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의 고장 함안을 찾아서
2017. 11. 21
<함안 입곡(入谷)군립공원을 찾아서> 단풍(丹楓)의 잔경(殘景)을 찾아서 우리지방 보다 남쪽에 위치한 단풍 명소로 유명한 함안입곡군립공원을 찾았다. 작년에 찾아간 순창에 위치한 강천산 군립공원의 아름다운 절경만 생각하고 갔으나 아름다운 단풍은 다 떨어지고 겨울 상징인 나목(裸木)으로 너무나 많이 변하였다. 한마디로 부풀은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였다.
경상남도 행정구역도
일제 강점기에 농업용수(農業用水)를 확보하기 위해 조성된 입곡저수지(入谷貯水池)를 축조(築造)되었다고 한다. 뱀 형상의 산골짜기에 만들어진 저수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대절버스가 입곡군립공원주차장에 도착했다. 바로 앞에 입곡산림욕장 입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대원들은 산림욕장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그래도 단풍의 잔경(殘景)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다행이다. '약 2주 전에 이곳에 왔다면 온갖 색채의 터널을 통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단풍의 반영(反影)이 저수지에 멋진 그림을 그린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단풍 감상의 적기를 훌쩍 지나서 온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잔잔한 저수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걷는다. 단풍의 서운함을 맑고 깨끗한 에메랄드색의 저수지의 물이 나를 위로 해준다.
함안군 행정구역도
입곡산림욕장 입구
함안군 관광안내도
입곡군립 문화공원 안내도
출발에앞서 기념촬영
입곡군립공원 입곡저수지 풍경
입곡산림욕장의 잘 정비된 길
한참을 따라 올라가니 제법 규모가 큰 출렁다리가 연한 녹색의 옷을 입고 우리를 반긴다. 출렁다리는 건너가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생각한 것과 같이 좌우로 많이 흔들린다. 대원들이 다리의 흔들림에 많이 놀란다! 입곡출렁다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입곡군립공원내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연장 96m, 보행폭 1.5m로 국내에서 주탑(柱塔)과 주탑 사이가 가장 긴 현수교(懸垂橋)란다. 자재로서는 신소재 강연 PC케이블과 하드 우드(Hard Wood:硬木)바닥재를 사용하여 성인 50명이 한꺼번에 지나 갈수 있게 설계 되었다고 한다. 현수교 동쪽바위 벼랑 언덕위에 지어진 팔각정(八角亭)은 입곡 군립공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실제로 이 팔각정에 올라가서 시야에 잡히는 경관(景觀)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입곡 현수교
멋스런 입곡 현수교 전경
현수교를 건너고 있다.
입곡저수지의 제방이 보인다
현수교와 팔각정
팔각정을 내려와서 산책로 2코스를 따라 걸었다. 한참을 따라 올라가니 여러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비석군을 만났다. 사단비(祀壇碑:제단비)란다. 원래 단(壇)은 망자의 시신을 못 찾았을 때 <壇>이란 제단을 만들어 추모한다. 어떤 사연으로 사단비가 세워졌는지 알 수 없다.
팔각정
단풍 잔경이 우리를 위로 해준다
사단비석군
함안입곡군립공원 위치도
<전형적인 조선초기의 정자 무진정(無盡亭)>
함안은 오랜 역사가 숨 쉬는 고장답게 역사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먼저 가장 가까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선비들의 기품(氣稟)과 풍류(風流)의 멋이 그대로 살아있는 무진정(無盡亭)을 찾았다.
바위 언덕위에 있는 무진정(無盡亭)
무진정 앞면
무진정(無盡亭) 아래에는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지당(池塘)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눈에 보아도 고풍스러운 멋이 예사롭지 않다. 알고 보니 이곳이 무진정 앞에 있는 이수정(二水井) 연못이란다.
