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분 안 좋다. 안 좋아. 어젯밤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다고 여겨지는 아내와 같이 맥주를 마셨다. 물론 요즘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애와 같이. 우리 부부끼리만 맥주를 마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딸애한테는 동네 집 근처에 있는 굽네 치킨에서 치킨 한 마리를 시켜주었다. 셋이 거실에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랑 아내가 안주로 사 온 그다지 딱딱하지 않고 몰캉몰캉한 오징어랑 먹다가 곧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니 아침 일곱시였다. 오늘 야근인 관계로 좀 눈을 더 붙이다 일어날까 하고 그대로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리 깊이 든 잠도 아니건만 꽤 오래 자고 말았다.
이런 내가 싫다. 싫어. 정말 싫다.
눈을 뜨는 대로 맨 먼저 퍼뜩 오늘 잘 살아야지 하고 자리에서 훌러덩 일어나 세수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그러지 못하는 나는 사람이 아닌갑다. 동물처럼 살고 있다. 아니 동물보다 더 못살고 있다. 동물이 가지는 그 본능적인 삶의 긴장감마저 놓치고 살아가니 내 이 한 목숨 어디에다 써먹으리. 반성하자. 좀 더 나를 비판하자.
나여, 왜 이러냐?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좀 살아보자.
내일부터는 오늘처럼 살지 말자. 좀 긴장하고 살자.
하루하루 일정을 정하고 살아보자. 계획을 잡아 살자.
내일 계획을 오늘 잡아두자.
그래 지금 내일 계획을 세우는 거다. 매일 하루 전에 계획을 잡자.
야간 근무를 마치고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청계천을 기분 좋게 걷기로 하고 이제 내일 오후의 삶을 생각하자. 욱이 형님과 약속한 대로 전화를 넣어 테니스장으로 가 몇 개의 공을 치든 공을 칠 것이다.
새로 시작하는 운동.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새로, 아니 옛날에 잠깐 친 적이 있던 그 코트에서 내가 편안하게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자. 세월이란 정말 빠르다. 그 코트에서 욱이 형님이랑 공을 친지 엊그제같이 느껴지는데 하마 근 이십 년의 세월이 감쪽같이 지나가다니. 그래서 세월 잡는 법을 이제부터 배우는 거다. 하루하루 알차게 생활하면 세월도 더디 가는 법.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근면하게 살아야겠다.
나이를 생각해 무리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몸을 너무 아끼지는 말자. 운동이 되게 적당히 몸의 부하를 높여가는 거다.
이제 기분이 살짝 좋아질라 쿤다.
내일은 내가 산 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다. 가장 기쁜 날이 되게 할 것이다. 나랑 함께 맺은 인연 욱이 형님과 멋진 오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저녁 시간도 생각하자.
운동을 했으니까 나른한 몸으로 독서하기는 어려울 테고 그렇다고 바로 잠으로 빠져들면 시간이 아까우니까 뭘 한다지?
티비를 볼까? 재미없는.
그래 음악을 들으면서 모레를 계획하자.
이제 다가오는 내일의 시간 그리고 오늘 남은 회사에서의 시간 세상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만큼 멋지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