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왜 필요한가? (1) -- 기본정의 편 한민족은 왜 단일민족인가? 혈연개방적 민족주의는 실현 불가능하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은 누구나 우리 민족, 우리 민족 말은 많이 하고 산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 민족은 가치있고 민족주의를 고취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하면 이상한 부류들(서양근대사적 사고나 세계화 이념에 중독된 사람들)에 의해 민족이란 것이 시대착오적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듣는 세상에 살고 있다. 차이나 정부가 고구려사 등 한국고대사를 빼앗아 가려는 책동을 벌이고 있고 미국과 한국 정부에 의해 한민족을 혼혈화 시키고 이민을 받아 들여 한국사회를 다인종 다민족화 하려는 책동이 벌어지고 있는 등의 상황이다. 이와 같은 작금의 한민족 위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이고 그것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이론적 바탕이 마련되어 있어서 일반 대중들이 누구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족에 관련한 사안들이 실제로 입법화되고 제도화 될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일상에서 우리 민족, 우리 민족 아무리 떠들어 봐야 그 힘에는 한계가 있고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현대는 미디어 시대이고 목소리 큰 소수의 부당한 주장이 다수를 이길 수도 있는 불합리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호주제 폐지 책동의 과정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소수의 페미들이 언론과 정부기관을 농단하고 여론을 호도하여 결국 2005년 3월 2일 국회에서 호주제폐지법안이 통과되고 만 것이다.) 공청회나 국회 표결을 전후한 절차, 정부 정책 등 실제 입법화 과정에서는 이론적 근거와 논리를 갖추는 것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첫 째 조건인데 민족 개념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일반대중의 평균적 정서와 엘리트적 절차가 반대로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일반대중은 우리 민족 우리 민족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사회에 민족에 대한 이론적 바탕이 결여되어 있고 국회 등 정치권에는 세계화니 뭐니 하면서 민족 개념을 부정하는 자들이 그들 식의 이론(들어보면 그럴듯하여 혹하기 쉽다)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진정으로 민족을 살리는 정책은 나오지 않고 죽이는 정책만 연이어 나오는 현실이다. 이 글은 그러한 현실을 바로잡는 초석을 만들고자 쓰여졌다. ■ 번역어가 반드시 원래의 의미대로만 쓰이란 법은 없다 -- ‘민족’이란 말이 원래 서양근대의 용어 ‘nation’의 번역어라 해도 지금까지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자꾸 근대 서구의 국민국가 형성 시기에 연관지어 온 경향이 많은데 이제는 그런 일을 그만 두어야 할 때이다. 근대서양에서 절대왕정이 무너지면서 인민이 정치에 참가하고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는데 이 때 국가를 이루는 기본단위가 주로 혈연종족집단이었다고 서양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프랑스의 예에서와 같이 같은 종족집단으로 이루어진 국가라고는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들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프랑스는 바로 <시대소리> 남해경 씨가 언급한 ‘민족없는 민족’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국가는 영어로 ‘nation’으로 표현되어 왔는데 이는 ‘natal’(출생의)과 어원이 같은 단어이다. 그런데 이 ‘nation’이라는 말은 서양근대 이후 “혈연종족집단이 중심이 되어 세운 국민국가” 또는 “국민국가를 이룬 혈연종족집단”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어져 왔는데 19세기 말 일본인들에 의해 전자는 ‘민족국가’ 또는 ‘국가’라는 말로 번역되고 후자는 ‘민족’이라는 말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번역된 결과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서 이 ‘민족’이란 말이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 이는 ‘민(民) + 족(族)’으로서 ‘민’이라는 정치사회적인 개념과 ‘족’이라는 혈연적 개념을 결합하여 만든 번역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서양근대에 국가를 이룬 인적 자원이 주로 혈연종족집단’이었다는 서양인들의 주장을 담은 말로서 그들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일단 단어상으로는 나름대로 적절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민족’이라는 말이 그러한 번역의 결과로 비로소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 번역의 원래 의미에 깃든 서양근대사적 특수성(예를 들면 국민국가적 요소)을 그대로 살려서 쓰기를 고집함으로써 ‘민족’의 개념을 서양근대에 묶어 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고집은 어리석고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먼저 어떤 현상에 대한 일반화 내지 개념의 확장이란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연 현상이든 사회 현상이든 인간이 어떤 구체적 현상에 대해 인지하면 그것을 일반화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생물의 분류에 ‘종-속-과-목-강-문-계’라는 체계를 쓰고 있는데 고양이과 동물들의 예를 보자. 고양이과에는 고양이, 호랑이, 삵쾡이, 치타, 표범 등이 있으며 이들 모두를 고양이라는 특정 종의 동물을 내세워 통칭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반화의 과정 중 하나이다. 그리고 고양이과는 고양이가 아니며 사실 ‘호랑이과’라고 이름 붙여도 별 문제는 없지만 단지 생물학계에서 그냥 고양이라는 종을 연상(聯想) 지렛대로 정한 것일 뿐이다. 고양이의 특징으로 호랑이나 치타 등의 (같은 과에 속하는)다른 종을 연상하도록 말이다.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서구의 특수한 민족 현상인 nation은 이미 민족 현상을 일반화하기 위한 일종의 연상 지렛대 중 하나라는 지위만을 가지는 것이지 그 자체가 민족 현상의 전부인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우리 한국인이 (nation의 번역어인)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그러한 연상지렛대를 사용하여 이미 일반화된 또는 일반화될 민족개념을 지향하여 표현하는 것이지 서구의 nation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한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민족현상에 대해 헷갈려 하거나 오도하고 있는 것은 일반화된 개념에 대한 문자적 표현(‘민족’)이 일반화되기 전의 연상지렛대에 대한 문자적 표현(‘nation’의 번역어로서의 ‘민족’)과 같기 때문이다. 