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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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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고욤감나무를 슬퍼함 외 / 나태주
동산 추천 0 조회 70 09.09.17 18: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욤감나무를 슬퍼함 / 나태주

 

 

고욤감나무 한 그루가 베어졌다 올봄의 일이다
해마다 봄이면 새하얀 감꽃을 일구고
가을이면 또 밤톨보다도 작고 새까만 고욤감들을
다닥다닥 매다는 순종의 조선감나무
아마도 땅주인에게 오랫동안 쓸모 없다
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나무를 안다
삼십 년 가까운 옛날의 모습을 안다
지금 스물여덟인 딸아이
제 엄마 뱃속에 들어 있을 때
공주로 학교를 옮기고 이사갈 요량으로 이 집 저 집
빈 방 하나 얻기 위해 다리 아프게 싸돌아 다닐 때
처음 만났던 나무가 이 나무다
빈방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딸린 나 같은 사람에게
못 주겠노라 거절당하고 나오면서 민망하고
서러운 이마로 문득 맞닥뜨린 나무가 바로 이 나무다

저나 내나 용케 오래 살아남았구나
오며 가며 반가운 친구 만나듯
만나곤 했었지 꽤나 오랜 날들이었지
그런데 그만 올봄엔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둥그런 그루터기로만 남아 있을 뿐인 저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이고 당신의 일이다

 

고욤감나무 사이
나 홀로 여기와 오늘 슬퍼하노니
욕스런 목숨을 접고 부디 편히 잠드시라

 

 

 

 

 

 

 

 

 

 

아름다운 짐승 / 나태주

 

 

젊었을 때는 몰랐지
어렸을 때는 더욱 몰랐지
아내가 내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게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 채 지났지
사는 일이 그냥 바쁘고 힘겨워서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고 옆을 두리번거릴 짬이 없었지
이제 나이 들어 모자 하나 빌려 쓰고 어정어정
길거리 떠돌 때
모처럼 만나는 애기 밴 여자
커다란 항아리 하나 엎어서 안고 있는 젊은 여자
살아 있는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또 한 사람을
그 뱃속에 품고 있다니!
고마운지고 거룩한지고
꽃봉오리 물고 있는 어느 꽃나무가 이보다도 더 눈물겨우랴
캥거루는 다 큰 새끼도 제 몸속의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오래도록 젖을 물려 키운다 그랬지
그렇다면 캥거루는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짐승 아니겠나!
캥거루란 호주의 원주민 말로 난 몰라요, 란 뜻이랬지
캥거루, 캥거루, 난 몰라요
아직도 난 캥거루다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아내 / 나태주

 

 

 

이 지푸라기 머리칼을

언제 또 쓰다듬어 주나

 

짧은 속눈썹의 이 여자

언제 또 들여다 보나?

 

작아서 귀여운 코

조금쯤 위로 들려 올라간 입술

 

이 지푸라기 머리칼을 가진 여자를

어디 가서 다시 만나나?      

      

 

    

 

 

 

enjoy  the wind

 

 

 

 

시 / 나태주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시계에게 밥을 먹인다 / 나태주

 

 

한밤중에 깨어 괘종시계의 태엽을 감는다
이런, 이런, 태엽이 많이 풀렸군
중얼거리며 양쪽 태엽을 골고루 감는다
어려서 외할머니는 괘종시계 태엽을 감는 것을
시계에게 밥을 준다 그랬다
이 시계는 아내보다도 먼저 나한테 온 시계다
결혼하기 전 시골 학교에 시계장수가 왔을 때 월부로 사서
고향집 벽에 걸었던 시계다
우리 집에도 괘종시계가 다 생겼구나!
아버지 어머니 보시고 좋아하셨다
오랜 날,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하루에 스물네 번씩
그 둥글고도 구슬픈 소리를 집안 가득 풀어놓곤 했었다
어려서 외할머니는 시계가 울릴 때마다 시계가
종을 친다고 말씀하곤 했었다
시계 속에 종이 하나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결코 의심할 줄 몰랐다
그러나 이 시계 고향집 벽에서 내려지고 오랫동안
헛방에 쑤셔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몇 해 전 우리 집으로 옮겨 온 뒤
다시 나하고 함께 살게 되었다
친구야, 밥이나 많이 먹어 밥이나 많이 먹어
나는 새벽에 잠깨어 중얼거리며 시계에게 밥을 먹인다


