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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을 맞고,
추위를 견디고,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오랜 시간 외로움을 견디며,
꽃이 핀다.
세상의 그 어떤 꽃도
흔들림 없이 피는 꽃은 없다.
지금 흔들리는 것,
다 괜찮다.
-박광수
글이 너무 길어 두동강 냈습니다. 읽다가 스크롤의 압박으로 창 닫아버리실까봐.
뒷편 궁금하시면 꼭 꼬리 남겨주세요..^^*
[세상의 그 어떤 꽃도 흔들림 없이 피는 꽃은 없다. #1]
자, 이번 편부터는 분위기를 좀 밝혀보기로 하자. 끝날 때 까지 이 우중충한 분위기로 나아 갈 수는 없으니. 그러기엔 내 여행기가 너무 밝다.
센스있는 여행사 직원언니가 알아서 창가 자리로 예약을 잡아주셔서 난 창가에서 창밖을 보며 편히 비행기에 있었다. 주책바가지처럼 두근세근네근하는 나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비행기는 뜨고, 내 옆에는 키가 족히 190은 되어 보이는 외국인이 앉았다. 근데 웬걸, 이코노미석이 그 외국남에게는 너무 작았나보다. 무릎이 앞 좌석에 닿을정도로 좌석과 좌석 사이의 폭이 좁았다. 난 완전 널널한데 부끄럽게.. 11시간 반동안 한마디 말없이 그분과 가야 한다는게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하 이걸 어쩐다. 비행기가 안전해 질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벨트모양의 등이 꺼지고, 난 조마조마 하면서 외국남에게 말을 붙였다. ‘익스큐즈미?’
씩 웃으면서 날 쳐다보는 외국남. ‘Yes?What can I help you?' 음.. 그래 착하구나..
‘저 건너편 라인에 제 친구가 앉아있어요. 자리 좀 바꿔 주실 수 있으세요? 창가자린데.’
아주 착하게 긴 기럭지로 일어나 주시는 외국남. 감사해요. 저기서 말하는 친구란, 사실 친구가 아니라 유랑에서 같은 비행기 편으로 영국을 간다고 하셨던 분이셨다. 그분과 말 한 내용도 고작 ‘저쪽이 제 자리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오세요~’ 가 다였는데, 어느새 외국남에게 우린 나란히 같이 앉아 가지 않으면 안될 절친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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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성명도 제대로 안한 우리는 비행기가 떠난지 30분만에 같이 11시간을 지낼 사이가 되었다. 내 좌석 앞에 있는 터치스크린이 신기하지만 왠지 버벅대는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아 소심한 마음에 가만히 있던 나를 신경도 안쓴다는 듯 그분은 (이하 비행기남이라 하겠다.) 터치 스크린을 적극 경험하고 계셨다. 어색한 이 사이를 무마시켜 보고자 계속 말을 걸어 보았지만 비행기남은 자신의 노트북을 이리저리 만지며 건성건성 대답하고 있었다. 갑자기 또 급 나 스스로 처량해졌다. 난 노트북 없는데...응..
시간은 흐르고, 어색함도 점차 사라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비행기남은 무려 2년동안 군대에서 여행계획만 세우셨단다. 난 1주일 준비했는데 2년이라니.. 자신이 손수 엑셀로 만들어 복사집을 찾아가 링제본 하여 책으로 만든 진귀한 여행 일지를 보여주는데, 그 여행 일지가 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행에 대한 좋은 글귀가 중간중간에 들어 가 있고, 한국 대사관 연락처와 민박집 정보, 침대 개수, 전화번호, 평까지 정리를 해 나라,도시별로 리스트까지 있었다. 보통 우리는 자신이 가려고 하는 민박집 정보만 써가지 않는가. 그것이 아니라 그 도시에 유명하다는 민박집의 정보가 다 적혀있었다. 하하하하하 난 영국 숙소도 어제 예약했는데. 하지만 이건 장난이었다. 뒷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는 그냥 헉했다. 헉 말고는 없었다. 비행기 내리고 나서부터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시간대 별로 나눠서 어디를 갈지, 뭘 볼지, 뭘 먹을지, 어떻게 갈지, 어디서 예약을 하는지 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계획이 다 잡혀있는게 아닌가. 40일이 넘는, 하루도 없이 빡빡하게 써져있는 여행 스케줄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아찔해졌다. 친절하게 빨간 글씨로 위험한곳은 우범지역 이라는 표시까지 해놓으신걸 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마디.
