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윤, 사랑하놋다II, 지름 30㎝, 캔버스에 혼합재료, 2016
‘화장실 변기’(1917)와 ‘슈즈트리’(2017) 사이의 100년
지난 5월 20일 ‘서울로 7017’ 보행길이 개장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현장을 찾았습니다. 개장 한 달을 넘긴 ‘서울로 7017’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혼재합니다. ‘서울로 7017’의 다양한 볼거리 가운데서도 ‘슈즈트리(Shoes Tree)’라는 설치작품이 유독 사람들의 뭇매를 맞았습니다(사진 1).
필자가 언론매체에서 ‘슈즈트리’에 대하여 들었을 때는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긍정적인 느낌이 훨씬 강했습니다. 무엇보다 소재로 쓰인 ‘신발’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量)인 헌 신발 3만 켤레가 쓰였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신발 하나하나는 그 사람의 인생을 함축하는 한 권의 책과 같다.”는 황지해 작가 생각에 필자도 적극 동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오래전 정현(1956~)이라는 유명한 조각가와 옛 ‘철도 침목’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조각가 정현은 자신이 철도 침목을 쓰는 이유를 “‘철도 침목’ 위를 달린 객차에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사연이 깃들어 있어서”라고 하였습니다. 필자는 두 작가의 생각과 작품 소재로서의 ‘헌 신발’과 ‘헌 철도 침목’이 맥을 같이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술작품은 시(詩)와도 같아서 보이지 않는 현상에 깊은 의미를 담아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작품 ‘슈즈트리(Shoes Tree)'는 높이 17m, 3만 켤레의 헌 신발이 나무 형태를 이루는 대형 조형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본 시민들의 호된 비판을 이겨 내지 못하고 작가는 결국 작품을 ‘철거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주된 비판은 “왜 하필이면 헌 신발이냐?” “산더미처럼 쌓인‘ 헌 신발’에서 악취가 난다.”는 점 외에도 “이게 무슨 예술품이냐?”, “왜 이런 곳에 아까운 세금을 써야 하나?” 등이었습니다.
슈즈트리에 대한 시민의 목소리에도 일견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발 뒤로 물러나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 뉴욕 전시장에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작품 ‘화장실의 변기’(사진 2)가 작품명 ‘샘(Fountain)’으로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뒤샹의 작품‘샘’도 전시장에서 철거당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뒤, 미술 애호가들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예술품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작가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술 평론가들은 작가의 ‘발상의 전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화장실 변기’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바로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관용(Tolerance)'을 ‘외쳤다’는 것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은 언론보도가 뒷받침합니다.
“화장실 변기가 미술인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지난달 29일 영국에서 열린 권위 있는 미술상인 ‘올해의 터너상’ 시상식장에 참석한 미술계 인사 500명에게 물은 결과,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마르셀 뒤샹의 1917년 작 ‘샘’이 뽑혔다.
2위는 큐비즘(입체주의)을 연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차지했으니 대량 생산된 변기가 거장 피카소를 누른 셈이 되었다.” (정재숙, 《중앙일보》, 2004.12.3.)
서양 미술계는 물론 일반 시민사회가 직간접적으로 마르셀 뒤샹의 ‘발상의 전환’이 품고 있는 ‘관용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면서 좀 더 개방적인 사회로 나아간 것이 아니냐는 데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화장실 변기’를 이용한 작품 ‘샘’을 둘러싼 메시지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황지해 작가의 대형작품, 즉 헌 신발더미에서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철거를 주장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설치미술가 이불(李昢, 1964~)을 떠올립니다. 그녀가 1997년 세계 미술의 중심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부패하는 물고기를 전시하자, 철거되는 과정에서 예술성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논쟁은 작가의 작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폐쇄된 전시공간에서 부패하는 생선이 풍기는 참을 수 없는 악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불 작가는 예술성을 인정받아 세계 미술계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이제는 세계적인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는 황지해 작가의 ‘슈즈트리’에서 풍겼던 ‘악취’를 우리가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점에서 못내 아쉬움이 남습니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의 ‘화장실 변기’와 2017년 황지해의 ‘슈즈트리’사이에 존재하는 100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반추해 봅니다.