고양이과라는 명칭 대신 그 과에 공통되는 대표적 특징을 과의 명칭으로 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민족 현상에 대해서도 서구의 민족, 아랍의 민족, 한민족 현상 등을 아우르는 ‘민족’ 외의 단어를 찾아내어 쓴다면 혼란이 사라질 것이지만 이미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문자적 표현을 써 온 현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결국 우리 한국인이 쓰는 ‘민족’이라는 말이 이미 nation과 같은 연상지렛대를 활용하여 일반화된 민족개념을 표현하는 것임을 확실히 하여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며 이 글에서 필자가 의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다른 각도에서 봐도 어떤 말이란 것은 공식적인 정의와는 상관없이 사용자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할 수도 있는 것이며 ‘민족’이란 말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근대 이후 ‘민족’이란 말이 주로 혈연집단(겨레, 종족)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번역의 원래 의미에 들어 있던 ‘민’이라는 정치사회적 의미가 적어지게 되었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며 또한 한국에서 그러한 의미변동에 기초하여 ‘민족주의’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말을 번역의 원천인 서양근대사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국민국가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동포’나 ‘동포주의’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해 온 것은 그것이 한국적인 상황에 더 적합했기 때문으로서 전혀 탓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민족’이나 ‘민족주의’와 같은 발음 내지 문자적 표현에 담긴 의미가 한국적인 상황에 따라 ‘동포’ 또는 ‘동포주의’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미 변한 이상 그것은 같은 표현에 담긴 서양근대사적인 의미와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다. 민족이나 동포와 같은 말은 사회학적인 용어로 봐야 하며 사회학적 용어의 의미는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회의 현실과 기준에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수퍼마켓’이라는 말의 ‘수퍼’가 한국에서는 동네 구멍가게까지 일컫는 명사로 쓰이고 있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이 그러한 의미 변동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어떤 한국인도 ‘수퍼’라는 단어를 동네 구멍가게에 써서는 안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국의 ‘거시기’라는 문자적 표현에 담긴 원래 의미 A 대신 영국에서는 영국인들이 처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B라는 의미(물론 A와 전혀 다르지는 않을 수도 있다)로 사용되고 있다면 B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원래 의미인 A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거시기’라는 말이 애초에 어떤 치밀한 이론전개를 위한 전문용어가 아닌 이상 영국에서는 영국인들이 처한 상황과 필요가 중요하지 A라는 의미가 생겨나게 된 한국적인 상황과 필요는 관심밖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러한 기본을 부정하는 행태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다. 그들은 어떤 혈연종족집단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민족국가로 불리워지려면 반드시 서양의 근대국민국가의 모습을 띠어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대로 민족에 관한 의미 규정에서 서양의 ‘국민국가’와 연결시키는 것을 고집하면 한국에서는 이미 일반대중에게 보편화되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는 말의 사용에 제동이 걸리게 되고 이는 대중의 언어생활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경우는 다르지만 ‘짜장면’이냐 ‘자장면’이냐 하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일부 국어학자들은 온 국민이 지금까지 ‘짜장면’으로 불러 온 것은 무시하고 그 어원이 ‘자장면(?)’이라면서 ‘자장면’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최근 신문, 방송 등 언론에서는 ‘자장면’으로 표기하고 발음하는 웃지 못할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일반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경우는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말도 사람 내지 사람들의 사회를 지칭하는 말로서 원래는 결코 어떤 비하나 비난의 뜻이 담긴 말이 아니었지만 일반 대중들의 언어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 인간은 못 말려” “그 인간이 참 문제다” “인간아 인간아”라는 표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엄청난 비난의 뜻을 ‘인간’이라는 말에 담아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도대체 언어란 것이 항상 그 어원과 뜻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기본적으로 어떤 말이란 것은 반드시 그것이 처음 생긴 그대로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뜻이나 뉘앙스, 발음이 변할 수도 있는 것임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바탕한다면 언론이나 학계 인사들의 할 일은 큰 혼란이 없는 한 그들의 지식과 정보를 동원하여 일반대중의 언어생활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일이지 그 뜻이나 뉘앙스, 발음이 원래 어원에서 멀어졌다고 해서 딴지를 거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미 대중화 되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란 말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한국에서 ‘민족’이란 말은 비록 번역어로 시작했다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어떤 치밀한 이론 전개를 위한 전문용어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번역어일 뿐이며 이미 대중의 일상용어가 된지 오래이다. 