'님 좀 짱인듯^^*'
내가 준비한건 어제 예약한 숙소 전화번호와 저스트* 여행책 한권이 다인데. 아니 이사람이 대단한걸까 아니면 모두 다 이렇게 해오는데 나만 태연하게 여행책 한권 가져온걸까. 불안이 더욱 엄습해왔다. 1주일 준비한 사람이랑 2년 준비한 사람이랑 비교가 되겠냐만은,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그때, 아리따운 스튜어디스 언니가 대한항공의 백미인 바로 그것, 기내식을 세팅하시는게 아닌가. 아주좋아요. 그래요 내가 이걸 기다렸어요 언니. 난 소심녀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고 다들 먹을만 하다고 하는 비빔밥을 시켰다.
역시 포인트는 튜브형 고추장. 냠냠쩝쩝 밥을 먹고 배부르니 돼지의 본능에 충실하게 잠이 쏟아져 한숨 푹 잤다. 그래도 시간은 아직 7시간이나 남았고,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건 비행기남의 도움이 컸다. 이 비행기남은 몹시나 호기심이 왕성한 청년이었는데, 무엇이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히 무엇을 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스튜어디스 언니의 황당한 표정을 감추려 짓는 억지미소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주 쉽게 예를 들자면 사과가 왜 사과냐는 그런 질문이라고 할까. 물론 저 정도로 심한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묻는 질문과는 사뭇 다른 질문들에 언니야는 쫌 많이 당황한 듯 했다. 이 비행기남은 넉살도 좋아 한사람당 하나씩 밖에 안돌아가는 떡도 하나 더 달라고 해서 먹곤 했다. 음료수 또한 떨어지기 무섭게 계속 받아 먹었는데, 그렇게 많은 음료수를 마시고도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멋있다. 응..
나는 영국을 백지 상태로 가는 것이었지만, 비행기남은 사촌형이 거기에 살고 있다고 그랬다. 픽업하러 나오기로 했다는 사촌형. 부러웠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흑흑. 그렇게 비행기남과 함께 게임도 하면서, 이야기도 하면서, 영화도 보면서, 11시간동안 비행 끝에 영국 땅에 발을 딛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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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나와 캐리어를 기다리는 중. 나는 핑크색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24인치 바퀴 두 개자리 캐리어를 들고 왔는데, 이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바퀴 두 개 캐리어가 얼마나 안습인지. 일단 내 가방은 크기도 컸지만 무게는 상상초월이었다. 그래도 초반에는 견딜만 한 무게였다. 하지만...
나머지 캐리어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자. 휴...................
착한 비행기남이 나의 캐리어도 기다려줘 함께 나올 수 있었다. 우린 비행기남의 사촌형을 만나 지하철 타는 곳으로 향했다. 자, 이때부터는 그들만의 세계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 이야기라던가, 둘 다 알고 지내는 친구라던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냥 닥치고 있으면 된다.
지하철 타는법과 영국교통카드인 오이스터카드 사는 방법 가르쳐 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다. 착한 비행기남 사촌형이 계단에서 캐리어도 살짝 들어주셨다.
그렇게 우린 지하철 안에서 헤어지고, 본격적으로 혼자 런던 땅을 돌아 다니기 시작하는데, 미친 듯이 무거운 케리어, 계속 뒤집어진다. 아놔 세워도 또 뒤집어지고 뒤집어지고, 끌고 가다가 뒤집어지고 세우면 뒤집어지고. 얘야, 이러지마라. 언니가 큰맘먹고 샀는데 왜이러니.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니? 언니 운다..
