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역 정보 - 경상북도 서경주역[ 西慶州驛 , Seogyeongju Station ]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1. 22.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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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정보 - 경상북도 서경주역[ 西慶州驛 , Seogyeongju St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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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19:16조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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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정보
서경주역
[ 西慶州驛 , Seogyeongju Station ]
서경주역
기본정보
신라때부터 3기 8괴의 하나로 경치가 빼어나 기러기도 경치에 취하여 쉬어갔다고 하며, 이곳에 금장대가 있어 [금장]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암자에 한 스님이 살고 있었는데 금 지팡이가 움직여 혼자 시주를 해왔다고 하여 금장이라 한다고 한다. 금장리는 경주시내와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최근들어 주변에 인구가 급증하여 열차이용 고객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며, 주변 간선도로가 확장되어 시내,외로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연혁
날짜 | 내용 |
1992. 11. 1. | 금장신호장으로 개역 |
1992. 11. 6. | 율동신호장 운전취급 원격제어 실시 |
1993. 5. 1. | 여객 취급 개시 |
1995. 8. 10. | 보통역으로 승격 |
2009. 1. 1. | 서경주역으로 역명 변경 |
주변 관광지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나원리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 · 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가운데 부분의 조각을 아래층은 3개씩, 위층은 2개씩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예리하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경쾌함을 실었고,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부서진 노반(露盤 : 머리장식 받침)과 잘려나간 찰주(擦柱 : 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쇠꼬챙이)가 남아있다.
짜임새있는 구조와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5층석탑으로, 탑이 지니고 있는 듬직한 위엄에 순백의 화강암이 가져다주는 청신한 기품이 잘 어우러져 있다. 높은 산골짜기에 우뚝 솟은 거대한 모습에서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이 묻어난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나원길 133-55
• 전화번호 : 054-779-6109
• 역에서의 거리 : 5.8km
경주 남사리 삼층석탑
이름없는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1975년에 보수하였는데 이 때 위층 기단의 북쪽 가운데돌을 새로 보충했을 뿐 대부분은 원래의 모습대로 잘 남아있다.
아래층 기단은 밑돌 · 가운데돌 · 맨윗돌을 모두 붙여서 4장의 돌로 짰고, 가운데돌의 모서리와 네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두었다. 위층 기단에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에서도 역시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커서 탑 전체에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밑면의 받침수는 각각 4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기단부의 섬세한 조각과 완벽함에 비해 탑신의 꾸밈이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석탑양식에 간략과 생략이 심했던 9세기 말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234-2
• 전화번호 : 054-779-6061
• 역에서의 거리 : 8km
경주 손순 유허
이곳은 신라시대의 지극한 효자인 손순(孫順)의 유허지이다. 이 곳에 조선 말기 학자인 허전(許傳)이 찬술한 비문을 새긴 유허비(遺墟碑)가 있었다고 전한다.
신라 흥덕왕(興德王) 때의 사람인 손순의 효행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손순매아(孫順埋兒)편에 따르면, "모량리(牟梁里)의 손순과 그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음식을 빼앗아 먹는 아들을 땅에 묻기로 하고, 취산(醉山)으로 들어가 땅을 파다가 이상한 석종(石鐘)을 하나 얻었다 이에 하늘의 뜻이라 하고 아이를 묻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석종을 매달아 두들겼더니 그 소리가 왕궁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흥덕왕이 이 얘기를 듣고 해마다 곡식 50석을 주어 효성을 칭찬하였다. 나중에 손순은 예전에 살던 집을 희사하여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그 석종을 두었다고 한다. 그 후 진성여왕(眞聖女王) 때에 후백제의 포악한 도둑이 그 마을에 쳐들어와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소현효자길 33
• 전화번호 : 054-779-6061
• 역에서의 거리 : 4.3km
경주 진덕여왕릉
이 능은 신라 제28대 진덕여왕(眞德女王 재위 647년~654년, 승만(勝曼))을 모신 곳이다. 현곡면 오류마을의 뒤편에 있는 안태봉(安胎峰)이 남쪽으로 뻗어내리는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왕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 2번째 여왕으로 김춘추와 김유신이 국력을 키워 삼국 통일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임금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을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능은 지름 14m, 높이 4m인데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무덤이다. 봉분의 둘레에는 둥근 지대석을 놓은 위에 안기둥을 놓고 사이사이에 직사각형의 약간 둥근 면석을 끼우고 그 위에 눈썹돌을 얹어 봉분 아랫단을 보호하고 있다. 이 안기둥 면에는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다. 이 능의 아래쪽에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어 봉분을 보호하고 있을 뿐 다른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돌로 된 시설물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의 모습은 1975년 수리된 것이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산 48
• 전화번호 : 054-779-8585
