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어디를 가나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횡성땅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고루 갖춘 고장이다.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문득 고향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지고 도시에서는 좀체로 맡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풋풋한 풀내음이며 사람들이 베푸는 살가운 정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횡성군은 강원도의 핵심 도시인 원주와 어깨를 맞대고 있으며 얼마 전 뚫린 중앙고속도로 덕에 요즘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다. 춘천에서 대구까지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는 이곳, 횡성땅을 사계절 관광지로 바꿔 놓았다.
고속도로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횡성땅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촌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사실은 횡성이 거느리고 있는 산만 봐도 알 수 있다. 태기산(1,264m), 청태산(1,190m), 봉복산(1028m), 운무산(980m), 수리봉(1,028m), 발교산(998.4m), 오음산(930m), 사자산(1,040m), 배향산(808m), 여기에다 치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남대봉(1,181.5m), 향로봉(1,040m),비로봉(1,288m)까지 그야말로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다. 또한 횡성의 지리적 특징이라면 남한강에서 뻗어 나온 십여 개의 하천(물줄기)을 들 수 있다. 이들 하천(모두 18개)은 횡성읍을 가로질러 섬강으로 흘러 든다.
이런 지형이다 보니 다른 지방에 비해 자연 재해를 덜 받는 편이다.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논밭이 마른다거나 물이 범람하는 일이 거의 없다. 횡성은 산도 깊지만 들도 꽤 넓은 편이다. 산이 많은 강원도는 일부 특용작물을 빼놓고는 많은 소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횡성땅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은 소출도 많으려니와 품질이 우수하다. "횡성인의 앞들 자랑"이란 속담에서 보듯 비옥하고 넓은 들은 이 고장 사람들의 자랑거리이다. 기름진 들판에서 재배한 농작물들은 서울의 가락동 시장이나 횡성장에 나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강원도에서 양양장 다음으로 크게 열린다는 횡성장은 끝자리가 1일과 6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횡성장의 역사는 저 일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의하면 1919년 3월 1일 횡성 장날에 3·1 만세 운동을 벌였다고 하니 1910년대 이전부터 장이 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제 침략 시기에는 일본 상인들이 상원을 형성하려고 갖은 수단을 썼으나 횡성 상인들과 주민들의 단합, 불매 운동을 벌여 일본 상인들을 몰아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횡성장은 읍내 시장 골목 양쪽을 중심으로 도로변에 주로 선다. 장날이면 자동차와 상인, 소비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요즘 장에 나오는 품목은 고추, 감자, 시금치, 아욱, 더덕, an, 배추 같은 채소류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수북이 쌓인 과일이며 밤, 땅콩 같은 결과류도 보이고 미꾸라지, 가물치 따위의 어류도 즐비하다. 장터 한쪽에는 국밥이 보글보글 끓고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막걸리 한 사발로 갈증을 푼다. 우리네 민속장터 풍경은 이렇게 정겹고 소박하다.
재래시장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우리 것이 많고 값이 싸다는 것이다. 간혹 수입 농산물이 보여 씁씁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한 상인의 귀띔에 의하면 요즘에는 수입산을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의식이 그만큼 바뀌었다는 증거가 아닐는지.
읍내 중심부에서 시작해 중앙시장 옆길을 에워 돌며 군청이 있는 삼일로 앞까지 이어진 난전은 그 규모를 짐작게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군민들이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인들도 많이 눈에 띤다. 도로변에 주차된 자동차의 번호판을 보면 경기도나 서울 쪽에서 온 사람들의 숫자를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시장 골목 한켠에서 곡물을 내놓고 파는 한 할머니는 "사람이 이렇게 들끓어도 매상은 예전 같지 못해. 재작년만 해도 하루 내내 팔면 몇 만원은 손에 쥐었는데 요즘에는 통 장사할 기분이 나지 않아"라고 하시며 요즘 시장 형편을 들려주신다.
