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우수영 국민관광지◎
그런면 간단히 진도에 대해서 알아 보고 진행하겠습니다.
진도는 선사시대부터 거주했던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자료에 나와 있는것을 보면 백제시대때 인진도군이라 하여 의자왕 20년에는 나당연합군에 함략당함으로 신리 경덕왕때 진도현으로 바꿨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그리고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략으로 삼별초 배중손이 왕족 승화후온을 왕으로 추대 용장사를 도읍으로 정하고 몽고군에 저항하였으나 9개월만에 토벌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 주민들이 몽고로 잡혀 가고 진도는 거의 빈터가 되죠
요즘 같으며 줄친다고 날리겠죠
서로 내땅이라고.....
그이후 설상가상으로 왜구의 침임이 시작되죠
그리고 남아있던 주민들마져 진도를 버리고 해남으로 피난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해남에 관부를 두게 하며 80년동안 행정기관을 설치 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하야~~~
이야기는 조선시대로 넘어 갑니다.
태종 9년인가요 해남군을 해진군으로 바꿔는데요 다시 세종때 분리하면서 진도군으로 바뀝니다.
즉 초대군수 양경이 부임하여 1440년 지금의 진도읍에 관부를 만들게 합니다.
그이후 행정기관이 수시로 바뀌면서 1896년 진도군이 전라남도에 편입되죠
그리고 1979년 진도면이 진도음으로 승격되고요
흔히 진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뭔줄 아시죠
진도에는 3보 3락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3보는 진도개, 구기자, 돌미역이구요 3락은 진도민요, 서화,홍주 인데요
진도개는 진도군에서 보호 육성되는 토종개로서 문화재보호법과 한국진도개보호육성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는데요,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특히 진도군에서는 진도개시험연구소를 설치하여 보호·육성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인을 찾아 충청도 대전에서 진도까지 300㎞를 달려온 진도개 실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도개의 품성과 뛰어난 귀가 능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실화를 소재로 한 동화와 애니메이션 등이 제작되어 일반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죠.
돌아온 백구 이야기 다 아시죠
돌아온 백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1994년 1월 광주일보에 보도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 화제의 주인공은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박복단 할머니가 키웠던 진도개 백구이랍니다.
백구는 1988년 의신면 돈지리 박복단 할머니의 집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1993년에 대전으로 팔려가죠.
하지만 백구는 할머니와 손자, 손녀의 따사로운 정을 잊지 못하여 목에 메인 줄을 끊고 도망쳐 300㎞의 거리를 찾아 헤매다가 1993년 10월에 옛 주인인 박복단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면서부터 귀가 본능이 강하다는 진도개.
그이후 백구는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2002년 2월에 죽게 되죠.
그리고 돌아온 백구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있는 일명 백구광장에 세워져 있는데요, 이 조형물은 백구의 주인인 박복단 할머니가 돌아온 백구를 어루만지는 형상으로 제작됐었는데요,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해서 돈지마을은 해마다 11월에 백구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진도군 전 지역은 진도개 보호지구로 진도개의 반출입이 제한되며 진도개 이외의 개를 반입할 때에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고 합니다.
내가 키우는개 좋다고 여행 가실적 특히 진도 가실때 진도 대교애 묶어 두고 가시길 바람니다.
하기사 돈 많으면 그냥 가져 가셔도 되지만.....
요정도만 알아도 진도에 대헤선 박사일겝니다.
논문을 쓰지 않아도 .....
해서 진도 대교 건너기전 왼쪽의 전라 우수영 국민광광지를 둘러 보기로 하고 들어 섭니다.
입장료는 1000원인데요 특히 이곳에서 뜰채로 숭어 잡는 묘미가 끝내준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맞지 않아 볼수 없다는게 안타깝지만 관광후 돌아나오면서 뜰채로 잡은 숭어 두접시나 뚝딱 해치웁니다.
고구마 막걸리와 함께.....
그러면 먹었으니께 우수영에 대해서 알보고 넘어가죠
우수영
1597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이 일어키죠.
그해 1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하옥되는데요, 아시죠 누구때문인지.....
해서 대타로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죠
일본군의 수군과 싸웠으나 다대포(多大浦)와 칠천량(漆川梁)에서 대패합니다.
해서 이쯤되니까 정파에 의해 논쟁으로 휘말리던 조정이 사태가 삼각해지자 그해 7월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합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건 전선 13척과 수군 120명뿐이죠.
