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말씀입니다.
며칠전 유명 자동차회사의 전기차의 배터리가 아무 경고 없이 방전되면서 40도가 오르내리는 더운날에 생후 20개월 된 아이가 차 안에 먼저 타고 있다가 갇히는 사고가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방대원이 유리창을 깨고 구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차안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팔걸이에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밖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안에서만 작동시킬수가 있는데, 아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소방대원이 출동하여 창문을 깰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 마음문이 닫쳐져 있다면, 시편 구십 일편, 14절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일구 같으신 성령님께서 깨뜨려 주시어 말씀에 감동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은혜주시기를 기원합니다.
14절 :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아멘
'팔은 안으로 굽는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정이더쏠리거나 유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경향을 뜻하는 속담입니다. 사람의 신체는 구조상 팔은 안으로 굽도록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심성 또한 가까운 사람, 아는 사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기울여지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공정하게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AI라는 말이, Artificial Intelligence 라는 말의 머리글자만 따온 것을 다들 아실것입니다. 그래서 AI를 우리말로 하면 인공지능을 말함도 알고 계실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언젠가는,재판을 AI판사가 하게될 날이 올 것이다 말합니다. AI판사를 통해서 재판을 하면, 인간적인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재판에도 아량이 필요할때도 있고, 자비가 필요할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잘못만 보고,비난을 하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고 동정이될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되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의 따뜻함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팔도 안으로 굽는 팔입니다. 시편 구십 일편, 14절 말씀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건져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하나님은 '그를 높여주리라‘하였습니다. 이 말씀들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해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하지만, 언제 변할지도 모르는 사랑이며, '사랑합니다' 하면서도 여전히 불순종 가운데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하지만, 내 욕심을 체우려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안즉 그를 높여 주신다" 말씀하였습니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한들 하나님을 얼마나 깊이 알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에도, 또한 하나님의 이름 아는 것에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을 아는 것에 온전하시고 풍성하신, 우리들의 중보자가 계셔야만 합니다. 그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죽기까지 순종할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하나라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 여기시고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이제 내가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이 찬양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시다.
예수 안에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있으며,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큰 복이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사오니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살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