀통한다는 거짓정보를 일부러 흘리고
-양국이 화친해서 국경무역을 열고
-영원성 북쪽 영토를 넘기겠다고 하셨습니다.
내레이션: 이를 엿들은 환관이 다시 궁으로 도망치게 일부러 놓아 준 것이다.
-명나라 태감이 도망쳤다
내레이션: 계략에 빠진 줄도 모르고 자신이 들은 걸 황제에게 고해바치는 환관
-폐하의 주변에 엄청난 역적이 있습니다.
-누구냐
-원숭환이 적과 내통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홍타이지의 계략은 적중했고 원숭환에 대한 명 황제의 불신은 폭발하고 만다.
-짐이 눈이 멀어 역적을 중용했구나.
이시원: 이게 다 홍타이지의 계략이었다니~원숭환은 억울해서 어떡 하나요?
최원정: 反間計를 쓴 거예요.
이시원: 치밀한데요
박민수: 홍타이지는 결국 원숭환이를 제거하지 않고는 이건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은 거죠. 그래서 포로로 잡혔던 명나라 환관한테 일부러 기밀을 유출한 것처럼 이간책을 펼친 겁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게 한 거죠.
허준: 근데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싶긴 한데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도 역모 얘기도 나오고 적의 잘못된 정보를 선조에게 많이 주고 그랬잖아요. 이쯤 되면 명 황제보다 선조가 나은데? 능지처참 안하고 백의종군 했잖아.
이시원: 그게 그거예요.
허준: 살았잖아요.
이시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호국 영웅을 그럴 수가 있나요.
허준: 이게 참 무서운 거 같애요. 옛날도 통하는 작전이 지금도 가짜 뉴스를 퍼트려서 그 사람을몰아 넣는 거
최원정: 가짜 뉴스를 통해서 사랑을 이룬 서동요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을 잡는 거 잖아요. 충신 하나를 그냥 죽여 버리네요. 그런데 우리가 원숭환을 쭉 보았지만 이 사람은 후금과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명을 배신할 인물이 아닌데~황제는 왜 의심을 한 거예요?
이시원: 사람 보는 눈이 아예 없는 데요?
박민수: 원래 숭정제가 의심이 많았던 황제로도 유명하거든요. 그러니까 홍타이지가 애초에 계획을 세울 때에도 캐릭터를 분석을 한 거 같애요. 숭정제가 그걸 그냥 덥석 믿었다는 자체도 그 만큼 홍타이지가 가짜 뉴스를 치밀하게 조작을 해놨다 라는 거죠. 제가 여기서 갑자기 명언 한 마디 남겨 드릴게요. 疑人勿用 用人勿疑 의심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아라. 홍타이지가 명나라 숭정제의 인간 본성의 약점을 파고 든 거죠.
허준: 그런데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북방에 수비를 맡기는 총사령관들은 대체로 끝이 안 좋았어요. 힘이 강력한 곳이라 총사령관이 힘이 강해지면 저거 반란 일으키면 우리가 못 막는데 그래서 수도로 불려가 처형을 한 경우가 역사상 많이 있었죠.
박금수: 조선에서도 정권 바뀌면 훈련대장부터 목을 치거든요. 절대적인 무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경계의 대상이었던 거죠.
이시원: 그러니까 아무리 목숨 걸고 나라 지켜봐야 이런 결말이 있는데 누가 지키겠습니까? 明이 命을 다한 이유가 있었네요.
허준: 그러면 이쪽 지역 병사들이나 장군들한테는 배신감이 엄청 났을 것 같애요.
박금수: 그렇죠, 계속해서 지휘관과 군사가 같이 싸우다 보면은 연대로 똘똘 뭉치게 되는 거구. 그것을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위에서 수장 원숭환을 제거 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명은 겨우 겨우 실전을 겪은 병사들과 장수들의 충성심을 잃어버렸던 거구. 이런 장수들은 당연히 투항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허준: 후금으로
박금수: 그렇죠,
박인수: 반대로 후금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는 눈에 가시 같았던 원숭환을 드디어 처치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아버지 누르하치의 원수도 갚고 명에 대한 약탈도 성공하고 홍타이지는 한(han)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죠. 서열 넘버 4로 시작한 홍타이지가 이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넘사벽 넘버 1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태성: 명나라 입장에서는 이 거예요. 홍타이지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원숭환을 명나라 스스로 제거해 준 거예요. 그러니까 홍타이지 계획이 뛰어난 측면도 있지만 이찌보면 명나라 스스로 무너질 때가 되었구나 라는 걸 입증한 게 아니었을까.