[펌] / 필자소개; 이성낙(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 2017년 06월 28일 (수) 09:28:25
‘블라인드’ 정부
미국 프린스턴대 신학과 학생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을 주제로 설교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각자 준비한 설교를 할 건물로 이동해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했다.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에 아픈(역할을 하는) 사람을 눕혀 놓았다. 설교 내용과 직결되는 상황 설정이었다. 그러나 많은 학생 중 단 한 명만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아픈 사람을 타 넘고 간 학생도 있었다.
임상심리학자인 매들린 L 반 헤케가 ‘블라인드 스팟’(2007)에서 누가 봐도 모순인데 자신만 모르는 사례로 인용한 실험이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곧 맹점(盲點)이다. 헤케는 주관적 편견, 패턴에 갇힌 사고, 익숙함의 함정 등 자신이 못 보는 10가지 유형의 맹점을 보여준다. 맹점은 사람이 평생 자기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는 데서 생긴다. ‘물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알게 되는 건 물고기’라는 속담처럼, 남의 눈에는 빤한 것도 예사로 놓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력서에 학벌⋅출신지⋅신체조건을 배제하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을 지시하면서 민간 기업의 협조도 구했다. 고정관념을 벗고 실력으로 승부한다면 블라인드 스팟을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채용 주체인 기업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삼성그룹이 1990년대 출생지⋅가족관계 등을 이력서에 기재하지 않기로 한 이후 기업들은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일률적인 블라인드 채용으론 개별 기업이 원하는 인재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이다. 벌써 블라인드 채용 대비 사교육 업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시중의 관심은 오히려 문 대통령 자신의 채용 방식이다. 문 정부와 함께할 장관(후보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위법⋅비리⋅추문⋅표절 의혹으로 얼룩졌다. 문 대통령이 내걸었던 ‘인사 배제 5대 원칙’은 진작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블라인드 지명’한 것이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여기에 블라인드 스팟의 한 유형이 숨어 있다. 과거라면 낙마했을 흠결이라도 ‘선한’ 일을 하는 새 정부라면 그 잣대가 달라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어느 장관 후보자는 “일반 국민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세계가 있다”고 했다. 집권세력의 처신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정부와 다른 의견에는 날 선 공격을 일삼으면서도, 인사 참사를 지적하는 여론에는 블라인드를 치고 귀를 닫고 있다.
[펌] / 출처; 문화일보 / 김회평(문화일보 논설위원) / 2017년 06월 28일(水)
해독의 황금꽃ㅡ호박꽃
홍콩을 지키는 영국 금융제도
오는 1일은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지 20년 되는 날이다. 1839년 제1차 아편전쟁으로 1842년 홍콩 섬 지역이 영국에 할양됐고 1860년 구룡반도까지 영국 통치하에 들어간 뒤 1898년 신계(新界) 지역을 99년간 조차함으로써 완성됐던 영국령 홍콩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 점령기를 제외하면 계속 영국의 통치를 받은 결과 중국 본토에 접하지만 영국 영향을 받으며 아시아에서 중국의 제도적 영향력과는 구분되는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 특별한 위치를 지녔다.
홍콩은 지금도 ‘일국가(一國家), 이체제(二體制)’ 원칙에 따라 별도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주권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아시아에서 독보적이었던 홍콩의 경제적 지위가 계속 유지될지 의문도 있었고, 최근 홍콩의 2%대 실질 경제성장률을 보면 주권의 중국 반환 이후 과거에 비해 경제력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홍콩과 함께 아시아 경제성장의 기적을 견인하는 네 마리 용(龍)으로 불리던 우리와 대만, 싱가포르 역시 모두 과거 고속성장기에 비하면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졌음을 고려할 때 이것은 비단 홍콩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홍콩은 주권 반환 이후 더욱 커진 중국과의 실물경제 연계를 바탕으로 중국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일 때는 성숙경제로서 경이적인 7~8% 성장률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홍콩이 과거 아시아에서 누렸던 압도적인 위치를 유지할지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광둥성과 홍콩의 경계를 이루는 선전(深圳) 지역은 과거 홍콩과 마카오의 배후 거점 정도로 이해됐지만,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지금은 홍콩과 맞먹는 경제권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단 경제특구가 아니어도 과거 중국이 외부로 향하던 유일한 통로가 홍콩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게 많은 대도시가 특히 실물 중심으로 홍콩에 필적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시아에서 현재까지 다른 국가나 경제가 홍콩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금융 분야다. 