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작가가 쓴 《인간실격》(김춘미 옮김, 민음사)을 읽음. 《인간실격》과 《직소》를 실었는데, 출퇴근길과 쉬는 시간에 읽음. 오늘도 우리말로 옮긴 김춘미 이화여자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의 해설을 읽으면서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직소》는 예수를 배신한 가리옷 사람 유다의 시선으로 복음서를 읽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작가는 신약성서의 마태오 복음서를 즐겨 읽었다고 하는데, 유다인 ‘나’는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예수의 생각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고, 하늘의 말씀을 말씀을 하시고,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사시는 그분의 순수함이 좋아서 제자로서 따라다녔고, 복숭아밭이 있는 자신의 고향집에서 어머니이신 마리아 님(오늘이 성모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천사 가브리엘에게 받은 날임.)과 편히 살기를 바랐습니다. 요한, 마르코 복음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 즉 예수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명인 군중들을-성공회에서 여성운동을 하신, 우리 내동교회 헬레나 교우님이 정확하게 비판을 하셨는데, 마르코 복음사가가 살던 고대에는 여성인권이라는 관념이 없었음. 성 평등을 말하는 여성주의 또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자유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나눔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산물임. 고대는 남성인 아버지가 여성인 따님들을 지배하는 가부장 사회이므로 여성과 어린이는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시대가 아니었음.-먹인 이야기도 장사꾼인 유다가 자신의 돈을 들여서 했다고 말합니다. 마냥 예수가 좋아서였다고 말하면서요. 그는 제자들과 달리 자신은 예수를 따라 다녀서 총리나 부총리가 될 욕심도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은근히 제자들의 속물스러움을 낮추어보고, 자신의 순수함을 강조합니다.
직업이 상업인 터라 세련된 교양을 갖춘 인물이니 루가복음서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중에서 투박한 농촌 여성인 마르타를 경멸하고,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마리아의 고운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향유로써 예수의 발을 바르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이 돈이면 300데나리온은 될 것이고 그 돈으로 자선을 베풀 수 있다고 소리칩니다. 예수가 말하는 하늘나라 또는 하느님나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이라 생각하고, 경제적 동기와 가치에 따라 판단하는 유물론자인 유다에게는 마리아의 행동은 돈이 아까운 줄 모르는 행동이었습니다. 사도 성 요한이 요한복음서에서 “유다는 도둑이다. 그는 횡령을 일삼았다”라는 인물 평론을 했는데, 다자이 오사무 작가도 같은 평론을 한 셈입니다.
이를 예수께서 보시고 마리아의 마음을 칭찬하시자, 그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를 예수께서 아끼심을 질투합니다. 더구나 마지막 만찬 때에 예수가 자신의 못된 마음을 읽자 ‘그분의 심술궂음’에 분노가 치밀어 결국 배신을 합니다. 대사제에게 가서 예수가 자신의 운명을 알고 겟세마네 동산에 있다고 말한 것이고, 자신은 장사꾼에 불과하다면서 대사제가 주는 돈을 받습니다. 어머니가 감리교회 신자였고, 그 자신도 개신교 학교에서 공부하여 채플 곧 종교학교에서 교목이 집전하는 예배에 참여하기도 한 분인 김동리 작가가 쓴 《사반의 십자가》(어문각), 홍성사의 작가소개에 의하면 이모의 영향으로 세례명이 바오로인 가톨릭 신자로서 산 엔도 슈사쿠 작가가 쓴 《예수의 생애》(홍성사, 가톨릭출판사)를 읽는 느낌이 드는 단편소설입니다. 유다의 영악함은 김동리 작가가 사반의 십자가에서 한 말이고, 단순히 탐욕 때문에 예수를 배신한 게 아니고 예수의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졌지만, 민중의 동반자가 되려는 생각을 헤아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엔도 슈사쿠가 예수의 생애에서 한 말입니다.
이분들과 달리 다자이 오사무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성서를 탐독하여 정리한 생각으로써 유다의 시선으로써 예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썼고,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과 같은 종교소설과 달리 종교가 아닌 인간으로서 예수를 읽는 비종교성이 다자이 오사무 작가가 자신만의 창발성으로써 예수에 대한 생각을 씀이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가가 쓴 《라쇼몽》(민음사)처럼 하나의 사건을 놓고 사람마다 기억이 다름처럼 제자들마다 예수의 생각이 달랐을 것임을 헤아렸고요. 실제 예수께서 베푸신 세족례(우리 성공회에서는 성 주간 중에 예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인 성 목요일에 사제와 교우들이 그대로 모방함.)를 묘사할 때에 성 베드로에게는 자신이 주님이자 선생님으로 따르는 분이 하얀 수건을 가져다가 발을 씻겨주시니 “황송한” 경험이고, 유다에게는 예수의 겸손함에 감동해서 자신의 못된 생각을 뉘우치고 배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경험입니다.
