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1일 일본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발생 100주년을 앞두고 일본 보수 언론이 당시 유언비어로 6000여명의 조선인이 대량 학살된 사실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일본 우익 인사들은 여전히 조선인 대량 학살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에 따라 잘못된 과거사를 조금씩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5일 일본 민영방송인 <닛폰 테레비>는 올해가 간토대지진 100주년이라며 지진 등 재해 발생 시 정보 수집과 관련해 주의할 사항으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량 학살을 예로 든 기획 방송을 내보냈다.
이 방송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이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소문을 믿은 사람들이 한반도 출신을 많이 학살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매년 9월 1일 도쿄에서 열리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을 보도하며 재일 교포(재일[在日] 코리안[Corean] - 옮긴이) 3세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재일 교포 3세는 “100년 전 학살이 일어났을 때는 저지할 힘이 없었지만, 이제는 과거사를 쉽게 언급하고 학살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방송은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전형적인 유언비어로 조선인들이 학살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도요대 사회학부의 ‘오가사하라 모리히로’ 교수는 “특히 큰 사건이나 위험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닥치지 않았을 때 자신 안의 불안감과 밖의 상황 사이에서 틈이 생기는데,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뭔가 정말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추측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에는 (유언비어를) 입증할 만한 증거 같은 것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만드는 일도 있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이러한 것들을 여러 차례 접하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오해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닛폰 테레비>에 앞서 (일본의 보수 신문인 – 옮긴이) 『 요미우리 신문 』 은 지난 6월 13일자 1면에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내용을 다루기도 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 중앙 방재회의가 2008년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다. 이 보고서는 “대지진 당시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각지에서 결성된 자경단이 일본도와 도끼, 쇠갈고리 등으로 무장하고 재일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심문하고 폭행을 가해 살해했다.”고 밝혔다.
일본 보수 언론의 이러한 과거사 인정은 이례적일 뿐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우익 인사들은 조선인 학살 사실을 여전히 부정한다. 매년 9월 1일 도쿄에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고 과거 도쿄도지사들은 추도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익 성향의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취임 첫해인 2016에 추도문을 보냈다가 2017년부터 중단했다.
또 일본 정부가 매년 발간하는 방재백서 역시 간토대지진 피해 상황을 특집으로 다뤘지만, 조선인(한국인 – 옮긴이) 학살 부분은 “학살이 발생했다는 조사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다.”고 단순 설명하는 데 그쳤다.
- 도쿄/김진아 특파원
- 『 서울신문 』 서기 2023년 양력 6월 26일자 기사
▶ 옮긴이의 말 :
나는 이 기사에 나온 사실(그러니까, 일본 언론이 서기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학살을 인정하고 다루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조금도 기쁘지 않다.
이 일이 한국인들이 일본에 불만을 품거나, 일본에 실망해서 일본이 싫어하는 나라들(예를 들면, 로[Ro]시야나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과 손을 잡는 일을 막으려고, 일부러, 그야말로 ‘억지로’ 하는 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이 친일파가 완전히 청산되고 성향이 친일이 아닌 대통령이 다스리는 당당한 독립국가인 상황에서 일본 언론이 이런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면, ‘가해자가 현실을 인정하고 뉘우치기 시작한 증거’로 여기고 기뻐해도 되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은 그와는 반대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윤석열이 “그동안 한/일 관계가 엉망이었던 건 다 한국인들 탓”이었다고 떠든 뒤 ‘대통령(아니, 일본국 조선 총독!)’이 되었고, 그렇게 된 지 한 해가 흐른 뒤에 일본 언론사들에서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건,
일본 언론사들이 한국인들의 불만과 분노를 잘 알고 있고,
‘만약 엄연히 실재했던 갈마(‘역사’)인 – 나아가 일본 정부가 이를 가는 김일성 집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인 – 관동대학살까지 거론하는 걸 막았다가는, 화가 난 한국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선거나 장외투쟁으로 항일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권을 만들지도 모른다. 나아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친일파를 없애고 총칼을 일본으로 겨눌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지금 공개해도 되는 “옛날 일”>은 적당히 인정하자. 그리고 그런 것들만큼은 떠들게 “허락”해 줘야지. 그렇게 어느 정도의 표현은 내버려 두면, 한국인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테고, 그것들한테 “봐라! 난 이렇게 내 잘못을 인정하며 너희가 바라는 걸 해 주지 않느냐? 그러니, 지금은 너희가 나(일본)에게 불만을 품으면 안 되고, 너희에게 학살을 거론하게 ‘허락’해 주는 우리의 ‘은혜’에 고마워해야 해!”하고 요구할 수 있어.’