무진정에서 바라본 이수정 위에 놓여진 석교와 반월형 교각의 반영이 멋스럽다
석교와 버드나무
먼저 돈화문(敦和門) 안으로 들어가니 기둥마다 주련(柱聯)이 달려있는 정면 4칸 팔작지붕 건물인 괴산재(槐山齋)가 정면에 버티고 있다. 오른쪽 언덕 위에 우리가 찾고자하는 무진정((無盡亭)이 날아갈듯 한 날렵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돈화문을 들어가면 괴산재가 있다
이수정(二水井) 연못 바위언덕 위에 고색(古色) 창연(蒼然)한 무진정((無盡亭)은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47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중건(重建)한 것으로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을 하지 않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순하고 소박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정자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정자가 세워진 자리는 기(氣)가 많아서 입지(立地)가 좋다고 한다. 정자의 입지 앞과 뒤에 바위와 암반이 있고 정자가 차지한 자리는 흙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무진정(無盡亭)이라 적힌 편액(扁額)은 주세붕(周世鵬) 선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무진정 한가운데 누마루로된 방이 있다
주세붕 선생이 썼다는 무진정 편액
정자(亭子)하면 먼저 시원한 곳,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곳이 연상된다. 이곳도 접이식 들문을 들어 올리고 여름철에 정자에 앉아서 우거진 녹음과 푸른 연못을 바라보면서 납량(納凉)을 즐겼던 선비들의 낭만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4면에 접이식 문이 정자의 기능을 더해주고 있다
무진정에서 연못을 내내려다보면 나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왕버드나무와 느티나무가 소담스러운 연못의 풍치를 더한다. 동정문(動靜門)을 나와 석교(石橋)를 따라 연못 가운데에 이르면 팔각형 모양의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정자의 이름은 영송루(迎送樓)로 단청의 색깔이 바래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자세히 보면 지어진 세월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영송루는 문이 전혀 없는 정자라 색다른 운치가 없다. 하지만 연못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녹음이 한창인 여름날에는 섬과 같은 분위기가 풍길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영송루에서 좌로 가다보면 반월형(半月形)의 기둥위의 석교의 반영(反影)이 이수정의 운치를 더해준다.
무진정 출입문인 동정문
영송루(迎送樓)
무진 조삼(趙參)선생은 1507년(중종 2년)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 창원, 대구, 성주, 상주의 목사(牧使)와 사헌부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고 한다. 무진정은 지난 1976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함안 조씨 가문에서 보호하고 있다. 무진정이 있는 이수정 연못은 조삼 선생이 손수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이치를 몸소 실천한 조삼 선생의 풍류와 멋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곳이다.
이수정의 수초
조삼선생의 호<無盡>과 같이 경치도 무진하고, 이곳을 찾은 하나산악회 대원들도 무진한 감회(感悔)을 느끼고 간다. 아름다운 무진정 경관 영원토록 <無盡> 하여라!
대원들이 이수정 석교를건너고 있다
이수정의 석교가 너무나 아름답다
무진정 위치도
<아라가야의 독창적인 유물을 만날 수 있는 함안박물관>
함안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일구었고, 고대에는 강력한 아라가야를 건국하여 삼국과 당당히 경쟁하였다. 또한 각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한민족 50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서 전통문화를 형성하고 간직해온 함안을 오늘에서야 살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아라가야의 특징인 <불꽃 무늬 토기>를 강조한 함안박물관 전경
말이산 고분군 안내
지금까지 아라가야의 문화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여기에 대한 정보 또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올 해부터 국가에서는 가야문화를 발굴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아라가야는 우수한 토기와 철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문화를 구축하여 고대 한 반도 문화를 꽃피게 했다.
아라가야의 토기
아라가야의 철기(무구류)
가야문화하면 고령, 김해, 합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3지역의 박물관의 전시된 내용물이 함안 박물관보다 더 정비 연구되어 전시된 것 같다. 함안박물관 안에는 총 1,140여 점의 유물들을 전시, 수장하고 있다고 한다. 함안박물관은 2003년 10월에 개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도항리 삼기선돌(道項里 三奇立石)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도항리 삼기선돌 모형은 암돌과 숫돌 2기로 이루어져 있다. 암수의 쌍선돌(雙立石)이라는 입장에서 다산(多産)을 의한다고 한다.
도항리 삼기선돌(道項里 三奇立石) 모형중 암돌
도항리 삼기선돌(道項里 三奇立石) 모형중 숫돌
도항리 삼기선돌 해설문
현제 함안에는 말이산 고분군을 비롯하여 130군데가 넘는 가야고분군과 왕궁지, 제천지, 산성, 토기 등 가야시대의 유적지들이 많이 분포해 있다.