최원정: 멸망을 재촉한 결정적인 패착이었군요.
최태성: 스스로 이이제이 썼네.
최원정: 우리 입장에서는 꼴보기 싫은 인물인 건 분명하잖아요. 정말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묻히고 적군의 명장을 없앴어요.
허준: 이때 투항한 영원성이나 북방의 병사들이 홍이포도 후금에 넘긴 거예요?
박금수: 홍타이지가 홍이포를 처음으로 입수하게 된 것은 아까 북경 넘어 갔었잖아요. 요 때 홍이포 기술자들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을 잡은 거죠. 잡아가서 1년 만에 자체적으로 청나라가 홍이포를 생산하게 돼죠.
박민수: 홍타이지가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요 때 포로로 잡아왔던 홍이포 장인들을 최고로 대접해 줍니다. 그리고 1년 만에 자체 생산에 성공했잖아요. 벼슬도 주고 평생 먹고 사는 보조금을 지원해 줍니다. 그리고 또 그때 마침 명나라 공유덕, 경중명 장수가 후금에 투항을 하거든요. 이들이 홍이포나 수군을 데리고 투항을 해요. 그러니까 홍타이지가 너무 기쁜 나머지 공유덕과 경중명을 왕에 봉해 줍니다. 후금의 만주족이 명의 한족에게 왕에 봉한 건 이때가 거의 유일하거든요.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은 요 때에 공유덕, 경중명의 부대 이름을 지어 주는데 天佑兵 하늘이 도운부대다 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또 자체 생산한 홍이포의 이름을 天佑助威大將軍 하늘이 도와서 응원하는 대장군 이렇게 홍이포를 자기 손에 넣은 걸 天佑神助 하늘과 신이 자기를 도왔다고 믿을 만큼 홍이포에 진심이었습니다.
이시원: 이때 정말 명에서는 투항하면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해주는데 당연히 투항하면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거죠.
허준: 투항 안하고 잘 싸우면 불러다가 죽이지
이시원: 홍타이지는 이제 명나라 사람들이 알아서 자신에게 투항하고 거기다가 홍이포까지 생겼으니 진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네요.
최원정: 홍타이지가 홍이포를 얻는 순간 홍-홍케미~
박금수: 홍홍케미가 이루어진 때가 1631년 1월 이에요. 병자호란은 이미 준비가 되고 있었던 거죠.
박민수: 1631년 8월에 바로 요서 지역의 대릉하성 포위전에서 자체 생산 홍이포가 처음 실전에 투입이 됩니다. 이때 홍이포를 발사해서 명군에게 공포심을 심어놓고 성을 고립시킨 상태에서 말려 죽이는 거죠. 그래서 또 고도의 심리전과 회유작전을 통해서 항복을 받아냅니다. 요 장면이 딱 5년 후에 남한산성에서 그대로 재현이 됩니다. 아주 판박이 처럼 닮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홍이포를 살펴본 이유이기도 하죠.
허준: 당연히 병자호란은 우리에게 아픈 역사로 생각해 보면 잘 싸우는 원숭환이를 불러다가 괜히 죽이고 투항하게 하고 홍이포 사용하게 만들고 그게 우리 병자호란 때 백성들을 짓밟은 원흉이 된 거잖아요. 이게 다 명나라 때문이야.
최원정: 오늘 명과 청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한 장면을 봤는데 명의 입장에서는 세 치 혀에 휘둘린 명의 리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최태성: 홍이포는 명나라도 가지고 있었고 후금도 가지고 있었어요. 좋은 무기는 두 나라에서 가지고 있었는데 누구는 승자가 되고 누구는 패자가 되었다. 중요한 건 좋은 무기도 좋은 제도도 아니고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구나.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박금수: 누르하치가 성장하는 과정들을 보면은 굉장히 열려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거 필요하다. 바로 입수해서 자기 것을 만드는 열린 마인드가 있었어요. 그에 반해 조선은 명나라 하나만 바라보고 거기를 통해서만 신문물을 받아들일려고 했잖아요. 근데 17세기 초반에 홍이포도 안주고 다 갖고 있었으면서도
박민수: 오늘 살펴본 홍이포는 17세기 핵무기 였습니다. 16세기 부터 동아시아에는 오랑캐의 신무기가 항상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왔습니다. 조총에서부터 시작해서 홍이포까지 근데 상대를 오랑캐라고 깔보는 순간 오랑캐의 신무기에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2023년을 사는 우리는 지금 오랑캐의 무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원정: 지금 오랑캐는 누구인가요?