《인간실격》은 액자소설입니다. 서술자인 나의 시선으로 일기에 나오는 요조라는 인물의 일기를 읽습니다. 자전소설인 동시에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마치 미국의 루이자 메이 올컷 작가가 쓴 소설인 《작은 아씨들》(루이자 메이 올컷, 열린책들에서 1, 2권으로 펴냄)에 나오는 조와 매그 언니, 동생들, 매그 언니와 결혼을 한 형부, 본래 자신을 따라다니다가 뻥 차이고 나서, 동생과 결혼을 한 롤리, 노예제를 둘러싼 내전인 남북전쟁 때에 개신교 군목으로 복무한 아버지와 가사노동자인 해나와 같이 집안 살림을 꾸린 엄마, 고모할머니, 롤리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메이 올컷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곧 이상주의자로서 공동체 활동을 한 인물인 부친에 대한 기억을 소재로 쓴 자전소설인 동시에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인 것과 같습니다.
일기에는 요조가 사회에서 소외됨을 느끼자 익살꾼으로 행세를 했지만, 삶이 불안정했다는 겁니다. 그는 여러 여성들과의 애정을 가졌고, 맑스주의 단체에서 활동을 했으며, 자사를 시도했고, 폐결핵에 걸렸으며, 약물중독으로 인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요조가 쓴 이야기의 결말은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라는 생각입니다. 한번도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적이 없었고, 학교와 사회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다가, 그의 건강을 염려한 큰형, 후견자인 ‘넙치’와 호야키, 애인의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서 약물중독 치료를 받다가, 당시에는 치료를 하지 못하는 병인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앞둔-지금은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고, 비타민으로써 영양보충을 함으로써 몸을 돌보면 되지만.-청춘의 삶이니 스스로 사람으로서는 실격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자도 결혼을 했지만 여러 여성들과 애정을 품어 애인들과의 자사실패 및 자사를 하였고(1948년), 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할 때에 맑스주의 단체에서 활동을 하였고 매달 십 엔씩 후원을 한 사람이며(번역자가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를 혼용하시는데, 맑스주의라고 통일함이 좋겠습니다. 맑스가 살던 시대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있어서, 맑스가 《공산주의 선언》에서 이들을 자신만의 논리로써 비판하잖아요.), 취업준비로 바쁜 지금 대학생들과 달리, 글쓰기와 좌파 활동, 청춘연예사업을 하시느라 공부에 몰두하지 못해 졸업을 하지 못함(1933년에 졸업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사를 하려고 했다는 게 김춘미 교수님의 설명임. 소설에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함)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좌파 활동을 진지하게 한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삶과 맑스주의 이론을 재미삼아서 한 요조의 삶에서 알 수 있듯이 허구도 있습니다.
호야키라는 인물도 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분을 보고 만들어낸 인물이라면, 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분이 자신을 한량으로 그린 소설의 인물을 만듦을 읽고 나서 답답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당시 다자이 오사무 작가와 같이 대학교 학우가 참여한 사회운동인 맑스주의는 미군정 시기에 노동조합 합법화 등으로써 정치, 사회에 걸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비합법이었고, 《먼나라 이웃나라》일본 편2권(일본의 역사, 이원복 글 그림, 김영사)에 의하면 다이쇼크라시에 두려움을 느낀 일본 정부가 만들어낸 한국의 국가보안법인(양심과 사상의 온전함을 위하여 인권을 억압하는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치안유지법(1925년)으로써 억압을 받는다(그래서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큰형이 사회운동을 못하게 합니다. 작가로써 일본 문학 동네에서 활동하는 동생이 불이익을 받을 테니까요.)는 한계는 있었지만, 일본 엔에치케이 경제전문기자가 쓴 《자본론을 읽을 시간》(랜덤하우스중앙)에서 1945년 8월 일본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하여 패망하고 나서, 미군정시기를 거쳐 재주조한 일본국에서 경제관료로 활동한 이들이 맑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나 1923년 간토 조선인 및 사회주의자 학살이 일어났을 때에 일본공산당원들과 일본의 조영래 변호사인 후세 다츠치 변호사가 진상조사에 참여할 정도로 진지한 지식인들이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작가 자신도 요조와 달리 재미가 아닌, 진지하게 맑스주의에 참여했습니다. 자전소설이라고 해도 사실만 있는 게 아닌, 엄연히 허구라는 소설의 특징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저자가 자신의 불안정한 삶을 요조라는 인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삶에서의 불안정함을 일기를 쓰는 글꼴과 액자소설로써 썼다는 겁니다. 2023년 9월 8일
첫댓글
고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를 알게 된 놀라운 글입니다.