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과 돗자리를 챙겨들고 나서야할 것 같다. ‘소풍’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미술관이 늘어난다는 건 반가운 소식.
미술작품 관람의 목적이 아니었으면 어떠랴. 공원 산책을 나왔다가 잠시 미술관에 들러 예상치 못한 감상의 카타르
시스를 맛보는 것도 짜릿한 경험일 테다.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자리한 경기도미술관은 그런 도심 속 쉼터
역할에 제격이었다. 호수와 녹지공원에 둘러싸인 풍광 안에선 현대적인 건축의 미술관도 자연의 일부가 된 듯
친숙한 존재로 다가오니 말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1CF6134A5C403405)
구름 잔뜩 낀 주말 아침인데도 미술관 주변엔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뤘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와 벤치에서 김밥 도시락을 펼치는 노부부, 호숫가에 노니는 새끼오리를 바라보다 미술관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빠와 아이. 6월 초록의 향연처럼 평화로운 풍경들만 한가득하다.
주인공이길 욕심내지 않아서일까. 주변과 하나가 되는 미술관의 모습이 더욱 경건해 보인다. 외관이 ‘유리배’를 연상케 하는 건 거대한 반투명 유리로 설계된 미술관 벽판이 돛대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수와 조화되는 바깥 시선도 매력적이지만, 유리벽을 통해 사방으로 하늘과 빛을 마주하게 되는 내부 공간
역시 인상적이다. 미술관을 다니다보면 자연스레 건축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데, 이는 미술관들이 저마다 건축적
요소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얼까 좀 더 깊이 관찰하고 자유롭게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경기도미술관 건축에서는 물과 빛을 담아내려 고심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벽화가 있다. 이름하여 ‘5만의 창, 미래의 벽’. 1, 2층 통로벽을 가득 메운
가로 72m, 세로 10m의 대형 벽화인데, 그 완성된 배경이 흥미롭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서부터 최북단 대성동
마을까지 총 120개 초등학교의 어린이 5만명이 참여해 이뤄낸 작품. ‘나의 꿈’이란 주제 아래 자신이 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을 한데 모았다. 형형색색 아기자기한 내용
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찬찬히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번지는 벽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146C104A5C40C095)
2층에서는 현재 기획전으로 ‘현대조형도자전: 세라믹스-클라이맥스’가 열리는 중이다. 도예의 재료가 되는 점토를 매체로 독창적인 현대 조형물들을 선보이는데 제법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많다.
생각의 꼬리를 무는 철학적인 주제를 딱딱하지 않게 풀어내니 어른들에게는 의미 있는 감상이 되고,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동화 같은 이미지와 색감을 사용하여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니 관람대상의 영역을 허문 셈이다. 가족 나들이로서의 공간을 배려한 전시답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고 백남준 선생이 빗살무늬 토기를 형상화하여 만든 비디오 설치작품 ‘흙으로 미래를 빚다’도 출품되어 있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1층 로비갤러리의 ‘우리들의 눈’ 전시도 꼭 한번 둘러보길 바란다. 경기도미술관이 시각장애인 아트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된 작품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작품의 질과 관계없이 따스한 감동을 전해주는 전시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을 흙이라는 소재로 빚어 표현한 아이들의 마음이 어찌나 곱고 예쁜지. ‘천사’를 만든 어느 어린아이의 작품 후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