박민수: 오랑캐는 여려분들 마음 속에 있습니다.
최태성: 명언이다.
최원정: 홍이포로 한 번 더 업그레이드 된 홍타이지,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397회 신제국의 탄생, 청나라 ③신무기 홍이포, 전쟁의 판도를 흔들다 에서 정리).
① 1636년(丙子年) 12월, 조선의 역사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오랑캐라 부르던 淸나라가 압록강을 건너와서 조선을 침략하였다. 丙子胡亂,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 47일만에 청나라에 굴복하였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 게 있었다. 紅夷砲였다,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이 가진 비방의 무기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대포였다. 홍이포는 원래 서양에서 들어온 대포다. 홍이포는 엄청난 폭음과 위력을 자랑한다. 조선의 성벽은 하릴없이 무너져 내렸고 성벽을 훌쩍 넘어 성 깊은 곳까지 떨어진 포탄에 조선군은 혼비백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인조는 홍이포의 위력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홍이포는 淸나라가 明나라에서 빼앗은 것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사용했던 홍이포의 무게가 수백 킬로그램에서 일 톤이 넘는 것도 있다. 박물관에 가면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는데 왜 전시되어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사거리가 여의도 KBS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김포공항 바로 앞 마곡까지, 동쪽으로는 압구정까지다. 당시에 홍이포 위력은 핵무기 수준, 현대 보병들이 사용하는 박격포가 60밀리 81밀리 121밀리가 있는데 최대 사거리가 3~6킬로미터 정도이다. 17세기에 홍이포는 그것에 두 배 이상이었다.
② 17세기 병자호란 당시에 청군은 남한산성이 멀리 보이는 망원동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인조가 항복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조선이 굴복하지 않자 포를 쏴대기 시작하였다. 추운 날씨 풍족하지 않은 식량에도 잘 버티었던 조선과 인조, 하지만 홍이포를 쏜지 열 흘 만에 청에 항복하고 말았다. 당시 홍이포의 위력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랑캐가 성안에 대포를 쏘았는데 탄환이 거위알만했으며 맞아서 죽은 자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했다(인조실록 1637년 1월 19일)------대포 소리가 종일 그치지 않았는데 성첩이 탄환에 맞아 모두 허물어졌으므로 군사들의 마음이 흉흉하고 두려워했다(인조실록 1637년 1월 25일), 엄청난 굉음과 공포 속에서 남한산성 안에 있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감은 정말 극에 달했다. 먼저 홍이포를 보유한 나라는 明나라였다. 淸나라가 거대한 명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비밀이 있다.
③ 신무기는 인류의 역사를 한번씩 크게 바꾸어 놓았다. 2차 세계대전에는 항공모함이 전쟁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요즘은 수백만원대 무기 드론이 수십억 원 짜리 탱크를 잡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조총 때문에 우리가 놀랐는데 병자호란 때는 홍이포 때문에 놀랐다. 우리 역사에서 병자호란은 마음 아픈 치욕의 역사다. 오랑캐는 말타고 공격할 뿐이지 공성전에는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이 홍이포를 자체 생산해 가지고 조선임금 궁에다 포탄을 때려 버렸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주력 대포인 천자총통은 30근까지 포탄을 쓰면 1.4킬로미터 날아갔다. 근데 홍이포는 9킬로미터 까지 날아간다. 홍이포는 천자총통보다 10배 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紅夷砲는 이름에서 그 원산지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붉은 홍(紅) 오랑캐 이(夷)자다. 붉은 오랑캐다, 붉은 머리와 수염을 가진 오랑캐가 쓰는 대포다 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유럽 네덜란드인들=紅夷 라고 불렀다.
④ 당시에 천주교로 개종했던 명나라 대신들은 무섭게 커가고 있는 후금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서양식 화포를 도입해야 했고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포르투갈인들을 통해서 네덜란드 포였던 컬버린 포가 들어오면서 거기에 이제 붉은 오랑캐의 대포가 홍이포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중국인은 이름 부치는 것도 자기 중심적이다. 유럽의 선진 문물을 가지고 오면서 붉은 오랑캐들의 무기라고 했다. 조총을 일본에 전달해준 사람이 포르투갈인이다. 유럽 사람들이 이 당시에 중국이나 일본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청은 처음엔 홍이포를 가진 명에 밀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홍이포를 손에 넣고 명에 대한 승기를 잡게 되었다. 후금과 명나라가 사르후 전투에서 붙었는데 후금이 이겼다. 이로서 심양과 요녕 일대를 후금이 차지했고 누르하치는 후금을 통일시켰다. 명나라 는 여기 전투에서 졌고 땅도 뺏겼고 코너에 몰릴 수 밖에 없었다.