홍콩은 중국 경제와 연계된 위안화에 대해 역외시장의 기능을 하는 것과 별도로, 주권 반환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 최고의 국제금융 중심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국제금융 중심지 인덱스’나 ‘금융발전지수’같이 금융 중심지로서의 경쟁력이나 금융 발전 정도를 평가하면 홍콩은 런던⋅뉴욕⋅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최고 상위권에 속한다. 또한 국제 투자자들이 참고하는 투자처로서의 매력에 관한 각종 지표도 일본,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가장 높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 안정성과 투자처로서의 매력은 영국에서 이식된 제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금융제도의 예측 가능성과 엄격한 투자자 보호, 그리고 사법 안정성 등 영국 제도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홍콩에 유효하게 이식된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홍콩 증권거래소는 기업공개에서 세계적인 수준인데, 이러한 기업공개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 투자자 보호를 중요시하는 영국 금융의 전통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또한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의사결정에서 투자 이후에 제도를 바꿔 버리는 제도 위험, 또는 국가 위험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제도의 예측 가능성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홍콩의 주권은 중국에 반환된 상태이지만, 1997년 중국에 주권을 반환하기로 약속한 1984년 중국?영국 협약에서도 50년간 기존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제도를 유지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제도의 안정성 여부가 앞으로 홍콩의 위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홍콩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인구나 경제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고 중계무역에 의존하는 도시국가 성격이 강한 홍콩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제도를 만들 때는 충분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일단 제도가 시행되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성격을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는 측면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투자자들을 붙잡는 것은 금리나 환율뿐 아니라 국가와 정책, 제도의 안정성과 신뢰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펌] / 출처: 서울신문 / 성태윤(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2017-06-29 01:01
'토익 공화국'의 기막힌 공무원 시험
한국 공무원 되는 데 1차 관문이 영어라니 …
토익 응시료가 공무원 시험 7배, 미국에 연 300억원 로열티
일본⋅중국 '토종시험' 자리 잡는데 한국은 뭐하고 있나
며칠 전 마감한 국가공무원 7급 공채시험 응시자가 크게 줄었다. 믿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지원자 수가 4만8361명으로 작년보다 27.5%나 감소했다. 9급 시험은 여전히 사상 최대 규모 지원자로 북적인다. 유독 7급 시험 응시자가 급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혁신처는 영어 탓으로 돌린다. 작년까지는 7급도 영어시험을 다른 과목과 함께 당일 치렀지만 올해부터는 토익(TOEIC) 토플(TOEFL) 텝스(TEPS) 등 영어능력검증시험 성적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한 수험생들이 걸러졌다는 얘기다. 인사혁신처는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나 그러는지.
일단 7급 시험에 1차 필기시험이 추가됐다는 의미다. 채용 절차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건 둘째다. 한국 공무원을 뽑는 데 첫 관문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라는 게 말이 되는가. 공무원 생활에 얼마나 영어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번 7급 시험에 영어 성적이 모자라 원서를 쓰지 못한 수험생이 어림잡아 2만 명을 넘는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응시생 중 적어도 90% 이상은 토익 시험을 본다. 응시료가 4만8900원이다. 7급 시험 수험료 7000원의 무려 7배다. 취업준비생들의 응시료 부담을 생각이나 해봤는가.
게다가 토익이라는 게 뭔가. ETS라는 미국의 민간 재단이 만든 시험이다. 국내 대행사가 떼는 수수료도 과다하지만 27.4%는 ETS가 가져간다고 한다. 한국 공무원 시험을 보면서 필기고사 수험료의 두 배가 되는 돈을 미국에 납부하는 현실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가. 이번 7급 시험 과정에서 미국에 나간 돈이 적어도 10억 원은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7급만이 아니다. 5급 공채 영어시험이 토익 등으로 대체된 것은 이미 오래다. 괜히 ‘토익 식민지’라고 하겠는가.
전 세계 토익 응시자 10명 가운데 4명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매년 200만 명 이상이 토익 시험을 보고 300억 원 이상이 미국에 로열티로 나간다. 한국 덕분에 먹고 산다는 토익이다. 이뿐인가. 토익이라는 시험은 문제를 푸는 스킬이 중요해 독학이 쉽지 않다. 학원비와 교재비에 골병이 든다. 시작하면 50만 원은 기본이고 100만 원도 우습다는 게 취준생들의 하소연이다.