 

 

 

 

 

 

 

 


노(櫓) / 나태주

 


 아들이 군에 입대한 뒤로 아내는 새벽마다 남몰래 일어나 비어있는

아들방 문앞에 무릎 꿇고 앉아 몸을 앞뒤로 시계추처럼 흔들며

기도를 한다

 

 하느님 아버지, 어떻게 주신 아들입니까? 그 아들 비록 어둡고

험한 곳에 놓일지라도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채금져 주옵소서

 

 도대체 아내는 하느님한테 미리 빚을 놓아 받을 돈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하느님께서 수금해주실 일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계속해서

채금(債金)져 달라고만 되풀이 되풀이 기도를 드린다

 

 딸아이가 고3이 된 뒤로부터는 또 딸아이방 문앞에 가서도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들며 똑같은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아버지, 이미 알고 계시지요? 지금 그 딸 너무나 힘든 공부

를 하고 있는 중이오니 하느님께서 그의 앞길에 등불이 되어 밝혀

주시고 그의 모든 것을 채금져 주옵소서

 

 우리 네 식구 날마다 놓인 강물이 다를 지라도 그 기도 나룻배의

노(櫓)가 되어 앞으로인 듯 뒤로인 듯 흔들리며 나아감을 하느님만

빙긋이 웃으시며 내려다보시고 계심을 우리는 오늘도 짐짓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산다.

 

 

 

 

 

 

La madre de Phong

 

 

 

안쓰러움 / 나태주

 

 

오늘 새벽에 아내가 내 방으로 와

이불 없이 자고 있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새우처럼 구부리고 자고 있는 내가

많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잠결에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어젯밤에는 문득 아내 방으로 가

잠든 아내의 발가락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다가 돌아왔다

노리끼리한 발바닥 끝에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작달만한 발가락들이 많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내도 자면서 내 마음을 짐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다른 방을 쓰고 있다

 

 

 

 

 

 

The Hendersons

 

 

 

 

두 이름 / 나태주

 


    어머니란 이름은 네모지고 엄마란 이름은 둥글다 어머니란

이름은 딱딱하고 엄마란 이름은 말랑말랑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엄마란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였을 뿐, 할머니를 할매라 부르며 자랐다 그것도 외할머니

를 그렇게 부르며 자랐다 그러나 끝내 할머니 속에는 엄마가

없었고 어머니 속엔 할매가 없었다. 그 두 이름 사이를 오가며

어린 나는 자주 어리둥절했고 때로 미달한 마음과 섭섭한 마음

아스므레 애달픈 마음을 살았다 하나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 이름이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며 불완전한 둘보다는

완전한 하나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사마귀 / 나태주

 

 

오늘도 나는 한발 늦었다.

토요일 오후 퇴근길 통근버스 기다리는 시간.
들판의 정류소에 혼자 쭈그려 앉았다가 풀밭에서

사마귀 한 마리를 찾아낸다.
배때기가 볼록하니 암놈이다.
교미가 끝나면 수놈까지 낼름 잡아먹기도 한다는

이른바 약찬 가을 사마귀다.
지푸라기로 툭툭 녀석의 머리통을 건드려 본다.
가시 돋친 쇠 갈쿠리 같은 앞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금방이라도 찍어누르겠다는 듯 그야말로 전투태세다.
야, 이 놈 좀 봐라.
내가 저보다 얼마나 덩치가 크고 음험하고 교활한

 마음을 숨긴
인간이란 이름의 사나운 짐승이란 걸 전혀 모르는구나.
다시 지푸라기로 녀석의 머리통을 공격해 본다.
여전히 기죽지 않는 눈치다.
굴종을 모르는 혼령이여.
가상하구나, 변절하지 못하는 자의 정결한 슬픔이여.
풀숲 멀리 나는 녀석을 날려 보내준다.

 

 

 

 

 

 

 

 

 

 

악수 / 나태주

 

 

가을 햇살은
모든 것들을 익어가게 한다
그 품안에 들면 산이며 들
강물이며 하다못해 곡식이며 과일
곤충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까지
익어가지 않고서는 배겨나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마을의 집들이며 담장
마을로 뚫린 꼬불길조차
마악 빵 기계에서 구워낸 빵처럼
말랑말랑하고 따스하다

몇 해 만인가 골목길에서 마주친
동갑내기 친구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얼굴
나는 친구에게
늙었다는 표현을 삼가기로 한다

이 사람 그 동안 아주 잘 익었군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진 친구의 손을 잡는다
그의 손아귀가 무척 든든하다
역시 거칠지만 잘 구워진 빵이다.