⑤ 후금의 다음 목표는 명나라 수도 북경, 중국은 북방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것은 후금 기병들이 뚫기가 쉽지 않았다. 만리장성을 넘어서 넓은 중원으로 가기 위해서도 들려야 했던 관문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산해관(山海關)이다. 만리장성에는 곳곳에 관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동쪽 끝에 있는 관문이 산해관, 이름 그대로 산과 바다에 있는 관문이다. 산해관은 天下第一關 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천혜의 요새를 자랑했다. 산해관 서쪽을 보면 큰 산맥이 있다. 넘기도 힘든데 그 위에 장성까지 쌓았다. 기동성을 유지하면서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근데 대병력이 바다로 가자니 문제가 있으니까 결국은 산해관을 통과할 수 밖에 없다. 명이 지켜야 되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이게 뚫려버리면 북경까지 가는 상황이라 산해관은 중요한 전략적인 요충지다.
⑥ 이런 상황을 예상을 해서 전략을 짜놓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원숭환 장군이다. 원숭환은 중국 송나라 때 여진족의 침입을 물리쳤던 악비 장군과 더불어서 한족의 최고 명장이다. 우리나라에 이순신이 있다면 명나라에는 원숭환이 있다. 원숭환은 병법에 능통했고 담대했고 남의 눈치 안보는 원칙주의자였다. 원숭환은 만리장성 안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해관 밖에 200리 밖에 100킬로미터 먼 거리에 전진기지인 寧遠城을 축성하였다. 山海關이 뚫리면 북경까지 일사천리니까 방어선을 앞 당겨 옮긴 거다. 성 문을 감싸 안은 양쪽으로 둥근 기둥이 다 방면에서 공격하지 못하게 저 안으로 들어오면 저 성벽 위에서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질 수 있다. 방어에 특화된 성이다. 높이 10미터에 두께 6미터 건물이다. 두께가 두껍다는 건 여러 궁수가 겹겹이 서서 돌아가면서 쏠 수 있다. 성 위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거기에다가 신식 무기 홍이포 11개 문울 설치 했다. 홍이포를 운영할 수 있는 훈련된 부대를 배치해 가지고 신속히 재장전 할 수 있는 인력들을 배치했다. 寧遠城은 淸은 뚫기 어려운 말 그대로 영원한 難攻不落의 성이다.
⑦ 1626년 1월 23일 후금군 20만 대군이 寧遠城 앞에 당도했다. 영원성엔 1만에서 2만 정도가 지켰다. 영원성이 뚫리면 북경까지 진군이다. 원숭환만 빼고 다른 장수들과 부대들은 모두 산해관으로 철수하였다. 명조정은 병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각개격파 당하니까 한 곳에 모여서 산해관을 지키는 게 낫겠다. 비효율적으로 산해관 밖을 지키는 것 보다는 산해관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켜서 지키는 게 낫겠다고 결정되었다. 그런데 원숭환이 반대를 하면서 나는 영원성을 지켜야 되겠다 해서 원숭환이 이끄는 부대만 영원성에 남았다. 명나라 쪽 입장에서는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네가 결사대 데리고 거기서 후금군에 피해 많이 입혀 우리가 산해관에서 막을게 어떻게 보면 버리는 카드이자 네가 알아서 총알받이 해 였다. 누르하치는 1626년 1월 23일 새벽 영원성을 향해 대공세를 펼친다. 하지만 영원성에서 쏟아지는 포탄에 후금군의 전열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엄청난 위력을 지닌 홍이포의 화력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누르하치의 패배, 결국 누르하치는 나흘만에 영원성에서 퇴각하며 최악의 패배를 경험한다. 이 전투는 후금을 상대로 한 명의 첫 승리이자 기적과도 같은 전투였다. 그 중심에 바로 명나라 장수 원숭환이 있었다. 홍이포 화력이 어마어마 했다.