게다가 시험이 독점적인 구조다. 수험생이 골탕을 먹는 일이 잦은 이유다. 한국의 토익 시험을 관리하는 곳은 한국토익위원회다. 무슨 정부 기관이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개 영어학원의 자회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응시료 책정부터 일방적이다. 거의 2년마다 5% 이상 올린다. 20년간 두 배로 올랐다.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제때 신청하지 못하면 시험 날짜가 꽤 남았어도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환불할 때 물어야 하는 취소수수료는 눈물이 날 정도다. 성적도 3주가 지나야 통보되고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만점자도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는 ‘토익 무용론’ 속에서도 토익이 한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체할 시험이 없어서다. 시도가 있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563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형 토익이라는 니트(NEAT)를 개발했다. 하지만 정책 일관성의 부재와 낮은 인지도 탓에 2015년 폐지됐다.
일본은 한국 다음으로 토익 의존도가 높지만 EIKEN이라는 시험을 개발해 꾸준히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도 국가 주도로 개발한 CET라는 시험이 응시료가 비싼 토익을 따돌리고 공인 영어시험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도 토종 시험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제와 시행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감독과 평가에 따른 개선이 뒤따르면 얼마든 가능하다. 지금처럼 평가시험의 독점 구조를 방치해선 곤란하다. 수능, 취업, 승진 영어가 언제까지 따로 존재해야 하는가. 영어 교육의 목적을 제대로 정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가야 한다.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방식이 더 비효율적이고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 민간은 몰라도, 한국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영어로, 그것도 그 비싼 미국의 토익으로 1차 시험을 본다는 게 말이 되는가.
[펌] / 출처; 한경닷컴 / 김정호(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 2017-06-28 21:10
메꽃
트럼프가 묻는다. 너의 친구는 누구인가
일본에 출장갈 때마다 청명한 하늘에 감탄하곤 한다. 일본에도 중국발 황사는 불어온다. 그곳에선 상층권의 먼지란 의미에서 `고사(高沙)`라고 부른다. 다만 그 정도가 미약해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게 우리와 차이다. 한국과 일본은 황사 농도만큼 차이 나는 게 또 있다. 중국을 이웃으로 둔 것은 같은데 그 숙명의 무게가 크게 다르다. 일본은 유사 이래 자신의 군주를 `천황`이라 불렀다. 중화주의가 지배하는 질서에서 `황(皇)`은 중국의 임금만이 쓸 수 있는 호칭이었다. 일본은 아랑곳없이 칭황(稱皇)을 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대륙과 일본을 바다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규슈와 한반도 사이에 가로놓인 대한해협은 최단거리 193㎞로 영불해협보다 5배 길다. 동중국해를 기준으로 한 중국과 일본 사이 직선거리는 804㎞. 황사가 현해탄을 지나며 소멸하는 것처럼 중국의 패권도 바다 앞에선 무력했다.
일본 본토가 대륙세력에 의해 실질적인 위협을 당한 것은 두 차례 몽골 침공뿐이었다. 1274년과 1279년 원정에서 몽골은 일본의 끈질긴 저항과 태풍을 뚫지 못했다. 일본은 대륙이 어찌해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 해군과 공군의 방어망을 뚫고 열도에 육군을 전개시킬 능력이 중국에는 없다. 일본을 칠 유일한 방법은 핵미사일을 쏘는 것이다. 미국과 세계대전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중국에서 한반도를 넘어오는 길엔 장애물이랄 것이 없다. 압록강은 말을 타고 건널 수 있는 강이다. 6⋅25 때 소총 한 자루도 제대로 못 갖춘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을 때 우리는 혼비백산해 달아나고 또 달아났다. 중국과 육로로 이어져 있다는 숙명의 실존적 의미는 그런 것이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중국의 군사력을 의식하지 않았던 시기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지금까지 64년이 유일하다. 섬처럼 중국과 분리된 남한은 미⋅일 해양동맹의 한 축이 되어 번영했다. 중국은 해양세력의 대륙 전개를 1차 저지할 북한을 어르고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없었다면 북⋅중 국경이 지금처럼 평화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닿은 나라들은 고단하다. 1962년과 1979년 각각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지금도 국경분쟁으로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인도와 베트남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이 지역패권에 근접할수록 이들 나라의 불안도 커진다.