하고 판단했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이 일은 절대, 결코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고 새 나라가 된 증거’가 아니고, 김 특파원의 파헤침(‘분석’)과는 달리 “한/일 관계 개선”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기사에서도 지적한 사실이지만, 일본 우익 정치인들과 일본 정부는 이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군다.
기사에 나오지 않은 실제 사례 두 가지만 소개하자면, 몇 해 전에는 일본 국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당시 몇몇 <조센징>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고 폭동도 일으키니까, <선량한 조센징(이게 백인이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에 복종하는 흑인에게 ‘착한 검둥이’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 옮긴이)>들이 덩달아 오해를 사고 피해(관동대학살 – 옮긴이)를 입은 겁니다.”하고 발언했고,
얼마 전에는 한 일본 우익 언론인이 “당시(서기 1923년 - 옮긴이) <조센징>들이 <일본>에서 집에 불을 지르고 난동을 부려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경단을 조직해 ‘응징(학살 – 옮긴이)’을 해야 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더 중요한 건 당시 일본을 다스렸던 요시히토(연호/시호가 ‘다이쇼’인 일왕의 본명)의 ‘증손자(따옴표를 넣는 까닭은, 생물학적으로는 증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인 나루히토 일왕은 이 일에 대해 어떤 사죄도, 언급도, 후회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는 사실이다.
그는 요시히토와 같은 집안 출신이고, 요시히토로부터 히로히토로, 히로히토로부터 아키히토로, 아키히토로부터 나루히토로 일본의 왕위가 이어져 내려온 사실을 생각하면, 그가 그의 선대(先代) 왕인 요시히토의 잘못(학살을 막지 않은 죄가 있고, 피해자들을 돌보지 않은 죄가 있으니까)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그 후손/동족들에게 “우리 집안이 잘못했다. 다시는 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겠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그 후손/동족들을 돕겠다.”고 약속하고, 나아가 자기 나라 대신들과 교사들에게 “학교 교과서에 이 학살을 실어라. 그리고 가르쳐라.”하고 명령해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틈만 나면 피해자들을 기리는 곳에 가서 용서를 빌고 슬퍼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나루히토 일왕이 그런 일 가운데 어떤 일도 안 한다는 건, 설령 학살을 안다 해도 그것이 잘못임을 인정하기 싫고, 피해자와 그 동족에게 어떤 사죄도, 배상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며, 나아가 기회가 되면, 틈만 나면 그와 같은 짓을 또 하겠다는(적어도 그런 짓을 하는 자신의 국민들을 말리거나 비난하거나 처벌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평범한 한국인이자, 성향은 중도고, ‘식민지를 겪은 적이 있던 나라 출신인 사람들이나, 제 4 세계 출신인 사람들에게, 민족주의는 아직 필요하다.’고 여기는 나는 이 때문에 이 기사에 나온 일을 온전하게 기뻐할 수 없다.
지금 일본은 한국인의 등 뒤에 꽂은 칼(관동대학살과 그에 대한 모욕/부정)을 한 3 센티미터 정도만 뽑기 시작했는데(두 언론사만 학살을 인정함), 한국인이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가? 일본에 고마워해야 하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만약 그 칼을 모조리 뽑아낸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등에는 피가 흐르는 깊은 상처가 남을 것 아닌가? 일본이 (사죄와 배상과 인정과 교육과 국제사회를 향한 홍보로) 상처에 치료제를 바르고 “다시는 칼을 안 꽂겠다.”고 약속해야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분노를 버릴 수 있을 것이다!
- 단기 4356년 음력 5월 10일에, ‘눈 가리고 아웅’이며,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인 일본 언론의 기사와 보도를 보고, 다시 한 번 화가 치민, (일본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령선인>들” 가운데 하나인 잉걸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