⑧ 후금군은 처음 보는 무기였고 사정거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길었기 때문에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했던 거를 몰랐다. 신무기에 원숭환이란 훌륭한 장군, 병력은 적었지만 명군은 후금에게 없었던 신무기 홍이포를 가졌다. 홍이포 대포는 전차와 함께 화력전을 대표하는 무기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홍이포는 어땠을까. 앞에서 포구를 닦아 준다. 충분히 닦아주고 나서 포장된 화약을 포구에 밀어넣는다. 끝까지 공간이 없도록 포환을 밀어넣는다. 그 다음에는 뒤에 약실이 있다. 홍이포의 모양은 뒤로 갈수록 점점 두꺼워진다. 여기서 압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두껍다. 앞에는 얇다. 압력을 높여서 더 멀리 빠르게 쏘는 것이다. 포신이 길기 때문에 화약의 가스압력이 멀리 길게 전달이 되면서 탄환에 포환의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심지에 불을 부치면 잠시 후에 발사가 된다. 화약이 탁 터지면서 쫙 나간다. 이게 전장식 포다. 후장식은 뒤에서 장전, 발사를 한 후에 뚜껑열고 총알 넣고 화약 넣고 또 발사~ 훨씬 빠르다. 아직까지는 전장식이다. 전장식은 운영자와 운영하는 병사들이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다. 후장식은 엄폐를 한 상태에서 재장전하고 쏠 수 있기 때문에 참호 같은 것을 만들어서 포신만 밖으로 놓고 숨어서 쏠 수 있다. 화약은 중국 송나라 때 발명이 돼서 유럽으로 전달이 되었다. 근데 홍이포는 왜 유럽에서 먼저 발명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15세기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부터 대포가 공성전에 본격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비잔틴 제국이 무너지면서 유럽이 한 마디로 싸움판이 되었다. 중세 영주들이 가졌던 성들이 대포로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경쟁적으로 대포의 성능을 높힐려고 모든 기술력이 다 집약이 되었다.
⑨ 1453년 이슬람 세력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 포 만든 사람들이 민족도 필요없다 나라도 필요없다 무조건 돈이면 다 된다. 돈이면 다 되니까 다들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 공성을 위한 주조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경쟁적으로 특히 성을 무너뜨리는 공성을 위해서 개발하다 보니 훌륭한 대포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화약이 동양에서 유럽으로 건너 갔는데 하지만 대포는 발전하여 유럽에서 동양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딴딴한 쇠 덩어리가 9킬로미터 이상을 날라가서 모든 걸 다 파괴해 버린다. 속도가 엄청 빨랐다. 후금군은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2~3킬로미터 앞에서 공성준비하고 사다리 들고 일렬로 들어갔다. 원숭환이 후금군을 향해 홍이포를 사다리 방향을 향하여 쏴버렸다. 홍이포의 화력은 공성무기를 무력화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홍이포는 후금군의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었다. 누르하치 지휘부가 홍이포에 공포스러워했다. 이 위력적인 홍이포를 전략적으로 잘 사용한 장수가 명의 원숭환이었다. 결국 명나라가 후금군을 이겼다. 후금군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 이후에 사망한다. 후금군에 위기가 찾아왔다. 누르하치의 사망 소식이 조선에도 전해진다. 그의 사망원인은 아직 정확히 모른다.
⑩ 여진을 통일하고 명이 휘청 휘청할 정도의 힘을 가졌던 공포의 대상 누르하치는 홍이포에 의해 무너졌다. 누르하치는 태어나서 원숭환 때문에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았다. 당시 이건 중요한 사건이었다. 누르하치가 심양성으로 돌아갈 때 이렇게 한탄을 했다. 아~ 내가 25살 때부터 싸워서 진 적이 없었는데 어찌하여 이 영원성 하나를 얻지 못하는가! 누르하치가 어떻게 죽었는지 사료상에 나오진 않지만 백전노장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에서 홍이포로 크게 타격을 받았던 것은 확실하다. 누르하치는 홍이포로 화병이 나서 죽었다. 원숭환은 명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요서지방을 관할하는 총사령관이 되었다. 누르하치는 1626년에 사망하면서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조카한테 대권을 넘겨준다. 차남 다이샨, 5남 망굴타이, 8남 홍타이지, 조카 아민, 한 사람이 독재를 하지 말고 같이 공동통치를 해라. 그래도 지도자가 필요하니까 일단은 나이도 가장 어리고 서열도 가장 낮은 홍타이지를 한(han)으로 추대한다. 이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여덟번 째의 아들이다. 홍타이지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⑪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만주어다, 홍타이지를 한자어로 쓰면 皇太極 이다. 그런데 홍타이지라는 말은 만주어로 “훌륭한 아들”이란 뜻이다. 굉장히 흔한 이름이다. 몽골족이나 만주족 중에 홍타이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다. 누르하치는 “멧돼지 가죽”이라는 뜻이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사실 홍타이지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인물이고 청황제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직접 와가지고 삼전도에서 인조를 무릎꿇게 했던 그 인물, 청태종 숭덕제가 바로 홍타이지(황태극)이다. 