30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는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다. 그 표현이 외교적 수사로 포장되든, 트럼프식 직설화법이든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할 질문의 요체는 이게 아닐까. "한국의 친구는 누구인가. 미국인가, 중국인가." 문 대통령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갖고 회담장에 나가야 한다. 한미 관계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프 정부 출범과 사드 갈등으로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한미동맹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같은 수사로 대강 때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트럼프는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이라"고 다그칠지 모른다.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 이론을 대표하는 존 미어샤이머는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중국 이웃국가들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하는 균형을 이룰 것인가 혹은 부상하는 중국에 편승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이웃 국가가 미국이 주도하는 균형을 택할 경우 중국은 그들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위협하고 번영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사드 이후 우리가 실제 봉착한 상황이다. `한국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구하는 작업은 우리가 누구와 친구였을 때 가장 안전하고 번영했는지 역사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중국인가, 미국인가. 답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따져볼 것은 그 조건이 지금도 유효한가다. 미어샤이머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인 고려와 정치적 고려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 국가안보가 경제적 고려를 압도한다. 이웃의 강한 나라에 편승할 때 막강한 이웃나라는 더욱 강해지고 결국은 더욱 위험한 나라가 된다." 나는 이 부분에 미어샤이머와 의견을 같이한다. 문 대통령은 어떨지 모르겠다.
[펌] / 출처; 매일경제 / 노원명(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7.06.28 19:25:40
수국
대통령의 엉터리 脫원전 연설, 나라가 답답하다
핵심 내용 다 엉터리인 대통령 脫원전 연설문… 공약도 非전문가들 작품
광우병 공포 보는 듯한 대통령의 원전 공포
일본도 아닌 한국서 이 무슨 평지풍파인가
기억을 되살려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전을 처음으로 본격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한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하루 이틀 뉴스로 나왔다가 사라졌고 문 대통령이 그해 대선에 낙선하면서 탈원전 얘기도 없어졌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다시 탈원전 얘기를 하는 걸 들은 것은 작년 겨울 영화 '판도라' 시사회장이었다. 판도라는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해 심각한 피해가 나는데 정부는 무능하다는 줄거리의 영화였다. 문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 영화에 대해 원자력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 동원을 위해 극단적 상황을 꾸미고 엄청난 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울기까지 했다니 허구를 사실처럼 느끼고 받아들인 듯하다. 일반인이라면 많이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판도라를 보고 울었던 그 심정으로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서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실제 문 대통령이 취임 한 달여 만에 탈원전 정책을 발표했다. 이 탈원전은 정책 자체가 주는 충격보다 그 과정이 더 충격적이다. 문 대통령 본인의 원자력 지식은 '판도라' 이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캠프의 환경⋅에너지팀에도 원자력 전문가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4대 강 반대하던 하천 환경 전문가가 책임자였다. 에너지 공약에는 환경운동가 한 사람과 미생물학 전공 의대 교수가 관여했다고 한다. 이 엄청난 정책을 발표하면서 아직도 어떤 사람들이 어떤 근거로 결정했다는 명확한 설명이 없다. 그러니 환경 편견을 가진 몇몇이 모여 '일 한번 저지르는 식'으로 결정한 게 '탈원전'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은 후쿠시마 사고 때문에 머릿속에 들어왔고, 경주 지진 때문에 굳어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서울대 주한규 교수가 신문 기고에서 낱낱이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탈원전 선포식에서 경주 지진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했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라며 그 예로 후쿠시마 사태를 들었다.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이 아니라 지진 후 쓰나미로 발전기가 침수되는 바람에 벌어진 사고다. 쓰나미 없는 일반 지진이었으면 후쿠시마 사태는 없었다. 경주 지진 문제와 연관지을 수 없는 것이다. 영국 원자력 전문 매체는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가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지진만으로 발생한 원전 사고는 한 건도 없다.
문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마치 방사능 때문에 사망한 듯 들린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1368이란 숫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다. 후쿠시마 사망자라고 하면 주로 이재민 시설에서 생활하다 다른 이유로 사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3분의 2가 80대 이상 고령자다. 문 대통령은 "방사능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나 암환자 발생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에서 조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 결과 소아 갑상샘암 등의 아주 특기할 증가는 관측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했다. 미국의 원전 99기 중 88기가 20년 추가 운영 승인을 받은 것이다. 원전 가동 연장을 세월호에 비교한다는 것은 원전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는 것이다. 이번에 멈춘 고리 1호기와 똑같은 원전이 미국에서 연장 운행되고 있다. 우리가 미국보다 부자라서 더 쓸 수 있는 원자로를 중단하나.
