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국5천리 자전거 장정[3-16] 철원 승리 전망대.
제 16 일차 7월 4일 금요일. 열 엿새째날 포천 - 철원
* 포천을 지나서 만나는 38선 휴게소에서 한자 논쟁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중국인들과 내기를 하여,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나는 이번 내기에는 자신이 없기도 한데... *
* 아랫줄 두번째 자는 통일[統一]할 때의 "통"이고 다섯번째는 총력[總力]할 때의 "총"이 맞는지????? *
* 길바닥에서 만난 중국 -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으니 가는 곳마다 만날수가 있었다. - 오류동에 가면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들이 없는 것이 없다는데... - 내가 이전에 즐겨 피웠던 중남해! *
[승리 전망대]
"버드나무 순을 삶아먹는데 간장을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찍어 먹더라" 어릴 적에 어머니가 해 주신 중국 사람에 대해서 처음으로 들은 이야기이다. 아마 1.4후퇴가 지나고 봄에 우리가 사는 마을에 중공군이 들어 와서 그들을 만난 이야기중에 일부 일터인데,나는 그 말을 듣고 그 당시 참으로 먹을 것이 없었겠구나하는 것과 전쟁중 이었는데 어떻게 적군인 중공군에게 무사 했을까걱정을 했는데, 어머니가 내게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그들도 사람이고 민간인은 해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우리는 중국에 살면서 종종 너의 나라는 왜 둘로 갈려져서 서로 으르렁대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때마다 대답하기가 난감하기도 한데, 나는 꼭 두가지 사항을 이야기해 준다.
하나는
장개석과 모택동이 싸워서 지금 두 개의 중국이 있는 것이나, 우리가 금을 긋고 서로 갈라져서 저러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상황이라고 하면서 일반 국민들은 정치와 사상하고는 자유롭지만, 그 것을 다루는 통치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금을 그어 놓고는 오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또 한가지는 우리가 그렇게 갈라지게 되는데 중국은 일조를 했다고, 더구나 조선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다[抗美援朝]라는 명목으로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을 해서 30만이나 되는 인명을 잃었고, 그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는지 아느냐고. 앞으로는 우리가 통일하는데 도와 달라고 하면서,중국은 마음에 없겠지만 한국을 두개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으로서 적극적으로 도와 주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 붙인다.
오늘은 그 현장을 보러 온 것이다.
포천을 떠나서 북으로 갈수록 군부대나 군인차들이 점차 눈에 많이 보인다. 나는 이쪽으로 갈수록 전방이기에 그렇다고 설명을 하였지만, 북한땅을 전망하는 관망대가 있는지는 몰랐다.
특히,
겨울에 텔레비젼의 일기예보를 보면 대성산이 몇 도하는 방송이 나오는 곳이다. 그 대성산(해발 1175)북쪽에는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 동네는 전쟁이 끝이 나고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모여서 지뢰를 파내고 만든 정착촌이라고 한다. 그 곳에는 철원군청에서 운영하는 승리전망대가 있었다.
계획은 고향집을 떠나서 분단의 현장인 임진각을 넣었으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나서, 그대로 빠져 나왔는데, 그날 아주 좋은 대성산 북쪽에 있는 승리 전망대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안타 깝게도 우리가 그 곳에 도착을 했을 때는 오후 4시쯤이었는데, 마감 시간이 지나서 그 날에는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북한 땅을 보여줄 기회가 없을 것이라서 나는 하루를 묵으면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더구나 중국 친구들에게 우리가 왜 이렇게 분단이 되어 있는지 잘 설명을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기다리기로 하였다.
[마을회관]
시간이 넉넉하니 문화체험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 갔다.
마을 입구 가게에서 이 마을에는 마을 회관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요즘 시골에 마을 회관 없는 동네가 어디 있는가고 반문을 한다. 우리는 곧 바로 이장님을 찾았다. 그 분은 마침 밭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장님은 노인회장님을 찾으란다. 그 곳은 마을의 노인회관으로 쓰며 어른신들이 이러라면 이러는 것이지 자기에게 주권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 회장님은 연세가 많으심에도 근력이 좋으셔서 밭에 일을 나가셨는데 해가 떨어져야 돌아 오신다나. 핸드폰을 가지고 계시다는데 아무리 때려도 받으시지를 않고....
우리는 무료하게 기다렸다. 설마 나가서 여관을 잡아서 자라고야 하겠는가 오늘은 마을 회관이 있으니 여기서 자보자라고 다짐을 하면서...
그 동네는 체리라고 부르는 양벚나무가 있엇는데, 앵두보다 큰 그 열매가 잘 익은 채로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노인회장님을 기다리면서 따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매달려 있는 체리를 나무에 올라가서 실컷 따 먹을 수가 있었다. 물론 사전에 나무 밑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께 충분히 아양을 떨어 놓았었다.
