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방에서 안 나와요! | |
한 아이가 자기 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어머니가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라고 부르지만 방안으로 가져다 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는 게임에 더욱 열중한다. 다름 아닌 한 대기업의 CF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이런 상황을 한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 |
< 정준회: tstar@knou.ac.kr 등록일: 2008-10-13 오전 9:38:22 제1513호(2008-10-13) > | |
아이가 ‘플레이스테이션’이니 ‘닌텐도’니 하는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사주기 싫지만 공부하게 PC를 사달라고 하면 너무 기특하다. 바로 다음날 아이 방에 PC한대가 들어서 있다. 부모가 PC에 능통해 아이를 잘 교육시킬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이 방의 PC는 그날부로 ‘비싼 게임기’로 전락하고 만다. 집에 PC가 없어도 아이는 언젠가는 게임과 만나게 된다. 전국에서 제일 PC방이 많다는 서울 관악구는 9월 현재 370여 곳의 PC방이 영업 중이다. 요즘은 모퉁이 돌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것이 PC방이다. 케이블 TV를 켜면 하루 종일 게임만 방송해 주는 채널도 있다. 아이들이 등하교하면서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모두 게임이야기다. 아이들을 게임과 격리시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세상이다. IT시대의 새로운 질병 과거에는 기껏해야 오락실 정도가 게임과 만날 수 있는 장소였지만 오늘날에는 집안에서 학교에서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도 휴대폰을 통해 게임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만큼 게임중독자도 늘고 있다. 이는 게임산업의 폭발적 발전에서 오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2006년 게임시장 규모는 7조4천억원(2007 게임백서)을 기록했다. 이는 3조6천억원의 영화와 2조4천억원의 음악(2007 문화산업백서)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성장통이 없을 리 없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를 위해 한국게임산업진흥원에서 제출 받은 ‘청소년 게임 중독에 관한 실태조사’(2007년 12월~2008년 2월)에 따르면 조사대상 65.7%가 하루 1시간 이상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하루 세 시간 이상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도 12.1%에 달했고 그 중 29.1%는 ‘게임을 하지 못하거나 줄이면 초조하고 불안해진다’고 답해 전형적인 게임중독 증세를 보였다. 어떤 연구에서는 중고생 10명중 3명이 게임중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게임중독의 심각성 게임이 심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연구가 있다. 김현석(경희대 수련의 과정)씨는 “미국에는 게임중독을 강박성 도박증이나 우울증, 약물중독과 같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며 “다만 이를 위해서는 게임의 위해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게임의 위해성에 대한 연구 중 유명한 것은 일본 니혼 대학 교수로 있는 모리 아키오 박사의 ‘게임뇌의 공포’다. 게임하면 머리가 나빠진다? 모리 박사는 자신의 저서인 ‘게임뇌의 공포’(NHK 출판, 2002)에서 α 파와 β 파가 나타나는 양상을 통해 ‘게임뇌’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모리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간이뇌파 측정장치를 통해 뇌파를 측정하고 ▲정상인 뇌 ▲비주얼 뇌 ▲반 게임 뇌 ▲게임 뇌의 총 네 가지 타입으로 뇌를 분류했다. 정상인 뇌는 일반인의 그것으로 큰 특징이 없다. 비주얼 뇌는 비디오나 TV를 하루 1~2시간 시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것으로 정상인 보다 뇌파의 형태가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반 게임 뇌는 평상시에는 정상인 뇌의 뇌파를 띄지만 게임을 하게 되면 게임 뇌가 되는 부류다. 문제의 게임 뇌는 β 파 발생이 크게 떨어져 있는 뇌인데, 게임을 하지 않는 평상시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고 한다. 이렇게 β 파가 낮은 상태는 다름 아닌 치매환자의 뇌파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 모리박사의 주장이다. 쉽게 얘기해서 게임 많이 하면 머리 나빠진다는 속설을 뇌신경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게임으로 뇌파가 치매환자의 그것과 비슷해진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게임중독에 빠지는 이유 아이들이 게임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게임이 애초에 ‘사악하게’ 만들어진 탓도 크다. 게임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최근에는 어떤 것이라도 기본적으로 성장과 수집의 요소를 품고 있다. 게임 속에서 나의 분신이 점점 강해지고 재물을 모아 부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신이 게임속의 주인공이 된 착각에 빠지면서 게임중독 상태가 된다. 일부 청소년들은 게임의 환금성(換金性) 때문에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게임속 아이템이 현실에서 비싸게(무려 수백만원을 넘나드는 경우도 있다) 팔려나가기 때문에 돈을 벌기위해 게임에 매달리는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뿐 아니라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도 게임중독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게임은 부모와 함께 물론 모든 게임을 하는 사람이 게임중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게임중독을 방지하기 위해선 PC와의 첫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 PC에 익숙해지는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게임을 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게임외의 다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PC와의 첫 만남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리고 자녀에게 게임을 접하게 할 때는 한동안 부모가 같이 해 일정시간동안만 즐기게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게임을 혼자서 즐기거나 부모가 하지 말라고 다그치기만 해서는 오히려 게임중독이 쉽게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게임중독이 나타났을 때는 만약 자녀가 게임중독일 경우에는 먼저 주변의 클리닉을 찾는 것이 좋다. 게임중독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인정한의원의 김장연 원장은 “흔히 게임을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다그쳐서는 게임중독을 치료할 수 없다”며 “증상이 아닌 원인을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게임중독 클리닉에서는 미술치료나 심리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게임중독을 치료한다. 하지만 김 원장은 클리닉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게임중독에 빠진 아이들을 보면 보통 부모와의 접촉이 적은 경우가 많다”며 “부모가 다른 여가를 만들어 아이와 같이 즐기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아교육과 김희태 교수는 “게임 그 자체가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린 나이에 접촉했을 경우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문제가 있는 청소년을 역추적해 보면 과거에 게임과 같은 과도한 자극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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