함안 성산산성 안내문
함안 성산성에서 출토 된 목간
가야의 무덤변천을 보면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이식돌덧널무덤,돌방무덤으로 변화하였다. 덧널무덤에서 순장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순장제도는 3국 시대 신라에만 있었고, 고구려, 백제에는 없었다. 고령의 고분 박물관에서도 순장문화(殉葬文化)를 볼 수 있었는데, 함안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아라가야의 순장 문화 해설문
마구와 새모양장식미늘쇠
아라가야의 고분은 덧널무덤에서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아라가야를 상징하는 불꽃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수레바퀴모양토기, 말갑옷, 새모양장식미늘쇠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 출토물로 보아 무덤주인공을 위한 순장 습속(習俗)을 보여주고 있다. 마갑총에서 발굴된 유물들
또 청동기시대의 초대형 집자리, 청동기시대의 소형 집자리, 청동기시대의 수로유적(水路遺蹟)은 보기 힘든 자료였다. 특히 700년 전의 연씨가 발아하여 아라홍련 시배지가 박물관 옆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청동기시대의 여러 집자리
700년전의 연씨가 발견되어 아라홍련이 재현 되었다
함안박물관의 전시된 내용물을 보니 구석기시대(打製石器時代)의몸돌, 긁개, 찍개며, 신석기시대(磨製石器時代)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고인돌 바위그림 등은 다른 가야국과 대동소이 하다.
함안박물관 위치도
<함안천과 남강의 합류지점 절경에 위치한 악양루(岳陽樓)>
함안 박물관에서 찬란한 아라가야의 문화를 가슴에 담고 대산면 서촌리 산122에 자리한 악양루(岳陽樓)를 찾았다. 악양루는 철종8년(1857)에 이 지역 선비인 안효순(安孝淳)이 서촌 마을 북쪽 절벽에 세웠고, 이 누각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악양루 앞에 전개되는 남강과 함안천 유역의 자연풍광과 눈이 모자랄 정도의 넓은 들에 비쳐지는 강한 햇살의 느낌은 악양루의 정취를 더욱 멋스럽게 한다.
악양루에서 바라본 남강 유역 강건너편에 의령이 바라보인다
악양루로 가는 길
악양루(岳陽樓) 1
악양루(岳陽樓) 2
악양루 안내문
악양루로 들어가는 도로변 초입에 <처녀뱃사공>노래비가 세워져있다. <처녀뱃사공> 노래는 윤항기씨의 부친인 윤부길씨가 경남 함안군 대산면 악양나룻터를 이용하면서 <처녀뱃사공>노래가 만들어진 단초가 되었다. 지금의 악양교가 설치되기 이전까지는 이나루터가 가야읍과 대산면을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로가 나룻터였다고 한다.
처녀뱃사공 노래비
1953년 9월경에 이곡을 작사한 윤부길씨는 당시 유명한 음악인으로 유랑극장 단장을 하면서, 함안군 가야읍에서 5일장 공연을 마치고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뱃사공 집에서 단원들과 기식을 하게 되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군에 간 오빠는 전사하여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생각하며 박말순(23세), 박정숙(18세) 두 처녀가 강바람에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길손들을 건너 주며 오빠를 간절하고 애틋하게 기다리는 사연을 듣고 노랫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황정자는 <처녀뱃사공>노래로 인하여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악양루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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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Abnormal 내년 갈엔 時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찾아가게.
잘 찾아 읽고, 丹楓구경도 잘 했네...!!
내년엔 더 좋은 곳을 갈텐데 뭘
덕택에 감상 잘 하였습니다.
만날 앉아서 구경만 하기 있남 다음에는 같이 가제이.
윤중선생의 산행 후기를 읽어보면 마치 한편의 논문을 읽는 기분이다.
내가 몰랐던것도 많이 알게 될뿐더러 다시한번 산행코스를 떠올리게 된다.
수고하셨네요. 당신이 있어 많이 유식해진것 같습니다.
동감이요.
사실 두분의 사진과 글을 읽고 나니 내사 부끄러버서
실컷 만들어 놨던 동영상 올릴 기격을 잃었다. 저렇게;멋있는 사진에다 해설가를 뺨치는 해설에다
문학작품을 방불케하는 글재주로 다듬어 쓴 글을 읽으면 실제로 가봤으면서 느끼는 것보다 월씬
더 멋있고 기분이 좋고 아름다운 마음을 함뿍 가습에 담는다. 대장 해설사 전문 사진사 두분에게
무진장 한정없이 고맙다고요. 디시디시하게 감사하다카이.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