그렇다면 번역어의 원래 의미보다는 지금까지 한국의 대중이 어떤 의미로 사용해 왔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또 사실 오랜 한국의 역사과정에서는 혈연종족과 관련된 체계어(體系語)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만약 ‘민족’이라는 용어가 근대에 번역어로서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아마 ‘겨레’나 ‘동포’와 같은 단어를 적절히 조합하거나 아니면 의미변동을 시킴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민족’이라는 단어에 담아 표현해 왔던 의미들을 표출했을 것이다.
이상에 기초한다면 언론과 학계의 인사들은 이미 사용되어 온 ‘민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 맞게 재정의하여 대중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 나름대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여 제공하는 바이다.
■ 이하 사용되는 ‘민족’이란 말은 서양근대사적인 특수한 의미가 완전히 배제된 보편적인 용어로 새로 태어난 것임에 유의하기 바란다. ■ 기본 정의 (1) -- 종족과 아족
이하 인류의 피부색깔이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물학적, 사회학적, 과학적 고찰의 필요에 의한 것이니 혹여 이를 두고 인종차별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 유전적 엔트로피 어떤 집단이든지 속도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전적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쪽으로 나아간다. 엔트로피란 간단히 말해 균질도(均質度)라 할 수 있다. 컵 속의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는 물 전체로 확산되어 섞이는데 결국에는 컵 속은 물과 잉크가 골고루 섞인 균질한 상태로 되는즉,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어떤 계는 바로 그러한 균질도가 높아지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법칙의 하나인 것이다. 유전적 엔트로피란 각 유전인자들이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확산된 정도를 말하며 많이 확산되었을수록 유전적 엔트로피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 종족(種族)의 형성과 아족(亞族)의 정의 인류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지구상의 각 종족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수많은 씨족 집단의 혈연적 교류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바탕한다면 흑인, 백인, 황인 등을 막론한 집단들 또는 기존의 종족들(즉, 수많은 씨족 집단의 혈연적 교류로 인한 결과물)이 어떤 임의의 비율로 섞여 있는 집단일지라도 외부로부터의 혈연적 공급을 차단하고 충분한 세월이 지나면 유전적 엔트로피가 높아져 새로운 종족으로 탄생할 것이다. 대개 피부 색깔은 원래의 흑,백,황이 아닌 새로운 패턴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며 외모도 새로운 패턴들로 수렴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피부색, 외모 등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심리적인 동질감이 형성된다. 혹은 수렴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패턴이 심리적으로 익숙한 패턴에 포함됨으로써 역시 동질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동질감 형성은 어느 곳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더더욱 어렵다)
즉, 유전적 엔트로피가 높아짐과 동시에 인종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서로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동질감이 형성되거나 혹은 (심리적으로) 이질감이 제거된 집단이 바로 종족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인간사회에서든지 외부로부터의 혈연적 공급을 100프로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단지 최대한 차단할 수 있을 뿐이기에 종족은 어디까지나 통계적 다수를 기초로 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편의상 어떤 새로운 종족으로의 형성이 진행 중이지만 그 과정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못한 집단을 ‘아족(亞族)’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른바 근대민족국가가 발생했다는 서구의 나라들 중 하나인 프랑스는 사실 종족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 아니라 아족 단계에서 정치적 사회적 통합을 이룬 것일 뿐이므로 근대의 프랑스를 겨레 족(族)자를 넣어 근대민족국가로 불러 온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근대 프랑스는 그냥 국민국가이지 민족국가는 아닌 것이다. (<시대소리> 남해경 씨가 이야기한 ‘민족없는 민족국가’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프랑스인 것이다.) # 새로운 종족 형성이 지연되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종족의 형성이 지연되어 아주 느리게 진행되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주로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 그리고 그것은 아닐지라도 기존의 종족이 지닌 혈연, 문화적 정체성 등 사회적, 심리적인 요소들에 의하여 집단에 속하는 종족들 간에 혼인을 기피하는 경우이다. 미국의 경우 백인과 흑인들간에 혼인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 빈도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그 예이다. # 종족은 혈연적으로 닫힘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어떤 새로운 종족이 형성되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혈연적 공급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외부로부터의 혈연적 공급이 차단되지 않는다면 그 집단은 언제까지나 ‘종족 형성 중’일 것이므로 결코 새로운 종족은 형성되지 않는다.