그렇게 달래고 달래 목적지 까지 도착. 숙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터라 그냥 처음 눈에 띄었던 U*하우스로 예약을 했었다. 그 숙소에서는 어떤 곳을 지도에 표시해 놓고 이곳에 공중전화가 있으니 이 번호로 전화를 하면 스탭이 그곳까지 픽업을 나올 것이라고 써져 있었다. 그리고 써져있는 말 한마디. 1파운드를 넣으면 거스름돈을 안준다는.
잉? 뭥미? 1파운드면 2000원인데 지금 공중전화 20초 통화하고 2000원을 먹는단 말인가. 있을 수 없다. 20팬스만 넣으면 되는것을! 나는 그 주위의 문열린 가게를 찾아다녔다. 근데 뭐지. 해는 훤히 떠있는데 아무도 장사를 안하네. 시계는 7시 반쯤을 향하고 있었다. 겨우 한곳이 열려 있길래 들어갔더니 팬스가 다 떨어졌단다. 믿거나 말거나.
근데 여기 분위기가 묘하다. 어째 흙인이랑 동남아권 사람들밖에 없네. 사람도 많이 안다니고 가게는 다 문이 닫혀있다. 4월이라 아직도 런던은 쌀쌀하고 난 여자 혼자에 거액의 돈(나한테는 큰 액수다)을 가지고 있으며 엄청나게 무거운 24인치 가방도 끼고 있다. 안되겠다 싶어 1파운드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번호를 눌렀는데 안된단다. 다시 걸려고 전화기를 내렸다가 들었더니, 어머나, 이 깡통이 내 1파운드를 먹었네?
......................야
죽을라고 진짜. 아 언니야 또 빡돈다. (흥분하면 사투리가 나온다.)
이젠 돈이고 뭐고 없었다. 난 11시간 반을 뱅기타고 왔고 여기까지 엄청난 삽질 끝에 한시간만에 왔는데 이 깡통이 1파운드를 먹었다. 당당하게 로밍폰 꺼낸다.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로밍폰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보통 거는데 3500원 받는데 700원이 든다. 손떨려서 난 절대절대 전화를 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처음엔 두고 가려고 했었지만 그래도 여자혼자라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챙겨온 나의 핸드폰. 첫날부터 아주 대차게 걸어주신다.
“거기 U*하우스죠? 말씀하신곳에 와있거든요?”
“아 네, 금방 가겠습니다. ” 뚝.
그래 제발 빨리 와주세요 부탁합니다. 여기 좀 무섭거든요.
그렇게 한 3분가량 지났을까. 수많은 흙인과 동남아인 들이 스쳐 지나 가는 곳에서 안경을 쓴 중국인 같이 생긴 사내 한명이 나를 향해 터벅 터벅 걸어 오는데...
7시반. 다 닫혀있는 상점들의 모습.
나의 피같은 1파운드를 먹은 깡통....
처음 경험한 영국지하철. 생각보다 귀엽고 아늑하니 좋았다.
* 혼자 떠난 첫 여행의 후기인지라 많이 떨리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심심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부족하지만 글 읽어 주신 분들 꼬리 부탁드릴게요^^*
꼬리가 귀찮으시면 살짝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추천을..^^
뒷 이야기를 이을 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첫댓글 근데 엑박떠요.ㅠㅠ
수정했습니다~^^
제가 경험하는것처럼 생생하고 재밌네요..ㅋ 다음 여행기가 기대됩니당^^
뒷편 올려놨어요~한번 읽어주시고 느낌좀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밌어요 전 남자인데, 여자가 쓴 여행기가 더 흥미있음~:) 아 근데 42일 경비 얼마나 드나요? 전 30일쯤으로 계획짜고 있는데..