홍타이지의 묘호가 태종이다. 중국 당 태종, 조선 태종 이방원, 이들은 다 형과 동생을 죽이고 골육상쟁을 일으켰다. 창업주인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카리스마로 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청 태종 홍타이지도 똑 같았다. 총 4명이 공동섭정에 오르게 되는데 넘버 4로 시작해서 거기서 하나씩 하나씩 형님들을 누르면서 결국 황제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홍타이지가 형제들을 다 제끼고 한(han)의 자리에 올라갔다. 그러면 분명 불평, 원망하는 세력도 있을텐데 이때 제일 좋은 건 창 끝을 바깥으로 돌리는 거다. 게다가 명분도 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지, 명의 원숭환을 잡으러 영원성엘 가야한다. 그런데 반전, 권력을 잡고 홍타이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선을 먼저 공격하는 거였다. 그게 바로 1627년 1월 27일 정묘호란이었다.
⑫ 조선과 명나라는 친하다, 그련데 명은 조선에 홍이포를 주지않았다. 결국 명나라의 홍이포가 후금을 조선으로 향하게 하였다. 홍이포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홍타이지가 정묘호란을 일으킨 다른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에 있었다. 당시 17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little ice age) 였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평균 기온이 낮아지고 강수량이 적어지니까 기근도 많아지고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무엇보다 후금군은 명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역이 끊긴 상태다. 식량난이 더 심각해진 것이다.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도 식량확보가 절실했고 물자확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돌파구가 되었던 곳이 바로 조선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 끝난지 얼마 안 돼서 다 수탈당했다. 만약에 홍타이지가 명분에만 휩싸였다면 다시 한번 원숭환을 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조선을 침략하게 되었다.
⑬ 홍타이지는 치밀한 계획하에 조선을 침략하였다. 당시 후금의 상황은 배고프다 물자가 부족하다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 식량이 부족하니까 살인을 해서 인육을 먹을 정도로 극단적인 식량 부족에 처했다. 명나라를 쳐 들어갈 보급이 뒷받침이 안 되니까 약하고 만만한 조선을 치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바로 시장을 열도록 강요를 한다. 시장에서 made in China, made in Japan 중국산 일본산 물품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선을 통한 중계무역이 당시 후금의 숨통을 틔워 주었다. 이때 조선의 많은 물품도 후금에 전파가 되었다. 홍타이지는 조선의 과일을 맛보고 굉장히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감을 좋아했다, 감을 홍시나 곶감으로 만들어서 바치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곶감 말고도 일본을 통해서 조선으로 전파된 신대륙 작물 담배도 이때 후금으로 전파가 된다. 후금 사람들이 담배를 너무 피우니까 나중에 홍타이지가 나라 전체에 금연령을 내렸다, 조선을 통해서 물자를 확보했으니까 이제 홍타이지의 공격 목표는 명이다.
⑭ 이순신 장군께서 바닷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원숭환이 대륙의 길을 막고있었다. 원숭환은 중국 역사에서 오랑캐의 침입을 물리친 최고의 한족 장수다. 홍타이지는 고민 끝에 원숭환이 지키는 영원성 산해관 루트를 피해서 다른 방향으로 만리장성을 넘어서 북경으로 향했다. 홍타이지는 당시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만리장성을 넘는다. 일단 부하들한테 영원성을 공격하게 해서 원숭환의 시선을 유인하고 다음에 자기가 직접 주력군을 이끌고 1629년 10월 2일 심양을 출발해서 내몽골 초원으로 우회를 해서 10월 27일 다른 장성의 관문을 넘는다. 이거야말로 聲東擊西다. 원숭환의 시야를 피해서 다른 길로 갔다. 예상치 못한 험난한 곳을 통해 북경 앞으로 병력을 집결시켰다. 영원성을 우회해서 갈려면 중요한 게 바로 몽골세력이었다. 영원성을 넘어서 갈려면 몽골 초원을 우회해서 가야 한다. 이 때 도움을 준 게 혼인을 통해서 사돈관계로 맺어진 몽골세력들이었다.. 몽골 세력들이 길잡이를 해서 초원을 넘어서 만리장성의 다른 관문을 넘은 거다. 홍타이지는 몽골세력 덕분에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루트로 북경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⑮ 명은 얼마나 놀랐을까. 산해관만 잘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을텐데 갑자기 떡 하고 바로 북경 위에 후금군이 와 있었다. 몽골과 사돈관계를 맺는 것은 누르하치 때부터 계속 되어왔던 것이다. 만주족에게 몽골은 전략적 파트너이자 가까운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몽골과 후금이 당시에 식량난에 있을 때 같이 제휴를 해서 명에 대한 약탈전에 나서게 된 거다. 명나라는 정신이 없었다, 원래 명나라는 전통적으로 이이제이라고 해서 서로 이간질을 시켜서 저희들 끼리 싸우게 만드는 거다. 그런데 둘이 손을 잡고 있었다. 원숭환 장군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헐레벌떡 산해관을 통과해서 북경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후금 홍타이지와 명의 원숭환이 붙었다.