문 대통령이 서구 선진국 등이 원전을 줄이며 탈핵을 선언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일방적 주장이다. 영국은 원전 증설을 추진하고 있고,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일본은 원전 재가동을 시작했다. 탈핵을 선언했던 대만도 최근 원전 재가동을 발표했다. 지금 세계에서 신규 원전 60기가 건설 중이다. 얼마 전 열린 세계원자력업계 회의는 최대의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신재생 에너지로 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꿈 같은 얘기다. 우리는 바람의 질이 좋지 않고, 태양광이 강한 맑은 날이 많지 않다. 원천적인 약점이다. 결국 석유와 가스로 발전해야 하는데 전기요금을 어떻게 감당하나. 문 대통령은 이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 원전 사고가 난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지진이 밥 먹듯 일어나는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원전 운영 최고의 모범국인 한국에서 난데없는 탈원전이 대체 무슨 소린가. 1950년대부터 피땀 흘려 이룩해온 원자력 기술이 이제 세계에 팔 수 있을 정도로 올라선 지금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5년 임기 대통령이 광우병 공포와 같은 막연한 피해 의식을 부추기면서 에너지 백년대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가. 5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는 게 있다.
[펌] / 출처; 조선일보 / 양상훈(조선일보 주필) / 2017.06.29 03:17
보리수
미셸 리 교육부장관은 어떤가
각국의 워싱턴특파원들이 모여 사는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는 공교육이 잘돼 있는 곳으로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성공 비결은 수준별 학습에 있었다. 공립학교 초등 3학년부터 영재반이 따로 있다. 학교에선 지능검사와 교과 성적, 과제물, 교사와 부모의 추천서를 갖고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영재를 찾아낸다. 수학에 뛰어난 초등생은 인근 중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중학교는 과목별로 보통, 우등, 영재반 등으로 더 촘촘하게 나뉜다. 학교 수업만 잘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이곳 아이들은 사교육이나 학원이란 것을 모르고 자란다.
미국 공교육의 성공 비결
고등학교에선 대학 과정의 AP(Advanced Placement) 과목을 몇 개 듣느냐에 따라 지원 가능 대학이 갈린다. 영재반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토머스제퍼슨 과학기술고교에 몰린다. 해마다 420명을 시험으로 뽑는 공립 영재과학고로 수학, 과학에 뛰어난 중국 인도 한국 일본 등 아시아계 학생들이 신입생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백인과 흑인 학부모들이 다양성을 무시했다며 교육청에 청원까지 했지만 학교는 성적 위주 선발을 고수한다.
공교육이 망가진 수도 워싱턴에선 민주당 출신 에이드리언 펜티 전 워싱턴시장이 10년 전 한국계 미셸 리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를 워싱턴교육감에 스카우트해 공교육 수준을 올려놨다. 미셸 리는 학생 성적이 부진한 교사들을 3년 반 임기 중 해마다 5%씩 해고해 수백 명의 교사를 학교에서 방출하고 교사 정년 폐지와 성과급 도입을 밀어붙였다. 자기 딸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까지 잘랐을 정도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워싱턴 공립학교가 미덥지 않았는지 두 딸을 학비 4만 달러나 되는 명문 사립학교에 보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자녀 학교를 선택할 자유를 침해받지 않았다. 미셸 리의 교육철학도 수준별 교육에 있었다. 성적이 낮은 학생은 보충수업을 받게 하고 뛰어난 학생에겐 영재교육을 시켰다. 한국의 전교조가 수월성 교육과 교원평가를 목숨 걸고 반대하는 것과 180도 다르다.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피해 본다며 문을 닫아야 한다는 억지 주장이 요란하다. 미국에선 명문 보딩스쿨(기숙학교)의 역사가 유구하지만 이 때문에 공교육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지혜를 꺾을 수 없는 한 좋은 고교 지원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제 치하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인촌 김성수의 중앙학원, 남강 이승훈의 오산학교 등 민족 사학(私學)이 국민들의 교육 열망에 불을 지폈다. 이런 교육열이 오늘의 선진 한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자사고는 없앨 게 아니라 더 만들어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넓혀줘야 한다.
논문 표절자가 교육 맡는다?