글쎄요- 카드랑 같이써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유레일+유로스타 100만원, 비행기 100만원, 방값 하루 25유로로 계산했을때 160만원 정도 기타 등등해서 550-600정도 든것 같습니다^^
아직 시작이지만 재미있을것 같네요~ 이어질 내용 기대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아직 쓸 날들이 너무 많아 어깨가 무겁지만, 즐기면서 즐기면서! 써보려구요~^^
깡통 미워요^^
깡통 좀 많이 미워요...ㅠㅅ ㅠ..
여행기가 참 재밌어요. 인물 관찰,묘사를 참 잘하시는 듯...^^ 비행기남 캐릭터도 인상적이고요. 다음 여행기도 기대할게요.
칭찬 너무 감사해요- 밑에도 꼬리 남겨주셨었는데..^^ 감사합니다^^*
저도 곧 혼자 떠날건데... 방금도 허락 맡기위해 처절한 싸움 하고 왔네요 혼자라고 안보내 주실라고 해요 히용히용
히용히용ㅠㅠ그마음 잘 알죠ㅠㅠ그래도 치열하게 싸우셔야 해요! 포기하시면 안돼요!!
부럽습니다..저도 혼자 떠날텐데 용기가 생기네요
밑에도 꼬리 써주셨죠~^^ 혼자라서 느낀점이 더 많았어요- 강추강추합니다!^^
엑.박이 압박해 오네요~~ 저도 혼자갈건데 걱정이....
걱정하실것 없어요- 하루하루가 그저 꿈같이 흘러갈거에요..^^
마치 제가 런던에 이미 가 있는듯..ㅋㅋ
우와~ 감사해요! 제가 느꼈던걸 조금이나마 다른분들께 알리고 싶었는데..^^그렇게 말씀해주시니^^*
ㅎㅎ비행기편 재밋네요ㅎㅎ 다른편 얼렁 읽어야겠다ㅋㅋ
감사합니다~^^다음편도 꼭 읽어주세요!!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저도 여름에 떠날 건데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용^^
너무 부러워요~ㅠㅠ저도 여름의 유럽을 보러 가고 싶습니다!!^^
꺄아악~ 저도 님처럼 어서 가고 싶네요 ~ 여행기는 언제나 앞부분만의 가슴 설렘기분
런던의 기억이 좋은건 역시 그 설렘때문인것 같아요- 두려움도 있었지만, 여튼 저한텐 너무 좋은 곳이었어요^^*
님 여행기 정말 기대되요 ㅎㅎ 캐리어 달래시는 모습이 너무 귀엽네요 ㅎㅎ
정말 기대되신다고.. 또 귀엽다고까지 하시니....저 또 기분 좋아서ㅋㅋㅋㅋ 궁금하신거있으시면 꼭 쪽지주세요~^^
와우
우왕ㅋㅋㅋㅋㅋㅜㅜ읽어주셔서감사해요^^*
잼있습니다~ ^^ 이런 모든 것들이 나중에 재산이 될 듯~ ^^
그쵸~? 사실 글 하나 쓸때마다 세시간넘게는 그냥 쓰여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쌓이면 되게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저도 영국에서의 첫 하룻밤이 할렘가 같은 지역이었는데..ㅎㅎ 그때 기분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ㅎㅎ
저두요ㅜㅜ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네요. 그땐 좀 무서웠지만 지금생각해보면 그리운곳이에요-
지하철 너무 귀여워요~ㅎ
그쵸~? 하도 런던지하철이 안좋다 그래서 마음 다잡고 갔었는데, 의외로 귀엽구 좋더라구요^^
저도 처음을 영국으로 가려하는데 ..
영국이 인으로 하기는 편해요- 하지만 전 날씨때문에.. 이태리로 인을 했으면 딱 좋았을 뻔 했어요^^
저의 첫유럽여행은 꼭 영국으로 가려고 하고잇어요~ㅎ 영국이 저의 로망이네요.ㅋㅋ
저도영국으로 좀있으면 떠나는데 ...저는 밤 9시 도착이라 좀 걱정이예요 ㅠㅠ 무서울까봐ㅜㅜㅋㅋ
친구사정으로 유럽여행이 취소된 경험이 있어 혼자 떠나는 용기가 부럽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