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부처님이 기사굴산에 계실 때, 일찍 부처님의 제자가 된 좌라발이라는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떠난 뒤 왕사성에 들어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퍼뜨렸다.
"나는 석가족의 사문의 법을 배워 마쳤다. 내가 그의 가르침에서 떠난 것은, 그 사문의 법을 다 배워 마쳤기 때문이다.
왕사성에서 걸식하던 비구들은 좌라발의 이 말을 듣고, 돌아가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그리고 청했다.
"부처님이시여, 원컨대 그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가 사는 사비티카 강가에 있는 그의 처소로 나와 주소서."
부처님은 말없이 이것을 허락하셨다. 저녁나절이 되어 부처님은 선정에서 일어나 사비티카 강가에 있는 그의 집으로 나아가,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부처님은 좌라발에게 말씀하셨다.
"좌라발이여, 네가 '나는 석가족의 사문 법을 다 배워 마쳤다. 내가 그의 가르침을 버린 것은, 그의 법을 다 배워 마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인가?"
좌라발은 잠자코 있었다. 부처님은 다시
"좌라발이여, 너는 어떻게 석가족의 사문 법을 배웠는가? 만일 너에게 모자람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채워 주리라. 그리고 네가 충분히 알면 나는 그것을 착하다고 하리라."
좌라발은 그래도 말이 없었다. 부처님은 세 번이나 되풀이해 말씀하셨으나, 좌라발은 여전히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때에, 다른 유행자들도 못 견디게 좌라발이 대답하도록 졸랐기 때문에 그는 더욱 난처해, 어깨를 떨어뜨리고 머리를 숙인 채, 풀이 죽어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여러 유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유행자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내게 대해서, '너는 바른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 일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할 때에, 나는 그에게 충분히 캐어물을 것이다. 내 질문을 받았을 때에, 그 사람이 취할 태도는 세 가지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곧 반성해서 다른 말을 하든지, 화를 내든지, 또는 좌라발처럼 대답 없이 잠자코 앉아 있든지 할 뿐일 것이다. 유행자들이여, 또 어떤 사람이 내게 대해서 '너는 번뇌가 없다고 말하지만, 아직 번뇌가 다 없어지지 않았다'고 하든지, 혹은 '너는 중생의 이익을 위해 법을 설한다고 하지만, 너의 가르침으로써 구제된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충분히 캐어물을 것이다. 그때에는 나아갈 길이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사비티카 강가에 있는 좌라발의 처소에서 웅변을 마치시고 그곳을 떠나셨다.
부처님이 떠나시자 유행자들은 사방에서 좌라발에게 조소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좌라발이여, 큰 숲에서 늙은 늑대가 사자처럼 외치려 했지만 역시 늑대 우는 소리밖에 지를 수 없는 것처럼, 너는 사문 구담 앞에서 사자처럼 외치려 했지만, 역시 늑대 우는 소리밖에 내지 못 했구나. 좌라발이여, 너는 숫탉 흉내를 내어 때를 알리려다 그만 실패한 암탉이요, 우왕이 떠나간 빈 외양간에서, 큰소리를 치려는 약해 빠진 황소다. 저 사문 구담이 없을 때에만 뽐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18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로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세 가지 법이 있다. 곧 계와 정과 혜다. 비유하면 노새는 소의 빛깔도 없고 소의 소리도 없으며 소의 발도 없으면서 소떼들의 뒤를 따라와 '나도 소다'라고 하는 것처럼, 어떤 비구는 비구들의 뒤를 따르면서 '나도 비구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비구는 다른 비구들이 가지고 있는 계와 정과 혜를 배우려는 뜻이 없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계와 정과 혜를 열심히 배우자'고.
비구들이여, 농부들은 가을이 되기 전에 하지 않으면 안 될 세 가지 일이 있다. 곧 먼저 밭을 잘 갈아 고르고, 적당한 때에 씨를 부리고, 적당한 때에 물을 대고 빼는 일이다. 꼭 이와 같이, 비구들도 도를 깨닫기 전에 하지 않으면 안 될 세 가지 일이 있다. 곧 계와 정과 혜의 삼학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계와 정과 혜를 열심히 배우자'고.
비구들이여, 그러나 저 농부에게는 '종자야, 오늘은 싹을 내어라, 내일은 이삭아 나오너라, 글피는 열매야 알들어라'는 신력이 없는 것이다. 저 농부의 곡식은 적당한 계절의 변화를 받고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이삭을 내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꼭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들에게도 오늘이나 내일이나 글피 동안에, 모든 집착을 떠나 번뇌에서 해탈한다는 그런 신력은 없는 것이다. 계와 정과 혜를 배우고 있는 동안에 차차 모든 집착을 떠나 번뇌에서 벗어날 때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계와 정과 혜를 열심히 배우자'고.
비구들이여, 계학이란 무엇인가? 비구가 계를 가지고 계에 의해서 몸을 제어하고, 착한 행실을 하고 감각기관을 제어하며, 작은 죄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다음에 정학이란 무엇인가? 비구가 욕심을 버리고 악을 떠나서, 제일선에 들어가 머물고, 다시 나아가 제이ㆍ제삼ㆍ제사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 혜학란 무엇인가? 비구가 '이것은 번뇌다, 이것은 번뇌의 원인이다, 이것은 번뇌의 없어짐이다, 이것은 번뇌가 없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라고 참다이 알고, 번뇌가 다해 깨달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계ㆍ정ㆍ혜의 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