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에 과학이 예술에 준 영향
우리는 빅토리아 시대라고 하면, 신사(gentleman)와 숙녀(lady)가 자기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위선자와 요조숙녀가 우글거리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대에 대한 여러 착각 중의 하나다.
빅토리아 시대는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가 빛을 잃어갔다.(성경해설에)
빅토리아 시대는 성 도덕이 아주 엄격하였으나(일반적으로 이때의 도덕은 종교에 기반을 두었다.), 종교가 과학 논리에 의하여 흔들리자 사람들은 종교에 기반한 도덕률을 의심하였다.
영국의 헉슬리는 인간은 신이 만든 ’자동기계‘가 아니라고 하였고, 철학자 스펜스 스스로 대응하는(신을 거치지 않고) 자이다. 라고 주장했다. 자연은 워즈워드가 노래한 낭만의 세계가 아니라. ’피에 물든 이빨과 발톱‘이 지배하는(다윈의 진화론 및 적자생존 이론으로 설명하면) 세계라고 하였다. 진화론과 적자생존이 인류를 움직이는 힘이고, 결과로 최선의 상태로 이끈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에 젖어 있는 일반대중을 헷갈리게 하였다.
독일에서 ’정서‘라는 감정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 하였다.
빅토리아 시대는 과학의 힘을 빌려 성적본능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1861년에 노섬벌런드의 거리에서 치정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런던의 ’타임스 지‘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치정살인의 이유로 ’억누를 길이 없는 강렬한 정염‘ 때문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보도는 그 시대의 금기를 깨뜨린 사건이었다. 고상한 영역이라고 믿고 있던 문학에서 금기가 깨뜨려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보들레르가 시집 ’악의 꽃‘에서 변태성욕을 과감히 표현하였다. 법원에 끌려가서 법적 제재를 받았다.(마광수도) 이후로 예술가와 문인은 성 문제에 눈을 뜨고 자기의 소신으로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디킨스나 조지 엘리엇 같은 문인들의 불륜은 모른 척 하고 넘어 갔지만, 정치인의 불륜은 매스컴이 까빌라고, 헐뜯고 하여 완전히 매장시켜 버렸다. 이중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치인은 대중의 시선을 끄는 인기인이었고, 소설가 따위는 별 볼 일 없었다고 하겠다.
음악에서도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트리스탄은 총각 기사이고, 이졸데는 유부녀 이다.)‘를 공연하면서, 성행위를 음악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공연도 별 문제 없이 그렇게, 그렇게 넘어갔다.
과학의 발달은 이처럼 도덕 분야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인종 논쟁
1800년 대의 학술 논쟁 중에서 인종 문제가 나타났다. 인종이 민족으로 바뀌면서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인종 분류는 해부학적(생물학적 형태)으로 접근했다. 이것을 ’형질 인류학‘이라 했다. 해부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개골‘이었다. 두개골의 형태에서, 용량까지 다양한 요소를 연구하였다.
19세기의 유럽은 인간을 분류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노아의 세 아들, 함. 셈, 야벳의 자손이 인종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부터, 1850년 대에는 백인, 흑인, 황인, 홍인의 분류가 나왔다. 인류학에 두개골을 연구하는 해부학을 가져옴으로, 과학으로 포장하려는 시도였다. 어쨌거나, 두개골로 장두형, 중두형, 단두형으로 나누었다. 장두형이 단두형보다는 우수한 인종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분류에 의하면 장두형은 북 유럽인이었고, 단두형은 남 유럽인이었다. 게르만 족이 유럽 대륙으로 이동해오던 시기에 유럽에는 캘트인, 튜튼인들이 살았으므로, 게르만 족이 이들보다는 우수하다는 포석도 다분히 있었다.
장두형에 속한다는 독일인의 특징으로 키가 크고, 금발이며, 눈 색깔은 파랗다. 이때 루돌프 파로호라는 사람이 독일의 초등학교 학생을 대대적으로 조사하여, 1/3은 키가 작고, 눈은 갈색이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발표를 흐지브지하게 흘려버렸다. 아니,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영국은 크리미아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러시아와 터키인들이 단두형 인간으로 평가 받는다. (실제의 전투에서는 영국 기병대의 ’돌격‘ 전술이 개박살 났으나(러시아 군이 기관총으로 갈겨재끼자), 어쨌거나 전쟁에서는 승리했다. 승리 후에 개박살 난 기병대의 지휘자 장군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는 모든 상황이 기병대의 돌격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무지한 장군 때문에 영국 청년이 많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전쟁에서 전술이 바뀌고, 기병대의 역할을 전차가 떠맡는다.
유럽인들이 제국주의 시대를 만나면서 아프리카와 중국으로 진출하였다. 이제 두개골 형질은 유럽을 넘어, 이들에게까지 적용하였다. 문화인인 유럽인이 미개인인 이들 종족을 문화인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피지배인은 단두형이며,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나 사회주의자로 쉽게 빠져든다고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