횡성장에 장꾼이 많이 몰리는 것은 장사가 잘되서라기보다 춘천이나 원주, 홍천의 오일장이 시들해지면서 전통이 남아 있는 횡성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횡성 오일장과 함께 우시장(牛市場)도 역사가 깊다. 횡성축협(033-343-9907)에서 운영하는 우시장은 횡성 오일장과 마찬가지로 끝자리가 1일과 6일인 날에 열리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새벽 4시, 우시장이 열리는 시간이다. 횡성군 조곡리 우시장 앞. 장날이면 소를 싣고 온 트럭들로 한바탕 난리가 난다. 여기에 모이는 소는 큰소, 중소, 송아지들로, 상인들은 장이 채 열리기도 전에 마음에 드는 소를 점찍어 놓기도 한다. 큰 소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고 장이 열리자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상인들은 좀더 좋은 소를 사기 위해 꼼꼼히 살핀다. 이를테면 눈동자가 선명한지, 코는 마르지 않았는지, 털은 윤기가 나는지, 어깨선은 적당히 벌어졌는지 유심히 살핀 뒤에 소의 가치를 매긴다. 거래가 이루어진 소는 등에다 글자를 써서 무게를 단 뒤 도축장으로 끌려가거나 구매자에게 넘어간다. 우시장은 늘 그랬듯이 허전함과 뿌듯함이 교차한다. 자식처럼 아꼈던 소를 파는 심정이 오죽하랴. 그나마 값이라도 제대로 받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게 우리네 농촌 현실이다.
예부터 "사람은 서울로 소는 횡성으로"라는 말이 있다. 횡성 우시장의 규모와 명성은 여기에서 잘 나타난다. 사실 횡성 우시장은 지금과 같은 명성을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염되지 않은 물과 뚜렷한 일교차, 그리고 초지가 많아 소 사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횡성 한우는 품질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농가에서 한두 마리씩 키우는 한우는 대량 사육한 것보다 맛이 부드럽고 고소해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횡성 한우만 고집한다. 산지가 대부분인 횡성은 누에나 맥주의 원료인 홉, 인삼, 고추, 고랭지 채소 등을 키워 파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횡성 한우는 전망이 밝은 산업으로 횡성군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횡성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라면 요즘 한참 각광받고 있는 참숯이다. 횡성군 관내에서 참숯을 생산하는 곳은 여러 군데이나 그중에서도 강원참숯(033-342-4508)은 규모가 가장 크다.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 야트막한 산기슭, 10여 개의 재래식 숯가마 굴뚝에서 하루 종일 파란 연기가 솟구친다.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 맨 인부들이 가마에서 뜨거운 숯을 구워 내고 있다.
산 첩첩 골 첩첩한 횡성땅은 사방으로 통하는 길이 비교적 잘 닦여 있다. 횡성에서 서원방면으로 20여 분 가면 산자락 밑에 아담하게 들어선 풍수원 성당(033-342-0035)을 만날 수 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찾아가기 쉽지 않지만 천주교 신자들에겐 매우 익숙한 곳이다. 1907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온 신자들과 한국인 신부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이기 때문이다.
횡성 IC에서 횡성 방향 4번 국도를 타고 섬강유원지를 지나 조금 더 가면 횡성댐(033-343-5836)과 횡성호가 차례로 나타난다. 지역민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한 횡성댐은 물 홍보관을 따로 마련해 두고 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 댐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는 호수와 함께 산장이나 전망 좋은 찻집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댐으로 계곡을 막아 형성된 횡성호는 군 발전의 규모와 정도를 가늠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댐 건설로 인해 마을을 떠나야 했던 수몰민들의 잃어버린 삶도 엿보게 한다.
횡성땅을 얼추 둘러보았다면 마지막으로 횡성온천(033-344-4200)에 들러 피로를 푸는 것도 좋을 듯싶다. 지난해 3월에 개장한 횡성온천은 물의 깨끗함을 나타내는 유리탄산 성분이 월등히 높아 피로회복, 만성피부병,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에 특히 좋다고 한다. 노천탕에 폭포탕, 안마탕, 황토찜질방, 솣가마찜질방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여행메모
영동고속도로 새말IC나 중앙고속도로 횡성IC로 빠지면 횡성읍내로 갈 수 있다. 서울 동서울터미털에서 오전 6시부터 오수 6시 30분가지 40분 간격으로 시외버스 운행. 횡성읍내에는 장급여관이 많다. 강원참숯이 운영하는 태림하우스(033-342-0391)는 숯가마에서 찜질하며 푹 쉴 수 있어 인기가 좋다. 모두 15개의 방을 갖추고 있으며 취사가 가능하다(1박에 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