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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 스크랩 봉화 청량사 극락정토에서 단풍은 꽃처럼 피고
一波 추천 0 조회 36 07.11.06 22:19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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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개울을 왼쪽으로 보고 오른쪽으로 본다.
맑은 물 돌돌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버스는 봉화로 들어서더니 청량산을 향해 달린다.

 

산길 돌길 지나 뒷산 봉우리는 수미산 봉우리 아래
극락정토에 청량사가 있구나
꽃 같이 고운 단풍이 뚝뚝 떠나가는 중생처럼 쌓이는데
세상 걱정으로 생긴 병 달래주시는 약사여래가 마중하시네
그깐 걱정을 샘물가의 감로수로 잊으니
잠시 떠난 속세의 길이 어느 묀가

 

청량산은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명호면(明湖面) 남쪽에 있다.  해발고도 870m.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남쪽의 경관이 좋으면 금강을 갖다 부친다. 겸손하게 소금강이다. 최고봉은 장인봉(丈人峰)이며 외장인봉·선학봉(仙鶴峰)·축융 봉(祝融峰)·경일봉·금탑봉(金塔峰)· 자란봉(紫鸞峰)·자소봉·연적봉(硯滴峰) ·연화봉(蓮花峰)·탁필봉(卓筆峰)·향로봉(香爐峰) 등의 고봉들이 주위에 도열한다.

 

산 계곡에 잔잔한 물이 흐르고 문득 버스 창가로 폭포가 흐른다. 좌우로 눈이 바빠야 한다.
관광회사 가이드 아줌마가 여기 온 지 한 동안 뜸한지.

"단풍 보세요. 좋지요. 물 보세요. 맑지요. "

하고 어디서나 똑 같은 말을 여기서도 하는 틈에 잠시 폭포가 스치고 지난간다.

여기서 시원하는 물은 산의 서쪽으로는 낙동강으로 흐른다. 산에는 27개의 절과 암자 유지(遺址)가 있고 신라시대 이후 선현들이 수도하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예전 한가하던 시절에도 집은 번잡하다하여 깊은 산골 오막살이나 암굴을 파고 들어서 옛어른들 깨달은 것을 무엇일까.
춥고 배고팠겠지.
나는 좀 한가하고 건방진 생각을 한다.
그 깨달음을 혼자 가지고 갈 리는 없건만 어른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우리 자신의 건방이 송구스럽다.

 

원효(元曉)가 건립하였다는 내청량사·외청량사,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유리보전(琉璃寶殿), 신라시대 명필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하던 김생굴(金生窟), 최치원(崔致遠)이 수도하던 고운대(孤雲臺)·독서대(讀書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하였던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등이 있다. 조선시대 이황(李滉)도 청량산을 즐겨 찾아 수도하였으며 산에 관한 시 51편과 <청량산록발(淸凉山錄跋)>이라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대궐이나 사찰의 건축용 목재로 쓰이던 춘양목(春陽木)이 많이 나며 송이버섯 집산지이기도 하다. 1982년 8월 봉화군·안동군(安東郡;지금의 안동시) 일대 48.76㎢가 청량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모든 것을 다 돌아 볼수  없다. 청량사 입구 주차장에서 바로 청량사 입구에서 오르는 길과 포장도로를 10여 분 걸어 우측으로 바로 산행할 길이 열린다.
청량사 입구로 오르려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니 담박해 결론을 내려준다.
" 이 길로 가지마소. 가파라서 가다가 지치니, 큰길로 해서 올라가시면 편안할게요."

과연, 그랬다.
포장도로 오른 쪽에 나무로 깐길이 열리면서 산길이 만만하게 보였다.
올려보면 길은 숲 속에 숨어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만만한 산이 어디있으랴.
올라가니 금세 숨이 탁탁 막힌다.

포장도로를 언니들과 오고 있을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오던 걸음을 거기서 멈추시게. 산이 가파라 아니 되겠오. 나 혼자 한 바퀴 돌테니 주차장에 계시오."

말을 끝내고 혼자 산에 오른다.
좁은 길에 오르는 사람 내리는 사람 산이 좋아 산에 온 사람으로 사람과 엇갈린다.

가다가 숲이 가로 막혀 갈길 아득하다가 갑자기 눈 앞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듯한 저 봉우리는 뉘신가. 

 

주세붕(周世鵬)이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중 형님이신가.
산속에 핀 저 연꽃 모양의 절집은 바로 청량사로세.
멀리 바라 보는 절집은 선계에 있구나.
속세에 머믄 산길이 끝나는 곳에 극락정토이런가.

산길 가는 곳에 산 사나이 집이 있고 서원이 세월의 무게로 옷깃이 남루하다.
아이들 학교 붙게 해주소 기원하는 어미들이 무릎끓은 탑이 새거며 바라 보는 자리에서 보이는 청량사는 천년 사직 신라의 절이다.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지은 절이다.

연대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람이었다.
청량사에서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이 유리보전이며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바람이 세찬 산골짜기의 한쪽에 나즈막하게 자리했는데 법당 앞이 절벽이라 마당이 좁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의 대들보 밑에 사이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세웠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이 드니 눈여겨 본다.  팔작지붕을 한 다포계(多包系)의 집이다. 그리고 공포(공包)는 외1출목(外一出目) 내2출목(內二出目)의 형식으로 첨차(첨遮)의 짜임이 고졸(古拙)하고, 쇠서의 내부 끝은 연화형(蓮華形)의 조각을 새기고 있으며, 전면(前面) 중간 기둥 위에는 용두(龍頭)와 용미(龍尾)를 주두(柱頭) 밑에 내외로 뻗게 하고 있어, 조선(朝鮮) 후기적(後期的)인 특징을 보여 준다.
신라때 지은 것을 조선
후기에 손을 댔나보다.
조상이 정성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세웠으니 귀하지 아니한가.

 

유리보전에서 앞을 보면 사방이 갇혔구나. 갈 곳 없는 중생이 여기서 머물면 이곳이 극랑정토냐.

취한듯 바라보는데
"게 서시오."
하는 아낙의 목소리가 나를 잡아챈다.
돌아보니 손위 처형일세.
" 다 두고 나만 왔소. 구경 잘 하셨오. 하셨으면 모일 시간이니 가십시다."
아직은 내가 극락쟁토에 머물 때가 아닌 게로구나.
현생으로 가는 길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나선형 길에 나무계단으로 질풍으로 내려간다.
"보소 보소 함께 가소. "
멀리 처형의 목소리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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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07 00:41

    첫댓글 잘 기록해 두었다가 이 다음 한국 방문때 꼭 가봐야겠읍니다..

  • 07.11.07 07:57

    감사합니다 언제나 신선한 느낌 그대로 입니다

  • 작성자 07.11.07 10:11

    풍월도사님, 한국방문 때 함께 가십시다.

  • 작성자 07.11.07 10:12

    풍월검사님을 도사로 바꾸어보았습니다. 산사를 좋아하시니 이럴 때는 도사님이 더 정겹기에...^^

  • 07.11.07 14:23

    일파 선생님, 저와 집사람과 함께 선생님 내외분과 같이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입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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