@ 후금군은 원숭환에 패배하고 물러선다. 원숭환 장군의 지휘력과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홍타이지는 원숭환이가 정말 두려운 존재이고 얄밉고 분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 원숭환이 갑자기 죽어버린다. 그것도 명 황제에 의해서 처참하게 능지처참 당했다, 명나라를 구한 영웅인데 능지처참이라는 건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역모를 한 죄인에게나 내려질 법한 형벌이다. 능지처참에 車裂刑이라고 있는데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고 수레를 끌어 죄인을 찢어 죽이는 형벌, 중국의 능지처참은 죄인을 기둥에 묶고 살점을 떼어 내는 거다. 툭 살점을 떼어내면 피가 빨리 나와서 빨리 죽는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뼈와 살을 발라내는 거다. 극도의 고통을 당하면서 끝까지 말려 죽이는 게 능지처참인데 이걸 원숭환이 당한 거다. 원숭환이 고문을 당하면서 죽었다니 진짜 이해가 안 간다. 그는 구국의 영웅인데 장수를 어떻게 그렇게 죽이나. 그런데 후금군이 만리장성을 넘어 명을 침략하자 백성들 사이에선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후금군이 쳐들어온 건 원숭환 때문이래, 성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원숭환이 화친을 원했는데 폐하께서 거부하시자 후금군을 불러들여서 폐하를 협박한 거래,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원숭환을 찢어 죽이고 싶어,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홍타이지는 치밀한 계략을 꾸민다. 홍타이지는 포로로 잡힌 명나라 환관에게 원숭환이 밀통한다는 거짓정보를 일부러 흘리고 이를 엿들은 환관이 다시 궁으로 도망치게 일부러 놓아 준 것이다. 계략에 빠진 줄도 모르고 환관은 자신이 들은 걸 황제에게 고해바친다. 환관-폐하의 주변에 엄청난 역적이 있습니다. 황제-누구냐, 환관-원숭환이 적과 내통하고 있습니다. 홍타이지의 계략은 적중했고 원숭환에 대한 명 황제의 불신은 폭발하고 만다. 황제-짐이 눈이 멀어 역적을 중용했구나. 이게 다 홍타이지의 反間計이었다~원숭환은 너무 억울하다.