■ 기본 정의 (2) -- 혈연, 문화, 역사적 동질감과 정체성 # 혈연적 동질감 -- 반복이지만 유전적 엔트로피가 높아짐과 동시에 인종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서로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동질감, 즉 혈연적 동질감 내지 친숙함이 형성된 집단이 바로 종족이다. # 문화, 역사적 동질감 --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부족 또는 종족이 하나의 집단으로 섞여 어떤 새로운 종족이 형성되기까지는 같은 지역에서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도 섞여 각종 새로운 문화들이 생겨나 익숙해지고 그 문화들을 매개로 한 동질감도 집단의 구성원들간에 생겨나게 되니 이것이 문화적 동질감이다. 혈연적 동질감 뿐만 아니라 문화적 동질감도 함께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로운 종족이 형성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종족 형성 이후에도 별다른 일 없으면 그 집단은 오랫 동안 역사를 같이 하게 되기 때문에 역사적 동질감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 종족집단의 정체성 -- 동질감에서 더 나아가면 종족집단 차원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혈연, 문화, 역사적인 면에서 동질감이 형성된 종족집단들 중에는 그 구성원들이 각각 개인적인 차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과는 별도로 자신이 속한 종족집단의 그러한 혈연, 문화, 역사적인 특성들을 통해서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통로를 개척하여 집단과 개인의 일체적(一體的) 상호관계를 내면화함으로써 자신의 종족집단을 다른 집단들과 더 뚜렷이 구별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종족집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그러한 내면화와 구별을 실현했을 때 또는 그러한 내면화의 가능성이 클 때 이를 두고 종족집단에 혈연, 문화, 역사적인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 기본 정의 (3) -- 민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쯤 되면 우리는 이제 ‘민족’이라는 것을 정의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 민족(民族)이란 -- <혈연, 문화, 역사적 동질감과 정체성이 형성되어 이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행위를 해 나갈 수 있는 종족집단>을 말하며 앞으로 혈연적 요소를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혈연민족’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민족 개념은 종족 개념보다 더 발전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민(民)’이란 말은 문화나 역사, 사회심리 등 혈연 이외의 요소를 나타내고 ‘족(族)’이란 말은 혈연적 요소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니 혈연은 민족의 필요조건이 되는 셈이며 혈연을 배제한 민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은 앞으로 보다 엄밀한 논리 전개를 위한 정의로서 평소에는 민족이라는 말을 단순히 종족이나 동포의 뜻으로 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는 서양근대식 국민국가의 수립과는 상관없는 정의이다. 각 민족이 처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국민국가를 세울 수도 있고 안 세울 수도 있으며 왕정국가를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민족이 그 민족의 존립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다민족 국가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필요하다면 독립적인 민족국가를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니 ‘민족’이라는 단어에 꼭 근대 서양의 특수한 상황인 국민국가를 연결시킬 것을 강요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서 민족을 단순히 “....공동체를 형성한 종족집단”이라고 하지 않고 “....공동체적 행위를 해 나갈 수 있는 종족집단”이라고 한 것은 종족집단과 그 구성원들의 의지와 행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동질감이나 정체성이란 말은 그 자체에 ‘지속가능성’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는데 단기간에 사라져 버리는 동질감이나 정체성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인즉 동질감이나 정체성을 오랫 동안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적 행위인 것이다. 민족이란 간단히 “스스로의 혈연, 문화, 역사를 보전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있는 종족”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며 우리 한민족은 <시대소리>와 같은 언론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민족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정의에 의하면 우리 겨레가 일제에 나라를 잃었던 시기에 만약 광복투쟁이라는 공동체적 행위를 애초에 포기했더라면 그 순간부터 이미 ‘민족이라는 지위’를 잃고 일제에 의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단순한 종족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김성도, 시대소리 민족문제 전문위원, <호주제 만세> 저자 시대소리뉴스 http://news.sidaeso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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