여름의 긴 해는 아무리 기다려도 넘어가지 않고, 결국은 총무를 맡으신 어르신이 오셨는데 어쩨겠는가? 주무시고 가라 회장님오시면 내가 허락을 받아 줄터이니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걱정을 덜어준다.
체리 나무 밑에서 소주를 마시덕 장덕원 아저씨는 회관에는 밥을 해 먹을 수가 있으니 내가 쌀을 줄게 따라와 하시더니, 쌀은 물론 상추 배추 고추에 근대등의 싱싱한 무공해로 지으신 농산품들을 한아름 안겨 주신다. 거기에 된장과 고추장까지.....
마을 회관은
군청에서 운영비가 전액지원이 된다는데 최고의 시설이었다.
우선 아래층에는 방이 두 개인데 할머니 방이라고 표시가 된 것은 할아버지 방이요 반대로 할아버지 방이라고 써 붙인 것은 할머니 방이라고 하신다
우리끼리야 이렇게 쓰나 저렇게 쓰나 별문제는 없지만, 통도사에서 우리를 안내를 해 주신 분의 실수로 남자와 여자의 샤워장을 바꾸어 가르쳐 주어, 들어가 샤워를 하는중에, 그날따라 주말이라 참선을 하러 온 아줌마 신도들이 많았는데, 자꾸 들어와서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씻었는지... 나중에 들으니 여자 샤워장에는 자꾸 아저씨들이 들어와서.... 그 기억이 나서 속으로 웃었다.
주방 시설은 완벽하였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칼 도마는 물론이요. 각종 양념까지....
이날 우리는 뚀아지매가 만든 특별 중국 요리를 먹었다.
장덕원 아저씨집에서 토마토를 얻을 때, 이미 나는 오늘 토마토 국을 먹겠구나 예상을 할 수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팔을 다친 위지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부지런한 뚀지에가 요리사로 나섰는데, 이것 저것 챙겨보던 내가 주방에 가니 큰 양은 솥에는 오이를 넣고 끊이고 있었다.
오이!
오이국이라!!!
그날 우리는 전대미문 국적 불명의 요리는, 된장+고추장+근대+오이를 넣고 끊인, 아부지도 엄니도 아닌 희귀한 맛의 국을 먹었다. 이외에도 당연히 토마토게란탕과 계란복음이 추가 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 오이국을 끊이고 있는 뚀 아줌마 *
화장실 역시 완벽했다.
냉수꼭지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왔고, 기름으로 데운 온수도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나왔다. 아주 편안한 샤워를 하였고, 매우 편안한 잠자리로 기억이 된다.
감사합니다!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주민여러분!
덕분에 하루 잘 묵고 왔습니다.
[두 소화자]
해초와 건국이는 상전이다.
방에 들어 가면 제일먼저 띠엔쓰[TV]를 켜고 누워서 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 날도 마을 회관의 그 넓은 방을 나이 먹은 꼼꼼이 박운상하고 깔끔이 이상용이가 다 쓸고 닦아도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고 누워서 TV만 보았다. 밥을 먹고 나니 설거지도 당연히 뚀아줌마 차지이다. 하기는 내 대신에 샤워를 하라고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사는 것은 좋은데, 웃 어른에 대한 존중과 상대에 대한 배려도 조차도 없이 자기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싫다.
[한토막의 추억]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당시에는 2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 것이 지금은 500원이다.
나는 그날 그 아이스크림을 3개나 먹었다 더 먹고 싶었지만, 나이 먹은 내가 더 먹으면 눈총을 받을 까봐서....
그 아이스크림이 나를 타임 머신에 태워 옛날(?)로 모시고 간다.
20여년 전으로.... 그 때의 추억들이 하나둘씩 진하게 떠오른다.
별이 총총한 전방의 밤에....
이날은
3시간 46분 23초 페달을 돌려 시간당 18.8km의 속도로 70.72km를 이동 하였다.
중국에서의
1,2차 장정기는 본인 홈(http://suro61.netian.com/)의 "자전거 장정"방에 정리가 되어 있으며, 화서당에서 "자전거 탄 풍경"이라는 책으로 출판이 되기도 하였읍니다.
첫댓글 마을회관에서의 잠자리라...
저도 그런 자리는 한번도 한 적이 없어서 참 부럽네요.
역시 사진은 안보이고...
계정을 빌려다 썻기에 이 편. 즉, 고국 기행편은 사진이 없어 졌지 싶군요.
골고루 겪어 본다고... 마을 회관, 절.... 성당은 연락이 않되어서 시골 성당은 비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