석⋅박사 논문 표절로 학자적 양심을 잃어버린 김상곤은 평준화 교육을 진보의 가치로 여긴다. 그가 교육부총리가 되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조그만 표절도 범죄로 여기는 미국에서라면 교단에도 설 수 없는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녕 보은인사를 해야겠다면 그에게 차라리 다른 자리를 주면 좋겠다. 대신 미셸 리에게 한국 교육을 맡겨보는 것은 어떤가. ‘StudentFirst’라는 비영리 교육단체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사립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면 교육부 장관인들 수입 못하겠나.
[펌] / 출처; 동아일보 / 최영해(동아일보 논설위원) / 2017-06-29 03:00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직관적 사고에 의존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면 잘못 판단할 가능성 크다
건전한 비판을 귀담아듣고 효과가 검증된 정책 중에 최선책을 선택해야 한다
바다에서 심한 풍랑을 만난 어부가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풍랑이 잠잠해지고 살아난 이야기처럼 간절한 기도로 고난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신에게 기도하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적한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고도 풍랑으로 죽은 많은 어부는 아예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빨간 양말을 신고 골프를 친 날 홀인원을 했으면 ‘우연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지 빨간 양말 때문에 홀인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유리한 증거만을 선택하는 성향이 있다. 통계학자 데이비드 핸드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저서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에게 주가가 오르면 성과급을 지급하는 스톡옵션을 도입했더니 주가가 급격하게 오른 기업들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예로 들었다. 이런 선택된 증거는 스톡옵션이 기업 성과와 주가를 올린다는 ‘인과관계’를 보여 주지 못한다. 기자가 그 상황에 해당하는 경우만 뽑아 소개했을 가능성이 있고, 특정 기업들에서 스톡옵션 도입과는 상관없는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인해 주가가 올랐을 수 있다. 또 경영자들이 주가가 오를 것을 미리 알고 스톡옵션을 도입했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엄밀한 실험을 한다. 신약의 치료 효과를 보기 위해 무작위로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뽑아 각각 신약과 가짜 약을 투입해 효과를 비교하는 ‘무작위 대조실험’을 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는 어떤 정책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실험으로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과학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다양한 통계기법으로 왜곡되지 않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중요한 학설들은 동료 학자들의 엄밀한 평가를 거치면서 학술지에 실리고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결과가 다시 입증된 뒤 교과서에 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많은 주장은 객관적 검증을 거치지 않고 여과 없이 중요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금을 인상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근거가 있다. 가계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금을 높이면 가계소비가 늘고, 그로 인해 수요가 촉진돼 생산을 유발하고 다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반론도 많다. 실제로 효과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부족하다. 임금은 가계소득이지만 동시에 기업의 비용이다. 비용 상승은 기업 투자와 수출에 악영향을 미친다. 영세업자들에게 과도한 임금 인상은 소득 감소를 의미하고 이는 곧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업이 일자리를 줄이면 전체 노동소득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으로 현실에서 효과가 입증된 정책들로는 영세가구에 생필품 구매 쿠폰을 지급하거나, 육아⋅교육비를 직접 보조하거나, 내구소비재에 대해 일시적 세금 감면을 하는 것 등이 있다. 이는 수요 촉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는 공급정책이 합해져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강남 4구에서 올해 5월 29세 이하 연령대와 5주택 이상 보유자들의 주택 거래가 전년 대비 급격하게 늘었다. 이를 보고 ‘투기 거래’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정황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들의 주택 구입은 전체 거래량에서 비중이 매우 작아 가격 상승의 주된 요인이라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 주택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부동산 투기대책뿐 아니라 중장기 주택 수급, 저금리하에서 전⋅월세 인상, 가계대출 증가 문제를 종합해 봐야 한다.
정책을 선택할 때 많은 자료를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신념과 일치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믿고 싶은 정보만 믿는 심리적 성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인간의 직관적 사고는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워런 버핏은 투자자들이 유리한 정보만을 믿는 확증편향 때문에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모이면 잘못된 판단과 정책 실수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의도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필요하다.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기와 비슷한 견해의 글들만 골라 읽으면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전문가들의 건전한 비판을 귀담아듣고 제대로 검증된 정책들을 검토해 그중 최선책을 선택해야 한다. 국민을 더 잘살게 할 수 있는 정책이라면 새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과감히 선택해 실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펌] / 출처: 중앙일보 / 이종화(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 2017.06.29 02:28
'The Artists Garden at Vetheui' / Claude Monet(1840~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