어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의 동태를 파악하면서 전략을 만들죠
서해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알고는 이순신 장군은 서해 진출의 물목이 되는 명량을 지키기 위해 벽파진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일본 수군도 이에 뒤질세라 벽파진에 몇 차례 기습공격을 해왔지만 조선 수군의 경계망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하죠.
그리고 이에 이순신장군은 명량을 뒤에 두고 싸우는건 불리하다고 판단을 하죠
그리고 9월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을 우수영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그다음날 적선 130여척이 명량을 거쳐 우수영으로 들어 오면서 싸움은 시작되죠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조류를 이용한 전투 ?
13척의 배로 10배 이상의 적을 크게 이긴 명량해전,
이 싸움은 세계해전사의 전무후무한 대승이었으며 조선은 명량대첩 이후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게 되죠.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고 있는 진도대교의 북단에 위치한 우수영 국민관광지
임진왜란 최후의 교두보였던 울돌목을 성역화하여 이충무공과 휘하 장병 및 지역민들의 구국충절을 민족혼의 상징으로 길이 보전, 관리하기 위하여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 1990년 명량 대첩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였다는 기록입니다.
정문//입장료 1000원
진도와 해남사이 울돌목
진도대교
명량해전 탑
진도대교
거북선?
진도대교를 지나는 거북선
거북선...
화포장전...?
요거 뭐하는거 아시져
명량해전탑
진도대교
전망대에서 보는 진도대교
진도와 해남사이
진도대교
쇠사슬 감기
진도대교
뜰채로 잡은 숭어 먹기
◎ 운림산방
운림산방 정문은 공사중이기에 임시매표소를 운영한다는 매표원의 설명입니다.
주차장은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쌍계사 일주문 앞 주차장과 같이 쓸수 있다고 합니다.
입장료는 2000원이구요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49세 때부터 8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남종문인화를 대표하는 호남화단의 산실이라는것입니다.
즉 운림산방은 운림각(雲林閣) 또는 소허암(小許庵) 이라고도 했다는데요,
허련의 호 소치는 중국 원나라 말기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인 대치(大癡) 황공망(黃公望, 1269~1358)에서 왔듯이, 운림산방의 운림 또한 예찬(倪瓚, 1303~1374)의 호 운림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 한답니다.
하여 운림산방은 서울에서 활약하던 허련이 그의 나이 49세 때인 1857년(철종 8) 스승인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건립하였답니다.
1981년에 지방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운림산방
운림산방은 첨찰산아래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 즉 운림(雲林)과, 연화부를 지었던 소치의 당호 즉 운림(雲林)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자료에 의하면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배운곳이기도 합니다.
해서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죠.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죠.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됩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습니다.
점철산에서 이어지는 맥이 이곳 운림산방에 다했다는 천하 제일 명당자리라는 가이드의 말을 빌리자며 왼쪽의 두 봉우리가 여성의 젖가슴이며 점철산이 애기를 밴듯한 배에 배꼽까지 튀어 나왔다는 설명에 이곳은 여성의 생식기라는 이야기가 다시한번더 살펴 보게 합니다.
운림산방을 빠져 나와 특산품매장에 들어 섭니다.
제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이곳 운림산방에서 진도 특산품 홍주를 시범보여 준다는 정보였는데 운림산방 매표원에게 물어본 결과 토요일마다 한다는군요
해서 그건 포기하고 대신 홍주를 살수 있는곳을 갈르켜 달라니 주차장옆 특산품 매장에 가면 된다는 이야기인즉...
다시 매장입니다.
병, 고급병마다 다르지만 우리가 살수 있는 댓병 1병에 17000원, 그리고 40%, 60%는 선택입니다.
진도 홍주는요 그동안 밀조주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민속주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는세 사실입니다.
40도 이상에 붉은 빛깔이 특이하며 원료인 지초는 진도의 일반 가정에서도 상비해 두었다가 체했을 때나 피부질환이 생겼을 때 먹거나 환부에 발라
치료하는 약초라고 한답니다.
하여 지금은 지초가 주로 홍주를 만드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는데요.
외지의 지초가 아무리 굵고 길어도 홍주를 한번 만들고 나면 그 다음은 전혀 색소가 나타나지 않는다는군요
하지만 진도 지초는 뿌리가 작아도 3번까지 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진도에는 20여명이 가정에서 홍주를 만들고 있으며 94년 12월에 민속주로 지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매표소/// 입장료 2000원
뜰
진도역사관
점철산과 운림산방
진도 역사관
점철산//임신한 배꼽
점철산///여성 가슴
그아래 여성 세분
처가집이라는군요
운림산방
운림사
운림산방과 연못
둥근섬과 백일홍
점철산과 여유
연못의 둥근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