ⓑ 우리가 원숭환을 쭉 보았지만 이 사람은 후금과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명을 배신할 인물이 아니었다. 명 황제는 사람 보는 눈이 아예 없었다. 원래 숭정제는 의심이 많았던 황제로도 유명하였다. 그러니까 홍타이지가 애초에 계획을 세울 때에도 캐릭터를 분석하였다. 숭정제가 그걸 그냥 덥석 믿었다는 자체도 그 만큼 홍타이지가 가짜 뉴스를 치밀하게 조작을 해왔다. 국가 지도자는 疑人勿用 用人勿疑 의심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아라. 원숭환의 갑작 스러운 죽음은 홍타이지가 명나라 숭정제의 인간 본성의 약점을 노린 거였다. 중국 역사를 보면 북방에 수비를 맡기는 총사령관들은 대체로 끝이 안 좋았다. 총사령관이 힘이 강해지면 저거 반란 일으키면 우리가 못 막는데 그래서 수도로 불려가 처형을 한 경우가 있었다. 조선에서도 절대적인 무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경계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목숨 걸고 나라 지켜봐야 원숭환 같은 결말이 있으면 누가 충성하겠는가. 明이 命을 다한 이유가 있었다. 명나라 장군들은 황제에 대한 배신감이 엄청 났을 것이다. 지휘관과 군사가 같이 싸우다 보면은 연대로 똘똘 뭉치게 되어 있다. 그것을 황제는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 숭정제는 원숭환 장수를 제거 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명은 겨우 겨우 실전을 겪은 병사들과 장수들의 충성심을 잃어버렸다. 이런 장수들은 당연히 투항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후금은 지금까지 눈에 가시 같았던 원숭환을 처치할 수 있었다. 아버지 누르하치의 원수도 갚고 명에 대한 약탈도 성공하고 홍타이지는 한(han)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서열 넘버 4로 시작한 홍타이지가 이제는 넘버원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명나라는 홍타이지를 위해 원숭환을 제거해 주었다. 홍타이지 계획이 뛰어난 측면도 있지만 명나라 스스로 무너질 때가 되었다. 멸망을 재촉한 결정적인 패착 명 스스로 이이제이를 썼다. 홍타이지는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묻히고 적군의 명장을 없앴다. 투항한 영원성이나 북방의 병사들이 홍이포도 후금에 넘겼다. 홍타이지가 홍이포를 처음으로 입수하게 된 것은 북경에서 였다. 이때 홍이포 기술자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잡아갔다. 잡아가서 1년 만에 자체적으로 홍이포를 생산하게 됐다. 홍타이지가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당시 포로로 잡아왔던 홍이포 장인들을 최고로 대접해 준다. 1년 만에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 벼슬도 주고 평생 먹고 사는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 그리고 그때 마침 명나라 공유덕, 경중명 장수가 후금에 투항을 하였다. 이들이 홍이포나 수군을 데리고 투항을 했다. 홍타이지가 너무 기쁜 나머지 공유덕과 경중명을 왕에 봉해 주었다. 후금의 만주족이 명의 한족에게 왕에 봉한 건 이때가 거의 유일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에 공유덕, 경중명의 부대 이름을 지어 주는데 天佑兵 하늘이 도운부대다 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또 자체 생산한 홍이포의 이름을 天佑助威大將軍 하늘이 도와서 응원하는 대장군 이렇게 홍이포를 자기 손에 넣은 걸 天佑神助 하늘과 신이 자기를 도왔다고 믿을 만큼 홍이포에 진심이었다. 명은 당연히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 홍타이지에게 홍이포까지 생겼으니 홍홍케미가 이루어진 때가 1631년 1월이다. 병자호란은 이미 준비가 되고 있었다. 1631년 8월에 요서 지역의 대릉하성 포위전에서 자체 생산 홍이포가 처음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때 홍이포를 발사해서 명군에게 공포심을 심어놓고 성을 고립시킨다. 고도의 심리전과 회유작전을 통해서 항복을 받아낸다. 이 장면이 5년 후에 남한산성에서 그대로 재현 되었다. 아주 판박이다, 오늘 홍이포를 살펴본 이유다. 병자호란은 우리에게 아픈 역사다. 명 황제는 원숭환이 죽이고 장수들 투항하게 만들고 후금군에게 홍이포 뺏기고 병자호란 때 그걸로 우리 백성들 짓밟은 원흉이 되었다. 병자호란은 명 황제 때문이었다. 명과 청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한 장면, 명의 멸망은 세 치 혀에 휘둘린 리더로부터 시작되었다.
ⓔ 홍이포는 명나라도 후금도 가지고 있었다. 좋은 무기는 두 나라에서 가지고 있었는데 누구는 승자가 되고 누구는 패자가 되었다. 중요한 건 좋은 무기도 좋은 제도도 아니고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누르하치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은 굉장히 열려있다는 느낌이다. 저게 필요하다 하면 바로 입수해서 자기 것을 만드는 열린 마인드다. 그에 반해 조선은 명나라 하나만 바라보고 거기를 통해서만 신문물을 받아들일려고 했다. 17세기 초반에 명은 조선에 홍이포도 안주고 다 갖고 있었다. 홍이포는 17세기에 핵무기 였다. 16세기 부터 동아시아에는 오랑캐의 신무기가 항상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왔다. 조총에서부터 시작해서 홍이포까지 상대를 오랑캐라고 깔본 조선은 오랑캐의 신무기에 조선 왕 인조는 홍타이지(청태종)에게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다. 2023년을 사는 우리는 지금 오랑캐는 누구인가, 오랑캐의 무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오랑캐는 지금 우리들 마음 속에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