• 역에서의 거리 : 2.9km
경주 남사리 북삼층석탑
이 탑은 1973년 경주경찰서 신청사를 준공할 때 기단부(基壇部)만 남겨두고 지붕돌 3개를 경찰서 정원으로 옮겨 보존해 오다가, 주민들의 꾸준한 요청에 의하여 1995년 원래의 위치인 이곳으로 옮겨 세우고 명칭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단층인 기단은 원래의 돌과 같은 크기로 새로 만들어 4개의 돌을 짜 맞추었는데 모서리기둥과 안기둥을 조각하였다. 그 위에 3층으로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다. 지붕돌의 밑면에 새긴 5단의 받침은 비교적 뚜렷하다. 탑을 다시 세우고 남은 돌들은 지금도 탑 서쪽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원래의 모습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탑의 건립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용담로 926 7
• 전화번호 : 054-779-6061
• 역에서의 거리 : 6.2km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4년제 사립일반대학교
• 분류 : 지역문화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동대로 123
• 전화번호 : 054-770-2114
• 역에서의 거리 : 1.7km
오류리의 등나무
덩굴식물인 등나무의 꽃은 대체로 5월에 연한 자주색으로 핀다. 이 등나무는 4그루가 2그루씩 가까이에 있어, 팽나무를 안고 얽히고 설켜있으며, 높이는 17m정도이다. 이 곳은 신라시대 때 왕이 신하와 더불어 사냥을 즐기던 곳으로서 용림(龍林)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나무에는 「신라 어느 땐가 이 마을에 살던 한 농가에는 예쁜 자매가 있었고 바로 옆집에는 씩씩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총각이 싸움터로 떠날 때 두 자매는 한 남자를 같이 사모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남달리 다정하고 착한 자매였으므로 서로 양보하기로 굳게 결심하였으나, 어느 날 뜻밖에도 총각의 전사 소식을 들은 자매는 얼싸안고 울다가 지쳐서 연못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 후 연못가에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죽었다던 옆집의 총각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왔는데, 자매의 애달픈 사연을 듣고는 연못에 몸을 던져 자매들의 뒤를 따라 팽나무가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 분류 : 자연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527
• 전화번호 : 054-779-6061
• 역에서의 거리 : 2.3km
용담정
사람마다 마음 속에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이 곧 한울 임을 깨달아 천도교를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태어나고 동학을 포교하다가 뼈를 묻은 곳이며, 경주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현곡면 가정리 일대는 조선 후기 민심을 사로잡은 민족 종교 동학의 발상지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시내와 떨어져 있는 데다 교통도 편리한 편이 아니어서 아직까지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천년 고도 경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 한 곳이다. 용담정은 구미산 기슭 132만 2,320m2의 넓은 땅에 민족 종교인 동학의 발상지라 하여 1975년에 성역화 작업을 통해 천도교 수련 시설로 정비되었다. 입구의 포덕문을 들어가 최제우 동상을 끼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용담정이 있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용담정길 135
• 전화번호 : 054-745-5345
• 역에서의 거리 : 6.6km
김유신묘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로서 신라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명장 김유신(595년~673년). 가야 김수로왕의 12대손인 김유신은 15세 때 화랑이 되어 몸과 마음을 닦았다. 학문과 무예가 뛰어난 신라의 명장으로 삼국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선덕여왕 말년 비담이 군사를 일으켜 왕위를 빼앗으려 할 때 선덕여왕을 도왔다. 진덕여왕의 왕위를 이을 자식이 없자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신라 천 년 역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힐 만한 그의 명성에 걸맞게 송화산 동쪽 구릉에 자리잡은 그의 묘는 여느 왕릉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번듯하다. 통일 전쟁 과정과 통일 후 당나라를 몰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해내,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우뚝 선 장군의 묘가 아닌가. 김유신의 사후 문무왕이 비석을 세우게 하였는데, 전하지 않는다. 현재 무덤 앞에 1710년 경주부윤 남지훈이 세운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라는 비석과 1934년 김해 김씨 문중에서 세운 비석이 있다. 이 곳 동북쪽에 공을 기리고 제향을 올리는 숭무전이 있다. 사후에는 평화롭고 싶었던 것일까? 김유신 묘역의 십이지상 호석은 무장한 갑옷이 아니라 평상복 차림인 것이 이채롭다. 해마다 봄이면 김유신장군묘 입구와 주변 일대에 벚꽃이 아름다워 사람을 불러모았는데, 최근에는 야간 조명으로 새로운 즐거움 하나를 보태고 있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천길 64-5
• 전화번호 : 054-749-6713
• 역에서의 거리 : 2km
석장동 암각화
암각화란 바위나 동굴의 벽면에 기호나 물건의 모양을 새겨 놓은 그림을 이른다. 이 암각화는 경주 평야를 가로지르는 두 하천이 만나는 곳의 북쪽 바위벽에 그려진 것이다.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이 그림은 강물에서 약 15m 높이의 수직 절벽 윗부분에 가로 약 2m, 세로 약 9m되는 범위에 새겨져,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모두 27점이 확인되었는데, 기하문 8점과 검과 창의 요소를 갖춘 그림 11점, 발자국 4점, 여성기(女性器) 3점, 배 1점, 그외 동물모습과 해석이 어려운 그림 등이 있다. 서로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고 있지만 기본은 방패 모양과 도토리 모양, 꽃 모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도토리 모양과 꽃 모양의 그림은 다른 지역의 바위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특색이다. 특히 검과 결합된 여성기의 그림 등은 칠포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분류 : 고궁유적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1길 석장동 암각화
• 전화번호 : 054-779-6077
• 역에서의 거리 : 700m
[네이버 지식백과] 서경주역 [西慶州驛, Seogyeongju Station] (철도역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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