 

 

 

 

 

 

 

 

 

천천히 가는 시계 / 나태주 

 

 

천천히, 천천히 가는

시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수탉이 길게, 길게 울어서

아, 아침 먹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을 하고

뻐꾸기가 재게, 재게 울어서

어, 점심 먹을 때가 지나갔군 느끼게 되고

부엉이가 느리게, 느리게 울어서

으흠, 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군 깨닫게 되는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팔꽃이 피어서

날이 밝은 것을 알고 또

연꽃이 피어서 해가 높이 뜬 것을 알고

분꽃이 피어서 구름 낀 날에도

해가 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가고

시도 쓸 만큼 써보았으니

나도 인제는,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 하나쯤 내 몸 속에

기르고 싶다.

 

 

 

 

 

 

 

 

 

 

 

가족사진 / 나태주

 

 

아들이 군대에 가고

대학생이 된 딸아이마저

서울로 가게 되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자고 했다

 

아는 사진관을 찾아가서

두 아이는 앉히고 아내도

그 옆자리에 앉히고 나는 뒤에 서서

가족사진이란 걸 찍었다

 

미장원에 다녀오고 무쓰도 발라보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어보았지만

그만 찡그린 얼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떫은 땡감을 씹은 듯

껄쩍지근한 아내의 얼굴

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나의 얼굴

그것은 결혼 25년만에

우리가 만든 첫 번째 세상이었다.

 

 

 

 

 

 

 

김남조시인* 이근배시인* 나태주시인* 유자효시인

 

 

 

공생 / 나태주

 

 

빈 방에 들어와 목이 마르다

 

물 한 잔 따라 마시며 보니

창가에 꽂아둔 화분의 꽃이

시들어있다

이름도 낯선 덴드롱이란 꽃

어여쁘다 싶어 한 그루

얻어다 놓고 이렇게 며칠씩이나

물을 굶겨 시들게 했구나

금한 김에 먹다만 물 반 컵을 우선

화분에 쏟는다

 

미안한 마음이 많이 헐해졌다

 

 

 

 

 

 

Man, Allah and.........sand.

 

 

 

 

사는 일 / 나태주

 


1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 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나래 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다 죽는다.

 


2
세상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퇴근 버스를 놓친 날 아예
다음 차 기다리는 일을 포기해버리고
길바닥에 나를 놓아버리기로 한다

 

누가 나를 주워가 줄 것인가?
만약 주워가 준다면 얼마나 내가
나의 길을 줄였을 때
주워가 줄 것인가?

 

 

 

 

 

 

 

MISERABLY MISFIT

 

 

 

우포늪 왜가리 / 나태주

 

 

너무 크고 푸진
왜가린갑드라
너무나도 슬프고 눈부신
어머닌갑드라


글쎄, 우포 민박집을 코앞에 두고서
공복空腹의 아침부터 길을 잃고 또 잃고
큰물이 할퀴고 간 흐린 호수를
눈길로 어루만지다가 더듬다가 핥다가


왜가리, 저 또한 길을 잃고 쓰러진
갈대 숲 속 저 혼자 왁왁대는
왜가리 그 녀석 앞에서 나도 쓰러져
어푸러지면서 왁왁대면서 그만
속절없이 그저 울고만 싶드라

 

 

 

 

 

 

 

 

 

**************************************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시집

「대숲 아래서」「누님의 가을」「막동리 소묘」

「굴뚝각시」「아버지를 찾습니다」「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추억이 손짓하거든」「딸을 위하여」

「풀잎 속 작은 길」「슬픔에 손목 잡혀」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물고기와 만나다」등

산문집

「대숲에 어리는 별빛」「절망, 그 검은 꽃송이」

「추억이 말하게 하라」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송수권·이성선·나태주 3인 시집「별 아래 잠든 시인」등  

 

 

 

    41년간 공주문화원을 지켜온 정재욱 원장의 퇴임을 위로하고 나태주 원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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